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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녹슨 면도날
러셀의 검은, 내가 배 위에 있을 때만 바다의 날개 속도를 바꿀 수 있게 회전한다. 당연히 뽑히지도 않는다.
즉, 내가 그냥 꽂아놓고 배에서 내려도 이 배는 누구도 훔쳐갈 수가 없다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당당하게 배를 턱 하니 정박시키고 녹슨 면도날 섬에 내릴 수 있었다. 물론, 도착하자마자 넋이 나간채로 우리를 바라보는 수많은 해적들의 시선은 덤이고.
병신들아,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바다의 날개라는 거다. 존나 간지나지?
어디 그것만 있겠냐. 잠궈놓은 선장의 방 안에 금고에는 앞으로 한 동안은 호의호식하면서 살 수 있는 진주가 400개가 있었다. 오늘은 딱 거기에서 스무개만 꺼내서 왔지만. 그걸로도 여기에서 한달 정도는 선원들이 호의호식하면서 살 수 있는 분량이다.
이게 금의환향이지. 몸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한 마리아는 나를 보면서 내 옆구리를 쿡 찌르고 웃었다.
"기분 째지네."
그러게 말입니다, 선장. 기분 째지네. 진주를 돈으로 바꾼 마리아가 선원들에게 돈을 평소보다 몇 배는 두둑하게 얹어주었다. 그리고, 오늘 불침번인 녀석들에게 마리아가 진지하게 귓속말을 하고, 녀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 뭐 하려는 거지? 마리아가 나를 보더니 픽 웃고 로제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최근 들어서 일에 적응을 제법 했다고 하던데. 안타깝네..."
이전처럼 안색이 바로바로 바뀌지는 않지만, 로제는 여전히 마리아를 두려워했다. 쓰다듬는 손을 피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딱딱하게 굳는다.
"가... 감사합니다. 선장."
그 말에 마리아가 웃는다. 하지만 여전히 로제에게는 따로 돈을 주지 않는다. 그거에 로제가 실망한 표정을 짓지만. 마리아는 무시한다.
우리는 모두 이유를 안다. 아직까지 로제는 입단식을 끝내지 않았다. 수습 인턴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상황이니까.
"로제도 참, 나랑 같이 다니면 되잖아."
라면서 마리아가 로제를 겨드랑이 사이에 끼우고 웃는다. 로제가 으윽, 으윽 하는 소리를 내면서 몇 번 버둥거리다가 저항을 포기한다.
나는 그 둘을 바라보다가 손을 들고 말했다.
"저는 없습니까아아아."
그 말에 마리아가 말한다.
"너도 같이다녀."
그렇게 되는 건가. 마리아가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흘긋 다시 한 번 보더니 척척 앞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한다.
뭐, 당연히. 돈을 들고 우리가 간 곳은 바다와 소녀라고 하는 곳이었고. 거기에 방을 이번에는 꽤나 거나하게 두 개 잡은 마리아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리사가 운영하는 술집으로 우리와 함께 갔다.
당연히, 리사는 우리를 보자마자 그 배에 관한 이야기부터 꺼냈고. 마리아는 그 이야기를 해주는 댓가로 음식의 무료제공을 내걸었다.
공짜로 먹고 마시면서, 우리는 상당히 과장된 뻥을 더해서 우리가 걸어온 험난한 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길로틴 섬은 소용돌이와 용오름이 같이 존재하고, 가끔씩 해일도 일어나는 인외 마경으로 바뀌고. 카민 루주힐의 유령선에서 우리는 수백의 악마를 때려잡은 엑소시스트도 되었다.
머맨은 갑자기 키가 4m 는 되는 괴물같은 녀석들로 모습이 바뀌고. 인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미의 여신이 되었다.
