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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90화 (9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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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운티 크러쉬

여기저기 포탄의 피격 자국이 생겨난 배들과, 사방에 자욱하게 깔리는 연기와 화염. 대포들이 일제히 고함을 지르면,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다시 비명을 질렀던 사람들이 대포를 장전해 고함을 지르면 다시 건너편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다. 자욱하게 깔리는 포연 위를 바닷 바람이 한 번 휘젓고 가면 드러나는 박살난 뱃조각들과 부유하는 시체들.

"거의 다 되었다!"

싸우고 있는 배들은, 두 개의 깃발 중 하나를 달고 있었다. 하나는, 아이리 공화국을 상징하는 깃발. 하나는 검은색 깃발에 해골 머리통이 달려있는 깃발. 어떤 깃발을 달고 있던 배에 새겨진 상처는 지독했지만. 그 잔혹한 전쟁터의 풍경을 애써 무시하고 바라본다면. 확실히 졸리 로져를 달고 있는 해적들이 싸움에서 우세했다.

거의 다 이겼다. 해적들의 얼굴에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 떠올랐다.

여덟척의 배가, 세 척의 배를 둘러싸고 두들겨 대고 있었으니까. 승부는 거의 결착이 났다. 해적들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할 무렵.

배 하나가 물귀신이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것 처럼 바다 아래로 빨려내려가기 시작했다. 눈 앞에서 배가 한 척 그대로 바다 아래로 빨려들어가는 꼴을 본 해적들의 표정이 일제히 대낮에 남자한테 강간당한 소년 같이 변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배가 아래로 쑥 빨려들어간 바다 아래에는 그들도 모르고, 아이리 공화국 함선도 모르고 있던 배 한 척이 자리잡고 있었다. 미나가 운용하기 시작한 방랑자. 바다 밑을 돌아다니는 전설.

조타실 안에서, 미나는 자신의 눈 앞에서 계속 모양을 바꾸는 액체방울들을 빠르게 조작하기 시작했다. 배 주변의 상황을 나타내주는 입체지도가 미나의 손에 잡혀서 이리 저리 움직이는 가운데, 남은 손 하나는 빠르게 다음의 공격을 준비한다.

방랑자는 해수면 위는 보지 못한다. 잠겨있는 배의 선체만이 미나가 볼 수 있는 모든 것이지만. 아이리의 항해사였던 미나가 그걸로 적과 아군을 판단하는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녀의 손이 다시 빠르게 움직인다.

방랑자의 선체에서 대여섯 다발의 굵은 금속 동아줄들이 위로 발사되고. 그 동아줄의 끝부분들이 천천히 배 하나에 박혀들어간다. 그걸로 끝, 저 함선은 이제 수명이 다했다.

미나의 손은 이미, 다시 방랑자에게 잠수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해수면 위에서, 방랑자의 손아귀에 붙잡힌 배가 그대로 방랑자와 함께 바다 아래로 잠수하기 시작한다.

차이가 있다면. 방랑자는 원래 해수면 아래로 돌아다니게 설계된 배이지만, 그녀와 함께 바다 아래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배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 순식간에 두 척의 배를 익사시켜버린 미나는 불만족스러운 듯이 팔을 꼰 채로 자신의 앞에 일렁거리며 나타나는 화면들을 바라본다.

"역시, 너무 느려."

이래서는... 미나의 머릿 속에는 단 하나의 배가 계속해서 걸리적거린다. 그 더럽게 빠른 배를 처리하는 건 역시 힘들겠지.

아니, 가능은 하다. 재 아무리 바다의 날개가 빠르다고는 하지만, 언젠가는 멈출 것이다. 그 때를 노리면 제 아무리 바다의 날개라고 해도 맥을 추지 못하리라. 하지만, 미나는 자신이 원하는게 정말로 바다의 날개와 함께 레이먼드를 익사시키는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녀는 선장실의 테이블에 마련되어있는 음식을 한 손으로 들고 먹으면서 남은 손으로 계속해서 방랑자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미나는 배들이 다 처리된 것을 확인하고 입체 지도에 나타난 방랑자의 배를 집어서 위로 쭉 끌자, 약간 반투명하게 해수면 위로 방랑자의 분신이 생겨나고.

