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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의 전설
식사와 음주를 하는 와중에 마리아가 리사에게 말을 건다.
"뭐 재미있는 소식 없어?"
그 말에 리사가 마리아를 바라본다.
"질문이 포괄적이야. 재미있는 일이야 많지. 어떤 재미있는 일을 말하는 건데?"
그 말에 마리아가 대답한다.
"돈이 될 만한 재미있는 일."
그 말에 리사가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한다.
"그러네, 토르소에서 함대가 출발한다고 하는데."
그 말에 마리아가 말한다.
"토르소에서 배 출발하는 건 흔한 일이잖아. 그게 뭐가 재미있는 일이야."
"성격 급하기는. 아직 말 다 안 끝났어. 그 함대 안에, 재미있는 화물이 하나 들어있단 말이야."
그 재미있는 화물이 뭘까?
"그 함대가 옮기고 있는게 러셀의 함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그 말에 마리아가 대답한다.
"뻥치네. 러셀의 함?"
그 말에 내가 대답한다.
"그게 뭡니까?"
그 말에 두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다시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표정이 마치 짜기라도 한 것 마냥 똑같다.
"러셀의 함을 몰라? 배를 10년 탔으면서?"
나의 배는 그런 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단 말이다.
"그래도, 선원들이 가끔 이야기 안해? 바다 전설 같은거?"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의 선원들은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들이라서 그런 전설에는 흥미가 없었다고. 리사가 나를 보다가 말한다.
"설마, '더 쉽'들에 대해서도 전혀 몰라?"
그 말에 내가 대답한다.
"그건 또 뭐하는 물건입니까?"
그 말에 그녀가 나를 본다.
"장난치는 거지?"
그 말에 내가 웃는다. 지금 나는 존나 진심인데. 마리아가 나를 슥 보고 한숨을 쉬며 말한다.
"이 친구가 그쪽 지식은 영 젬병이야."
그 말에 리사가 입맛을 다신다.
"검은 어금니, 바다의 날개, 싸늘한 앤, 안개의 미아, 방랑자... 진짜 머릿 속에 뭐 벨 울리는 거 없어?"
검은 어금니는 알고 있는데. 카멜롯 왕국의 제독 바리스의 기함이잖아.
"그게 더 쉽인 건 모르고?"
어, 그딴거 몰라. 나의 말에 마리아가 대답한다.
"검은 어금니는 알고 있으니까 넘어가자고. 그 녀석이 뭐하는 놈인지는 알지?"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함포 말고 배의 갑판에 달려있는 장치로 왠만한 중형선의 마스트만한 작대기를 쏘아올려 상대 배를 꿰뚫어버리는 놈이잖아. 별명이 임페일러(꼬챙이!)였던가. 사거리가 거의 6해리(대충 12km)에 달하는데 정확도가 엄청 높다고 들었다. 해전에서 상대 기함부터 조지고 싸움에 들어간다고들 하니까.
남들 머스킷 들고 라인배틀 하고 있을 때 혼자서 저격총 들고 다니는 놈이다. 수직으로 솟구친 거대한 검은 작대기가 하늘에서 떨어지며 상대 배의 갑판을 꿰뚫어 구멍을 내는 무시무시한 배. 한 방 맞으면 그대로 배는 침몰한다.
"그 검은 어금니와 함께 다섯 척의 배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어."
그리고 나는 술을 마시면서 그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다.
바다의 날개, 해적 러셀이 타고 다녔다는 배이다. 설명만 들어도 헛소리 같은 느낌이 나는게. 이 배는 돛이 없단다. 그래서 별명이 언세일러(돛 없는 놈). 갑판 위에 마스트도 없고, 돛도 없는데 움직인다고 전해진다 그것도 엄청 빠르게. 물론, 이런 종류의 전설이 그렇듯이 굉장히 비밀스러운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는 느낌의 설명이 따라붙는다.
싸늘한 앤, 바다를 얼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바다의 날개는 내가 그냥 참고 넘어간다. 뭐, 혼자서 증기선 같은 느낌일 수도 있잖아. 근데 이건 뭐냐? 바다를 얼려? 혼자 겨x왕국을 찍고 있네. 막 렛잇고 이런건가. 마찬가지로 행방불명. 별명은 크리스탈(꽁꽁). 녀석에게 깝치면 배가 통째로 얼어붙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싸늘한 앤의 포격에 얻어 맞아야 한다고 한다. 듣기만 해도 오싹하네.
