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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VS 해군
방 안은 따뜻해야 정상이지만. 지금 이 방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로만과 바리스. 두 사람의 눈에서는 불꽃이 튀고 잇었지만. 그 불꽃이 방 안의 열을 다 가져가기라도 했는지 방 안이 차갑기 그지없다.
"... 폐하가 굳이 만나라고 지시만 안했어도 네놈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일은 없었을 텐데. 위아래도 없는 자식들."
그 말에 로만이 지지 않고 자신의 갈고리를 턱 하고 테이블 위에 올려두면서 말했다.
"그저 왕명이라고 하면 껌벅 죽지. 노예같은 자식들."
두 나라는 사이가 좋지 않다! 당연하지, 계급제의 인정이냐, 부인이냐로 갈리는 두 국가의 체제인데다가, 두 나라는 바다를 두고 항상 싸워오던 자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제 와서 자, 힘을 합치자! 라고 해도. 군인들 사이에 있는 깊은 감정의 골이 사라질 리가 없는 것이다.
"앞길에 방해나 되지 말아라."
바리스의 말에 로만이 대답한다.
"그 하잘것 없는 작살, 요즘 영 명중률이 떨어진다고 하던데."
라면서 비웃음을 띄우를 로만의 표정이 바리스의 얼굴이 확 구겨진다.
"과녁판 주제에."
그 말에 로만이 다시 대답한다.
"그 과녁판 일년 365일 내내 박아넣어도 멀쩡하다는데. 아무래도 위력이 너무 약한거 아니야?"
... 바리스가 지고 있는 게임이었다. 일단, 최근 들어서 이어진 두 번의 실패로 인해서 영 바리스가 이야기를 유리하게 끌어갈 수가 없게 되었다.
"간단하게 하지."
그러면서 바리스가 테이블 위에 놓인 해도를 쫙 선을 그어서 갈랐다.
"저기는 네가 담당해라. 여기는 우리가 담당하지."
그 말에 로만이 지도를 살펴보다가 말햇다.
"우리쪽 담당 구역이 너무 넓지 않나?"
그 말에 바리스가 대답한다.
"네놈들이 맡은 지역에 해적놈들 출현 빈도수는 우리가 맡는 지역보다 적다. 문제 될 것은 없는데."
그 말에 로만이 고개를 젓는다.
"바다를 얼마나 돌아다녀야 하는지가 문제지. 이렇게 되면 우리 안그래도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인데, 바다 위를 떠돌아다니느라 허송세월 보낸다고."
해적이 얼마나 출현하느냐는, 문제거리가 아니다. 중요한건 두 국가의 해군 모두 보급이 부족한 상황이고. 이 상황에서 넓은 지역을 커버한다는 것은 그만큼 보급품을 소모한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반으로 나누면 되지 않냐, 라고 물어보면.
그때부터는 또 해적들의 출현 빈도수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적게 출현하면 아무래도 보급품을 적게 먹으니까.
결국 두 국가는 지금 모두 해적놈들이 계속해서 보급품을 털어가는 바람에 전쟁지속능력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이래서야 끝이 날 것 같지 않은데. 라고 두 사람이 모두 생각하면서 3시간의 시간을 보낸 다음에, 문이 열리고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 한 명이 들어왔다.
"그랜트."
바리스가 그를 알아보고 빠르게 그를 부축하고. 로만이 약간 눈을 크게 뜨고는 그를 바라봤다.
"그랜트라고 하면, 그 그랜트를 말하는 건가?"
그 말에 바리스가 대답했다.
"그래, 네놈들 배 이백여 척을 바다로 쳐박은 분이시지."
그 말에 그랜트가 입을 열었다.
"상대를 자극하는 말은 하지 말거라."
그 말에, 바리스가 일단 그랜트를 보면서 말했다.
"여기까지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 말에 그랜트가 혀를 찼다.
"이야기가 길어지는 걸 보고 짐작했지."
그리고 해도에 그어진 선을 보고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당장 두 사람 아래에 있는 병사들은 보급품이 부족해서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잇는데, 두 군대의 수장은 자존심과 이익 때문에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구나."
그 말에 두 사람이 할 말을 잃었다. 확실히, 두 국가의 해군들은 보급품이 부족해서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고, 바다를 떠돌아다니고 있는 군함들은 그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다.
"부끄러운 줄 아니 다행이구나. 장수된 자가 병사들의 고충을 몰라서야. 어찌 사람을 부린다고 할 수 있겠나?"
그렇게 말한 그랜트는, 두 사람을 보면서 헛기침을 잠시 한 다음 로만을 보았다.
"그대의 국가와 전쟁에서 배를 침몰시킨 것은, 군인된 자의 의무이자 도리였네. 묵은 상처를 꺼낼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
그 말에 로만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공화국의 가장 큰 적이었고, 우리 나라에 큰 피해를 주었지만. 제독 그랜트라는 사람은 항상 존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 봐주니 고맙군. 그랜트는 그렇게 말을 하고, 입을 열었다.
