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항해 뜻밖의 해적-54화 (54/159)

0054 / 0160 ----------------------------------------------

해적 VS 해군

일렁이는 바다, 나는 배 위에서 그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탑 세일들 바람이 덜 잡혔다."

미나의 딱딱한 목소리가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스트 꼭대기에 달려있던 돛들이 팽팽하게 펼쳐진다. 미나도 많이 나아졌구만. 나는 흠, 하고 고개를 혼자 끄덕인 다음 난간에 기대어서 바다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

나는 튀어나가듯이 난간에 기대고 있던 몸을 들어올린 다음에 미나를 보고 외쳤다.

"전방에 암초들 있다!"

그 말에 미나가 나를 바라보면서 당황한다.

"암초...?"

암초...? 같은 소리 하네! 나는 곧바로 미나를 밀쳐내고 재빠르게 조타륜을 왼쪽으로 회전시키며 로만을 보고 말했다.

"신호 보내서 배들 다 멈추라고 하십쇼!"

그 말에 로만이 재빠르게 선원 하나를 시켜서 메인 마스트 꼭대기로 붉은 깃발을 올려보냈다. 그리고 나는 선원들을 보면서 말했다.

"방향 틀어야 할 것 아니야 이 새끼들아! 이 배 암초에 걸리면 나만 뒤지는 거였냐!? 메인 세일들이랑 포어 세일 다 접어! 바람 느슨하게 잡고!"

배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천천히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다. 시발... 조금 늦은 것 같은데...!

역시, 크그그극, 하는 소리가 들리고 배의 옆구리가 한 뭉터기 뜯어져 나간다. 허연 얼음 가루들과 투명한 덩어리들이 부서진 채로 바다에 떨어지고, 싸늘한 앤 근처의 바다가 투명하게 얼어붙더니 그 뜯어져 나간 자리를 메꾼다.

"여기 우회해야 합니다. 생각보다 더 넓게 펼쳐져 있잖아. 해도에 이런 건 없었는데."

암초는 원래 나타났다가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났다가 하는 물건이라서 왠만한 건 해도에 적히지 않는다.

"망할 뻔했네 아주 그냥."

싸늘한 앤이 부서져도 복구가 된다고 하지만, 암초 위에 덜커덕 올려져버리면 움직이지 못하는 건 똑같다. 나는 식은땀을 슥 훔쳐내고 쯧, 하고 혀를 찼다.

"... 미안하다."

미나의 목소리에 나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알면 찌그러져있어."

갓 바다에 나온 항해사가 암초를 보는 데에는 무리가 있겠지. 나의 목소리에 미나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천천히 조타륜 쪽으로 걸어간다. 로만이 이쪽으로 달려와서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덕분에 살았군. 큰일 날 뻔했다."

로만의 말에 나는 그쪽을 보고 서늘하게 픽 웃었다.

"큰일이요? 그냥 애들 장난 수준이죠. 그것보다... 아닙니다, 일단 마스트 위에 올라갔다 내려와서 말은 마저 하겠습니다."

나는 말을 마치고 슥 바다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탑 마스트에서 관측하는 놈 내려와봐 잠깐! 나 올라갈거니까!"

그리고, 나는 그대로 그물을 잡고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녀석이 내려오고, 나는 마스트 꼭대기에 올라가서 바다를 바라봤다.

"... 이상하잖아. 아무리 암초가 해도에 기록되는게 힘들다고 해도 이 정도 규모의 암초지대라면 적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뭐, 바다 아래에서 화산이라도 터진거냐. 나는 머리를 긁으면서 바다를 바라보다가 아래를 내려보고 말했다.

"뒤따르는 배들 다 싸늘한 앤이 움직이는 경로로 움직이라고 명령 보내고!"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낸 나는 그대로 돛에 달려있는 삭끈을 잡고 주르르르 내려와 갑판에 도착한 다음, 나는 로만을 바라봤다.

