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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빠른 길과 가장 좋은 길
로제는 그 다음날 술병이 나버려서 몸져 누웠고. 마리아는 친절하게 머리에 물수건을 올리고 끙끙거리는 로제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 내가 레이먼드한테 토했다고요?"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눈을 크게 뜨고 내 눈치를 보는 로제의 모습은, 확실히 정상을 찾았지만. 질척거리는 부침개로 더럽혀진 나의 정신상태는 쉽사리 청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말했다.
"가능하면, 로제. 너는 술 마시지 마라."
사람을 죽기 직전까지 밀어붙이니까. 나는 그 말은 최대한 참아서 삼키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그렁거리는 로제를 두고 밖으로 나와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지금 나의 방 안에는, 내가 직접 미친듯이 주물러 빨아서 널어놓은 나의 옷이 마르고 있다.
... 바라보는 것 만으르도 등 뒤로 뜨끈하고 걸쭉한 뭔가가 흘러내리는 기분이다. 나는 몸을 부르르 떨고 내 방 안에서 담배를 마저 태우기 시작했다.
담배를 다 피우고. 밥이나 먹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마리아쪽 방의 문을 두들겼다.
"어, 무슨 일?"
밥이나 한 끼 합시다.
"그러지, 안 그래도 로제 저거 속이 맛이 가서 뭐라도 먹여야 했는데 말이지."
마리아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머리를 슥 쓸어 넘기고 로제에게 말했다.
"뭐 먹을래? 막 튀긴 닭고기에 럼주나 한 잔 할래?"
그 말에 저 너머에서 로제가 으으으으 싫어요... 하는 소리가 들리고 마리아가 만족한 듯이 히죽 웃으면서 문을 닫아 잠그고 내 옆에 섰다.
"가지."
식사를 하면서 나는 마리아에게 말했다.
"로제는 좀 괜찮습니까?"
그 말에 마리아가 헤에, 하는 소리와 함께 포크로 구운 생선을 발라내면서 말했다.
"등에 토해도 귀엽게 생겼으니까 여전히 관심이 있는 모양이지?"
토한 건 토한거고. 그 물렁물렁하고 멍청해 터진 정신상태로 사람 죽인 걸 어떻게 견뎌내고 있나 그게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지. 마리아가 나를 보다가 하, 하고 탄식인지 한숨인지 모를 뭔가를 내뱉고 말했다.
"글쎄, 나름대로 잘 이겨내고 있는 모양이던데. 니 이름 부르면서. 덕분에 어제 아주 잘 잤어."
그 말에 나는 마리아를 바라봤다. 그녀가 눈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내가 메인이다. 로제는 사이드 디쉬고. 이 음식으로 치면 내가 생선이고, 로제는 곁들여져서 나오는 구운 감자라고. 알았어?"
너는 스스로를 음식 취급하고 싶냐? 나는 그 놀라운 비유를 태연하게 하는 마리아를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먹는건 상관 없다는 겁니까?"
라는 나의 말에 마리아가 눈을 뚱하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게 여자를 먹는다고 할 수 있어?"
저기요, 음식 취급은 니가 먼저 했잖아요. 분위기 따라마셔주니까 왜 나한테 갑자기 따지고 듭니까.
식사를 마치고, 일단 로제에게 먹이기 위해서 맑은 국물과 빵을 조금 챙겨서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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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멜롯 왕국의 거대한 회의실 안에서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어느 사람 하나도 표정을 밝게 피고 있지 않았고, 어느 사람 하나도 편안한 자세로 앉아있지를 못하고 있었다.
"러셀의 함은 다시 찾았지만... 발미온 영애가 실종이라..."
모두가 그 무거운 소식에 침묵을 하고 있을 때, 뒤편에서 문이 열리고 사람 한 명이 느긋한 발걸음으로 걸어왔다.
"러셀의 함이 돌아왔다라. 재미있구만."
