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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위를 향해서
셀키가 가버린 다음에 우리는 밤바다 위를 표류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주제는 하나였다. 우리가 가르시아 해에 계속해서 있어야 할 이유는 없잖아. 셀키도 봤고, 겸사겸사 흑단목이라는 비싼 물건도 얻게 되었다. 게르하르크는 여전히 그레이 하운드에 있고, 녀석 입장에서는 그렇게 열심히 공을 들이고 있던 내가 갑자기 슥 사라져 버리면 소개팅 나가서 상대가 얻어먹을 거 다 얻어먹고 슥 사라져버린 기분이겠지만.
내가 알 바는 아니잖아. 내 말에 마리아가 대답했다.
"아, 한 번 가봐야 할 곳이 남아있어서."
마리아는 그렇게 말하고 바다를 바라봤다. 새하얗게 김이 올라오는 바다 위에서, 마리아가 한 마디를 했다.
"더 북쪽으로 올라갔으면 좋겠는데."
그 말에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어느 정도 올라갔으면 하는 건데? 너가 원하는 위도가 얼마나 높냐에 따라서 내 대답이 달라지겠지. 마리아가 입을 열었다.
"이야기 듣기로는 굉장히 추운 지역이라고 했어. 이끼랑 작은 관목 정도만 가까스로 자라던 곳이라던데."
... 니 지금 툰드라 말하는 거냐? 그 북극 근처에 있는 더럽게 추운 장소 말하는거냐고. 거길 가자고? 지금 겨울은 아니지만 여름도 아니라고. 거기 가면 기온이 기본으로 영하 4~5도는 깔고 들어가는 미친 동네인데. 거기를 뭐하러 가자는 거야. 가서 얼어 죽을 생각이야?
"흑단목이 있으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흑단목이 아니라 이 배가 흐르는 용암 같은 걸로 만들어져 있다면야 문제 될 게 전혀 없지만.
"꼭 가야 합니까?"
라는 나의 우울한 목소리에, 마리아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렇게 말하면 내 입장에서는 갈 수 밖에 없는 거잖아. 나는 머리를 벅벅 긁다가 말했다.
"저희 식량 충분하겠습니까?"
그 말에 마리아가 아직 박살난 채로 가까스로 떠 있는 배들을 가리켰다.
"저기에서 다 털어왔으니까, 문제는 없어."
어차피 우리가 화약이나 포탄을 쓰는 포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라서. 선원들이 쉬는 곳을 제외하고 나면 왠만한 공간들에는 음식을 빵빵하게 넣을 수 있어서 꽤나 장기 항해가 가능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대로 툰드라는 위험한데.
... 까라면 까고, 가라면 가는게 내 인생이지. 예전에 북쪽 갔다가 죽을 뻔했는데 여기에서도 거기로 가야 하다니.
"어디로 가실 건지 위치는 알고 계십니까?"
나의 물음에 마리아의 표정이 약간 무너졌다.
"사실 말이야, 그걸 잘 몰라."
어딘지도 모르는데 가달라고 하는 건 취한 상태에서 택시 탄 사람들 만의 특권인데요. 뭐, 택시기사한테 전설의 고향 가달라고 할 거냐? 어딘지 모르는 곳을 가달라고 하면 어떡해. 이 길을 달리면 어디가 나오죠 막 그런거냐.
나의 표정을 바라보던 마리아의 표정이 약간 썩는다.
"뭐, 왜. 모르면 안되냐."
될 리가 있냐.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마리아를 바라봤다. 니 지금 그렇게 당당하면 안되는 거에요 아가씨. 내가 가슴이 막막해요 지금.
"힌트라도 없습니까?"
그 말에 마리아가 곰곰히 생각하다가 한 마디를 했다.
"어, 춥다던데."
당연히 춥지! 지금 이 여자가 나를 가지고 놀려고 이러는 건가?! 지금도 춥잖아. 근데 북쪽으로 가면 당연히 더 춥겠지.
