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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23화 (23/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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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와 길로틴 섬과 나팔

마리아의 예상과는 다르게, 항해를 하면서 두 척의 배를 털었지만 녀석들 중에서 우리에게 반항을 하는 녀석들이 한 마리도 없었다! 졸리 로저를 올리면 그대로 백기를 올려서 팔레(협상, 모 게임에 나오는 해적 기술과는 다르게 총을 쏘지는 않는다)를 신청하고 30%만 뜯긴 다음에 그대로 유유히 가버린다.

물론, 마리아는 당당하고 자긍심 있는 해적 선장이니까. 당연히 싸우지 않고 팔레를 신청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이전에 나를 무인도에 버렸던 새끼랑은 차원이 틀린 해적이지. 최소한 말은 통하고, 살아나갈 방법도 있잖아.

여튼, 요점은 뭐냐하면 아직도 마리아는 로제에게 입단식을 시키지 못했다는 것이고.

우리는 이제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그 거지같은 길로틴 섬에 도착하게 된다는 거다. 나는 해류를 바라보다가 이마에 손을 올렸다.

"이런 미친 동네에 섬이 있으니까 그딴 거지같은 현상이 일어나지.

몇 개의 해류가 흐르는 거야? 여기에서 무슨 해류들이 반상회라도 여는거냐. 커다란 해류도 몇 개 있는데, 거기에 더해서 작은 해류들도 여러개 발견된다. 이런 장소에 암초가 듬뿍 둘러싸고 있는 섬이 있으면 소용돌이는 안 생기는 게 이상하지.

점점 위치에 가까워지면 가까워 질 수록 해류의 유속이 빨라지고, 저 멀리에 마침내 그 섬이 드러난다.

"... 시발."

결국 와버렸다 이 길로틴 섬에. 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무슨 놈의 해류가, 제트 엔진처럼 흘러다니냐.

"돛 다 접고, 메인 마스트의 돛 한 장만 올려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에 속력이 붙을 정도다! 무슨 놈의 해류가...! 나는 점차 섬으로 다가가기 시작하는 배 위에 서서 점점 그 흉악한 모습을 드러내는 섬을 바라보며 입을 쩍 벌렸다.

"... 세상에."

이런 정도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러니 저 섬에 살아서 들어가지를 못하지!

정면에 보이는 광경에 모두가 넋을 잃는다.

거대한 소용돌이가 정면에 세 개, 그 주변에서 일렁거리는 자그마한 소용돌이가 못해도 열 개. 나는 유속을 확인하고 외쳤다.

"횡범 다 펼치고, 조타륜 왼쪽으로 다 돌려."

해류가 그나마 약한 곳, 닻을 내려도 무리가 없는 장소에 도착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닻 다 내려라."

배가 멈춘다. 그리고 내려진 닻이 바다의 바닥을 긁으며 배를 멈추게 하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야, 마스트 꼭대기에 있는 놈. 내려와."

올라가봐야겠다. 넋이 나가있었던 녀석은 나의 말을 듣고 아.. 알겟습니다! 라고 말하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고, 나는 얼기설기 그물처럼 서로 묶여있는 밧줄들을 붙잡고 마스트의 꼭대기를 향해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섬의 모습은 더 장관이었다.

마리아가 아래에서 나를 보며 외쳤다.

"어떠냐?!"

그 말에 나는 대답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선원들 최대한 쉬게 하시고 계시면 제가 좀 살펴보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바다를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밤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그 마스트 꼭대기에 있는 작은 장소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내 머릿 속에서 저 안으로 들어간 배는 벌써 열 다섯 척. 그리고 들어갈 때마다 항상 침몰이다. 섬을 스치고 지나가는 괴물같은 빠르기의 해류가 5개, 거기에서 찢어져 나오는 작은 해류가 48개. 그로 인해서 만들어지는 거대한 소용돌이들과 이리저리 생겨나고 사라지는 작은 소용돌이들.

암초가 없고, 배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장소들은 그 빠른 해류들이 쑤시고 들어가는 바람에 안 그래도 빠른 해류가 더 빨라진다. 그리고 그 뒤에 그 빨라진 해류는 다시 암초들에 부딪쳐 소용돌이를 만들어낸다.

그런 구조다. 그래서 미치겠는거다. 암초를 피해내는데 성공하면, 코 앞에는 영락없이 소용돌이가 자리잡고 있다. 그러면 소용돌이가 우리 배의 멱살을 붙잡고 바다 아래로 끌고 들어가겠지.

다시 해가 뜨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 위에서 바다를 관찰하고 있었다. 잠도 안온다.

다시 밤이 찾아왔다. 나는 여전히 마스트 위에서 바다를 노려보고 있었다.

별빛과 함께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본다. 식사 안 하냐고 밑에서 마리아가 외쳤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잠시 뒤에 선원 하나가 올라와서 이쪽에 건빵과 물, 육포를 건네주고 내려간다. 물에 적신 건빵을 벌레를 털어버리는 것도 까먹고 그냥 씹으면서 나는 바다를 노려본다. 눈을 땔 수가 없다. 저 개 같은 섬은 하루에도 수없이 변화를 거듭한다. 나는 아래에 대고 소리쳤다.

"종이랑, 잉크!"

잠시 뒤에 종이 여러장과 잉크 한 통이 나에게 전달되고, 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섬과, 숨어있는 암초들, 흐르는 해류들과 생겨나는 소용돌이들.

