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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59화 (159/183)

159화

장대호는 완강했다.

“이미 저들은 우리 계획을 전부 눈치챘단 말이다!!!”

“그렇게 도망친다면 뭐가 바뀔 거 같아?”

“일단 살아서 기회를...”

“이 순간을 위해 수년을 기다렸어. 이런 기회? 다시는 오지 않아.”

그리고 그는 발을 돌렸다.

“망할...”

강진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다음 날의 작전을 위해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이들에게로 달려가 똑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허나 역시 결과는 같았다.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들이었다.

거기엔 박율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이럴 리 없다.”

강진호는 부정했다.

허나 그가 마주하고 있는 환상은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저도 모르게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고 착각이 들 정도였다.

[부정한다고 해서 바뀌지 않아.]

모아레의 목소리가 강진호의 귓속을 파고 들었다.

또다시 환상에 균열이 벌어졌다.

“사...살려...”

콰직!

장대호의 머리가 잘 익은 복숭아마냥 터졌다.

그 위로는 바알이 서 있었다.

끔찍한 참상.

너무나도 많은 사자들의 죽음이 바닥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건 환상일 뿐이다.”

강진호의 손에 들린 검이 부들거렸다.

그리고 그는 사방으로 검을 휘둘렀다.

이 끔찍한 환상이 부수려 쉴새없이 검기를 난사했다.

반달을 닮은 그의 검기가 사방으로 날리지만, 환상은 계속되었다.

또 다시 균열이 벌어진다.

이번엔 강진호의 말을 따라 후퇴를 하는 듯, 도망치는 이들이 보였다.

허나 이미 그들은 포위를 당한 후였다.

사방에 악마들이 포진되어 있고, 사자들은 그 사이에 둘러쌓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마찬가지로 처참했다.

“그만!!!”

강진호가 소리를 질렀다.

환상은 계속되었다.

끝나지 않는 연옥 속에서 그는 수십, 수백번의 죽음을 맞이했다.

털썩.

그는 결국 주저앉았다.

모든 상황을 겪었다.

계획을 시행했을 때, 도망쳤을 때, 살아남았을 때, 그 모든 상황들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엔 악마가 보여주는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참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환상을 보면 볼수록 그 끝에는 절망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길 수 없다.

그가 어떤 노력을 하건, 인류를 위해 희생을 하건, 무얼 하든 변하는 건 없다.

그리고 다시 현실에 균열이 벌어졌다.

쨍!!!

[네가 무슨 선택을 하건 결과는 변하지 않아.]

이번엔 현실이었다.

울창한 숲과 자신을 내려다보는 모아레, 그리고 채소연이 있었다.

강진호는 검을 떨어뜨린 상태였다.

공격을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절망.

지금 강진호의 온몸을 가득 채운 무언가였다.

[이제야 알겠는가?]

모아레는 천천히 손을 뻗어 부드럽게 강진호의 턱을 들어 올렸다.

그의 눈은 공허에 빠진 채 모아레를 향했다.

[이미 모든 건 끝났어. 네가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한들 변하는 건 없다는 거지.]

강진호의 주먹이 떨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는 무력했다.

[느껴지지 않는가? 사방에서 몰려드는 마기들이.]

모아레의 말에 강진호는 그제서야 사방에 무수히 많은 악마들이 포진하고 있음을 알았다.

아마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평소와 똑같이 사방에 있는 악마들의 마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네게 기회를 주지.]

모아레가 말했다.

그는 부드럽게 잡고 있던 강진호의 턱에서 손을 떼고 손바닥을 펼쳤다.

[우리와 함께 가자. 난 너처럼 가능성이 무수한 아이를 싫어하지 않아. 네게 힘을 주지.]

강진호는 눈앞의 손을 보았다.

그의 뇌리를 스치는 수많은 환상들.

이길 수 있을까?

그가 보았던 환상들처럼 인간이 지는 것인가.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

패배.

그 단어가 주는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차라리 절망감으로 끝이라면 좋겠지만, 패배라는 것에 다다른다면.