뭐 어때. 씨발 지네들이 경험할 수 있는 일도 아닌데. 처음에는 리사만 듣고 있던 이야기였지만. 마리아가 말을 꽤 찰지게 잘해서 이내 술집 내의 선원들이 모두 마리아의 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물론 마리아는 중간에 목이 마르다는 듯한 시늉과 배가 고프다는 시늉을 하면서 꾸준히 다른 선원들에게 음식과 술을 얻어먹고 있었고, 덕분에 나와 로제는 진작에 안주를 잔뜩 쳐먹고 그대로 넉아웃 되어서 마리아의 구라발랄한 개뻥을 들으며 속으로 웃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저 배를 타고 마침내 녹슨 면도날 섬에 도착했다는 말이지."
마리아의 이야기는 그렇게 끝났고. 그녀가 씨익 웃으면서 우리를 향해 잔을 들었다. 마리아와 나의 맥주잔, 로제의 레모네이드 잔이 부딪치고, 우리는 만족스러운 로제의 뻥에 찬사를 보내며 잔 안의 내용물을 목으로 넘겼다.
맛 좋구만.
어느 사이엔가 저녁이 되어있었고.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여전히, 마리아와 로제가 같이 숙소를 쓰고 나 혼자 방을 쓰는 형식. 방 안에 돌아온 나는 하품을 한 번 하고는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서 산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항해법에 관한 책이다. 뭐, 새로 나온 이야기들을 읽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내친 김에 크로노미터도 시간 교정을 맡겨놓은 상태다. 꽤나 오래 항해를 했으니 아마 오차가 생겼을 거다.
흔들리는 불빛 아래에서 얼마나 책을 읽고 있었을까. 문에서 노크소리가 났다.
태연하게 문을 열고, 거기에는 방금 씻은 듯한 마리아가 서 있었다. 당당하게 들어온 마리아가 책상에 올려진 책을 슥 본다.
"항해? 이미 거의 장인 수준 아니야?"
그 말에 내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세상 어딘가에는 분명히 저를 장애인 수준으로 만들 수 있는 항해사들도 있을 겁니다. 장인이라니요."
그 말에 마리아가 픽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다가 의자에 앉았다.
"어깨나 주물러봐."
너는 왜 나한테 시키는게 그렇게 많냐. 물론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할 뿐이고. 나는 천천히 다가가서 그녀의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막 씻은 뒤의 향기가 어깨를 주무를 때 마다 올라와서 코를 간질인다.
"아, 역시 내 방식이 아니야!"
마리아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 어마어마한 힘을 통해서 나를 그대로 벽으로 밀어붙였다.
잠깐만, 이거 너랑 나랑 역할이 조금 바뀌는게 그림이 이쁘지 않냐? 나는 박력있게 나를 가운데에 가둔채로 양 팔로 벽을 누르고 있는 마리아와 눈을 마주쳤다.
와, 잡아먹을 기세인데.
"야."
그 말에 나는 네, 라고 대답하고 싶었는데. 입을 벌리는 순간 마리아의 입이 내 입에 부딪쳤다. 내가 먼저 뒤통수에 손을 올렸을까. 그녀가 먼저 내 양 얼굴을 붙잡았을까. 순서를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급작스럽게, 또한 격렬하게 이어지는 키스.
"... 개같은 새끼."
라고 귓가에 말하는 마리아의 입김이 엄청 뜨거웠다.
"항해사 주제에..."
그 틈에, 내 몸이 민첩하게 움직여 나와 마리아의 위치를 바꾼다. 자, 이제 누가 벽에 가둬졌지? 나는 마리아를 바라봤고. 순간적으로 바뀐 위치에서 마리아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내 입술이 그녀의 이마에 닿고, 자연스럽게 허리를 감아올린다.
입술을 때고, 나는 그 상태로 그녀의 옷을 끌른다.
흘러내리는 옷과, 자신의 몸을 가리는 마리아. 등 뿐이 아니라. 그녀의 몸 여기저기에는 흉터가 가득하다. 나는 그걸 보면서 말했다.