"... 그리고, 근처에 높은 산들이 있다고 들었어."
그 말에 나는 한숨을 쉬고 해도를 펼치고 높다고 할 만한 툰드라 지역들을 찾아보았다.
다섯 군데. 이 다섯 군데를 다 돌아봐야 하나. 그러면 지금 가지고 있는 식량으로는 택도 없을 텐데요. 마리아씨. 그녀가 고민을 하다가 씨익 웃었다.
"가끔 상선들 털면 문제 없겠지 뭐."
그래, 우리야 뭐 다른 사람 배 털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니까. 그건 그렇게 치고 넘어간다고 해도. 나는 그 해로들을 쭉 살펴보다가 머리를 짚었다.
"여기 유빙들 많은 지역들인데."
툰드라 근처에 가면, 엄청 큰 얼음들이 드글드글하단 말이지. 근데 그것들이 여름에 기온 좀 올라가면서 조각조각 떨어져 나오고. 이 시즌이면 막 바다에 떠다녀요. 다행히 겨울은 아니라서 따로 쇄빙기를 설치할 필요는 없겠지만.
"피하면 되잖아."
그러니까, 피하면 되는데. 그러면 우리 잡은 언제 잘 건데.
"졸다가 유빙이 들이 박으면 바다의 날개가 손상을 입을 겁니다. 그러면 기껏 셀키 구하고 나서 얻게 된 무료 수리권을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사용해야 하는 비극적인 사태가 벌어질 거고요."
그 말에 마리아가 흠, 하고 고민하다가 말했다.
"불침번들 있잖아."
불침번 세우기 힘들텐데. 거기 가본 사람들이 농담처럼 거기에서 놀라서 헛숨을 들이켜면 폐가 꽝꽝 얼어서 그대로 급사한다고 할 정도로 춥다고.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뭐, 흑단목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불침번을 세울 수는 있으려나."
그 녀석 성능이 얼마나 좋은 지를 모르니까. 한 번 보고 나서 판단하자고.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마리아를 바라봤다.
"여튼, 거기에 가실 만한 이유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 말에 마리아가 고민하다가 말했다.
"어, 개인적인 이유지만... 꼭 가보고 싶어."
마리아는 그렇게 말하고 선원들을 바라봤다.
"미안하지만, 이번 항해는 내 맘대로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서 더럽게 추운 곳으로 간다. 불만 있냐?"
있으면 배에 칼 꽂고 바다에 버려버릴려고 그러지 너.
생각했던 것 처럼 선원들은 별 다른 물만을 표하지 않았다. 평상시에 뭘 하면 저렇게 지옥으로 가자! 라고 해도 그럽시다. 하고 따라갈 수 있는거지.
거기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몰라서 그러는거 아니야? 나중에 가서 마리아 엄청 욕하고 그러는거 아니려나 모르겠네.
그리고, 배 위에서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으려나. 물 속에서 불쑥 바다표범의 머리통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리고, 그 가죽이 반으로 쩍 갈라지는 고어스러운 연출과 함께 갈라진 가죽 사이로 셀키의 새하얀 머리카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 여기, 흑단목이에요.
라고 말하고 있는데. 어디에.... 나는 우리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거대하고 검은 그림자를 보다가 시선을 옆으로 향했고. 거기에는 안색이 시퍼렇게 질려 있는 선원들과 마리아가 보이고 있었다.
물론, 나도 그 소름끼치는 표정을 선원들로 하여금 하게 만든 원인을 바라보고는 입을 떡 벌리고 흐아아아 하는 신음소리 비슷한 걸 내었다.
뭐가 저렇게 크냐. 저 빨판으로 내 머리 잡으면 녀석이 먹기 전에 내 얼굴 가죽이 벗겨지겠다! 나는 눈 앞에 있는 그 거대한 오징어 비슷한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보면서 생각했다. 저런 괴물딱지를 어딜 봐서 대왕 오징어라는 귀엽고 자그마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거야?! 크툴루 오징어 같은 이름으로 불러도 모자랄 지경인데!? 아니, 물론 그건 문어지만 어마어마하게 무섭게 생겼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잖아.