인간들은 악마들에게 죽을 것이다.

유린당할 것이고.

고통 속을 몸부림칠 것이다.

강진호는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아무리 굴려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결국은 파멸이었고, 절망이었다.

한참동안 떨리는 숨을 뱉던 강진호가 겨우 입을 열었다.

“...하겠다.”

[무엇을 말이냐.]

모아레는 그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웃음기 어린 얼굴로 되물었다.

강진호의 파리한 숨이 바닥에 떨어진다.

그리고 흩어진다.

그가 내뱉은 숨에서 온기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인간을.”

[인간을?]

“배신하겠다.”

모아레는 웃었다.

그것도 듣기가 거북할 정도로 비열하게 웃었다.

그리고 강진호를 보았다.

“어차피 결국 죽음이라면.”

[하하하하하하!]

“...내가 그들을 죽이겠다.”

어차피 종국에 맞이할 죽음이라면, 스스로 악한이 되어 그들에게 ‘안식’을 주겠다.

악마들에게 유린당하지 않게.

고통받지 않게.

편안한 죽음을 선사하겠다.

그것이 강진호의 마지막 결심이었다.

* * *

강진호의 말을 들은 박율의 일그러진 얼굴은 펴질 생각을 않았다.

“...거짓말 하지마.”

“이 상황에서 내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더냐?”

“채소연이 왜...”

그 순간 스쳐 지나가는 짧은 순간.

이곳으로 넘어오기 전 악사회의 고양이와 전투를 했을 때, 그는 가면이 벗겨진 고양이의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은 틀림없이 채소연이었다.

잘못 봤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비슷하게 생긴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틀어진 순간들의 조각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부정하고 싶었지만, 어떤 말도 선뜻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저항을 했다면...”

“뭐가 달라졌을 거 같은가? 전면전에서도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바알을 상대로 허를 찌르는 작전이 수포로 돌아가고, 그 뒤는 포위된 상태였다.”

“...”

“...무얼 더 할 수 있다는 말이냐.”

강진호의 눈은 더 이상 검지 않았다.

애석했다.

슬프고, 애석했다.

허망함이 가득 찬 그 눈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본 그것은 평범한 환상이 아니었다.”

미래.

결국은 펼쳐지게 될 미래의 파편이었다.

“아닐 수도 있는 거잖아! 악마놈이 일부로 그런 환상을...”

“넌 모르겠지.”

강진호는 박율의 말을 자르며 답했다.

그는 잠시 두 눈을 감았다.

여전히 당시 보았던 그 순간들을 잊지 못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 순간들이 아른거렸다.

“그래도...”

박율은 무거운 숨을 내뱉었다.

“포기하면 안 되는 거잖아.”

“...”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던 거잖아...!”

그리고 소리쳤다.

그 소리는 강진호에게 닿지 못했다.

“그리하면 뭐가 달라질 수는 있고?”

강진호는 박율을 보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죽어가는 사람들 보았다.”

그는 말했다.

“살려달라 몸부림치는 남자들을 보았고.”

그는 스스로 자처하여 악인이 되었다.

“죽여달라 아성을 지르는 아이들을 보았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 누가 비난을 하더라도 그는 악인이 되었다.

“무의미한 저항에 피를 내뿜는 여인들까지.”

그것이 그의 정의였다.

박율은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강진호를 보았다.

“...그래도 네가 사람들을 죽였다는 건 변하지 않아.”

“부정할 생각도 없다.”

“그건 자기합리화일 뿐이야.”

“나만의 정의다.”

“네가 그 사실들을 모두에게 말하고, 다른 방법을 강구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겠지.”

“...늦었다. 이미.”

강진호는 헛웃음을 흘겼다.

잠시 찾아온 정적에 그는 피로 물든 손을 보았다.

이미 더럽혀져 씻을 수도 없이 붉어진 손이었다.

피 비린내가 진동을 하고, 썩은 냄새가 피부를 긁었다.

허나 이제는 익숙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그것이 강진호의 마지막 말이었다.

쿠구궁!!!

