소설리스트

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40화 (140/183)

140화

[쿠아아아아아아!!!!!!!!!]

고룡이 울부짖었다.

그 울부짖음은 너무나 위협적이어서 고작 듣는 것만으로 전신이 저릿하게 떨려왔다.

어쩌면 그것은 경고 같기도 했다.

허나 그 울음 뒤에 무언가 서려 있었다.

그것은 울음이기도 했고, 고통이기도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알 수 없는 서러움이 가슴에 북받쳐 올랐다.

한명련과 데판은 아릿한 감정을 신경 쓸 새도 없이 전투를 준비했다.

고룡은 높이 비상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도망치기는 그른 모양입니다.”

[만만치 않은 녀석이다.]

데판은 마기를 개방했다.

그의 몸뚱이가 비대해지며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를 지켜보는 한명련의 동공이 부풀었다.

“이게...”

[...놀랍겠지만, 이게 나의 본 모습이다.]

여차하면 창공을 비상하고 있는 드래곤에게 닿을 듯 부풀어오르던 데판의 몸이 본모습을 되찾았다.

온전한 모습을 되찾은 데판을 보는 한명련의 눈가가 떨렸다.

그 눈에 담긴 감정은 경외였다.

“정말 엄청난 인형이군요!!!”

이쯤되면 진짜 정체를 알아챌 법도 하지만, 눈치도 없는지 한명련은 그저 끊이지 않는 탄사만 내뱉을 뿐이었다.

스륵!

한명련은 발을 길게 끌어 당장에라도 공격을 위한 자세를 잡았다.

“혹여 살아남아 마르가리타 씨를 다시 뵙게 된다면 인형에 대해 물을 게 많을 것 같습니다.”

[입 닫고 준비나 해라.]

창공을 비상하던 고룡이 날개를 크게 펼쳤다.

파아아아!!!

고작 날개를 펼친 것만으로 돌풍이 일었다.

고룡 아래 나무들이 일제히 넘어갈 듯 흔들렸고, 바닥의 여백을 메우던 수풀들은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고룡은 날개를 접었다.

“옵니다.”

그것의 거대한 몸뚱이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정확히 말해, 두 사람이 있는 지반을 향해 말이다.

한명련은 잡고 있던 검의 손잡이를 당겨 발도했다.

쉬잉!

검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 검기가 흩날린다.

날아간 검기가 떨어지는 고룡의 머리에 직격하지만, 그것은 찰나처럼 보이는 긴 억겁의 충돌 이후 한낱 먼지가 되어 흩날렸다.

[...비켜라.]

콰앙!!!

고룡의 몸뚱이가 바닥에 처박히는 순간, 데판은 한 걸음 걸어나와 몸을 둥글게 고룡을 막았다.

그저 몸이 부딪히기만 했는데도, 이루 설명하기 힘든 충격이 데판을 타고 땅바닥에 크게 울렸다.

[큭...!!!]

데판은 몸을 모로 비틀어 고룡의 공격을 흘렸다.

쿠구궁!!!

그리고 바닥에 처박힌 고룡의 발자국은 마치 포탄이라도 떨어진 듯 커다란 크레이터를 남겼다.

[쿠아아아아아아!!!!!!!!]

고룡의 울부짖음이 또 다시 창공을 꿰뚫었다.

이번 울음에 서린 감정은 분노였다.

“일전보다 더욱 강력해진 것 같습니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무언가 착각을 하는 모양인데, 저런 세월을 양분으로 난 미물들은 고작 인간의 시간으로 가늠할 수 없다.]

“그게...”

한명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룡의 입에서 열기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그것을 눈치 챈 두 사람은 고룡을 보았다.

동시에 그것의 아구에서 황금빛 물결을 토해내는 불꽃이 쏟아졌다.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 일격을 정통으로 맞는다면 죽는다.

형태라도 남을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 싶은 공격이었다.

하여 두 사람은 발을 굴렀다.

데판은 오른쪽, 한명련은 반대로.

잠시나마 고룡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고룡의 불꽃은 처음엔 두 사람이 있었던 바닥에 떨어졌다.

불꽃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엔 그저 재만이 남았다.

이윽고 그 불꽃은 한명련을 향해 움직였다.

불길이 지나가는 길에는 그저 그을린 재가 땅을 대신했다.