안개의 미아, 지금도 해역의 어딘가를 선원도 없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하는데. 짙은 안개를 거의 30해리에 걸쳐서 몰고 다니며, 그 안개에 들어가면 나침반도 맛탱이가 가버린단다. 별명이 미스가이드(어디게?). 항해사들의 적 같은 배다. 안개가 끼면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까 당연히 육분의가 봉인되고, 나침반이 봉인된다. 유일한 희망은 크로노미터인데. 안개가 자성을 띄고 있어서 맛이 가는 거면 민감한 기계인 크로노미터가 멀쩡하게 작동할 리가 없으니. 눈코입을 다 막는 격이다.
마지막으로 방랑자. 녀석의 별명은 언도커(입항 ㄴㄴ해). 별명대로, 평생 입항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는 배라고 한다. 배 안에서 자체적으로 물과 음식을 수급할 수 있는, 정화의 함대 같은 느낌. 이건 그래 실제로 내가 있던 세계에서도 비슷한 물건이 있었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 새끼 잠수를 한단다. 배가. 물 아래로 가라앉는다고. 전문적인 용어로는 배가 침묵했다고 하는 그거. 배가 가라앉는다고! 근데 멀쩡하게 물 아래에서 돌아다닐 수 있다고?
여기가 지구면 놀랄만한 일은 아니지만. 여기 기술력으로 그런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결과적으로...
"... 거, 바다 전설들 중에서는 믿을 만한게 하나도 없다니까요."
내 평가는 이렇다. 그럴리가 없잖아.
"러셀이라는 녀석의 함이라고 하니까. 아무래도 그겁니까?"
바다의 날개인지 뭔지 하는 배와 관련이 있는 모양이지. 그 말에 마리아가 대답한다.
"러셀의 함에는, 바다의 날개가 잠들어 있는 곳이 표시된 지도가 들어있다고 전해져."
그러시겠지. 나는 가볍게 입맛을 다시다가 대답했다.
"맞춰보죠. 그거 안 열리지 않습니까?"
그 말에 리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맞아, 열쇠가 필요한데,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들었어."
그럼 그렇지. 원래 이 바닥이 다 카더라 통신이잖아. 마리아가 내 표정을 보고는 말한다.
"그거 함 가격이 엄청 비싸다고. 팔 수만 있으면 함대 하나를 꾸릴 가격은 받을 수 있어."
그 말에 나는 머리를 긁었다.
"그런거에 목숨을 거는 친구들이 이해가 안갑니다. 이전에 항해 할 때에도 시장에서 나가의 유물이니 뭐니 해서 경매에 들어간 산호조각이 배 한 척 값에 팔리는 걸 보면서 참..."
마찬가지로 마리아가 대답한다.
"진짜 나가의 유물이면 그 가격도 떨이지."
아니, 이 사람들이 진짜. 그런거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지 말라고.
"나가가 인간이랑 섹스해서 나온 여자가 머메이드고, 남자가 머맨이라는 그 말도 안되는 헛소리 같은 전설을 진짜로 진지하게 믿는 겁니까?"
저건 그 시장에서 들어봐서 알고 있는 전설이다. 나가라고, 물 속에서 사는 종족이 있었다고 한다. 사람 비슷하게 생긴 친구들인데, 가끔 밖으로 나와서 인간과 섹스를 했단다.
나가가 임신하면 항상 딸이 나오고, 인간이 임신하면 머맨이 나온단다. 나가라는 녀석들은 한 만년 전 쯤에 멸종했는데(아마도, 인간과의 섹스가 지들끼리 하는 것보다 더 자극적이여서 종족의 번식에 신경을 끈 모양이지), 지금도 바닷 속에는 머맨과 머메이드가 살고 있고, 두 녀석들은 어찌된 이유인지 사이가 존나 나빠서 맨날 싸운단다. 그게 나가 전설이다.
"뭐, 돈이 된다고 하니까 저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습니다만."
동네 설화는 이쯤에서 집어치우고. 나의 말에 리사가 대답한다.
"토르소에서 출발해서 마이안으로 간다고 하던데."