나는 그걸 그리면서 정신을 거의 놓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걸까.

"레이먼드, 그만하고 내려와라! 너 거기서 4일째다!"

그랬나. 마리아의 말에 나는 아래를 보지도 않고 대답한다.

"거의 다 되었습니다!"

사실 하나도 안 끝났다. 아니, 감도 안 잡힌다. 이걸 어떻게 뚫고 지나가냐. 종이 위로 투툭, 하는 소리와 함께 뻘건 방울들이 떨어진다.

갑자기 코피는 왜 나고 지랄이야. 나는 그걸 대충 소매로 슥 문질러서 닦아내면서 바다를 계속해서 노려봤다.

"말해줘, 러셀. 이 씨발 새끼야. 비밀이 뭐냐."

나는 눈 앞이 순간적으로 흔들리는 걸 확인하면서 침을 뱉었다. 젠장. 이대로는 안되겠다. 나는 어질거리는 정신과 4일동안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아서 삐걱거리는 몸을 가지고 가까스로 마스트에서 내려왔다.

"다 끝났냐."

마리아의 말과, 기대에 찬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선원들.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무겁다. 나는 그 무게 속에서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움직였다. 이 정도는 껌이지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직입니다. 일단 한 숨 자고. 다시 보려고 합니다."

미안하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나는 온 몸을 짓누르는 무거운 피로와, 그것보다 어쩌면 더 무거운 것 같은 선장과 선원들의 기대에 짓눌린 채로 항해사실 안으로 들어가서 그대로 엎어져 코피를 흘리며 잠에 들었다.

얼마나 잠에 들어있었던 걸까.

정신을 차린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항해사실을 나왔다.

그리고 나는 다시 바다를 노려봤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시선이 선원들에게로 갔다. 거의 일주일 동안 항해도 하지 않고 떠 있으려니 심심하겠지.

근데 뭘 하는거지?

멀리 던지기 놀이인가.

나는 그걸 물끄러미 바라봤다 가느다란 줄에 가죽조각을 덧대서 만든 물건을 들고 있다. 돌 조각 같은 걸 가죽조각에 넣은 다음에 빙글빙글 돌리다가 탁, 하고 놔버리자 가죽조각 사이에 끼어서 같이 회전하던 돌조각이 빠른 속도로 바다를 향해서 날아갔다.

그걸 물끄러미 보던 나는 몸을 한 번 부르르 떨고 내가 그려놓은 그림을 바라봤다. 수많은 소용돌이. 회전하는 소용돌이.

그 안에 들어가는 배는 돌조각이다. 빙빙 돌고 있는 소용돌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돌고 있는,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소용돌이!

"개같은 새끼."

그 해적 이름이 러셀이라고 했나. 그 잉크로 그려진 그림 위에서 내 상상의 배가 천천히 항해를 시작하고 있었다.

어떤 미친 항해사가 그 소용돌이에서 빙빙 돌 생각을 하겠냐! 그런 상상을 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조금이라도 배가 소용돌이의 영향권 안으로 더 들어가면 그대로 소용돌이가 배를 먹어치울 것이고, 만약에 너무 영향권 밖에 있는다면 암초들이 배의 옆구리를 할퀼 것이다.

한 조각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고, 한 조각의 우연도 받아들일 수 없는 위험천만한 항해.

하지만 이 방법이라면...

어마어마하게 위험하지만. 분명히 성공 가능성이 있다.

아니, 이제까지 내가 머릿속으로 그려봤던 가상의 항해들 중에서 이 녀석만이 유일하게 배가 엉망진창이 된 상태로나마 저 섬에 도착하는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내가 밖으로 나온 것을 확인한 선원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고. 마리아와 로제도 나를 바라본다. 나는 씨익 웃었다.

"뭐, 껌이네요."

그 말에 모두의 표정이 풀어지고. 마리아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항해사실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거기서 목 매달고 죽을 기세였는데 말이지. 갑자기 자신만만해지네."

그 말에 나는 마리아를 보면서 말했다.

"뭐, 이 천재가 또 한 숨 푹 자고 나니까 척 하고 방법이 떠오르던데요."

나는 그렇게 말을 마치고 씨익 웃으면서 선원들을 바라봤다.

"야, 한 동안 그냥 둥둥 떠있으려니 몸이 근질거리지?"

그 말에 모두가 킬킬거리면서 웃고. 나는 파이프를 꺼내서 담뱃불을 붙이고 후우 하고 연기를 뿜었다.

"길로틴 섬의 처녀를 뚫으러 가자고. 오래 기다렸다."

예에에에에에! 하는 외침과 함께 모두가 분주하게 항해의 준비를 시작한다.

나는 직접 조타륜을 붙들고 주변을 보면서 소리쳤다.

"니들 평상시에도 내 말에 잘 따랐지만 말이야! 이번에는 진짜 한 마디도 놓치지 마라! 안 그러면 우리 모두 심연에 묻혀버리게 되니까! 한 번 믿어보마, 이 바퀴벌레 새끼들아!"

가자. 가자. 어떻게 되더라도, 설사 실수와 우연의 교차로 인해서 이 배가 바닷 속에 쳐박힐 수도 있다고 해도. 방법이 생겼고, 내 능력과 이 녀석들의 능력 여하에 따라서 뚫고 갈 수 있는 길이 생겼다면.

그 길을 항해하자.

============================ 작품 후기 ============================

항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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