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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52화 (5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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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VS 해군

나는 들어온 미나를 보고 있다가 말했다.

"가서 종이랑 잉크 가져와. 배우겠다는 거냐 말겠다는 거냐?"

그 말에 미나가 울컥 하고 입을 벌려 뭐라고 말하려다가 눈을 살짝 감은 다음 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에 종이와 잉크를 가져 온 미나를 보고 말했다.

"음력 기준, 1월에는 새벽 2시 기준 베누스 성과 흰개자리 으뜸성을 연결한 선을 반으로 나누고, 거기에서 직각으로 선을 하나 뻗어. 그 선과 적류성 사이가 얼마나 떨어져 있냐에 따라서 경도를 측정할 수 있다."

나는 받아 적을 수 있도록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고, 한 시간 정도가 걸리자, 미나가 가져온 종이들에 글자가 잔뜩 적히기 시작했다.

"다 썻으면 나가지."

그리고 나는 미나와 함께 밖으로 나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맹세컨데, 나는 지금 해도를 본 적도 없다. 그건 너도 잘 알고 있겠지."

애초에 내 방에는 해도도 없으니까. 그 말에 미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천천히 별들을 보다가 말했다.

"지금 위치는... 위도 35.3, 경도 48.7. 대충 0.5 정도씩은 오차가 있겠지만 그 언저리다. 맞냐?"

그 말에 미나가 나를 바라봤다.

"..."

침묵으로 대답해주다니. 그것도 나름 참신하네. 마리아는 잘난척 하지 말라고 뒤통수를 때렸을 테고, 로제라면 입을 떡 벌리고 대단해요! 같은 말을 했을텐데 말이지.

"어차피, 크로노미터와 육분의로..."

그 말에 나는 대답했다.

"크로노미터와 육분의는 꽤 정확하지. 하지만 망가지면?"

미나가 입을 다물었다.

"항해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배의 위치를 알 수 있어야 한다. 기계가 망가져서 잘 모르겠다는 말은 변명거리도 아니야."

그리고 나는 미나를 바라봤다.

"네가 길을 모르면, 이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다 위에서 미아가 된 채로 헤메다가 다 뒤진다. 그 무게를 책임질 수 없으면, 만약에 만약같은 드문 상황에도 대비해."

미나가 침묵하고 있다가 말한다.

"안개가 끼면?"

그 말에 나는 대답한다.

"수심, 해수 온도, 잡히는 물고기들. 이건 정확할 수 없어. 하지만 아예 모르는 것과 대충은 위치를 아는 건 엄청난 차이가 있지."

위도 경도 아무리 적게 잡아도 5~6도 사이의 오차는 생길 수 밖에 없고, 판단을 잘못하면 배 위치를 우주로 날려버릴 수도 있다. 미나가 약간 의기소침한 상태로 하늘을 바라봤다.

"... 젠장, 나보다 어린 주제에. 난 여태동안 뭘 공부한 건지 모르겠군."

라는 말에,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어깨 펴, 웨스트우드. 항해사가 약한 모습 보이면 배 전체가 망한다. 항상 거만하고, 여유롭게. 지금 당장 어디로 가는지 전혀 몰라도 당당하게 명령해라."

나보다 나이 많았냐? 로제 하나 빼고 내가 만나는 여자들은 왜 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거냐?

... 로제 보고 싶다. 얜 어디서 뭘 하고 있는걸까.

대충 첫 이야기를 마친 나는 다시 내 방에 들어가서 잠들었고.

다음날 아침, 나는 기상나팔 소리가 울리는 것에 눈을 뜨고 짜증을 냈다.

"이건 또 씨발 뭐야!?"

여기 아예 다른 세상 아니냐?! 근데 왜 나팔 소리가 내가 알고 있던 그 거지같은 기상나팔 소리랑 똑같은 건데?! 이게 그거냐, 사람이 가장 듣기 싫은 주파수의 소리를 내는 나팔소리냐?! 그래서 공식적으로 채택 된 거야?

짜증 팍 나네. 나는 입으로 욕을 씨부렁 거리면서 다시 이불을 덮고 잠들기 위해서 노력했다.

근데, 여기는 아이리 공화국의 군함이다.

애초에 나는 그게 뭘 의미하는지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침 점호?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냐.

나가야겠어. 솔직히 조금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군함에 탄다는 것이 이딴 짓거리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이상 나는 여기에 못있는다! 싫어, 안 있을거야! 해적은 그래도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었단 말이다. 근데 이건 뭐야 도대체. 이렇게 딱딱한 일과를 보내니까 해군 놈들이 맨날 해적들을 잡지 못하지.

게다가 아침 점호가 끝나고 나면 로만의 선장실에 들어가서 브리핑도 해야 한다. 이건 또 뭔데. 그냥 가고 있음 가고 있나보다 하고 생각하면 될 일이지. 그 브리핑을 마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로만이 나를 부른다. 그리고 거기에는 수많은 서류들을 바라보고 있는 로만이 있었다.

"... 이게 다 뭡니까?"

나의 약간은 경악 섞인 말에 로만이 대답한다.

"이 배 뿐 아니라 다른 배들 상태에 관한 보고다. 현재 싸늘한 앤과 함께 이동하는 배는 총 30척이지. 녀석들에 대한 보고는 들어두어야 한다."

아, 이 남자 제독이었지.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배 뒤편으로 따라오는 배들도 엄청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생각해보면 이 녀석들 지금 배 80척을 굴리고 있잖아. 와... 나는 그런거 못하겠는데.

