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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싸움은 배운 적 없다
폭풍이 끝나고, 낮에서 밤으로 이어지는 동안에도 술은 끊임없이 선원들의 뱃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 알콜냄새 풍겨오는 풍경을 구경하고 있으려니, 갑판에서 럼주 한 병이 나에게 굴러오기 시작했다. 그걸 척 받자. 오늘 고생했수다! 하는 외침이 저기에서 들렸다.
"그래, 니들이 삭끈 거지같이 다뤄서 개고생 좀 했지."
럼주 한 모금을 쫙 마시고 후우, 하고 숨을 내쉬자. 한 명이 나를 향해서 물어보았다.
"근데, 도대체 어디서 물질 배운거요? 나이는 내 조카뻘인데."
어디서 배우기는. 나는 럼주를 흔들면서 말했다.
"이야기도 길고, 말하자니 짜증난다. 대충 정리해서 말하면, 배고파서 배를 탔는데 그 배가 탐험선이었을 뿐이야."
탐험선. 온 천지를 싸돌아다니면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보통 상선에 비해서 위험한 일은 몇 배나 많은 그 노가다를 하면서 여태동안 살아있었다니.
"그건 또 뭐야?"
그런 선원의 말에, 내가 대답했다.
"가지 말라고 되어있는 곳 가는 변태들이다. 남들은 갈 생각도 하지 않는 이상하고 기괴한 곳들을 싸돌아다니면서 지도 그리는 녀석들이지."
정신적 마조히스트가 아니면 절대로 할 일이 못되는 직업니다.
그럼 경험도 많겠네, 라는 말이 들리고. 한 명이 이쪽을 보면서 말했다.
"혹시 머메이드(인어)도 본 적 있수?"
그 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야, 좀 생각을 해봐라. 사람 상반신에 물고기 하반신이 붙어있고 거기다가 미인인 물고기가 진짜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냐?"
머메이드 같은 소리 하네. 기본적으로 내가 타고 있던 배의 선장은 그런 쓸데 없는 미신은 믿지 않고 있었고, 배에 타는 녀석들도 별로 그쪽에 관심이 없었다.
"예전에 제이크가 이 근방에서 봤다고 하던데."
니들은 낚시하다가 문어 한 마리 잡으면 크라켄 잡았다고 자랑하는 새끼들이잖아. 머메이드 같은 소리 하네. 믿을 게 따로있지.
"머메이드고 머맨이고, 다 미신이야."
그 말에 한 명이 오른쪽 어깨를 세 번 털고 갑판가에 가서 침을 탁 뱉었다.
"말 조심하지 형씨, 머메이드가 화나면 이런 조각배는 순식간에 침몰한다고."
그 말에 나는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난 솔직히 이해가 안 가는게, 니들이 그렇게 무서워하는 바다에다가 침을 뱉으면 도대체 왜 재수털리는 걸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거냐? 누가 니들 얼굴에 침 뱉으면 기분이 좋아지는게 아니라 나빠질 것 같지 않냐? ... 뭐, 이 친구들은 해적이고, 나는 아직 정식으로 이 배의 항해사가 된 것은 아니니까. 괜히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겠지. 또 무인도에 버려지고 싶지는 않아.
"그래, 사과하지."
그래도 지구는 도는 거야 이것들아.
머메이드 같은 소리 하네. 그게 있으면 그 성질 더러운 문어 마녀도 있고, 물고기가 말하고 그러는 거냐. 이 친구들 정신교육을 월트 디x니한테 받았나. 저 덩치에 별 희안한 걸 다 믿고 자빠졌어. 그러니까 몸에 온갖 징그러운 문신들을 줄줄히 박고 다니는 거 아니야.
뒤편에서, 마리아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말했다.
"야, 그쯤들 마시고 자라. 내일 이 아수라장 싹 정리해야지. 숙취 어쩌구 하는 녀석 있으면 바닷물로 샤워시켜버린다."
예에에,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하나씩 일어나서 비틀거리며 갑판 아래로 내려가고, 나는 멍하니 서있었다.
"근데, 나 어디서 자냐."
나의 중얼거림에 마리아가 나를 보다가 말했다.
"항해사 방 써. 폭풍을 뚫고 지나갈 정도의 항해사는 보기 드문 물건이니까. 대우를 해줘야겠지."
