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22화 (22/249)

#22

디아고스트(1)

"헉헉헉..."

숨이 턱까지 차오른 소리가 절로 흘러 나온다.

"...뭔 놈에 경사가 이리도 높은 거야."

진짜 욕이 절로 나오는 높이다.

짐을 잔뜩 멘 체스가 위로 시선을 옮기며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훔쳤다.

아직 정상은 보이지도 않는다.

그나저나 저 앞에 가는 4명.

사기꾼 새끼들.

저것들은 지네끼리 노닥거리며 편안하게 올라가는 중이었다.

체스 일행은 마수를 찾아 산을 타는 중이었다.

벌써 며칠 째 사람의 흔적은 단 1도 안 보이는 이 산을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타고 있는 지 모르겠다.

쉬어가는 시간은 개미 눈곱 만큼 주어지지를 않나.

노동자로서의 권리 따위는 깡그리 무시 당한 지극히 갑과 을의 관계인 그들이었다.

에휴...

길이라도 좀 편하면 좋으련만 산은 왜 이리도 험한 건지.

산길은 오르막 내리막의 연속이었다.

물론 대부분은 오르막이었지만.

하긴 마수가 편한 곳에 있을 리가 없지.

마수들이 지금 잡으러 갈 테니 기다려 라고 하면 응 이렇게 대답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지금 그들은 탐색조가 알려준 대략의 위치를 바탕으로 가긴 하는데 참 쉬운 게 아니었다.

이러다가는 마수를 잡기도 전에 지쳐 쓰러질 판이다.

"야! 빨리 안 오냐?"

체스의 상념을 방해하는 저 목소리.

몇 번을 들어도 듣기 싫은 그것은 디오스의 그저 해맑은 목소리였다.

으득.

"......약 올리냐...???"

물론 그 말은 디오스에게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고용자와 피고용자와의 관계인 그들이었으니.

아 물론 그 전에 크게 말을 내뱉을 힘조차 사라졌다고 하는 게 무방하겠지.

여하튼 지금 산을 오르는 체스는 죽을 맛이었다.

지네들은 짐도 없이 편안하게 가니 살 만하겠지.

짐이란 짐은 자신에게 다 맡겨둔 채 앞장서서 걸어가는 꼴이 얼마나 재수가 없는지 원.

저 사기꾼 녀석들의 말인즉슨 돈을 줄테니 일을 하라는 것이다.

...마수를 찾으면 할 일이 더 많을 것 같은데 이거 이래서 지쳐서 뭐라도 하겠나 싶을 정도이다.

헉헉...

그래도 칼은 이미 뽑아진 상태니.

체스는 구슬땀을 흘리며 끙끙 기어오다시피 올라갔다.

그의 팔은 곧 지지대요 그의 발은 곧 지지대에 달린 발판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그는 어떻게든 산을 꾸역꾸역 올라가고 있었다.

역시 이래서 돈 돈 하는가보다.

돈 하나로 저렇게까지 사람을 부릴 수 있다는 게 참 씁쓸하구만.

지금 이 순간 솔직힌 체스의 마음가짐이었다.

그래도 중간중간 앞서서 걸어가든 이들 중 마일드가 가끔씩 뒤를 돌아보며 체스를 확인했다.

다른 목적은 없다.

단지 그가 잘 따라오는지 보기 위해서이다.

뭐 아직까지는 버티는 것도 별 이상이 없어 보였고 지쳐보이는 것 이외에는 변화도 딱히 없었다.

"체력은 좋은 놈이네."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던 뒤를 힐끗 보더니 겔리온이 한 마디 툭 던졌다.

저 정도면 나쁜 체력은 아니다.

겔리온이 보기에는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힘을 최대한 보전하기 위해 침묵을 유지한 채 산을 계속 탔다.

****

다시 얼마나 또 올라갔으려나.

입은 이미 꾹 닫힌 상태야다.

들리는 건 단지 헉헉 대는 숨소리.

지나친 침묵이 지겨웠는지 란도가 입을 열었다.

"이봐~ 디오스. 어떻게 한 거야?"

란도가 디오스를 툭 치며 물었다.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다.

"뭘?"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디오스.

뭘 어떻게 했다는 거지?

주어도 없고 목적어도 없는 말이다.

"계약금 말이야. 계약금."

혹시나 체스가 그들의 대화를 들을까 작은 목소리로 묻는 란도였다.

