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자이앤트(9)
"뭐가?"
"아이씨. 말귀를 못 알아먹나? 산이 덮칠 거라고!!!"
대뜸 반말로 심슨에게 고함을 치는 체스.
그의 말에 심슨이 일순 당황하긴 했지만 그 정도의 말도 알아듣지 못할 심슨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미 체스가 말한 대로 성황이 전개되지 않았는가.
"방패를 가진 자들은 앞으로! 통로를 막아!"
심슨이 재빨리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방패를 가진 마수 사냥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통로의 앞쪽을 방패로 막아대기 시작했다.
다행히 통로가 그다지 넓지 않아서 망정이지.
서너 명이 방패를 겹쳐 막아서자 통로는 빈틈이 없이 막혔다.
그리고 자이앤트 굴의 통로를 타고 넘어오던 산이 그들을 덮쳤다,
촤아아아아악-
****
[준비는 다 되었나?]
끼르르르르륵-
마수 중 꽤나 높은 위치에 있는 녀석인가보다.
그 마수는 지금 자이앤트 병사들을 포개서 세우는 중이었다.
[어이! 거기 3층에 왼쪽에서 2번째 녀석! 배 쪽을 좀더 들라고!]
끼이이에에-
지적을 받은 자이앤트 한 마리가 배를 좀더 치켜 들었다.
그걸 본 자이앤트 병사 한 마리의 더듬이가 빠르게 움직였다.
무언가 지시 사항을 마구 내리는 그 마수.
거기에 따라 자이앤트들이 일제히 한 방향을 향해 배를 좀더 높은 각도로 치켜들었다.
더듬이로 모든 것을 공유하는 자이앤트들.
그렇기에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모든 것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상위의 자이앤트들에게 허락된 것이었지만.
그래도 별 무리는 없었다.
이들 자이앤트들은 하나의 공동체이자 하나였으니까.
[보자. 준비가 다 끝이 났군. 너희가 먹고 싸는 구멍을 더 넓혀! 잔뜩 벌려라!]
끼에에에에에-
[좋아! 쏴라아아아아!!!]
자이앤트 병사의 더듬이에서 살기가 잔뜩 낀 페로몬이 새어 나왔다.
거기에 반응하는 듯 점점 달아오르는 자이앤트들.
푸와아아아아악-!!!
자이앤트들의 배의 꽁무니에서 녹색의 액체가 발사되었다.
짙은 악취와 함께.
****
"와요! 와요!"
체스의 다급한 목소리.
통로의 끝을 바라보는 심슨도 이미 알아차렸다.
이 매캐하고도 썩은 악취.
짙은 산의 냄새였다.
그리고 그들의 정면으로 들이닥치는 녹색의 파도.
푸와악-
산의 파도는 방패를 들어 막고 있는 마수 사냥꾼들에게 직격했다.
치이이이익-
방패가 순식간에 치익 달아오른다.
그리고 산에 직격당한 방패는 겉면에서부터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대장! 이거 너무 강한데?!!!"
누군가가 외쳤다.
순간.
주륵-
그렇게 오밀조밀하게 방패를 연결을 시켜 놓았건만 그래도 틈새가 있었나보다.
몇 방울이 방패를 든 누군가의 발에 떨어졌다.
어찌나 지독한 산인지 그가 신고 있던 신발은 금세 구멍이 뚫리고 비명 소리가 울려퍼졌다.
극심한 고통에 일순 정신을 잃어버리는 그.
"버텨야 해!"
심슨이 재빨리 그를 부축하며 그가 들고 있던 방패를 대신 들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독려하는 와중에 그의 손이 살짝 빛이 났다.
다른 이들은 못 봤겠지만 체스의 눈에는 그게 똑똑히 보였다.
'뭐야? 저게? 저 빛은 다 뭐지?'
방금 전에 비해 놀라보게 달라진 방패의 강도.
더 이상 방패가 녹아내리는 건 없었다.
그걸 본 체스가 깜짝 놀라는 건 당연지사.
'이게 다이아 등급...인가?'
