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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60화 (160/183)

160화

캠프를 빠져나온 서희는 마기가 없는 구석에 홀로 앉아 고개를 올려다 하늘을 보았다.

인간계의 하늘과 다름 없이 붉고 검은 하늘이 선연했다.

이곳도 바알에 의해 처참히 무너진 곳이었다.

“후...”

쓸데없는 감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혹여 박율이 죽지는 않았을까.

무사할까 하는 그런 걱정들이었다.

문득 서희는 인상을 지었다.

“...근데 왜 나만 걱정을 하는 거야?”

사실상 무너지는 건물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건물의 파편이 쏟아지고, 골조를 이루던 쇳조각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곳에서 무사하다는 건 낙뢰를 맞는 것과 비슷한 확률이 아니던가.

하지만 지금 박율을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저 고양이 모습을 한 괴상한 악마도 그렇고 이쁘장하게 생긴 마르가리타도 그렇고.

심지어 한명련까지.

박율이 무너지는 건물에 갇혀 사라졌음에도 걱정하는 사람이 없다.

아무리 박율의 별명이 바퀴벌레고, 쓸데없이 생명력이 강한 남자라한들 말이다.

근데 뭐 서희 역시 비슷하긴 했다.

이상하게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오겠다 싶은 생각이랄까.

사실 이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긴 했다.

혼자 적진에 쳐들어가 사방에 폭탄을 설치하던가, 사자들도 꺼리는 전투에 참여해 싸운다던가, 총을 들고 악마의 뒤통수를 노린다던가 하는 일들 말이다.

말 그대로 막무가내의 기대를 할 수가 없는 남자였지만, 왠지 모르게 이럴 때마다 기대가 실렸다.

서희는 한숨을 팍 내뱉었다.

“...근데 내가 걔 걱정을 왜 해? 알아서 잘 하겠지.”

...

“그래도 동료를 걱정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

“어련히 잘 살아남겠지!”

모르겠다.

“하... 짜증나...”

지금 뭐라고 하고 있는 지도.

서희는 끄어억 괴상한 소리를 내며 걱정거리를 내뱉었다.

그 순간이었다.

저 멀리에서 위협적인 괴성이 들려왔다.

서희는 귀를 의심했다.

그녀가 환청을 듣는 것이 아니라면 저 소리는 이미 들어본 적 있는 소리였다.

고룡.

세월을 양식으로 삼은 용.

마계로 넘어오기 전 일행들을 위험에 빠뜨렸던 용의 울음소리였다.

쿠구궁!!!

서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

뒤이어 느껴지는 마기들.

엄청난 숫자의 마기가 발을 구르고 있음이 느껴졌다.

마치 마계 전역의 마수들이 한데로 모여드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숫자였다.

서희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캠프로 달렸다.

그리고 캠프에 도착한 서희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소리쳤다.

“마수들이 지하감옥으로 몰려들고 있어!!!”

그녀의 말에 캠프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동조를 하는 이는 없었다.

“다들 뭐하고 있어!!! 마수들이 지하감옥으로 몰리고 있다니까!!!”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데판이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폐허의 늑대가 죽고, 단탈리온 군의 주력들을 가둔 지하감옥이 무너졌다.

지하감옥이 무너진 순간부터 이 정도쯤은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것들은 필시 반란의 징조였고, 그것은 곧 경계태세의 강화 혹은 반란의 씨앗을 제거하기 위한 징조로 발동할 수 밖에 없었다.

데판의 말에 서희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면 당장 구하러 갔어야지!!!”

서희의 말에 데판은 슬쩍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차피 마수들이 찾을 수 있을 정도라면 이미 탈출했을 거다.]

“...아니라면?”

서희는 따지듯 물었다.

“아니라면 죽었을 거라는 거야?”

[...]

데판은 답이 없었다.

다른 이들 역시 비슷했다.

모두가 입을 꾹 닫은 채로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왜 아무도 답을 안 하는데!”

여전히 답을 하는 이는 없었다.

