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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70화 (170/183)

170화

새로운 마왕, 여태껏 마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인간 마왕의 탄생이었다.

이질적이었다.

성대한 피로연을 열지도 않았다.

그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한 자리를 만들지도 않았으며, 사라진 이를 위한 장례를 열지도 않았다.

그저 충성을 표하며 그에게 마왕이라는 수식어를 선사할 뿐이었다.

허나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지 않았으며,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라진 이를 기리고, 새로운 이를 치하했다.

마치 모든 것들이 이 순간을 위해 존재했다는 듯 이야기는 흘러가고 있었다.

“...”

부담스럽지 않다면 거짓이었다.

수백, 수천에 달하는 악마들과 마계인들이 그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충성을 표한다.

솔직히 말해서 그냥 이 모든 것들을 내팽개치고 도망쳐도 그 누구도 무어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율은 도망치지 않았다.

그의 손을 통해 스며든 단탈리온의 의지이기도 했다.

결국 저들과 박율 일행, 즉 인간들의 목표는 한가지였다.

하여 박율은 선언했다.

저들의 마왕이 되기로.

허나 그는 또 다시 선언했다.

모든 것이 끝난다면 왕관을 무게를 내려놓겠다고.

그것만이 박율이 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무례였다.

* * *

맑게 갠 하늘에 구름이 드리웠다.

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태양은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칠흑 같던 하늘은 이미 태양에 녹아 사라진 듯했다.

“그래서 이제 어떡할 생각이십니까.”

한명련이 물었다.

거국적이나 전혀 거국적이지 않은 마왕의 탄생이 끝이 나고, 박율 일행이 모여들었다.

박율은 많은 이들의 시선을 한데 받고 있었다.

반란군들, 이제는 단탈리온의 군인 악마들과 마계인들.

사실상 그들의 목적은 같았다.

바알의 저지.

수많은 이들의 시선을 한데 받던 박율이 입을 열었다.

“일단 인간계로 돌아갈 생각이에요.”

그의 말에 한명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바르바토스를 죽음을 시작으로 전쟁이 선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쯤이라면 바알 역시 바르바토스의 죽음을 느꼈을 터.

또한 단탈리온의 영역을 다시 빼앗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순간에 굳이 마계에서 또 다른 반란을 준비하는 것보단 인간계에서 또 다른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었다.

쉽게 말해 사방에서 바알을 압박하는 것이다.

[반란군은 이곳 외에 다른 마계에도 잔류하고 있습니다.]

반란군의 수장으로 보이는 악마 하나가 말했다.

박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란군은 오직 단탈리온의 군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강압적인 정복.

고차원적 사고를 지닌 고등 악마들이라면 그러한 점령에 반발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와 함께 반란을 일으킬 리는, 아니 말을 들어줄 리는 만무합니다.]

또 다른 악마의 의견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마계 전역에서 가장 약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단탈리온의 마계였다.

이곳의 손을 잡는다는 것은 썩은 동아줄을 잡는 것과 다름 없다고 생각할 터.

하지만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협력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도움을 바라진 않습니다. 그냥 반란을 일으켜 바알의 세력을 몰아냈다는 찌라시를 퍼뜨려주세요.”

박율은 반란군의 수장을 보았다.

그들의 이야기가 다른 반란군들의 귀에 들어간다면, 굳이 도움을 청하지 않더라도 사방에서 반란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마계에서 가장 약한 단탈리온의 반란군이 승리를 쟁취했는데, 다른 마계라고 못하겠는가?

뭐 그런 생각에서 비롯되는 반란일 것이었다.

[옙, 알겠습니다.]

반란군의 수장이 고개를 조아렸다.

“우리는 그 사이 인간계로 넘어가 바알을 압박할 겁니다.”

그리고 박율은 고개를 돌려 일행들을 보았다.