그 말에 나는 입을 다물고 생각했다.
뭐, 그럼 가는 길은 둘 중에 하나겠네.
이케아나 겔만에서 부는 탁월풍(특정 위도에서, 거의 일정한 방향으로 부는 바람)을 타겠지.
"함대 규모가 얼마랍니까?"
그 말에 리사가 약간 고민하다가 말한다.
"그건 잘 모르는데."
쯔,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머리를 긁었다. 마리아가 나를 본다.
"왜, 뭐 짚히는 거 있나?"
그 말에 내가 대답한다.
"이런 곳에서 떠들기에는 좀 그렇죠."
하긴, 마리아도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배 안에서 하자고."
돈 되는 물건을 건지니까 마리아의 눈빛이 반짝인다. 그녀는 팁으로 돈을 꽤 두둑하게 리사에게 넣어주고 자리를 나섰다.
정박해 있는 배의 선장실 안으로 들어온 마리아가 팔을 꼰 채로 말한다.
"그래서, 뭐가 짚히는 건데?"
"배가 토르소에서 마이안으로 가려면 크게 길이 두 가지 있습니다. 이케아의 탁월풍 또는 겔만의 탁월풍."
그리고 나는 머리를 긁으며 말한다. 해도를 보며 손가락으로 선을 대충 그어본다.
"다른 곳으로는 못 가는거야?"
그 말에 내가 대답한다.
"갈 길이야, 배가 가면 그게 항로가 되는 거지만. 그렇게 비싼 물건을 옮기는데 모험을 할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시즌이면 겔만쪽 바람이 강할겁니다."
사실 상, 그 함대가 가게 될 항로는 겔만일 것이다.
"다만, 상대가 함대인데. 괜찮겠습니까?"
그게 문제란 말이지. 라고 말하면서 마리아가 머리를 긁는다.
함대라면 못해도 배가 세 척이다.
그걸 어떻게 상대해. 칼싸움도 3대 1 싸움으로 시작하면 1이 탈탈 털릴 수 밖에 없다. 검에 검 자도 모르는 나도 상식으로 그 정도는 알고 있다.
"음, 제일 쉬운 방법은 역시 상대가 입항했을 때에 터는 건데."
그건 해적질이 아니라 도둑질이잖아 임마. 그리고, 마리아가 자신의 머리를 슥 쓸어넘기면서 말했다.
"뭐, 일단 발견하면 쫒아가 보고. 영 기회가 없다 싶으면 다른 걸 털지 뭐."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지도를 바라봤다.
"뭐, 일주일 정도는 여기에서 놀아도 문제 없습니다. 녹슨 면도날 섬에서 저희가 일주일 뒤에 출발하면..."
대충 여기 쯤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손가락으로 바다 한 가운데에 동그라미를 쳤다.
"확실해?"
마리아의 말에 나는 대답했다.
"음... 거의? 세상에 확실한 일이 어디있겠습니까."
솔직해서 좋네. 마리아가 그렇게 말하고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해적을 할 마음은 든 건가?"
그 말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마리아의 허리춤에 걸려있는 커틀러스를 가르켰다.
"저게 무서워서요."
그 말에 마리아가 대답한다.
"그냥 근처 해역에 놔준다고 하면? 아무 뒤끝 없이."
그 말에 내가 고민하다가 말했다.
"... 그러면서 커틀러스를 잡으면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 말에 마리아가 웃는다.
"이건 그냥 습관이야."
뻥치시네. 그러면서 왜 다시 슥 손을 내리는데.
"계속 이 배에 타고 있으면 저도 사람을 죽이겠고, 제가 여태동안 배웠던 모든 기술들이 다른 사람들의 배를 털어먹는데 이용되겠지요."
그러려고 배운 건 아닌데 말이지. 마리아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한 이야기. 나는 해적이야."
바다의 깡패.
... 나는 한참 고민하다가 말했다.
"아, 저도 이젠 씨발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려고 배운 지식들은 아니었는데 말이지. 마리아가 나를 슬쩍 보고 웃는다.
"사실 그냥 놔줄 생각도 없어."
그 말에 나는 뚱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럴 것 같았습니다."
카르페 디엠이라고 하지만 도대체 즐길 수가 없는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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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까지 나름 빨리 온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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