모두가 다음을 위해 체력을 비축한다거나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당신들은 걱정도 안 돼!?”

서희가 소리쳤다.

그녀의 말에 마르가리타는 한숨을 팍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우리도 마찬가지야.』

“뭐...?”

『걱정된다고. 율이가 무사할지, 다치진 않았는지.』

“근데 왜...!”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아.』

“...”

『율이를 구하러 간다는 것 역시 또 다른 위험을 야기할 뿐이야.』

마르가리타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 뿐이야. 그리고 율이는 꼭 돌아올 거야. 그런 애니까.』

박율에 대한 강렬한 신뢰를 드러내는 목소리였다.

그녀는 잠시 서희를 뚫어져라 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돌아오실 겁니다.”

구석에서 칼날을 벼리고 있던 한명련이었다.

그는 고개를 살짝 들어 싱긋 미소를 보였다.

“율씨가 말했잖습니까. 돌아오겠다고.”

* * *

[쿠아아아아아아아아!!!!!!!!!!!!!!]

귀를 찢는 포효가 마계 전역에 울렸다.

그 소리는 너무도 위협적이어서 근방에 있던 마수들이 죄다 줄행랑을 칠 정도였다.

그리고 그 앞에 선 박율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괴성의 주인은 노곤에 빠진 얼굴을 들었다.

자신의 잠을 깨운 불청객을 향해 말이다.

“어라...”

그것은 고룡이었다.

박율은 고룡과 눈이 마주치자 움직임을 멈추듯 그 자리에 석상마냥 굳었다.

마치 밀림 속에서 포악한 짐승을 만나 생존을 위해 자리에 멈추는 느낌이랄까.

“어...안녕...?”

박율은 어색하게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그것은 고룡의 마지막 남은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쿠아아아아아아아!!!!!!!!!!!!!!!!!!]

고룡은 포효를 내질렀다.

가만히 듣고 있는 것만으로 고막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질 정도였다.

박율은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귀를 틀어막고 있는 와중에도 고룡의 괴성은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고룡이 날개를 펼친다.

촤악!

고작 날개를 펼친 것만으로 돌풍이 불었다.

박율은 휘몰아치는 돌풍에 땅에 발을 박고 버텼다.

위협적인 울음을 토해내던 고룡은 이내 아구를 벌렸다.

붉으스름한 불씨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잠...깐...”

화아아아!!!!

고룡의 아구에서 황금빛 물결이 쏟아진다.

미처 피할 틈이 없었던 박율은 재빠르게 망치를 땅에 박아넣었다.

그리고 권능을 개방한다.

[철옹]

망치에서 시작된 새하얀 불꽃의 방패가 땅에서부터 솟아오르며 아슬아슬하게 고룡의 불꽃을 막았다.

“큭...!”

방패로 공격을 막고 있다지만, 그 세기는 너무도 강했다.

방패를 들고 있는 팔이 빨갛게 익을 정도의 화력과 땅에 박아넣은 발이 뒤로 끌릴 정도의 충격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버티다가는 통구이가 되겠다 싶은 박율은 재빨리 발을 굴러 옆으로 몸을 비틀었다.

콰과과!!!

불꽃을 막던 박율이 자리를 벗어나자 쏟아지는 불꽃은 바닥과 벽면을 녹였다.

“흐미...”

저걸 정통으로 맞았다가는 흔적도 안 남겠다 싶었다.

박율은 눈동자를 굴렸다.

아무리봐도 도망칠 구석이 보이질 않는다.

그나마 보이는 통로는 고룡의 뒤에 놓여져 있었다.

그 사이 고룡은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또 다시 희끗한 불씨가 흩날리고 황금빛 불꽃이 쏟아진다.

박율은 재빨리 발을 굴렀다.

[신속]

“...!!!”

박율은 눈을 의심했다.

‘신속’을 사용하며 이리저리 도망치는 와중에 고룡의 불꽃이 그의 뒤를 쫓고 있었다.

다시 말해 고룡이 그의 움직임을 보고 있다는 소리였다.