"... 솔직히 실망입니다."

나의 말에 로만이 나를 바라봤다.

"미안하게 되었군. 미나가 아직 어설퍼서..."

그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야. 초짜한테 뭘 바라는 건데? 나는 그게 문제가 아니라.

"미나 웨스트우드 양도 문제가 있지만, 저 선원 새끼들 뭐하는 것들입니까? 로만 제독께서 확실하게 이야기를 해 놓았는데도 저따위라면, 저는 이 배에서 아무것도 안 할 겁니다."

나의 발언에 해군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제독께서 명령을 내리거나, 전방에 암초다! 라고 했어도 저 녀석들이 저렇게 얼 놓고 있었다고 하면, 아이리 공화국의 해군 자체에 실망이고, 그게 아니고 '내'가 말해서 저딴식으로 반응 한 거면... 이 군인들은 제독의 명령을 제대로 이행할 생각이 없는거겠지요."

또는...

"제독이 나에 대해서 저 군인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을 경우도 있겠군요."

나는 말을 마치고 시가를 꺼내서 불을 붙였다.

"다시 한 번 이야기 하도록 하지."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걸로, 해군 놈들이 내가 뭘 하는 데에 있어서 함부로 의심을 하거나 하지는 못하겠지. 권위있는 사람이 말하면 본능적으로 수그러드는게 사람 심리니까. 내가 오밤 중에 잠깐 볼 게 있다고 보트 띄워서 가도 아무 말 못할거다.

자 그리고, 저기에서 축 쳐져있는 저 아가씨도 조금 교정을 해줘야지. 조타륜에 서 있는 미나에게 다가간 나는 훅 하고 담배 연기를 뱉은 다음 말했다.

"뭐하고 있냐?"

나의 말에, 미나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서늘하게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야, 삼류."

내 말에 미나가 몸을 움찔 하고 고개를 들려고 하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숙인다.

"고개 들어!"

라는 나의 외침이 갑판 위에 울려퍼지고 미나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나는 팔을 꼰 채로 그걸 바라보고 있다가 오른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아서 나와 눈을 마주친다.

"좆같냐? 항해가 애들 장난일 줄 알았나고. 암초 한 번 걸리니까 그 빳빳한 제복 아래에서 지릴 것 같냐?"

나의 인격모독적인 말에 미나의 눈이 흔들린다.

"미안하다."

그 말에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비웃음을 띄웠다.

"내가 아니라, 니 명령 따라가다가 뒤질 뻔한 저 새끼들에게 미안해야겠지. 물론 살기 싫었는지 내가 멈추라고 해도 멍이나 치고 있던 병신들이지만!"

마지막 대사는 아래에 있는 선원들을 바라보면서 외쳤다.

"암초가 거기 있는지... 몰랐다."

나는 그 말에 허허허 하고 웃다가 말했다.

"거기 있는지 모르면, 눈 앞에 있는 암초가. 아, 얘내들은 내가 여기있는지 모르는구나. 사라져야징~ 하고 없어지냐? 그런 겁니까 웨스트우드 양!"

내 말을 듣고 있던 로만이 보다가 이쪽으로 와서 나를 말린다.

"... 미나도 충분히 반성하고 있을거다."

로만의 말에 나는 바로 대답했다.

"당연히 반성하고 있겠죠! 다음 번에 암초에 걸려도 반성하겠죠! 배에 구멍나서 선원들이랑 함께 침몰하고 있어도 반성하겠죠! 평생 반성이나 하다가 익사해서 뒤져버려라 한심한 년아!"

바로 앞에서 쏟아지는 폭언에 미나의 몸이 부르르 떨린다.

"나도, 나도 잘하고 싶단 말이다!"

말하고 있는 미나의 눈가에는 물기가 보이고 있었다. 그래 울어라 차라리.