그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 하면서 대답했다.
"폭풍? 그게? 그냥 애들 물장구 수준이었지요."
거만한 새끼. 마리아가 그렇게 말하고는 선실로 들어갔다.
사실 애들 물장구는 절대! 아니었다. 내가 항해사를 잡고 나서 처음으로 경험한 폭풍이었다고는 절대로 말 못한다. 이럴 때는 자고로 허세야. 초짜티 내봤자 도움될게 하나도 없어요.
나는 자러 들어가기 전에 하늘을 바라보았다. 음, 약간 이상하다고 감이 말하는데.
"... 아, 조금 틀어진 건가?"
붕어가 저기에 있으면 안되는 건데. 뚫고 나오다 보니 약간 틀어졌나보다. 무슨 도구라도 있으면 순식간에 다시 위치 잡고 저런 별 따위는 보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야.
그리고 방에 들어간 나는 혼자 멍해져서 그 방 안을 살펴봤다.
"이 새끼들 도대체 뭐하는 새끼들이야?"
나는 전에 항해사가 사용하던 것으로 보이는 크로노미터(경도 측정)를 보고 어이가 터졌다. 슬쩍 보니까 메이드 바이 카라놀이다. 300일 항해하면 크로노미터 오차가 0.5초 난다고 하는 그 카라놀 제 크로노미터!
물론 딱 보니까 양산형이라서 그 정도의 정확도는 기대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이게 있는 거랑 없는 거는 항해의 수준에 차이가 난다.
야, 이 비싼게 여기에 있냐. 하나가 금 한 파운드는 나가는데 말이야. 전에 있던 배에서 항해사가 그렇게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부르던 물건인데. 그 옆에는 육분의랑 팔분의(둘다, 위도 측정)가 떡 하니 놓여져 있다. 그리고 나침반도 곱게 모셔져 있다.
이젠 이 친구들이 안쓰러운 지경이다.
도구가 있는데 왜 쓰지를 못하니... 왜 쓰지를 못해!
눈 한 쌍이랑 귀가 다 있는데 도대체 왜 길을 잃은거야 이 새끼들은? 머리에 화약을 넣고 터뜨리기라도 한 건가.
진작에 들어와 봤으면 눈깔 아프게 별 보면서 짐작할 필요도 없었잖아! 아니 길 잃은 불쌍한 해적들이길래 제대로 된 항해용구가 없나보다 하고 있었더니.
이건 그건가. 아이템은 만렙인데 사용하는 녀석이 겁나 초짜인 상황인가. 말 나온 김에 나는 크로노미터랑 육분의를 사용해서 위도와 경도를 파악하고 동서남북 제대로 체크한 다음에 속으로 한 숨을 내쉬었다.
"오 주여, 이거 없었으면 우주로 날아갈 뻔했다... 나도 모르게 죽음으로 직행하고 있었네."
녹슨 면도날에서 대충 450km 정도 떨어져 있는 이상한 섬으로 배가 가고 있었다.
다음날이 밝고, 우리의 해적선은 다시 움직일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닻 올려라."
마리아의 말에, 둔중한 소리가 나면서 바닥에 내려져 있던 닻들이 올라온다. 그럼, 이제 가볼까. 나는 하품을 한 번 하면서 조타륜을 약간 돌리고 말했다.
"종범 다 접고, 횡범 다 펼쳐라. 바람 잘 잡고."
당연히 불어오는 바람은 순풍이었고. 등 뒤에서 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나는 조타수에게 조타륜을 넘겨주고 배 굴러가는 꼴을 구경하면서 바다를 바라본다.
음, 저거 보소?
"세 작대기 왼쪽으로."
조타수가 고개를 끄덕이고 조타륜을 왼쪽으로 돌린다. 약간 배가 선회에서 움직이고, 나는 삭끈 잡고 있는 녀석들에게 말한다.
"바람 반만 잡자!"
그 말에 돛들이 약간씩 모양을 바꾸고, 돛대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면서 배의 속도가 떨어진다. 좋아... 조금만 더 가서.
"그 상태에서 오른쪽으로 네 작대기."
타륜이 돌아가고, 잠시 뒤에 배가 선회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배가 떠 있는 걸 가만히 느끼다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다시 바람 만땅으로 잡고 그대로 유지해라."
