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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53화 (153/183)

153화

일행들은 반사적으로 입을 가리고 숨을 참았다.

뱀처럼 꿈틀거리는 케로베로스의 머리 하나가 소리의 주인을 찾듯 허공을 유영하고 있었다.

‘쉿...’

박율은 일행들에게 눈빛으로 말했다.

그들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개를 끄덕였다.

케로베로스의 머리가 일행들의 정면을 살폈다.

아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왔다가는 들킬법한 거리였다.

하지만 움직일 수는 없었다.

이 정도 거리에서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필시 들킬 터.

제발 무사히 넘어가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행들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당장에라도 싸울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

늑대를 닮은 형태에 기다란 목, 괴기하게 생긴 케로베로스의 안면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것의 아구에서 떨어지는 투명하고 진득한 액체에서 지독하게 고약한 냄새가 났다.

입을 막고 있지 않았다면 구역질이 올라올 법한 악취였다.

‘참아요.’

박율은 일행들을 보았다.

숨이 어느새 턱 끝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크르르...]

질질 끌리는 케로베로스의 울음이 귀를 스친다.

다행히 일행들을 눈치챈 것은 아니었다.

사방을 살피던 머리 하나는 딱히 보이는 것이 없자 다시 자신의 구역으로 돌아가 감시를 시작했다.

‘휴...’

하마터면 들킬 뻔했다.

케로베로스가 다시 제자리를 되찾아가자 일행들은 겨우 참아왔던 숨을 뱉었다.

그때까지도 아주 가늘게 호흡할 수 밖에 없었다.

더 큰 소리를 냈다간 또 다시 케로베로스의 주의를 끈다.

‘다들 괜찮아요?’

겨우 케로베로스의 시선에서 벗어났다지만 아직 안심은 이르다.

이제는 저 커다란 마수를 지나 지하감옥으로 들어가야 했다.

박율은 흘깃 고개를 돌려 일행들을 보았다.

‘갑시다.’

그리고 움직인다.

박율은 포함한 일행들은 최대한 벽에 붙어 케로베로스의 시선을 피했다.

케로베로스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악취와 마기는 더욱 심하게 다가왔다.

안 그래도 기분 나쁜 마기에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는데, 악취가 더해지니 고역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정면에서 보이는 케로베로스의 전신.

멀리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징그러운 형태였다.

백 개의 갈래로 나뉜 머리는 너무나 기이했다.

상상을 해본다 하더라도 이런 형태의 괴물을 상상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촘촘하게 묶인 볏단 하나하나가 움직인다고 해야할까.

뭐 그런 기분나쁜 장관이었다.

박율은 최대한 케로베로스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계단 아래를 향했다.

다행히 운동장 하나 정도의 거리를 가로지르는 와중에도 케로베로스에게 들키는 일은 없었다.

‘잠신’의 능력이 대단한 건지, 케로베로스가 둔한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찌됐든 다행이었다.

지하감옥에 무사히 들어온 박율은 먼저 다른 감시자가 없는 지 감옥을 살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지하감옥을 지키는 간수는 없는 듯했다.

“휴...”

위험요소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박율은 그제야 잠신을 풀고 참아왔던 숨을 쉴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뒤를 따르던 이들의 눈에는 불안함이 가득했다.

“...생각보다 너무 쉽게 들어온 거 같습니다.”

한명련은 어두운 지하감옥을 살피며 말했다.

확실히 너무 쉽게 들어온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혹시 함정 같은 거 아니야?”

서희는 불안한 듯 주위를 살폈다.

“잠시만요.”

박율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가 권능을 개방했다.

[척후]

지하감옥의 형태가 한눈에 들어오며 구석구석 숨겨진 부분들까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지하감옥의 모든 구역을 뒤지며 혹시나 있을 함정을 살폈다.

다행히 딱히 함정처럼 보인다거나 하는 건 없었다.

길게 뻗은 복도와 사방에서 느껴지는 마기들.

넓어야 2평 정도 될 작은 감옥에 수많은 악마들이 밀집해 있는 것 역시 보였다.

그들은 전부 입을 꾹 닫은 채 대부분 삐쩍 곪아 무기력한 상태였다.