학자 새끼들은 다 구라쟁이야. 뭐, 배보다는 약간 작다고?! 저 거대한 촉수로 바다의 날개를 한 번 휘감아서 끙, 하고 힘을 주면 그대로 반토막이 나겠구만!
오징어는 어울리지 않게 섬세한 동작으로 배 위에다가 조심스럽게 큼지막한 통나무 몇 개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배 위라서 그런지 그렇게 큰 효과는 없다.
- 그럼, 이걸로 된 건가요?
우리는 배 옆에서 까꿍, 하고 촉수를 하늘거리고 있는 거대한 오징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로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고, 셀키가 활짝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 정말로 감사드려요.
그리고는 다시 머리까지 가죽을 올리고 셀키는 사라지고, 그 뒤를 따라서 저 형언할 수 없는 오징어를 닮은 무언가도 바다 아래로 잠수해서 사라졌다. 그것 만으로도 배가 흔들리고 있잖아. 우리는 잠깐 눈 앞에서 사라진 그 거대한 오징어를 아직 연상하면서 할 말을 잃고 얌전히 있었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로제였다.
"... 게르하르크가 저런 걸 우리보고 상대하라고 했다고요? 그냥 우리가 다 죽었으면 하는 거 아니에요 사실은?"
그러게 말이다. 저게 먹물 쏘면 배가 타르 뒤집어 쓴 갈매기 꼴이 될 것 같은데.
물론, 사라지거나 하는 속도를 보면 무시무시하게 빠른 정도는 아닌 모양이지만. 일단 이건 배고, 저건 해양 생물이잖아. 왠만한 배들 보다야 훨씬 훨씬 빠르겠지.
저런게 해역을 싸돌아 다니고 있으니까 아무도 셀키가 있는 바다에는 들어갈 생각을 못하고 있던 거였어. 일단 나는 셀키가 건네준 거대한 흑단목 통나무를 바라보다가 살짝 손을 가져가보았다.
확실히 따끈한데. 따뜻한 온천물 같은 느낌이야. 이런 온도를 뿜어내면서 어떻게 나무의 형상을 취하고 있는 걸까. 자연의 신비인 모양이다. 나는 그걸 바라보다가 선원들을 보고 한 마디 했다.
"야, 이거 잘게 썰어서 배에다가 깔아놓고. 몇개는 사람 몸에 지닐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쪼개놔라."
이 정도의 열기면 확실히 툰드라에서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주변을 슥 바라보고 마리아를 봤다.
"그래서, 바로 출발 하시겠습니까?"
나의 물음에 마리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더 이상 그레이 하운드에서 볼 일은 없으니까. 며칠 지나면 게르하르크도 지가 사기 당한 걸 알겠지."
그러면 지가 어쩔건데? 이 배를 쫒아오기라도 할까. 나는 무심하게 하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일단, 제일 가까운 곳으로 향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선원들을 바라봤다.
"진짜, 존나 두껍게 입어라. 이렇게 입으면 움직이는게 불편해질 것 같은데 이런 생각 하지 말고. 아무리 그래도 이건 오바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지 말고. 있는 건 다 껴입어. 세상에 비참한 죽음 많다지만, 바다 위에서 얼어죽는 것 만큼이나 비참한 죽음은 드물다."
말을 마친 나는 항해사 실로 가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옷을 잔뜩 껴입기 시작했다. 배 아래로 내려가면 쪼개진 흑단목 때문에 제법 따끈하겠지만. 갑판 위에 저 녀석을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위에 둬 봤자 주변의 차가운 기운 떄문에 별로 효과도 없을 거다. 선원들 자는 곳이랑 선장실, 항해사실에다가 집중적으로 넣어놓는 편이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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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