"좋아요, 처음부터 다시하죠."
그리고, 나는 몸을 가리고 있는 마리아의 손을 내리고, 천천히 상처를 만지고, 핥기 시작한다. 벽에 뒷머리를 댄 채로 움찔거리는 마리아. 입에서 달뜬 숨이 나오는게 들린다.
팔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앙가슴으로, 속옷을 지나서 배로, 배에서 허벅지로, 허벅지에서 종아리로.
그리고, 나는 천천히 마리아의 손을 잡아서 그 손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거친 손이다. 굳은 살과 각질이 가득한, 뱃사람의 손.
나와 닮은 손. 나는 그 손을 쓰다듬으면서 마리아를 바라봤다.
"마리아."
선장이라는 호칭 대신에,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당신을... 가지고 싶어."
다시 입술이 부딪치고, 이쪽으로 넘어오는 숨은 뜨겁다. 내 쪽에서 넘어가는 숨도 뜨겁다. 속이 익는 것 같은 뜨거운 숨결들.
내 손이 마리아의 몸 위를 항해한다. 가끔씩 몸이 바르르 떨리고. 나의 손이 천천히 아래로 향하자, 마리아의 눈이 감기고 손 끝에 까끌거리는 해초들이 느껴진다. 살짝 잡아 당겨보자 그녀가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본다.
더 아래로, 다시 눈이 감긴다. 항해중인 나의 손가락이 젖기 시작한다. 그녀의 한 손이 내 등을 끌어안고 천천히 한 손을 내려 나를 가볍게 움켜잡는다.
"돛 달아도 되겠는데."
마리아가 그렇게 말하고 자기도 머쓱한지 큭큭거리며 웃는다. 나는 마찬가지로 웃으면서 말한다.
"마리아는 침몰하겠는데요. 물이 너무 많이 고여서. 조금 도와줄까."
그리고, 계속해서 물이 흘러들어오는 근원 안으로 내 손가락이 천천히 들어가고 그녀의 입이 살짝 벌어진다. 도와주려는 내 속셈도 모르고 더 물이 밀려드는 마리아의 비부. 내가 퍼내는 것 보다 나오는 게 더 많다.
"돕는거야... 흑! 아니면, 침몰을 시키겠다는거야?"
겸사겸사?
마리아가 나의 돛대를, 나는 마리아의 뱃 속을 부드럽게 건드린다. 서로의 몸이 뜨겁기에, 금세 서로의 몸이 녹아내린다. 가슴에 난 흉터를 혀로 핥아내고, 한 손은 남은 마리아의 가슴을 살짝 쥔다.
어, 정신을 차려보니 둘 다 옷을 벗고 있었다. 라는게 이런 상황인가.
연한 커피색 피부 아래에 물기를 머금고 반짝이는 금빛 해초들. 그 아래를 향해서 천천히 내가 들어간다. 움찔거리면서 살짝 몸을 떠는 마리아.
그녀의 몸 안으로 밀려들어가는 나의 몸. 등을 끌어안는 마리아의 다리와 목을 끌어안는 손. 흔들리는 침대. 달뜬 서로의 숨소리. 이따끔씩 불규칙하게 터져나오는 나와 마리아의 신음소리.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몸을 수도 없이 항해했고. 그 와중에 나는 네 번, 마리아는 세 번의 폭풍우를 맞이했다.
나는 하얗게 몸을 꿰뚫는 벼락같은 쾌감 속에 전율하며 하얀 눈물을 흘리고.
마리아는 해류같이 밀려드는 쾌감에 휘말려 뜨거운 조류를 뿜어내며 계속해서 밀려드는 그 쾌락의 바다를 항해했다.
============================ 작품 후기 ============================
... 액션도 못쓰고, 로맨스도 못쓰고, 섹스도 못쓰고
ㅠㅜ
앤이 사기인 이유는, 자기 오른팔을 바쳐서 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