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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56화 (56/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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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VS 해군

안개 속에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로만은 문득 레이먼드에게 생각이 닿았다. 만약에, 레이먼드가 진짜로 아이리 공화국과 함께 한다고 했으면. 이 안개에 대해서 설명이 없었을리가 없다. 그렇다면...

"당장 레이먼드 그 자식을 데려와라!"

설마, 설마... 로만은 최악의 상황에 대해서 마음의 각오를 하기 시작했다.

"제독...! 레이먼드가 없습니다!"

당황스러운 선원의 목소리에 로만이 난간을 발로 찼다.

"그 빌어쳐먹을 해적놈의 새끼가아아아!"

로만의 얼굴이 대번에 구겨지고, 미나의 입을 벌리고 있다가 다시 명령했다.

"그럴리가. 다시 한 번 찾아봐!"

로만이 미나의 명령에 대답한다.

"녀석은 처음부터 배반할 생각이었다, 미나."

그 말에 미나의 표정이 허옇게 질렸다.

"무언가...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가..."

미나의 정신이 순간적으로 공황으로 빠져들었다. 언제 사라진 거냐.

그 와중에, 레이먼드는.

"삶이여. 그대는 떠다니는 돛단배 같아라."

부서진 채로 버려진 배 위에 올라가서 그나마 작은 돛단배 하나를 내린 다음에 그걸 타고 목적하고 있던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안개가 생각보다 두꺼운데.

그래도 애초에 목표로 잡아놓은 곳은 확실하니까. 레이먼드는 돛단배 위에서 파도에 맞춰 출렁거리면서 떠다니고 있었다.

레이먼드가, 돛단배를 타고 얼마나 갔을까, 목적지로 정해두었던 코딱지만한 섬에 주변에 도착했고, 그는 그대로 배에서 내려 그 섬의 모래톱에 턱 앉아서 주변에 깔려있는 안개를 바라봤다.

"이제 슬슬..."

이라고 말을 하기 시작하자, 점차 눈에 띄게 안개가 연해지기 시작하다가. 이내 완전히 없어진다.

그리고, 드러난 풍경은.

"갑자기 배가 왜 이렇게 많이..."

로만이 주변을 슥 둘러보고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젠장! 해적 놈들이다! 주변 배에 해적들이..."

로만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래서는 답이 없다. 녀석들 중에 누가 해적인지를 모른다. 하나하나 관찰하면 파악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급박한 전쟁 중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자신들이 입은 피해는 50척이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잘못하면 전멸이다."

그것은, 바리스의 함대도 마찬가지였다. 안개가 걷어지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리스는 말했다.

"회색... 회색 기를 달아라."

그 말에 선원들이 빠르게 퇴각을 의미하는 회색 기를 작살에 달았고, 작살은 그대로 날아가 아까까지 명령을 내리던 그 위치에 박혔다. 바리스의 함대가 그 깃발을 확인하고 곧바로 퇴각을 준비하고. 로만은 그 상황 속에서 후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그냥, 이대로 도망 칠 수는 없지."

그는 그렇게 외친 다음에 싸늘한 앤을 한 번 쓰다듬고 말했다.

"얼려라."

하얗게, 서리가 동심원을 이루면서 앤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작센 해협의 바다가 통째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바리스의 해군을 추적하려고 하던 해적들의 배도, 도망치고 있던 바리스의 함대도. 아이리 공화국의 군함들도. 모두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이전에 앤이 했던 공격과는 다르게, 배까지도 얼리는 게 아니라, 바다만을 꽝꽝 얼려버릴 뿐. 하지만, 이걸로도 모든 함선들은 이동이 불가능해져 버렸다.

"... 회색 깃발을 올려라."

로만이 어두운 표정으로 명령하고, 싸늘한 앤의 마스트 꼭대기에는 회색 깃발이 올라갔다.

그리고, 로만은 자신의 함대들이 있는 지역의 얼음만을 거두어갔다. 그리고, 로만의 군함 사이에 숨어있던 해적들이 포격을 시작했지만, 포격을 하는 배들이 그 이후에 바로 통째로 얼어붙어버리자, 녀석들은 포격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로만은 자신의 입에서 올라오는 허연 김과, 몸 속으로 쑤시고 들어오는 엄청난 한기 속에서 기침을 했다. 그의 몸의 군데 군데가 빨간 색으로 동상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시작부터 이렇게 해놓고 싸움을 했어야 했다. 동상을 입어버릴 정도로 로만의 몸에 피해가 가기에, 쓰지 않고 있었던게 잘못이다.

"해적들과의 싸움에서 이렇게 큰 피해를 입다니..."