콰과과!!!

불꽃이 지나간 자리는 녹은 얼음이 다시 얼어붙은 듯 녹은 암석이 바닥을 장식했다.

박율은 최대한 빠르게 달리며 불꽃을 피했다.

다행이라고 함은 불꽃이 무한정하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어느정도 불꽃을 내뿜은 후에는 다시 힘을 비축하는 시간이 걸렸다.

박율은 불꽃이 사그라든 후에야 겨우 자리에 멈춰설 수 있었다.

“미친...”

새삼 마르가리타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저 불꽃을 맨몸으로 받았다니.

“우리 잠깐만 이야기를 좀...”

하지만 고룡이 그의 말을 알아들을리는 만무했다.

고룡은 불꽃이 나오지 않는 와중에 꼬리를 휘둘렀다.

불꽃만을 신경 쓰고 있던 박율은 흠칫 날아오는 꼬리를 보았지만, 미처 피하지 못했다.

콰과광!!!

꼬리에 맞아 날아간 박율은 그대로 벽에 떨어져 박혔다.

“컥...”

더럽게 아프다.

쇠망치로 온몸을 두들겨 맞은 듯 충격이 전신을 감싼다.

박율은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서둘러 벽에서 빠져나왔다.

고룡이 벌써 불꽃을 준비해 다음 공격을 시도하려는 참이었기 때문이었다.

“미치겠네, 정말...”

안 그래도 바르바토스와의 전면전을 위해 힘을 비축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박율은 망치를 높이 들었다.

[쿠아아아아아아!!!!!!!!!!!!]

고룡의 괴성과 함께 불꽃이 날아든다.

박율은 재빨리 망치로 땅바닥을 내려쳤다.

콰광!!!

망치에 맞은 땅바닥이 솟아오른다.

콰과곽!!!

날아든 불꽃은 솟아난 땅바닥에 막혀 위로 솟구쳤다.

허나 그것도 잠시였다.

불꽃을 막고 있던 암석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박율은 불꽃을 막은 암석이 완전히 녹기 전에 발을 굴렀다.

[신속]

땅을 박차고 달려든다.

그의 망치는 커다란 호를 그리며 고룡의 턱을 노렸다.

턱!

“턱...?”

분명 망치가 고룡의 턱을 완전히 노렸지만, 고룡에게는 아무런 생채기도 나지 않았다.

마치 두터운 벽을 때린 듯한 느낌이랄까.

고룡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진다.

“...미안?”

[쿠아아아아아아!!!!!!!!!!!!!!!]

고룡의 포효와 함께 그것은 앞발을 휘둘러 박율을 날려버렸다.

콰과광!!!

“커헉...!!!”

뒤이어 날아드는 고룡의 불꽃.

박율은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바닥에 몸을 던졌다.

“...!!!”

종이 한 장 차이로 그를 빗겨 지나가는 섬뜩한 불꽃.

닿지도 않았지만, 박율의 몸 위로 타들어갈 듯 열기가 느껴졌다.

“큭...!”

박율은 재빨리 몸을 굴려 불꽃에서 벗어났다.

이렇게 피하기만 해서는 답이 없다.

“하아...”

박율은 전력을 쏟지 않아서는 고룡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망치에 힘을 불어넣었다.

“힘을 낭비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그랬다간 내 쪽이 먼저 죽을 거 같아서 말이지.”

이번엔 박율이 먼저 달려들었다.

옆에서 날아드는 고룡의 철퇴같은 꼬리.

박율은 땅을 박차고 앞으로 몸을 굴려 꼬리를 피한다.

그리고 고룡의 정면까지 도달했을 때.

그것의 아구에서는 역시나 불꽃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박율은 그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바닥에 안착했다.

[신속]

그의 신형이 사라진다.

콰직!!!

다시 그가 나타났을 땐, 그의 망치가 고룡의 턱을 후려친 후였다.

그것의 아구에서 흘러나오는 불꽃은 천장을 향해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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