1차 붕괴에 이은 2차 붕괴가 시작되고 있었다.

쾅!!!!!

둘 사이로 커다란 성의 파편이 떨어졌다.

그리고 길을 막았다.

박율은 길을 막은 돌을 뚫고 강진호에게 가려 했지만, 여기서 더 날뛰다가는 완전히 무너지겠다 싶어 망치를 내렸다.

“하...”

혼란스러웠다.

충격적이었으며, 머리가 복잡했다.

쿠구궁!!!

또 다시 파편들이 쏟아진다.

일단은 자리를 피하는 게 우선이었다.

박율은 발을 반대로 돌려 협곡과 연결된 좁은 통로로 뛰었다.

“채소연이...”

함께 죽지 말자고 약속을 했던 채소연이 내통자였다니.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았다.

어찌 보면 박율이 사자들과 합을 맞출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그녀였다.

그녀 역시 아무런 능력 없이 일반인의 몸으로 악마들과 대항했으니까.

서로 의지 한다고 믿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강진호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거짓이었다.

그저 모두를 속이기 위해 페르소나를 장착하고 벌인 거짓.

그제야 강진호가 채소연의 머리를 가지고 다니던 이유를 깨달았다.

아마 복수였을 것이다.

그 역시 인간들을 위해 제 한 몸을 받친 사람이니까.

방향이 뒤틀렸다곤 해도 말이다.

“아오!!!”

소리를 질러봐도 분이 사라지질 않는다.

“악!!!”

박율의 입에서 터져나온 소리가 협곡 벽에 부딪혀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이윽고 협곡 끝에 닿아있는 무언가에 닿았다.

“아...?”

아마 깨워서는 안 될 무언가에게 말이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아!!!!!!!!!!!!!!!!!]

* * *

무사히 지하감옥을 탈출한 일행은 가까운 캠프에 도착했다.

이제야 안전하다고 느낀 일행들은 숨을 돌렸다.

그러는 사이에도 서희는 불안한 눈동자로 지하감옥 쪽을 보았다.

다른 이들도 그 시선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박율이 혼자...”

서희는 혼잣말이나 내뱉듯 나지막이 말했다.

어쩔 수 없었다 라는 말로 포장은 하지만, 결국은 그를 혼자 무너진 지하감옥에 버리고 온 꼴이었다.

“구하러 가야 돼...”

서희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은 이미 걱정과 불안에 가득 차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반응을 하는 이는 없었다.

“다들 뭐하는 거야! 박율이 무너진 지하감옥에 묻혔는데...!”

마르가리타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뭐!?”

『괜히 구하러 갔다가 우리까지 위험해질 거야. 지금은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그녀의 말은 너무나 단호했다.

마치 그를 버리자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미쳤어!? 박율을 버리자는 거야!?”

그녀의 말에 마르가리타는 고개를 돌려 서희를 보았다.

단 한치도 흔들리지 않는 눈이었다.

『율이는 모두를 구하기 위해 지하감옥을 무너뜨리는 선택을 했어. 그런데 거기서 우리가 다시 구하러 가자고? 그건 율이의 행동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일이야.』

“그...그건...”

“괜찮을 겁니다.”

작은 어깨를 흠칫 떨고 있던 서희의 곁으로 한명련이 다가왔다.

그는 서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저런 상황쯤은 숱하게 겪어왔던 분이잖습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

“그리고 괜히 그랬다가 일을 그르치기라도 한다면 율씨가 화낼 겁니다.”

서희는 반박이라도 하려는 듯 입을 달싹였지만, 이내 입을 꾹하고 닫았다.

“돌아오실 겁니다.”

한명련이 말했다.

서희는 떨리는 한숨을 내뱉더니 발을 돌렸다.

환기가 필요했다.

『어디가?』

“...잠깐 바람 쐬러.”

서희는 퉁명스럽게 답을 하곤 밖으로 향했다.

어느새 고양이의 모습으로 변해 몸을 둥글게 말아 쉬고 있던 데판은 흘깃 그녀를 보더니 다시 고개를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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