"그럼 잘해. 항로 잘못 들어서고 나서도 선원들에게 그렇게 변명할거냐? 잘하고 싶었다고? 스스로의 위치는 알고 있냐. 차라리 마스트 잡고 스트립쇼나 하지 그래? 그 편이 선원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로만이 다시 말한다.

"그쯤 하면, 알아들었을거다."

나는 로만을 바라봤다.

"어떻게 되었던지간에, 눈 앞의 웨스트우드양은 저에게 항해를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로만 제독과 웨스트우드 양은 서열관계지만, 저랑 웨스트우드양은 사제관계입니다. 맡고 있는 역할이 다르니까..."

나는 거기까지만 말했다. 요점은, 참견하지 말라는 거지. 배를 갓 탄 애송이 항해사들은 원래 같이 따라붙은 항해사들이 멘탈을 박살내는 법이다. 로만도 알아들었는지,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

"... 알겠네."

그리고 로만이 다시 갑판 아래로 내려가고 나는 미나를 보면서 말했다.

"고개를 숙여? 울어? 나도 잘하고 싶었어? 고개 들고 눈깔 똑바로 뜨고 저 선원들에게 말해라. 무능해서 미안하다고!"

말해! 라고 나는 다시 한 번 외치고. 미나가 눈가에 흐르는 물기를 지우고 천천히 고개를 들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선원들에게 말했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그대들이 위험했다."

나는 미나의 말을 듣고 있다가 말했다.

"다시 말해. 무능한 항해사라서 미안하다고. 나 같은 게 너희들의 목숨을 짊어지고 있어서 죄송하다고."

미나가 입술을 꽉 물고 주먹을 쥐고 있다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무능한 항해사라서 미안하다! 나 같은게... 나 같은게... 너희들의 목숨을 짊어지고 있어서... 죄송합니다."

나는 그걸 바라보고 있다가 말했다.

"다 말했으면 항해사실로 꺼져."

바라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저렇게... 하는 표정이 떠오르지만 내 표정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 미나가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닦아내고 항해사 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그걸 보면서 혀를 한 번 차고 말했다.

"암초 피한다. 종범만 펼치고, 내가 말하는 거 까쳐먹지 말고 제대로 해라."

암초를 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밤이 다가왔다. 닻을 내리게 한 다음 나는 하품을 한 번 하고 별들을 바라봤다. 로만이 나를 보고 말했다.

"잠시, 선장실로."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선장실 안으로 향했다. 방 안에서, 로만이 잔 두 개를 가져와 술을 따랐다.

"...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당연히 심하지. 일부러 심하게 조진거니까. 나는 로만의 말에 대답했다.

"선원들이 항해사 실수로 인해서 동료가 죽거나, 자기 팔다리 하나가 없어지거나, 심각하게 굶주리면 항해사에게 어떤 말을 할 것 같습니까?"

나는 술잔을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이런 말 정도로 부서질 거면, 애초에 항해사를 하면 안됩니다."

배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원망을 받을 때도 있는 일이다. 말 몇마디에 조타륜을 못 잡을 정도로 상처를 입는다면, 다른 일을 찾아보는게 좋지.

"하지만, 너무 어릴 때 새싹을 밟는 거 아닌가."

"그 새싹이 다 자라도 비실비실할 거면, 밟아서 죽여버리는게 낫습니다."

타인의 원망과 분노를 견디지 못하는 녀석들은, 해도 볼 자격도 없다. 그래도...

"뭐, 사실 약간은 기대하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나는 말을 마치고 술을 쭉 들이킨 다음, 로만의 선반을 바라봤다.

"술 두 병 정도만 가져가겠습니다."

로만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감사합니다. 라고 말한 다음 병 두개를 들고 항해사 실 문을 두들겼다.

"죽었냐?"

잠깐 시간이 지나고, 하얀 얼음으로 된 문이 열렸다. 거기에는 두 눈이 퉁퉁 부어서 엄청 못생겨진 미나가 서 있었다.