그 중 가장 강해보이는 녀석만은 유일하게 복도 끝에 쇠사슬에 묶인 채로 있었다.

“뭐해?”

가만히 서서 눈을 찌푸리는 박율을 보던 서희가 물었다.

“뭐가 있나 찾고 있어요.”

“그러면 뭐가 보여?”

그렇게 지하감옥을 샅샅히 살피던 때였다.

[...누구냐.]

어디선가 악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행들은 흠칫 고개를 돌렸다.

복도 끝에 묶여 있던 악마였다.

그는 온몸이 묶여 움직임이 봉쇄되어 있음에도 박율의 척후를 느끼고 날카로운 살기를 흘렸다.

멀리 떨어진데다 볕이 들어오지 않은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복도 끝의 안광은 확실히 박율을 향하고 있었다.

박율은 양손을 높이 들고 적군이 아님임을 증명하며 척후를 해체했다.

반짝거리는 안광으로 일행을 살피던 악마의 시선이 변했다.

[1 군단장님...?]

복도 끝 칠흑같은 어둠 속 유일하게 빛나는 안광이 박율을 지나쳐 데판을 향했다.

[살아 있었던 겁니까...!]

데판은 대답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찾는 군단장이 자신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저 근엄하게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크흠, 단탈리온의 전언을 받고 당신들을 구출하러 왔습니다.”

박율이 말했다.

그의 말에 지하감옥의 악마들 시선이 일순간 그에게 몰렸다.

박율의 말에 모든 악마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하지만 누구도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꾹 닫은 입을 열지는 않았다만, 무언가 희망이 스쳐지나간 듯했다.

하지만 이내 불안한 눈빛으로 바뀌어 떨기 시작했다.

[뭐라고...?]

복도 끝 악마였다.

그는 박율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지었다.

물론 보이진 않았지만, 대충 그럴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게 정말입니까!]

“오늘 자정 반란이 시작될 것입니다.”

박율은 기세를 몰아 소리쳤다.

그러자 복도 끝 악마는 감격에 겨운 듯 말을 잇지 못했다.

[드디어...때가 온 모양이구나...]

복도 끝 악마는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들었다.

[장로님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장로님?”

[외부인이시여. 어서 이 족쇄를 풀고 자유를 주십시오! 장로님을 당장 뵙고 싶습니다!]

그가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복도를 타고 모두의 귓잔등을 때렸다.

박율과 데판의 시선이 마주쳤다.

“생각보다 잘 풀리는 거 같은데?”

서희가 말했다.

그리고 그녀가 갇힌 이들을 구하기 위해 발을 옮기려던 때였다.

“서희 씨.”

한명련이 그녀를 불렀다.

“함정입니다.”

그는 검을 반쯤 뽑으며 말했다.

“뭐?”

서희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인상을 지었지만, 그녀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어느새 모두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얼른 풀어주십시오! 당장 이 거지같은 감옥을 나가고 싶습니다!]

복도 끝 악마가 말했다.

하지만 박율 일행은 요지부동이었다.

“마치 이 상황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너무 매끄러운 전개잖아.”

박율은 망치를 꺼내며 말했다.

이 모든 상황이 마치 지금을 위해 존재한다는 듯 너무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이곳이 세트장이라면 이해가 될 법한 전개가 아니던가.

하지만 이곳은 지하감옥이었다.

[뭐하고 있습니까!]

지하감옥에 복도 끝 악마의 목소리만이 울렸다.

“뭐가 함정이라는 건데?”

“아직도 모르겠어요?”

서희는 똥이라도 씹은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전혀 의심을 하질 않잖아요.”

“뭐?”

“그리고 지금 이 지하감옥에 누구 목소리가 울리고 있어요?”

“...그야 저 악마놈이지.”

“이상하지 않아요? 이 넓디 넓은 지하감옥에 저 녀석의 목소리만 울릴 수 있다고? 다른 악마들이 벙어리도 아니고.”

저 악마가 말을 하기 위해 다른 악마들의 입을 의도적으로 막은 듯한 상황.

그게 아니라면 이 좁은 복도가 이렇게 조용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한 번도 난쟁이 악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저쪽에서는 반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장로의 위치를 물었어요.”