"바리스, 너는 너의 배를 이끌고 아이리 공화국의 배와 함께 움직여라."
그 말에 바리스가 눈을 크게 뜨고 그랜트를 보았지만. 그랜트의 눈에는 이전과 같은 여유로움과 따스함 대신 서늘한 카리스마가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로만 그대는 그대의 배를 이끌고 카멜롯 왕국의 배들과 함께 움직였으면 하네."
그 발언에 두 사람의 표정이 굳었고. 그걸 보던 그랜트가 혀를 찼다.
"그랜트, 저 녀석들을 어떻게 믿고 검은 어금니를....!"
그 말에 그랜트가 허, 하고 혀를 차며 탄식한 다음 소리쳤다.
"그거 때문에 그런다. 서로가 믿지 않는 동맹은 적보다 훨씬 위험하니까!"
그랜트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칠십이 넘은 나이의 어디에서 저런 강대한 카리스마와 목소리가 뿜어져 나올 구석이 있는걸까.
"동맹을 하기로 하고, 함께 어떤 일을 하기로 했으면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할 것 아니냐! 눈 앞에 적을 두고 동맹을 의심하는 상황에서는 배가 삼천척이 있어도 소용이 없어!"
그랜트의 얼굴에 분노가 떠올랐다.
"문서를 검토했더니, 웃기지도 않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더구나! 아이리 공화국의 보급선들이 공격받을 때, 근처에 카멜롯의 군함들이 있었는데, 그냥 지나치고! 카멜롯의 보급선들이 공격받고 있었는데, 아이리 공화국의 군함들이 근처에 있었는데 그냥 지나쳤어!"
그랜트는 테이블을 강하게 내려치고 말했다.
"그게 동맹이냐!? 그래서 어떻게 뒤편에 있는 아이리의 군함을 믿고 카멜롯의 군함이 기동을 할 것이며, 카멜롯 군함의 접근을 믿고, 아이리의 군함들이 공격을 준비할 수 있겠어! 지금우리의 적들은 1대 2를 하고 있는게 아니다! 둘이 싸우고 있는 가운데 난입한 거지! 이래서는 두 국가의 군함들은 패배할 수 밖에 없다!"
그랜트가 다시 의자에 앉아서 후우, 하고 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서 말하는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두 국가는 언젠가 다시 싸우게 될 것이다. 1년 뒤가 될 수도 있고, 100년 뒤가 될 수도 있지. 그게 전쟁이고, 그게 국가니까. 하지만, 공동의 적이 있는 상황에서 어찌 서로에 대한 불신을 거두지 못하고 있느냐."
눈을 뜨거라. 그랜트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방 안에는 잠깐의 침묵이 자리잡았다. 바리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나는 그랜트의 판단을 믿는다."
그 말에 로만이 대답했다.
"과연, 늙어도 변함없이 대단한 남자군. 폭풍우 같았어."
두 사람은 서로 시선을 나누고 말했다.
"그랜트가 하고 싶었던 말은 다른 거였던 모양인데."
로만의 말에, 바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로 한 국각의 제독들이 상대 국가의 함선들과 함께 움직이는 걸 바라는게 아니었으리라. 일부러 먼저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꺼내서 두 사람이 발끈하게 만들고, 현 상황에서 뭐가 문제인지 이야기할 빌미를 잡은 것 뿐이다.
"해도 위에 그려놓은 선은 잊도록 한다."
구역을 나누거나 하지 않고, 두 국가가 함께 서로의 해역과 임자없는 바다를 돌아다닌다. 두 사람은 간단하게 이야기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부터 아이리 공화국의 군함들은 검은 어금니와 함께 행동하고, 싸늘한 앤은 카멜롯 왕국과 함께 움직인다.
그리고, 일단 병사들과 간부들에게 교육을 한 번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둘이었다. 그랜트가 크게 실망했던 그 보고는 당연히 두 사람 모두 들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찌 되었든 상대 국의 힘이 약해지는건 눈 앞의 적을 처리하고 난 다음에는 분명히 이득이 되니까.
하지만 저 남자가, 그렇게 하면 이 싸움에서 질 것이라고 했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면 그건 사실로 변할 것이다.
"해역 구분 없다. 보급품에 관한 문제도 당분간은 잊도록 하지."
바리스의 말에 로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리 공화국의 군함들은 두 국가의 해역과, 그 사이에 있는 공해를 이동하는 모든 보급선들을 보호할 것이다."
"카멜롯 왕국 또한, 두 국가의 해역과 그 사이에 있는 공해를 이동하는 모든 보급선들을 보호하지."
이야기는 끝났다. 이 간단한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서 3시간을 썼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수월하게 끝나버린 이야기.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번 하고 로만이 먼저 말했다.
"그래도 네 놈들을 믿는 건 아니다."
바리스도 그 말에 대답을 해주었다.
"끝나고 나면, 해전에서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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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춥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