"... 레이먼드."

나는 별 다른 말 없이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 방 안을 본 나는 픽 웃었다.

"야, 그게 도움이 될 것 같냐?"

방 안에는 항해 지도와 관련 서적들, 그리고 항해 용구들 같은 것들이 책상 위에 널부러져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미나가 입을 열었다.

"나는 무능하니까, 뭐라도 해서 나아지지 않으면..."

내가 픽 웃으면서 말했다.

"븅신, 너는 화도 안나냐?"

나의 말에 미나가 대답한다.

"내 잘못이다, 화를 낼 이유는 없어. 오히려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침대에 턱 않아서 미나에게 술병 하나를 굴려서 보냈다.

"마셔."

미나가 병을 바라보다가 목울대를 몇 번 울리면서 술을 들이킨다. 잘 마시는구만. 나도 술을 조금 비운 다음, 그녀를 바라봤다.

"내일, 당당하게 나가서 선원들에게 명령하고 지휘해."

내 말에 미나가 대답했다.

"자신이 없다.... 스스로가 항해를, 배를 움직일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어. 이제는."

그 말에, 나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너는 지금 머저리 삼류 항해사지만. 앞으로 평생 그렇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게 아니라면, 그 쌍욕을 들어먹고도 해도를 들여다보고 있지는 않았겠지.

"나아지려면, 지금 그 두려운 걸 참고 가서 조타륜 잡아."

그리고 나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한숨바람 무풍지대라는 곳이 있지. 내가 이등 항해사일때 일등 항해사가 실수하는 바람에 들어간 곳이다."

꼼짝없이 갇혀서, 오랜 시간을 그 소름끼치는 곳에서 있어야 했지.

"다른 녀석들도 식사를 제대로 못했지만. 나와 일등 항해사는 더 심각하게 아무것도 못 먹었다. 녀석들이 식사에 손을 못 대게 하던데. 니들 잘못으로 들어온 곳이니까, 니들은 쳐먹지도 말라고."

나는 천천히 내가 들었던 욕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근데 씨발, 아마 먹으라고 음식을 줬어도 미안해서 못 먹었을거다."

미나가 술을 한 모금 마시면서 내 이야기에 계속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항구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저 새끼 애미부터 찾아서 쓸모없는 새끼 태어나게 한 자궁을 들어낸다느니, 마실 물이라고 하면서 물에 못먹을 것들을 섞어서 던지고. 뭐, 녀석들은 꼼짝없이 죽는다고 생각했으니까."

사람은, 자기가 죽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대뜸 화풀이 대상을 찾는다.

당연히 그 대상은 항상, 배를 움직이고 명령하던 항해사.

"그런 이야기 듣고,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 한 일주일 정도 있잖냐...?"

나는 실실 웃으면서 술을 쭉 들이키고 입가를 슥 닦았다.

"돛을 조정하는 삭끈이 아주 다른 용도로 보이기 시작해. 그거에 목을 매달아 버리고 싶어져."

나는 말을 마치고 남은 술을 쭉 들이키고 미나를 바라봤다.

"내가 하는 욕들은 맛보기도 안된다. 항해 연습한답시고 욕조에다가 범선 모형 띄워놓고 장난하는 수준이야."

그렇게 말하고 나는 미나의 양 뺨을 콱 잡고 말했다.

"정신 딱딱하게 먹어라. 못 견딜 것 같으면 그만두고."

나는 말을 마치고 문을 나서기 시작했고, 미나가 입을 열었다.

"언젠가는..."

미나가 나를 바라보았고, 그 눈은 다시 이전처럼 서늘한 기색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너보다 더 나은 항해사가 되어서, 네 녀석에게 똑같이 돌려줄거다."

나는 그 말에 픽 웃고는 가운데 손가락을 올렸다.

"한 천년은 이르다. 삼류."

============================ 작품 후기 ============================

레이먼드 이 나쁜 새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