다이아 등급의 마수 사냥꾼들은 다른 무언가가 있다더니 확실히 달랐다.
그렇게 체스가 놀라고 있는 사이.
마구 퍼부어지던 산이 드디어 멈췄다.
통로를 가득 채운 매캐한 산의 냄새.
가만히 있자니 머리가 다 어질어질해질 정도였다.
"가자! 빨리 빨리!"
심슨이 이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 방패를 내동댕이치더니 주위의 마수 사냥꾼들에게 외쳤다.
먼저 자신의 무기를 들고 빠르게 뛰어가는 심슨.
그리고 그를 따라 마수 사냥꾼들도 힘껏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체스도 함께.
****
심슨이 자신의 장창을 들고 달려가는 사이.
체스도 자신의 대검을 들고 힘껏 내달렸다.
좀 뛰어가다보니 자신의 눈에 재빨리 진영을 바꾸고 있는 자이앤트들이 보였다.
다행히도 2파를 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렇다면 클링어를...?
좋아.
체스가 클링어의 발사를 위해 왼손을 들어올리는 사이.
먼저 움직인 것은 심슨이었다.
달려나가던 자세 그대로 자신의 장창을 슝슝 돌리는 심슨.
그가 장창을 돌리자 자이앤트 굴 전체에 바람이 휘몰아쳤다.
휘유우우우우우웅-
그리고 냅다 자신의 장창을 냅다 던지는 심슨.
그가 내던진 장창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바람과 함께 강력한 기운을 품고 정확하게 자이앤트들이 입을 벌리고 있는 곳 한가운데로 퍼억 떨어졌다.
콰콰콰과와아아아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먼지가 자욱하게 깔린다.
피융-
순간 체스가 클링어를 발사했다.
빠른 속도로 날아간 클링어는 바닥에 꽂혀서 아직 그 힘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심슨의 장창에 그대로 칭칭 휘감겼다.
그리고 망설일 새도 없이 클링어의 회수를 누르는 체스.
하지만 장창은 땅에서 빠져 나오지 않았다.
워낙 강하게 꽂힌 탓이겠지.
쭈욱 빨려 들어가는 체스.
휙-
억-
"뭐야?"
맨앞에서 달려나가던 심슨이 갑자기 자신의 옆을 빠르게 지나가는 무언가의 괴생명체에게 깜짝 놀랐다.
'저 자는? 아...그... 그 자였는데.'
분명히 아이언 등급에 잘 봐줘도 실버 등급의 보류라고 들었는데.
뭐지?
저 상황판단력하며 움직이는 것.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도 공격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 않나.
도대체 어떤 녀석이지...?
심슨이 달려가는 체스를 보며 생각에 잠긴 사이.
체스는 정확하게 자이앤트 무리의 한가운데에 도착했다.
이야아아아압-
힘껏 고함을 지르며 자신의 대검을 휘두르는 체스.
까아아아앙-!
쇠와 갑각이 부딪혔는데 무슨 쇠들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웅웅웅-
손 끝으로 느껴지는 이 진동.
어찌나 갑각이 단단한 지 칼을 쥐고 있는 손이 저럿저릿할 정도였다.
하지만 체스는 멈추지 않았다.
자이앤트 한 마리의 머리를 밟고 뛰어오르더니 다시 한 번 검을 힘껏 휘두른다.
휘잉-
바람을 가를 정도로 검을 쥔 양손에 양껏 힘이 들어간 모습이었다.
"머리와 가슴 사이에 약한 부분이 있다! 그걸 노려!"
어느 새 자신의 옆에서 자이앤트 한 마리의 머리를 박살을 내버리는 심슨이었다.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는 체스.
자신이 내려친 검은 다시 자이앤트의 집게에 부딪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힘을 그대로 흘리며 검을 지지대 삼아 공중으로 도약하는 체스였다.
...정확하게 잘 안 보이는데.
심슨이 이야기한 곳이 어딘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에라.
어드메겠지.
이야아아아압-!!!
자신이 올라탄 자이앤트 위에서 체스가 대검을 있는 힘껏 찔러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