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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15화 (1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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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 속의 표류선

항해는 계속되고 있었고, 레이먼드는 내 명령에 별 다른 토를 달지는 않은 상태로 천천히 항해를 계속하고 있었다. 안개라서 속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지.

금발을 한 번 슥 쓸어올리고 나는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 전설이 진짜라고 한다면... 레이먼드의 말 처럼 그냥 미신이겠지.

하지만 진짜면 어떡해야 하는 거냐. 씨바 진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천천히 안개가 옅어지기 시작했다. 벗어나고 있는 건가. 레이먼드가 항해 실력은 확실히 좋단 말이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레이먼드를 바라봤고. 대수롭지 않게 어꺠를 으쓱 하는 레이먼드.

"어떻게 빠져나오기는 했네요."

그러게. 나는 한숨을 쉬고 약간 괜찮아진 시야 너머를 바라봤다.

거기에는, 배가 한 척 떠 있었다. 배의 마스트부터 갑판, 뱃고물까지 모두가 피처럼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고, 새까만, 더 이상 돛의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져있는 돛.

그리고, 그 너덜거리는 돛이 걸린 마스트 위에서 키들키들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쪽을 바라보는 녹색의 해골들. 얼마나 오랫동안 떠 있었던 배일까. 배의 앞머리부터 측면까지 다닥다닥 달라붙어있는 수많은 따개비와 온갖 해양 생물들. 가라앉지 않고 있는게 신기하다 싶었는데.

그 아래에 보이는 수많은 희끄무래한 사람 형상의 무언가들.

유령선. 나는 그걸 보자마자 등에 소름이 박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뭐야, 표류선이네."

옆에서 심드렁하게 말하는 레이먼드에게 내 고개가 홱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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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씨발, 깜짝이야. 왜 갑자기 고개는 돌리고 그래. 나는 어울리지 않게 창백한 마리아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어디 아프십니까?"

바람이 약간 바뀌어서 나는 선원들을 보며 말했다.

"야, 횡범 조금 꺾어라 바람이 바뀌었... 니들은 또 왜 그러고 자빠졌냐?"

표류선에 꿀 발라놨냐? 왜 다들 거기서 눈을 못 때고 있냐. 저런거 처음보나. 나는 그들의 시선을 따라서 천천히 배를 살펴보았다. 너덜너덜하게 망가져있는 돛과 해양생물들이 잔뜩 달라붙은 배의 앞머리. 시뻘겋게 녹슨 대포와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시뻘건 몸체.

확실히 충격적으로 늙은 표류선이네. 이 업계에서는 거의 환갑잔치 치른 수준인데. 나는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와, 저거 혼자 돛도 펴지네."

자동화 범선인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킥킥 웃었고. 그럴 수록 나를 바라보는 마리아의 표정이 점점 기괴해졌다.

"아무것도 안보이냐?! 저기 지금 해골들이 돛을 펼치고 있잖아!"

그 말에 나는 뚱한 표정으로 마리아를 바라보다가 다시 그 표류선을 바라봤다.

"... 설마요. 저 바닥에 굴러다니는 뼈다귀가 돛을 어떻게 펼칩니까."

당연히, 표류선이면 안에 사람이 있었을 테니까. 갑판에 인골이 굴러다니는 건 놀라울 일이 아니다. 내가 죽이는 것만 아니면 시체야 어마어마하게 많이 봤었으니까. 새삼스레 '어맛 시체에에!' 하면서 놀랄 일도 없다.

그나저나, 표류선이면 안에 꽤 비싼 물건들이 있을텐데. 저렇게 오래된 녀석들은 오히려 더 귀중한 물건을 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나는 마리아를 슬쩍 보고 말했다.

"한 번 넘어가 봅니까?"

그 말에 마리아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쳤냐?! 최대한 멀어져! 빨리.. 빨리!"

뭐 어디에서 몰래 코카인을 꺼내서 피웠나. 왜 저러는거야. 안개가 성분이 이상한가. 나는 어깨를 으쓱 하고는 말했다.

"피하랍신다. 왼쪽으로 쿼터 주고, 스팽커 바람 잡고. 꺾어라."

그 말에, 나는 시퍼렇게 질려있던 선원들이 질주하는 걸 보고 말했다.

"이 자식들아, 진작에 이렇게 움직였으면 좀 좋아."

그리고 선원들도 나를 보면서 형언 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항해사, 저거 안 보이는 겁니까?"

그 말에 나는 대답했다.

"이것들이 단체로 나를 병신 만들려고 환장을 했나. 표류선 처음보냐?"

그리고 마리아가 입술을 파르르 떨다가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나를 톡톡 건드렸다.

"...예?"

오늘 안그래도 너 이상해서 짜증나는데 왜 또 그런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냐.

"니... 니 뒤에... 레이먼드! 니 뒤에!"

그 말에 나는 쩝 입맛을 다시고 뒤를 돌아봤다.

"뒤에 뭐가요."

나의 평온한 말과는 다르게. 다른 녀석들은 이미 반쯤 맛이 가서 엎드려서 알아듣지도 못할 언어를 써가며 기도를 하고 마리아는 몸을 딱딱하게 굳힌채로 천천히 허공으로 시선을 향하며 천천히 뒤로 물러서기 시작한다.