그렇게 이틀 정도가 지나고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나는 못하겠다. 이거. 몸이 좀이 쑤신다.

이런 딱딱한 분위기 따위. 나는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가 말했다.

"배가 느리다아아아아!"

느려 이 개같은 새끼들아아아! 배가 느리다고! 엄청 느리다고! 가는 것 같지 않아! 그냥 러셀의 검 넣고 돌리면 쿠아아아아아 하면서 날아가던 그 배가 그리워! 범선이 마음에 든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라 선원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게 좋았던 거였어.

나의 말에 옆에 있던 미나가 말했다.

"지금 바람에서는 최고속도다."

그거야 알지 나도. 근데 그래도 느려 터졌어.

할 거 없다. 가만히 있느니 담배라도 피운다고 나는 시가를 꺼내서 불을 붙이고 뻑뻑 빨기 시작했다.

"... 담배 냄새난다."

그 말에 나는 대답했다.

"웨스트우드 양에게 키스를 할 생각은 없는데."

그 말에 그녀가 나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거 다행이다."

여전히 딱딱하시군. 나는 뻘겋게 시가 머리통을 달구고는 연기를 훅 뿜은 다음에 말했다.

"비 올 것 같은데."

그 말에 미나가 약간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확신하나?"

그럼 내가 구라를 치겠냐. 그거 구라쳐서 얻을게 뭐가 있다고. 나의 말을 들은 미나가 진지한 표정으로 로만에게 말했다.

"제독, 비가 올 것 같다고 합니다."

그 말에 로만의 표정도 갑자기 약간 어두워졌다.

"확실한가?"

그 말에 나는 대답했다.

"바람이 습기를 머금고 있고, 해무리가 보입니다. 아마... 오늘 밤부터 해서 내일 밤까지는 올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로만이 으으음, 하는 소리를 내었다. 뭐야, 무슨 비가 귀신도 아니고. 나의 표정을 보던 미나가 입을 열었다.

"이 배는 얼음으로 되어있다. 얼음이 물이랑 만나면 어떻게 되지."

... 미끄러워지지 엄청. 야 설마, 진짜 그것 때문에 다들 이렇게 죽상인거야?!

"얼리면 되잖아."

그 말에 로만이 대답한다.

"그럼 눈이나 우박으로 바뀐다. 눈은 쌓이고, 우박은 아프지."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한 어투로 말하지만, 배 위에 눈이 쌓이는 건 골치가 아프겠지, 게다가 이 배는 기온 싸늘하니까 바닥에 닿은 눈들이 녹지도 않을거고. 그렇게 계속 쌓이면...

배 가라앉으려나. 우박이 되버리면 맞으면 더럽게 아프니까 말할 것도 없고.

... 여전히 배 움직이기에는 거지같은 상황이구만.

생각해보니까 꽤 심각한게. 그러면 마스트에서 돛을 조작할 수가 없잖아. 그럼 당연히 항해가 불가능 할 거고.

뭐야 싸늘한 앤. 엄청 강한 줄 알았는데 또 나름대로 되게 허접한 면도 있잖아. 비가 오면 못 움직인다니.

"그럼 폭풍우는 어떻게 극복하는거냐 도대체...?"

그 말에 미나가 대답했다.

"그냥 선체 뚜껑 닫고 갑판 아래에서 버틴다."

와 씨발, 그건 또 무슨 참신한 방법이냐. 배 안 망가지냐? 나의 중얼거림에 미나가 대답한다.

"다시 복구된다."

... 하긴, 갑판 아래에 없는 방도 만들어내는 배인데. 수리 정도는 가뿐하겠구나. 허허허. 밤이 되고,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미나가 나를 슬쩍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그 시선을 느끼면서 히죽 웃었다.

"존경스럽지?"

"꺼져라."

... 대뜸 꺼지라고 하다니. 진짜 너무한 아가씨구만. 마리아나 로제처럼 꺼... 꺼져. 하는 부끄러움이나 그런게 있는 것도 아니고. 순수하게 혐오와 적의만 농축시킨 진짜배기 엑기스로 진하게 달여낸 꺼져라.

방에서 항해 공부는 안하고 차갑게 대하는 법만 연구했나. 나는 내 방으로 휘적휘적 걸어가서 침대에 털썩 앉았다.

잠시 뒤에 문이 열리고 미나가 들어온다.

"왜, 무슨 일이야?"

그 말에 미나가 대답한다.

"밤에 매일 찾아오라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에 나는 장난기가 동해서 미나를 보며 연극톤으로 말했다.

"오! 웨스트우드 양, 이런 식의 만남은 그만하는게 어떨까요? 사람들이 수군거립니다."

나의 대사에 미나가 가볍게 응수한다.

"난 네가 싫다."

와, 철벽방어다. 사람 앞에서 대놓고 싫다고 할 수 있는 저 무신경함.

"싫은데 왜 왔을까?"

그 말에 미나가 대답했다.

"그건 개인적인 감정이다. 네가 알고 있는 지식은 필요하지."

나는 당신의 사랑은 바라지 않아요. 주머니에 있는 돈을 원하지. 같은 느낌의 대사군. 나는 다시 연극톤의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오, 이렇게 레이먼드는 가슴에 깊은 상처를 새기게 되고..."

미나가 다시 대답한다.

"그 말투 집어 치워라, 거북하다."

옙,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의자에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평범한 이야기들이 시작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마친 나는 천천히 문을 열어서 미나에게 나가라는 시늉을 했고, 그녀는 미련없이 나갔다.

============================ 작품 후기 ============================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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