“마계가 반란의 온상지가 된다면 자연스레 인간계에 시선을 거둘 거고, 그 사이 우리는 지상에서 악마들을 몰아낼 겁니다.”

양방으로 들이닥치는 압박.

그것이 바알을 저지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박율의 계획을 들은 이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단탈리온의 마계를 되찾았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박율은 이야기를 끝마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움직입시다. 이제부턴 빠르게 움직여야 해요.”

반란군들의 시선이 박율을 향했다.

그 눈빛은 인간을 바라보는 경멸의 눈빛이 아닌 마왕을 바라보는 경외의 눈빛이었다.

[허나 마왕님께서 없으시다면 마계는...]

[내가 남겠다.]

답을 한 것은 데판이었다.

그는 거구의 모습으로 팔짱을 낀 채였다.

[이대로 우리가 전부 돌아간다면 아직 전력이 회복되지 못한 이곳은 곧 다시 전멸하겠지.]

데판이 말을 이었다.

바르바토스에게서 마계를 되찾았다고는 하나, 이렇게 끝날 리는 만무했다.

바알 혹은 그의 산하에 있을 악마들은 또다시 마계를 빼앗기 위해 침략할 터.

하지만 데판이 이곳에 남는다면 걱정을 덜 수 있다.

박율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에게 마계를 맡길 생각이었지만, 그가 하겠다고 하니 부담은 없었다.

“때가 되면.”

[합류하지.]

두 사람의 말이 이어진다.

같은 목적을 가진, 그리고 같은 태양을 공유하는 인간과 악마의 신뢰였다.

“부탁할게요.”

[존명.]

데판은 주먹과 손바닥을 맞부딪혔다.

왕에 대한 충성이었다.

박율은 무거운 한숨을 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진짜 움직입시다.”

* * *

인간계로 향하는 심연의 앞에서 박율과 그의 일행들은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뒤를 따라 데판을 선봉으로 반란군들이 있었다.

“그럼 나중에 다시 봐요.”

박율이 말했다.

데판은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그를 필두로 반란군들이 일제히 주먹과 손바닥을 맞부딪혔다.

[충!!!]

묵직하고도 짙은 음색이 마계 전역을 울렸다.

숲을 흔드는 돌풍이 불었다.

허나 거센 돌풍에도 그들의 충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박율은 그들의 앞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일행들을 이끌고 심연을 넘었다.

일순간 시야가 아득해지며, 검게 변한 시야 끝에 빛줄기가 나타난다.

이내 펼쳐지는 전경.

인간계로 돌아온 것이다.

“후...”

박율은 그제야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일들이 몰아치더니 이젠 왕좌에 앉았다.

혼란스러운 것은 박율 혼자만은 아닌 듯했다.

고개를 돌렸을 때, 함께 심연을 넘어온 이들의 눈빛 역시 같은 처치였다.

“마왕이라니...”

서희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박율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신기한 동물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참...대단해.』

마르가리타 역시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쿠앙이랑은 인사 잘 했어요?”

『쿠앙이? 아, 마리나?』

“이름이 마리나에요?”

『인사는 잘했지. 근데.』

[쿠앙!]

마르가리타의 품속에서 작은 용 한 마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같이 가고 싶다 떼를 부려서...』

“...”

박율은 새삼 놀랍다는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하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쿠앙이가 인간계에 있던 마계에 있던 그리 큰 차이는 없었다.

이미 인간계에 오래 눌러앉은 탓에 부작용 같은 것도 없었고, 또 작별을 하는 건 너무 잔인하니 말이다.

서희는 마르가리타 품속에서 고개를 내민 용을 보며 또 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미친 게 틀림없어...”

뭣 하나 정상적인 게 없는 느낌이었다.

박율이 갑자기 마왕이 되질 않나, 최강의 마수라 불리는 고룡이 마르가리타 품에서 애교를 부리질 않나.

서희는 머리를 짚으며 지끈거리는 통증을 호소했다.