그러면서, 빨간 셔츠를 입은 바리스 제독이 태연한 표정으로 모자를 벽걸이에 걸고 턱, 하고 앉아서 다리를 꼬았다.
"바리스 제독. 회의 시간은 정각 9시였다."
그 말에 바리스가 그쪽을 보면서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아 미안하구만. 평범한 해전이겠거니 하고 찾아간 자리에 떡하니 싸늘한 앤이 있는 바람에 말이지."
그러면서 지적을 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바리스의 눈이 서늘했다. 아이리 공화국에서 전설의 배를 찾으러 다닐 동안 자랑스러운 카멜롯의 관료들은 도대체 뭘 한 걸까.
별 달리 할 말이 없어진 그가 바리스를 보면서 말했다.
"러셀의 함은 되찾았지만. 발미온 영애를 아직 확보하지 못했네."
그 말에 바리스가 흠... 하고 그들을 바라봤다.
"소식이 나보다 느려서야 어디 카멜롯 왕국을 이끄는 신하들이라고 할 수 있겠나."
그 말과 함께 바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 함을 가져와봐."
그 말에, 잠깐 시간이 지나고 러셀의 함이 바리스의 앞에 놓였다. 그리고 그걸 툭툭 차보던 바리스가 히죽 웃으면서 그대로 칼을 뽑아서 러셀의 함을 내려쳤다.
그대로 두동강 나버리는 러셀의 함과, 함 안에서 쏟아져내리는 수많은 톱니바퀴들.
"지금 뭐 하는 짓이오!"
벌떡 일어나서 목줄기에 핏대를 세우는 그를 보면서 바리스가 칼을 그에게 겨누고 쯔쯔쯔 하는 소리를 냈다.
"함이 비었잖아. 역시, 누군가 내용물을 가져가버렸군."
러셀의 함은 이제 더 이상 내용물을 지킬 필요가 없어졌었다. 그래서 바리스의 칼에 쉽게 잘려나간 것이다. 원래라면 바리스의 칼이 부서지면 부서졌지, 절대로 부서질 함이 아니다. 게다가, 그는 서늘한 표정으로 주변을 슥 돌아보았다.
미리 알고는 있었다. 열렸다고, 하지만 이걸 다시 되파는 건 어디의 사기꾼일까.
바리스가 칼을 척 하고 집어넣은 다음에 그들을 돌아봤다.
고요하군. 바리스가 척 하고 다시 자신의 모자를 쓰고는 말했다.
"발미온 영애가 실종 중이라고 했지. 뭐 들은 이야기는 없나?"
그 말에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그 소녀를 마지막으로 본 곳이 럼보틀 만이라고 하던데."
그 말에 바리스가 그쪽을 슥 돌아보았다. 바짝 마른 대머리의 중년. 얼굴에 새겨진 주름들과, 구부러져있는 매부리코가 굳은 인상을 하고 있는 남자다.
"자기 딸을 그 소녀라고 칭하다니. 별로 인간적이지는 못하구만, 로크 발미온. 조금은 가정적이 되어보려고 노력하는게 어떻겠어?"
그 말에 그가 대답했다.
"도구일 뿐이다. 원래대로라면 아이리 공화국의 에밀 메이너스와 혼약을 할 예정이었는데. 안타깝군."
그 무감각하기까지 한 말에 바리스가 그를 바라보았다.
"되게 아쉬운 말투군."
그 약간 비꼬는 듯한 말을 아랑곳하지 않은채로 그가 말했다.
"최근 들어서 해적놈들이 점점 기승을 부리고 있단 말이지. 반년 사이 백 건이 넘어가는 해적 습격이 보고되었네."
그리고 로크 발미온이 그 무감각한 눈을 들어서 바리스를 바라봤다.
"아이리 공화국과 이번 건을 빌미로 합작을 해서 해적을 한 번 쓸어낼 계획이다."