“...”

『장로의 위치를 알고자 하는 거지.』

마르가리타는 혀를 질질 끌며 말했다.

“그리고 단탈리온의 이름을 언급했을 때도.”

한명련이 다음 단서를 읊기 시작했다.

“저 악마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죠.”

“아, 그랬어요?”

박율은 고개를 흘깃 돌리며 그를 보았다.

한명련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하튼 정황상 이 상황이 함정이라는 결론이 나와요. 아니면 그에 준하는 위험한 상황이라거나.”

[시간이 없습니다!]

복도가 울린다.

하지만 여전히도 움직일 기미가 보이질 않자 복도 끝 악마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뭐하고 계십니까!!!]

[...네놈은 누구냐?]

데판이 물었다.

[군단장님?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제 목소리를 잊으신 겁니까? 제가 누구냐니!]

[답해라. 네놈은 누구냐.]

[그야 단탈리온 제 2군단장 세르안...]

[헌데.]

데판이 목소리가 추락하는 바위가 되어 지반을 흔들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군단장님, 그게 무슨...!]

[기사의 맹세는 어디 갔느냔 말이다!!!]

데판의 주먹이 떨렸다.

기사의 맹세.

그 단어 하나에 복도 끝 악마의 소리가 멎었다.

[지랄하고 있네...]

[무어라...?]

[그깟 기사의 맹세가 뭐라고.]

[무어라 했느냐?]

[...그 같잖은 기사의 맹세!!!]

그 순간이었다.

복도의 끝에서부터 느껴지던 마기가 일순간 땅을 박차고 날아왔다.

콰앙!!!

데판의 주먹과 정면에서 날아온 마기가 맞부딪혔다.

격돌하는 두 힘이 커다란 파동을 만들어내고, 그것은 돌풍이 되어 지하감옥을 몰아쳤다.

[그깟 기사의 맹세가 뭐라고. 좆까라 그래!!! 우리는 이미 졌어!!!]

캉!!!

세르안은 검사였다.

그것도 네 개의 팔을 가진 검사.

그는 두 쌍의 팔로 네 개의 검을 휘두르며 데판을 공격했다.

난무하는 네 개의 검.

허나 데판은 피부를 단단하게 만들어 그 공격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박율 일행이 그를 돕기 위해 움직이려 했지만, 누구도 선뜻 두 악마 사이에 끼어들 수 없었다.

아니, 하지 못했다.

[바알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아니? 그게 가능했다면 주군은 사라지지 않았을 거야!!! 난 뒤지기 싫어!!!]

데판은 네 개의 검이 만들어내는 난무를 그대로 받으며 주먹을 뒤로 끌었다.

그리고 날린다.

콰앙!!!

비대해진 주먹이 세르안의 안면을 박살내며 그를 날려버린다.

[꼴사납기 짝이 없군. 벌레같은 목숨을 연명하려 스스로를 버리다니.]

데판이 일갈했다.

[...같잖은 희망 같은 건 버린 지 오래야.]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허나 어디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이길 수도 없는 싸움을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는 건데...?]

[...]

[결국은 모두 뒤질 운명이야. 하지만 나는 죽기 싫어. 영혼을 파는 일이 있더라도 나는 살아남을 거야. 그리고 다시 일어날 거라고! 주군이 이루지 못했던 꿈은 그때 가서 다시 꿔도 되는 거잖아!]

[변명은 그게 끝인가?]

[변명이라니...!]

[그렇게 해서 살아남는다 한들 무어가 남는 거지? 그렇게 해서 주군의 원을 이룬다면 그게 진정 주군의 원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당신이 뭘 알아...!]

[넌 자기합리화에 빠진 버러지일 뿐이다.]

[나는...!!!]

[같잖은 핑계나 대면서 자신을 버리고 도망치는 벌레말이야.]

마기가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두 개의 마기가 서로를 탐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한데 섞여 불쾌하고도 씁쓸한 감정이 지하감옥의 벽을 긁었다.

데판은 주먹을 쥐었다.

검게 타오르는 불꽃이 그의 주먹을 무장했다.

그의 건너편에서도 날카로운 쇠붙이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윽고 두 개의 힘은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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