한명련은 한쪽 소매를 휘날리며 전속력으로 뛰었다.

그 사이 데판은 쓰러진 나무 하나를 집어 그대로 고룡을 향해 내던진다.

파앙!

기다란 나무가 공기를 꿰뚫는 소리를 내뿜으며 고룡을 향해 치달았다.

한명련을 향해 불길을 내뿜던 고룡은 흠칫 날아오는 나무를 보더니 아구를 닫았다.

그리고 날개를 휘두른다.

콰작!!!

날개와 나무가 맞부딪히며 나무가 으깨지는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쿠아아아아아!!!!!!]

고룡이 또 다시 울음을 토해냈다.

이번에 서린 감정은 고통이었다.

“이쪽도 있습니다.”

잠시 고룡의 시선이 데판에게로 쏠린 사이, 한명련은 자세를 잡고 검을 아래로 검집에 집어넣었다.

“발도.”

사악!!!

은빛으로 반짝이는 검날이 검집을 빠져나오면 공기를 베어가르는 쇳소리가 울린다.

함께 그 끝에서는 투명하고도 기다란 아지랑이가 허공을 꿰뚫는다.

“검강.”

콰앙!!!

검강이 고룡과 부딪힌다.

하늘을 닮아 푸른 검강이 날개의 끝부분을 찢었다.

[쿠아아아아아!!!!!!!!!!!!]

고룡이 울부짖는다.

진동하는 그 울음은 땅을 뒤흔들었고, 천지를 개벽시켰다.

“큭...!”

그리고 그 울음에 두 사람은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달팽이관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게였다.

고룡은 잠시 두 사람이 멈칫하는 틈을 노려 날개를 저몄다.

그리고 날아간다.

그의 몸뚱이는 추락하는 번개와 같은 속도로 한명련에게로 떨어졌다.

그는 다가오는 기척에 반사적으로 발을 굴러 뒤로 뛰었다.

콰앙!!!

용케 고룡의 일격은 피했다만, 뒤이어 일어나는 후폭풍은 피할 수 없었다.

폭풍에 휘말려 한명련은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허나 그의 손은 마지막까지도 검을 휘두른 뒤였다.

고룡의 눈이 이번엔 데판을 향했다.

그 역시 아직 귀에 얹은 손을 떼지 못한 상태였다.

고룡은 불길을 내뿜었다.

황금빛 선단을 만드는 불꽃은 데판을 향해 주파한다.

데판은 최대한 빠르게 방어를 위해 만전을 기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죽는다는 그 단어가 머리에 피어올랐다.

쏴아아!!!

날아든 불꽃이 데판을 덮치려는 순간, 날아든 검기가 고룡의 턱을 노린 덕에 데판은 불꽃을 피할 수 있었다.

콰당탕!!!

고룡은 다시 비상했다.

그에게서 엄청난 살기가 쏟아졌다.

그리고 그것의 아구에서 피어나는 아지랑이가 공격을 준비하던 때였다.

『그만!!!』

그 순간 마르가리타의 목소리가 숲을 울렸다.

나무에 부딪혀, 바위에 부딪혀, 숲을 가득 공명하는 그 소리는 마침내 고룡에게 닿았다.

고룡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한다.

아주 잠시나마 숲에 정적이 찾아왔다.

당장에라도 쏟아지려던 불꽃은 드래곤의 아구에 응집되어 불씨만 흩날렸다.

그리고 짧은 마주침이 흘렀다.

[쿠아아아아아아!!!!!!!!!!!]

고룡이 울부짖는다.

그 울음에 서린 감정은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고룡이 만들어낸 진동은 천지를 뒤흔들었고, 드리운 구름들은 부쉈다.

터벅.

마르가리타는 고룡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조심하십쇼!!!”

겁도 없이 고룡을 향해 걸어가는 그녀를 본 한명련이 소리쳤다.

고룡의 아구에서 또 다시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위협적인 불씨가 언뜻언뜻 피어나고 있었다.

와중에도 마르가리타는 침착하게 고룡을 향해 걸어갔다.

[뭐하고 있는 거냐!!! 도망쳐라!!!]

데판이 소리친다.

마르가리타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고룡을 마주한 채 그를 향해 움직였다.

한치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는 발걸음이었다.

