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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오징어들이 지키는 것
목이 사슬에 묶여있는 소녀 한 명이 질질 끌리면서 위로 올라왔다. 이 날씨에 얇은 거적데기 한 장을 걸치고 있는 소녀는 심지어 로제보다 더 어려보였다.
- 이거.. 이거 놔줘요!
귓속으로 들리는 그 목소리 만으로도 확신할 수 있었다. 듣는 것 만으로도 머리가 몽롱해지는, 남풍처럼 따스한 목소리. 귓 속으로 직접 빨려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는 국적과 언어에 상관 없이 모두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하고 있었다.
소녀는 푹신하고 윤기나는 하얀 머리카락과, 짙은 녹색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위로 끌려올라오면서 내뱉은 한 마디 만으로,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사슬이 절그럭거리는 소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공간 안에서 소녀가 불안한 듯이 자신의 목을 감고 있는 사슬을 양 손으로 꼭 쥐고 몸을 움츠렸다.
단상에 서 있던 남자가 셀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고, 몸을 움츠리고 있던 소녀가 눈을 떨면서 뒤로 한 걸음 물러선다. 그리고 당겨지는 목줄.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다시 남자 쪽으로 끌려가는 소녀.
- 싫어, 그만해요! 이거 당장... 놔!
소녀의 몸 주변에 아지랑이가 치기 시작하고, 목에 감긴 사슬이 곧 부서질 것처럼 위태롭게 삐걱거린다. 그 모습을 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약간 뒤로 물러섰지만, 단상 위에 서 있는 남자는 태연하게 그녀에게 뭐라고 말을 했다.
- 미안해요! 가죽은 건드리지 말아요! 부탁해요, 제발...
소녀의 몸 주변에서 일렁거리던 아지랑이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소녀는 고개를 숙인채로 사슬이 당기는 데로 몸을 끌고 간다.
"상태가 좋군."
미친 것들아. 단상 위의 남자는 소녀의 몸을 가리고 있던 거적데기를 찢어버렸고, 달덩이처럼 새하얀 소녀의 나신이 드러난다. 단상 위의 남자가 뭐라고 말을 하면서, 150 칸두스. 라고 외쳤다.
그리고,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점점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다. 150 칸두스라. 임신한 여자가 120칸두스에 팔렸었는데. 그걸 가볍게 넘겨서 시작한 경매는 이제 1000칸두스의 벽 조차 뚫어버린 상태였다. 난리가 나기 시작하는구만. 이게 바로 그 말로만 듯던 테이크 마이 퍼킹 머니인가. 경매는 1300 칸두스 언저리에서 안정을 되찾기 시작해 찔끔찔끔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그 광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경매는 끝없이 이어져서, 드디어 2000 칸두스의 벽까지 넘어버렸다. 건장한 남자 노예 한 명이 50~70 칸두스 정도를 하니까. 지금 저 소녀를 사지 않고 남자 노예들만 산다고 하면 중대 하나를 만들 수 있다.
역시, 시커먼 남자 따위 한 트럭이 와도 미녀 한 명을 이길 수 없는건가. 사람들이 가격을 말할 때 마다 잔뜩 긴장한 소녀가 몸을 가린채로 움찔움찔 떤다. 무섭겠지.
결과적으로 셀키가 낙찰된 가격은 이천 오백 하고도 육십 칸두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쇠사슬을 건네받은 중년 남성을 보면서 나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약간 바꾸어야 했다. 원래, 이런데 와서 하악하악 셀키짜응 하는 중년이라고 하면 머리가 반쯤 벗겨져 있고 살도 엄청 쪄 있는데다가 얼굴에 불 붙이면 그대로 고스트 라이더가 될 정도로 기름기가 질질 흐를 줄 알았는데. 게르하르크가 그 중년을 한 번 보고 말했다.
"폰테인 경이 가지는군. 셀키, 고통스러울거다."
수염도 멋지게 기르고, 말쑥한 몸매에 안경을 끼고 있는 미중년께서 셀키를 사가시게 되었다. 고통스러울 거라니 무슨... 사슬을 살짝 당기자, 셀키가 저항하고, 그걸 본 중년 남성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 뒤에 이어진 행동들이 하나님 맙소사였다. 정신적으로 고통스럽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물리적인 고통을 말하는 거였어.
- 무스..?! 잠깐! 꺄아아악!?
셀키를 자기 무릎 위에 엎드리게 만든 다음, 중년은 사정없이 하얗게 드러난 셀키의 엉덩이를 손으로 후려치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귀엽게 표현해보자면 궁디팡팡.
말이 궁디 팡팡이지 순식간에 시뻘겋게 올라오기 시작하는 손바닥 자국과, 계속해서 그 위에 내려쳐지는 손바닥. 엉덩이에 멍이 번져서 거무죽죽하게 변할 정도가 되어서야 남자는 그만 두고 다시 셀키의 목을 감은 사슬을 확 잡아당겼다.