그러고 보니 나머지 일행들도 그걸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저 녀석이 그렇게 날뛴건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디오스는 체스 쪽을 힐끗 보았다.

'훗. 멍청한 놈.'

그리고는 별 거 아니라는 듯 란도에게 말했다.

"아~ 그거? 계약금 그거. 훗. 별 거 아냐. 순둥이더라고. 저 녀석."

디오스가 피식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것만 생각하면 또 웃음을 참을 수 없나보다.

"엥? 그게 무슨 말이야?"

"야. 좀 자세히 설명을 좀 해봐."

운만 띄우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자 나머지 일행들은 몸이 달아오르는 듯 얼른 디오스를 채근했다.

자신의 영업비밀을 그렇게나 궁금해 하다니.

안다고 결과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보자..."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하던 그는 체스를 한번 더 보았다.

그는 여전히 뒤에서 낑낑대며 올라오는 중이었다.

"아 거참. 밤에 살짝 저 녀석의 집을 방문했었어. 술에 만취해 있었거든~"

"...그게 먹힌단 말이야? 요즘 세상에?"

"저 녀석. 애가 제대로 확인할 것 같지 않더라고. 만약 제대로 확인을 했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겠지."

"그리고 네 예상대로 먹힌 거고?"

"그렇지~ 저런 애들 속여먹는 것 따위야 식은 죽 먹기지."

나머지 일행들은 감탄을 했다.

입을 쩍 벌린 채 뭐 이런 놈이 다있지라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보면 난놈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진짜 나쁜 놈이기도 하다.

아니 그 전에 이런 걸 속일 생각을 하는 그 자체가 참...

"그냥 주고 다시 받으면 되지 왜 그랬어?"

문득 궁금한 게 생겨났다.

굳이 귀찮은 일을 왜 만드는 것인지.

"그렇게 안 하면 안 할 것 같았거든. 촉이 왔었지. 낄낄낄."

디오스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는 속은 놈이 잘못이지 속인 놈이 잘못이 아니라는 투로 딴청을 피우며 앞으로 먼저 홱 걸어가버렸다.

와우......

이 새끼는 정말이지 천하에 둘도 없는 나쁜 놈이다.

이런 놈이랑 적이 아니라서 천만다행이다.

괜히 적으로 얽혔다가는 심히 골치가 아플 것만 같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할 지경이니.

나머지 셋은 순간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같은 파티 아니랄까봐 셋 모두 똑같은 생각이었다.

문득 뒤에 따라오는 체스가 왠지 불쌍하긴 하다.

계약금도 사기나 당하고.

게다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또 다른 게 있지 않은가.

"휘유~ 넌 실력도 좋은데 심지어 나쁜 놈이기까지 하구나?"

얼른 디오스를 따라붙은 란도의 말이었다.

란도가 할 수 있는 나름 최고의 칭찬이었다.

"야~ 그거 칭찬이지? 낄낄."

디오스가 란도를 툭 쳤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낄낄거리며 산길을 헤치며 올라갔다.

뒤에서 낑낑대는 체스 따위는 자신들의 관심 밖의 일이니까.

****

체스는 뒤에서 그들의 대화를 단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지금 이 짐들을 내팽겨치고 싶다는 것 오직 하나.

그는 그저 시시덕거리는 그들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 낑낑대며 올라가는 중이었다.

온 몸은 이미 땀으로 젖은 지 오래다.

앞에 가는 4명은 지네끼리 뭘 그리도 신이 났는지 즐겁게 올라가는 중이었다.

'지네끼리 신이 났네. 아주 그냥.'

그래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제사 이들이 자신을 필요로 한 이유가 좀 납득이 갔다.

"역시 짐꾼이 필요한 것이었겠지. 앞에서 몸으로 때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전력으로 분류하면 오히려 마이너스니까... 헉헉."

실버 등급 마수 사냥꾼들이 뭣하러 자신을 굳이 이렇게 쓰겠는가?

그냥 처음부터 짐꾼을 찾는다고 말을 할 것이지.

그걸 계약금을 사기치면서까지 꼭 할 일인가?

적어도 자신의 생각을 굳이 이야기하라면 No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일만 끝이 나면 저들이 사기 친 걸 어떻게든 복수를 할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뭐 여하튼.

"하아... 하긴 A급 몬스터를 상대하는데 나 같은 아이언 등급을 쓸 필요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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