고룡은 불꽃을 내뿜었다.

허나 그것은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그저 허공에 흩날려 하늘을 드리우던 구름을 태울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르가리타가 고룡의 목전까지 도달했을 때.

그녀는 아주 천천히, 봄날의 벚꽃이 추락하는 속도로 손을 뻗었다.

그 손은 고룡에게 닿지 않았다.

『살아...있었구나.』

마르가리타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두 눈은 고룡의 머리를 향했다.

투박한 비늘 위에 새겨진 커다란 상처.

마르가리타는 침음했지만, 고룡은 소리를 질렀다.

더 이상 그 울음에 감정을 논할 수가 없어 마르가리타는 들어올린 손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찰나의 마주침 속에 무수히 많은 시간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녀의 입이 달싹거렸다.

『...』

[...]

『...미안해.』

그녀의 한마디.

그것으로 고룡은 마기를 폭발시켰다.

울음을 닮은 그 마기는 황금빛 불빛을 내비치며 낙하했다.

그리고 추락하는 불꽃이 마르가리타에게 닿으려는 순간.

콰당탕!

달려온 박율이 그녀를 안고 바닥을 굴렀다.

화아아!!!

뒤이어 떨어지는 불꽃이 바닥을 새카맣게 태웠다.

박율은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얼른 고개를 들어 마르가리타를 살폈다.

다행히 다치진 않은 모양이었다.

“죽으려고 환장했어요!?”

박율은 역정을 내며 버럭 소리쳤다.

하마터면 그대로 꼼짝없이 통구이가 될 뻔했다.

마르가리타는 그저 벙찐 얼굴로 그를 보았다.

『유...율아...』

“일단 일어나요.”

박율은 얼른 그녀를 일으켰다.

[쿠아아아아아!!!!!!]

고룡의 울음이 세상에 내려앉았다.

듣는 것만으로 온몸이 저릿하게 떨려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 살리고 죽은 사람 죽는 꼴은 못 보겠거든요.”

박율은 망치를 들었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저놈이랑 연관된 거 같은데...”

『나 때문이야.』

“예?”

『내가...』

“무슨 기구한 사연이 얽힌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살아남고 봅시다.”

박율은 눈동자를 굴리며 전황을 살폈다.

이미 주변의 숲들은 죄다 불꽃에 휩쌓여 황페화되어 있었고, 도망칠 구석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다시 고룡에게로 뻗어갔다.

저 마수의 속도로 보나 불꽃의 위력으로보나 도망치기는 글렀다.

싸우는 것말고는 선택지가 보이지 않았다.

박율의 손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은 망치를 타고, 그것을 더욱 거대하게 만들었다.

“일단 물러서 있어요.”

고룡은 이미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순간.

쾅!!!

어디선가 날아온 바위가 고룡의 이마에 직격했다.

날아온 방향엔 야화가 되어 검게 변해버린 서희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마르가리타를 제외한 박율 일행의 총공세가 시작되었다.

박율의 망치가 창공을 꿰뚫고, 한명련의 검강이 고룡의 날개를 찢는다.

데판과 서희의 공격이 그 사이에 섞여 찰나에 벌어지는 빈틈마저 고룡에게서 앗아갔다.

나름의 합공이 먹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허나 마르가리타는 떨었다.

그것은 공포가 아니었다.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에 대한 경계였다.

『안돼...』

마르가리타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고룡이 고통스러워한다.

불꽃을 내뿜으며 고통의 비명을 지른다.

뿌옇게 일어나는 먼지 사이로 고룡의 검은 핏물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마르가리타의 손에 닿았다.

『...』

마르가리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말한다.

[언령]

『멈춰.』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온 그 소리는 진동했다.

이윽고 그 진동은 모두에게로 치달았다.

그녀의 한마디에 모두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말이다.

터벅.

그녀는 발을 내디뎠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고룡 역시 마르가리타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는 분노와 슬픔, 그리고 절망, 애절함이 절어있었다.

마르가리타는 그 눈을 피할 수 없었다.

『내가 저지른 일이니 내가 끝낼게. 그러니까.』

새하얗게 갈무리하는 빛줄기가 그녀의 손에서 망치의 형태로 바뀌었다.

『모두 그만둬.』

마르가리타는 뛰었다.

이윽고 그녀는 고룡에게 닿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