셀키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그 잡아당김에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저 아이 아직 어려보이는데... 빠르게 걸어가는 중년의 발걸음을 따라잡으려고 하지만 몸이 계속해서 비틀거린다.
- 저기, 조금만... 천천히...
완전히 발가벗겨진 소녀가 그렇게 애원하듯이 한 마디 하자. 남자는 다시 뒤를 돌아보고 한 마디 했다.
"벌써 교육을 시킬 모양인가."
나는 옆에서 태연하게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게르하르크를 한번 슬쩍 보았다. 지금 이 공간에서 저 소녀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건 나 밖에...
다시 시선을 돌려서 앞을 바라봤을 때 나타난 광경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건 교육이 아니라 고문이잖아! 니들 정규 교육과정이 저 모양 저 꼴이면 여기에 살아 숨쉬고 있는 어른들은 하나도 없는게 정상이다!
천장을 가로로 가로지르고 있는 대들보 너머로 사슬을 넘긴 중년은 그대로 그 사슬을 잡아당겼고, 그 힘에 소녀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교수형을 당한 것 같은 모습이 되어버린다. 양 팔로 자신의 목을 감고 있는 사슬을 꽉 붙들고 비명을 지르는 소녀.
그 상태로 사슬을 끝을 하인에게 넘겨준 남자가 소녀의 몸에 주먹질을 하기 시작한다. 몸은 곳곳에 멍이 올라오고, 몇 군데는 터져서 피가 베어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는 와중에 손에 힘이 풀려서 사슬이 목을 죄이고, 셀키의 눈이 헤까닥 돌아가기 시작하며 입에서 끄으윽, 끄윽 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남자가 사슬을 잡고 있던 하인에게 손짓을 하자 다시 사슬이 아래로 내려오고. 중년은 귀찮다는 듯이 사슬을 잡고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슬이 살짝 당겨지고, 뒤돌아서 다시 눈썹을 한 번 꿈틀거리는 중년. 그걸 보자마자 셀키가 흐으윽, 하는 소리와 함께 후들거리는 다리로 일어나기 시작한다. 여기 저기 구타당한 흔적에 사슬 사이사이로 보이는 목덜미에는 시퍼렇게 변색된 자국이 남아있다. 몸을 움직일 떄 마다 셀키의 입에서 콜록거리는 소리가 나는건, 아마 아까 당했던 그 교수형 때문인가.
걸어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잖아 이 개또라이 진성 사디스트 싸이코 새끼야.
나는 그 장면들을 바라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온 몸에 주먹질을 당하고 발을 절뚝거리면서 기를 쓰고 남자의 발걸음 속도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셀키...
결국은 남자의 발걸음을 쫒지 못해서 그대로 엎어졌고. 남자는 그건 아랑곳 하지 않고 사슬을 당기면서 계속 걸었다. 거의 질질 끌려가듯이 지나가는 셀키의 궤적을 따라서 바닥에 가느다랗게 혈흔자국들이 남는다. 그것이 내가 그 경매장에서 본 마지막 풍경이었다.
게르하르크와의 만남을 끝낸 나는 숙소로 돌아와서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내가 뭘 본거냐 방금 전에?
스스로도 믿을 수가 없는 참혹한 광경. 방에 앉아서 그때의 상황을 계속해서 짓씹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로제가 들어왔다.
"로제, 마리아에게 전해줘."
나는 로제에게 말한 다음에 종이 한 장을 꺼내서 주르르르 내용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미친 거 아니야. 그게 바다의 요정이 아니라 그냥 흔해 빠진 소녀라고 해도 저런 대접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잖아!
씨발, 이미 해적질 하면서 사람 죽이고 다니는 나도 개새끼지만. 어쨋든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않는거다!
어차피 너도 악당인 주제에 같은 소리는 아무래도 좋다고. 난 그냥...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하면서 사는게 목표가 되었고. 나는 지금 그 소녀를 어쨋던 구하고 싶다. 인생 살면서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게 몇 번이나 있다고.
다 꼴리는데로 하면서 사는거지.
그러니까 저건 구해야겠다. 나는 종이에 계획을 적은 다음, 단호한 문장으로 '그거 안 구하실거면 저 이 배에서 내리던 뒤지던 하겠습니다.' 라는 문장으로 종이의 끝을 맺었다.
아니, 싫다고 하면 그냥 나 혼자 바다의 날개 끌고 가서 어떻게든 해본다. 와, 눈 앞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소녀가 주먹으로 쳐맞고 질식당해서 눈 돌아가고 하는 걸 보니 나도 같이 눈이 돌아가버릴 뻔했네.
============================ 작품 후기 ============================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여자친구랑 시간을 보내야 해서 쉬겠습니다.
... 라고 말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 슬프다ㅠㅜ
내일 오후 6,9,12 3연참이나 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