천천히 해수면 아래에 있던 그녀의 배가 해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해수면 위로 완전하게 올라오자, 미나가 위치하고 있는 조타실의 정면이 투명하게 변하면서 바깥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해준다. 미나는 조타실 내에 있는 나팔 같은 것에 입을 가져가서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대로 배 바깥으로 퍼져나갔다.

- 아이리 해군 소속의 항해사, 미나 웨스트우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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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에, 난파선 잔해들이 잔뜩 있습니다!"

그래 임마, 나도 눈깔 있어서 아주 잘 보인다. 나는 하늘 위로 아직 무럭무럭 올라오는 연기들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거,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은 모양인데.

"아직 뭐가 있을 지도 모르니까. 속도 늦추지 말고 빙빙 돌면서 확인해본다."

알겠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바다의 날개가 난파선의 잔해들이 파도와 함께 출렁거리는 주변을 빙빙 돌기 시작한다.

마리아가 바다를 떠다니는 잔해를 보다가 말한다.

"해적들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저기 아이리 공화국의 깃발과 졸리 로져들이 떠다니고 있다. 마리아가 계속해서 그 잔해들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저거, 아직 살아있는 놈이다. 건져오자."

그 말에, 나는 배를 그 근처로 가져갔고. 선원들이 돛단배를 내려서 그 축 늘어져 있는 사람을 건져서 배 위로 올린다. 마리아는 축 늘어져 있는 그를 팔을 꼰 채로 보다가 손을 번쩍 들고 그대로 그 남자의 뺨을 한 대 후려쳤다.

아픈 사람한테 못하는 짓이 없어 저 여자는.

그렇게 왕복 싸대기가 서너번 오가고 나자. 그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물을 토해낸 남자가 주변을 멍하게 바라본다.

"돌아가신 엄마가 뭐라든?"

마리아는 그를 보면서 태연하게 말하고. 그가 몸을 부르르 떨고 말했다.

"살았다..."

마리아가 혼자 감격하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다가 피스톨을 겨누고 무심하게 말했다.

"자, 여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남자는 더듬거리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성스로운 피스톨 앞에서 모조리 고백하기 시작했다. 남자가 눈 앞의 정의로운 피스톨에 정신을 집중하고 떠든 이야기는 참으로 당황스럽기 짝이 없는 기기묘묘한 이야기였다.

로제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배가 뭐에 잡힌 것 처럼 아래로 끌려내려갔다고 하는데요."

그렇다고 하네. 나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혹시, 평상시에 대마초나 양귀비 씨앗 같은거 즐겨 먹냐?"

사람 미친놈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하늘에 맹세코 진짜입니다! 라는 남자의 외침에 나는 살짝 뒤로 물러났다. 아니 무섭게 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마리아나 나를 보면서 말했다.

"일단, 배는 다시 출발 시키고. 저 남자의 말에 일리는 있어."

남자의 말에 따르면 거의 11척의 배가 서로 부둥켜 안고 신나게 해전 중이었다고 하는데. 그에 비해서는 배의 파편들이 적은 편이다.

"소용돌이 같은 거 아닐까요?"

조타륜을 조정하고 있는 내 쪽으로 로제가 와서 물어보았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 근방에는 이렇다 할 암초도 없고. 수심도 깊어. 소용돌이 같은게 만들어질 환경도 아니야."

소용돌이도 아니고, 상대의 포격이 치명타로 들어간 것도 아닌데 배가 가라앉았다. 나는 골치가 아파지는 걸 느꼈다. 뭐가 해적들의 배를 물고문 해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녀석의 정체를 모르면 우리의 소중한 바다의 날개도 얼마든지 당할 수 있다는 거다.

그나저나... 나는 로제를 바라봤다. 이게 요즘 짬이 좀 차니까 갑판 위를 돌아다니는 시간이 기네.