그 말에 바리스가 그를 바라보았다. 에밀 메이너스와 결혼하기로 되어있던 그의 딸이다. 에밀 메이너스가 관리하고 있는 항구는 아이리 공화국 최고 규모의 군항. 당연히 결혼할 배우자를 잃어버린 에밀 메이너스는 그녀를 되찾고 싶어할 것이다.
이전부터 로제를 품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던 녀석이었으니까. 로크의 계산은 정확하고 깔끔했다. 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딸이라는 변수를 넣고도 변하지 않는 그의 계산은 무서울 정도로 기계적이었다.
그거야 가정사니까 그러려니 하더라도 바리스는 다른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왕을 부정하는 녀석들이다. 함께 일할 족속들이 아니야. 댁 딸이야 누구랑 결혼하던 그건 가족의 문제니 넘어가도, 그건 이야기가 다르지."
바리스의 느긋하던 말투가 약간 격양되어있었지만. 로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한다.
"녀석들이 왕을 인정하던 인정하지 않던. 싸늘한 앤이 그들의 손에 들어온 이상 해군력은 우리와 거의 동등해졌네. 게다가... 실제로 제독의 검은 어금니와 싸늘한 앤이 싸웠을 때의 성적도 영 좋지 않았고."
그 말에 바리스가 칼을 뽑아서 테이블을 내려찍었다.
"늙은이, 아가리 조심해. 쥐도 새도 모르게 뒤져서 니 딸이 검은 상복 입고 질질 짜는 꼴 보기 싫으면."
그 말에 로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서슬퍼런 바리스의 살기와 분노를 받으면서도 그의 표정은 담담했다.
"폐하도 윤허한 사안이다. 바리스 제독, 그대는 군인으로써 명령을 따라 아이리 공화국의 해군과 함께 일하면 그것으로 될 일이지."
아니면... 그러면서 로크가 앞에 놓인 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다.
"폐하의 명령을 무시하는 건가? 그 충의가 드높은 바리스 제독께서?"
그 말에 바리스가 로크를 노려보다가 칼을 뽑아 다시 집어넣었다.
"그것이 폐하의 명령이라면 따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명령이라는 것은 바뀌지 않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 천천히 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자세한 사항이 정해지면 말해라. 그리고..."
바리스가 로크를 슥 보고 말한다.
"솔직히 말해봐라. 딸 목숨이 어떻게 되든 상관 없어보이는 계획인데 말이지."
해적이 로제의 목숨을 가지고 있다. 어떤 해적들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은 모양이지만. 대대적으로 해적들을 그 소녀를 빌미로 털기 시작하면 해적들이 그 소녀를 어떻게 처분할 지는 오랫동안 해적을 봐온 바리스의 눈에는 훤하게 보인다.
그 말에 로크가 대답한다.
"때로는 혈육보다 더 중요한 일도 있는 법이지. 그 소녀가 희생의 방아쇠가 되어서 아이리 공화국과 카멜롯 왕국의 해군이 함께 해적을 정리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좋을터."
끝까지 내 딸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 로크에게, 바리스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미친놈. 바리스는 그 말을 툭 내뱉고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쉬운 방법이, 가장 가깝게 갈 수 있는 효율적인 길이. 항상 가장 좋은 길은 아니다. 뱃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상식을 그대는 가지고 있지 않군."
바리스가 말을 마치고 문을 닫고 나갔다.
============================ 작품 후기 ============================
로제도 토하고, 마리아랑 잠도 자고.
이제 배 다시 타야죠. 너무 오래 쉬었어, 항해사 주제에.
ps. 많은 분들이 바다의 날개 망가지면 어떻게 하냐, 라고 물어보시는군요.
... 그 궁금증이 해결되면, 이거 안볼꺼 같아요ㅠㅜ
그러니까, 계속해서 읽어주세요. 그러면 언젠가는 나오겠죠...?
ps. 메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