“뭐 그래도 전부 잘 해결된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한명련은 와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말했다.

“아저씨는 참 긍정적이야.”

“여기서 무엇을 한들 변하는 건 없지 않습니까.”

그의 말에 서희는 또 다시 고개를 저었다.

“일단 돌아가죠. 다들 기다리고 있을 텐데.”

박율이 말했다.

아마 캠프에서 박석훈과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박율이 먼저 발을 떼자, 일행들이 그를 따라 움직였다.

“...”

캠프로 향하는 와중에도 박율의 신경은 어디선가 나타날 악마들을 향했다.

잔뜩 경계를 한 채, 걸었다.

하지만 딱히 달려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조용하군요.”

한명련이었다.

평소라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만, 일대가 너무나 조용했다.

『전혀 느껴지는 게 없어,』

“나쁘지 않은데.”

박율이었다.

생각보다 일이 빠르게 흘러가는 듯했다.

이렇게 악마들이 없다는 건 아마 단탈리온의 마계에 있었던 일들이 마계 전역에 퍼졌고, 그로 인한 반란들이 하나둘 터지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것말고는 이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들의 입장에서 인간계는 이미 정복을 끝낸데다가, 귀찮은 것들을 이미 모조리 치운 점령지나 다름 없었다.

그러니 필요한 전력들을 마계로 데려간 것이겠지.

박율은 속도를 높였다.

빠르게 일들이 진행되는만큼 그들도 속도를 높여야 했다.

이내 도착한 캠프.

그 앞에서 박석훈이 박율 일행을 반겼다.

“다녀왔어요!”

“율 씨!!!”

박석훈은 오래전 헤어진 가족을 만나기라도 한 듯 한껏 반가움을 표출하며 달려들었다.

박율은 허리를 비틀어 그를 피했다.

“갔다 온 사이 무슨 일은 없었어요?”

“크흠...”

박율이 피한 탓에 중심을 잃을 뻔 했던 박석훈은 이내 중심을 되찾더니 목을 긁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어요. 오히려 악마들이 사라지더라고요.”

“그래요?”

“원래 이 일대에 악마들이 엄청 많았는데, 갑자기 하나둘 사라지더니 이젠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사라졌어요.”

박율은 흐릿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들 다친 데는 없어요?”

“차라리 다쳤으면 좋겠다.”

서희는 반쯤 체념한 말투로 말했다.

“네?”

“그건 박율한테 물어봐. 난 피곤해서 좀 쉬어야겠어.”

서희는 그렇게 말을 하곤 그를 지나쳐 캠프로 들어갔다.

“고양이는 어디 갔어요?”

박석훈은 한명련에게 물었지만, 그 역시 희끗한 미소만 지은 채 캠프로 들어갔다.

『워낙 일들이 많아서 말이지.』

마르가리타가 답을 했지만, 박석훈은 여전히 이렇다 할 답을 얻지 못한 채였다.

그는 잔뜩 인상을 지은 채 마지막 남은 박율을 보았다.

“다들 왜 나만 왕따시켜요?”

“다들 피곤할 거에요. 쉴새 없이 뛰어다녔으니까.”

박석훈은 박율에게 설명을 부탁하는 얼굴로 그를 보았다.

“이제 마지막 전쟁을 돌입할 거에요.”

“뭐, 전쟁이요!?”

“바알을 물리쳐야죠.”

“뭐, 그렇긴 한데...”

“시간이 얼마 없거든요.”

박율은 그것을 끝으로 박석훈을 지나 캠프로 향했다.

“아, 참.”

그러다 박율이 고개를 돌려 박석훈을 보았다.

“저 이제 마왕됐어요.”

“에?”

박율은 벙찐 얼굴로 자신을 보는 박석훈을 뒤로 캠프 안으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고야 그가 한 말을 이해한 박석훈의 두 눈이 점점 확장되었다.

“마왕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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