그래도 로만은, 작센 해협에서 퇴각하는데 성공했다.

시간이 지나자 얼어있던 바다가 빠르게 녹아내렸다. 바다가 얼어붙어있는 사이 바리스는 뒤편에서 덮쳐들어온 해적들의 배를 요격하기 시작했다. 그는 배에서 어떤 놈들이 섞였는지 다 확인을 했기에, 요격은 어렵지 않았다. 해적들이 타고 있던 배들이 거의 다 요격 되었을 무렵에, 바다는 아직 살얼음이 떠 있기는 하지만 항해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함선들은 곧바로 바리스의 회색 깃발에 따라서 퇴각하기 시작했다.

바리스도 그걸 말리지 않았다. 녀석들에게 있는 바다의 날개가, 싸늘한 앤이 없어진 이상에는 마음껏 날뛸 것이고. 그러면 배의 수가 더 많아도 어떻게 될 지 모른다.

게다가 지금 선원들의 사기도 말이 아닐터.

이 전쟁은... 패배다. 바리스는 한숨을 내쉬고 눈을 질끈 감았다.

아직 작센 해협에 떠 있는 해적선들. 마리아가 허어어.. 하고 숨을 내쉰 다음에 주변을 슥 둘러보고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하게 되어서 기쁘다! 또 말할테니까 똑똑히 전해!"

마리아가 깊게 쉼호흡을 하고 크게 외쳤다.

"함께 일해서 좆같았다! 끝났으니까 다시는 함께하지 말자! 이 개같은 새끼들아!"

이야아아아아 하는 소리가 주변 배에서부터 퍼져가고, 배들 사이사이에서 함께 일해서 좆같았다 라는 외침이 다시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신나게 소리치는 가운데에, 마리아가 비실비실 웃었다.

"얘들아, 항해사 만나러 가자."

그리고, 바다의 날개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레이먼드가 가버리면 러셀의 검이 작동을 안 할 줄 알았는데."

그러면서 마리아는 히죽히죽 웃었다.

"나는 설마 이게... 그거에도 반응 할 줄은 몰랐지."

레이먼드의 일부면 되는 모양이다. 레이먼드가 가기 전에 배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리아가 레이먼드가 없는 상태에서 손으로 러셀의 키를 잡고 돌렸는데.

글쎄 이게 마리아의 손길에도 움직였다.

이유가 뭐지 이유가 뭐지 생각해봤는데.

"설마 내 몸 안에 들어있던 정액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그걸 확인한 다음 마리아는 곧바로... 레이먼드의 액체를 보관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해답은 도리안이 가지고 있었다.

"... 회중시계로 시간을 멈추면 보존은 가능하지만. 내키지 않는군. 게다가 그 동안에는 내 몸의 시간이 흘러간다."

자신의 황도궁의 회중시계가 그렇게 더러운 역할로 쓰이는 것에 도리안이 강한 거부반응을 보였지만. 상황이 상황이라 그도 일단은 납득한 모양이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되자 도리안은 다시 자신의 몸의 시간을 멈추었고. 마리아는 그 놀라운 마법의 액체를 손에 발라야만 했다.

생각만 해도 토 나온다. 마리아는 자신의 손을 보며 혐오감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조종하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이제는 그 끔찍한 액체를 손에 묻히는 일도 안 해도 되겠지.

그리고 다시를 레이먼드를 바깥으로 돌리는 일은 없을거다. 마리아는 스스로 그렇게 선언하면서 그와 접선하기로 한 섬으로 갔다.

"선장, 오랜만입니다."

그 섬의 모래톱에서, 레이먼드는 씨익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고. 마리아가 그를 보면서 픽 웃었다.

"씨발, 꼴에 또 보니까 반갑네. 만나면 죽여버리려고 했는데."

레이먼드는 바다를 보면서 말했다.

"나름 장관이네요."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오후에 시작한 싸움은 밤이 오기 전에 끝났다. 잠깐의 해전으로 인해서 작센 해협에는 온통 박살난 나무 조각들과 여기저기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있는 함선들로 가득하다. 마리아가 그 바다를 슥 바라보다가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돌아가지."

그럴까요. 레이먼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에 달라붙은 모래를 툭툭 털어내고 마리아의 손을 잡았다가 다시 놓았다.

"... 뭐가 이렇게 끈적거립니까?"

그 말에 마리아가 눈을 감고 있다가 레이먼드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닥쳐 임마."

지 몸에서 나온 건데. 말이 나온 김에 마리아는 바로 바닷가에 가서 바닷물로 자신의 손을 박박 문질러 닦아내었다.

============================ 작품 후기 ============================

1시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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