아까보다 훨씬 더 속도가 나온다. 나는 조타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상태로 유지해."
"속도 잘 나오는데."
마리아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 했다.
"해류 하나 타고 들어가니까요. 한 동안은 쓸 수 있는 녀석입니다."
나는 갑판 사이드에 걸터 앉아서 밧줄을 하나 잡은채로 계속해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바람 바뀌었잖아! 돛 조작하기 귀찮으면 다른 놈한테 맡기고 갑판이나 닦을래!?"
그 말에 다시 돛이 바람을 잡고, 나는 조타수를 바라보았다.
"오른쪽으로 한 작대기 꺾어라."
그리고, 잠시 있다가 보니 마리아가 한 마디 나에게 한다.
"이 근방 어딘지 찍어봐."
그 말에, 나는 선장실로 잠깐 들어가서 지도를 보며 검지로 동그라미를 그린다.
"이 언저리입니다. 그걸 갑자기 물어보는 이유가?"
그 말에 그녀가 대답한다.
"배 하나 털어먹으려고."
동네 시장에 가서 사과 하나 사는 듯한 말투로 참 대단한 대사를 해주신다.
뭐, 내가 적응해야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리아를 바라봤다.
"어디로 갈까요?"
마리아가 지도 위에 자신의 손가락을 올렸다. 내 손가락보다 약간 더 위로 올라간 위치.
"기억이 맞으면 이쪽에서 입김 타고 가는 배들 있을거야."
그 말에, 내가 어깨를 으쓱한다.
"그리로 갑니까?"
그래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분부대로."
나는 선장실 밖으로 나와서 조타수를 보며 말했다.
"왼쪽으로 쿼터 꺾어!"
그리고, 나는 바람을 살피다가 쯔, 하는 소리와 함께 말했다.
"야, 종범 펴라! 우리 갈 길이 바뀌었다!"
그 말에 구시렁거리면서 선원들이 뺑이를 치기 시작하고 나는 명령대로 이동하면서 슬쩍 조타륜 옆에 가져다 둔 나침반을 확인했다.
항해실에 가서 크르노미터를 체크하고 육분의를 가져와 확인하며 옆에 서 있는 마리아에게 말했다.
"아니, 그 비싼 크로노미터에다가 육분의랑 팔분의도 챙겨져 있고, 나침반도 있는데 도대체 왜 길을 잃으신 겁니까?"
그 말에, 마리아가 대답한다.
"크로노미터? 그게 뭐야."
그 말에 나는 머리를 짚었다.
"항해사 방에 있던 상자에 담긴 시계말입니다.
"아 그거? 그냥 항해사가 달라고 졸라서 주기는 줬는데."
이... 이...
"그 새끼 항해사라고 부르지 말아주세요."
모욕받는 기분이다. 항해사가 도구가 별로여서 길을 잃는 경우는 봤어도, 멀쩡한 도구 갖추어 놓고 길을 잃는 건 처음본다.
"바다는 어떻게 다니시는 겁니까?"
그 말에 그녀가 바닷바람에 금발을 휘날리며 당당하게 말했다.
"경험. 지금이야 내가 모르는 해역이라 그렇지. 녹슨 면도날에 딱 도착하면 그 근처에서는 눈 감고도 돌아다닌다고."
아, 그러세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물론, 나도 정규적으로 어디 학교에 가서 배운 건 아니지만. 이전에 탄 배의 선장도 그렇고 항해사도 그렇고 제대로 '항해'를 할 줄 아는 친구들이었다. 내 표정을 보고 마리아가 얼굴을 구기고 말한다.
"뭐, 왜. 다른 해적들도 다 마찬가지란 말이야. 애초에 항해사 자식이 더 멀리 나가도 문제 없다고 떵떵거리지만 않았어도 거기 떠날 일은 없었어."
그거 비슷한 건가. 맹인이 주변에 물건들 위치 기억해두고 슥슥 찾아오는 거. 물론 대단한 일이기는 하지만. 배 타는 녀석이 당당하게 자랑하듯이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제 일은 쉬워졌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문제 없으면 그걸로 오케이잖아? 라고 나의 캡틴이 유쾌하게 웃었다.
"예, 좋은게 좋은거죠."
그 새끼가 호구와트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내 시체가 그 모래섬에서 썩고 있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