"... 아 좀! 장난도 좀 적당히 하시지요."

그 말에 별 다른 말 없이 마리아가 순식간에 피스톨을 뽑아들고 내 뒤편을 향해 갈겼다.

"씨발 사라져 개같은 새끼들아!"

... 아니 내가 싫으면 말로 하라고 이 미친! 어디에다가 대고 피스톨질을 하는거야?!

"뭐하는 겁니까!? 죽을 뻔했잖아요!"

그 말에 마리아는 따로 말을 하지 않고 혼자 점점 구석으로 밀리는데. 다들 얼굴이 장난이 아니다. 그리고, 일정한 모습을 가지고 모여드는게. 실제로 뭔가가 보이는 것 같은 모습이다.

저 녀석들이 단체로 치어리딩 같은 걸 배우지 않았으면 저런 조직적인 동작으로 나를 엿먹이는 건 불가능한데.

"... 진짜 보이는 건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머리를 긁었다. 나만 멀쩡하니까 너무 이상한데 이거. 다들 굉장히 조직적으로 허공에다가 칼춤을 추고 있는 걸 보니 참...

"진짜 되게 웃기네."

나는 혼자서 그걸 보면서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근데 웃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 명의 선원이 눈이 허옇게 뒤집어지더니 그대로 입에 게거품을 물고 경련하다가 피를 토했다!

이거 뭐야?! 갑자기 없던 병이 생긴 건 아닐텐데...!

나는 가만히 그 상황을 살펴보다가 움직이고 있는 배에 정확히 속도를 맞추어서 이동하고 있는 저 시뻘건 배를 바라봤다. 어.. 내가 보던 이전의 퇴마 드라마 같은 거 보면 저 안에 있는 뭔가를 부수면 이런 상황이 정리되던데 말이지.

표류선 들어가서 필요한거 챙기는 걸 안 해본 것도 아니고. 한 번 넘어가봐야겠다. 저거 겉보기에는 엄청 웃긴데. 보고 있다가 갑자기 '난 그런줄도 모르고...' 이러면서 심각한 상황에 빠질 것 같아!

나는 후우후우 숨을 몰아쉬다가 문득 생각나서 항해사실을 열고 안에 들어갔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혼자 바닥을 구르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로제. 그러는 와중에도 뭔가 싸우고 있는 건지 촛대 하나를 들고 요리조리 막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재빠르게 그녀의 사슬을 검을 꺼내서 끊어주었고. 그녀가 나에게 달려와서 내 손을 잡았다.

"레이먼드! 도망쳐요! ...?"

그녀가 내 손을 잡은채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 어디 갔지."

나는 내가 꺼내든 검이 은은하게 빛을 뿜는 걸 보고 깨달았다. 아, 이 검 덕분인가. 아무래도 나만 뭐가 보이지 않는 이유가 이 검 때문인 모양이다. 나와 몸이 닿은 사람들도 보이지 않게 되는 모양이네. 나는 후우 하고 숨을 내쉬고 로제를 바라봤다.

"따라와."

나는 그렇게 말하고 그녀의 손을 잡은채로 항해사 방을 나왔다. 여전히 검을 휘두르고 피스톨을 갈기고 있는 사람들. 나는 그걸 슬쩍 바라보고 붉은 배를 바라봤다. 어찌 되었던 이 안에서 뭘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 나는 그녀를 보고 말했다.

"우리는 저 배로 건너간다. 오래된 배라 발 잘못 디디면 그대로 무너질 수도 있어. 최대한 조심해서 내가 밟은 장소만 밟고 따라와라."

그 말에 로제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천천히 그 배로 건너갔다.

위에 올라서자마자 끼이이익 하는 괴성과 함께 간만에 느껴지는 무게로 비명을 지르는 늙은 배. 나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이어가기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 손을 잡고 있던 로제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꺼지는 바닥에 발목이 다쳤다. 아니, 말이야 다쳤다고 하고 있지만. 저거 지금 낡은 나무조각이 발목에 잔뜩 박혔다.

"... 일 잘풀리네."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두 명치 무게를 버텨줄 지는 모르겠지만. 저렇게 다친 상태에서 보이지 않는 유령들의 근거지에 버려두고 있으면 진짜 죽을거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서 공주님 안기를 하고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뭐, 말이 공주님 안기지, 그냥 배에 짐짝 나를 때 하는 자세와 다를 것도 없다.

사실 로제도 약간 내 머릿 속에는 짐짝 느낌이고. 잠깐 몸을 움찔거리던 로제가 천천히 팔을 내 목 뒤로 돌려서 지탱을 하고 나는 조심스럽게 발로 살짝 살짝 눌러보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래, 이 와중에도 여자에게 어필을 하는 이 몸의 재능이란...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저쪽 배에서는 선원들이 하나씩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마리아는 한 동안 버텨주겠지만... 어디로 가야 할까.

"이 배 전설은 분명히 선장 잘못이었지."

나는 조심스럽게 배 후미에 있는 선장실을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좋은 밤 되세요. 코멘트 달아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서평 달아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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