"에이, 그럴 수도 있는 거죠."

라면서 흠흐흠, 하며 콧노래를 불기 시작한다. 저러다가 조금 더 시간 지나면 막 갑판 아래에 짱박혀서 숨어있다가 '항해사님이 찾으십니다.' 라고 다른 선원이 말하면. 아 시발 없다 그래 막 이러는 거 아니야?

아 갑자기 그냥 상상이었는데 그냥 상상이 있을 법한 일 수준으로 신뢰성을 가지는데.

"로제, 그렇게 맨날 배 위에서 놀고 먹다보면 살찐다."

로제가 그 말에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보면서 말했다.

"건빵이랑 육포 같은거 먹으면서 살찌는 사람이 어딧어요? 그런 사람은 호흡 할 때마다 살이 찌는 걸 거에요."

하긴 그게 먹으면서 살이 찔 만한 물건은 아니지만 말이지. 내가 로제를 뚫어지게 바라보자 로제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조금 있다가 들어 갈거에요. 그래도 봐요. 저 없이도 이제 제법 잘 가지 않아요?"

라면서 로제가 양 팔을 쫙 벌리고 배를 빙글 돌았다. 그 말대로 일단 물대포를 유지하면서 배들이 더 흔들리는 경우는 없었다. 사람이 역시 실전을 해야 강해진다고. 계속해서 배 타고 돌아다니면서 이것 저것 하다 보니까 이젠 많이 좋아졌다.

"그래도 이전에 선원들 만큼 되려면 멀었어."

그 말에 로제가 살짝 입맛을 다셨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죠. 그것보다는요."

라면서 로제가 자꾸 나에게 말을 걸려고 했고. 그 수작이 뻔히 보인다.

"들어가기 싫냐?"

그 말에 로제가 움찔하고는 빠르게 말했다.

"아니에요, 방금 전에 엄청 중요한 이야기를 생각해 냈었는데 레이먼드 때문에 다 까먹었잖아요."

뻥치시네. 나는 배를 계속해서 운용하다가. 약간 얼굴을 굳혔다. 내 표정을 보던 로제도 고개를 돌려서 내 시선을 따라 눈을 움직였다.

"... 익숙한 안개네요."

그래, 저 정도로 짙은 안개를 주변에 뿌리고 다니는 녀석은 내가 딱 한 명 알고 있지. 나는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그 안개 뭉치를 바라봤고. 그 안에서 후욱, 하고 배 한 척이 튀어나왔다. 저 배를 보는 것도 간만인데. 마리아도 그걸 바라보고 있다가 말했다.

"도리안이잖아. 무슨 일이지?"

저 녀석 목에도 현상금 걸린게 장난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물론, 우리가 지금 이 바닥 넘버 원이지만! 참 자랑스럽게도!

배는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우리 쪽에서도 속도를 줄인 채로 그걸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분명하게 마스트 꼭대기에는 노란색 기 하나와 푸른색 기가 걸려 있으니까. 저건 이야기 좀 나누자는 신호다. 무슨 할 이야기가 있어서 맨날 안개 속에서 살아 숨쉬는 저 히키코모리 같은 배를 안개 밖으로 끌고 나오셨을까?

두 배가 서로 옆구리름 마주 본 채로 멈추고. 도리안이 이쪽을 바라본다.

"방랑자가 주인을 찾았다."

... 그 잠수함? 근데 너는 그걸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거냐. 무슨 더 쉽 레이더 같은 거를 머리 속에 박아넣고 다니나. 사람이 시간이 멈추면 다른 감각 같은게 막 초인적으로 바뀌는 걸까. 그 뭐 소년 탐정 만화에 나오는 꼬맹이 주인공 처럼 삐리링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지.

대충 이해가 가기 시작하는데. 머리 속의 두뇌가 갑자기 쫀쫀하게 조여지는 기분과 함께 나는 중얼거렸다.

"아 시발. 진짜 그거면 아주 좆됬는데."

배가 갑자기 바다 아래로 끌려내려갔다는 구조된 선원의 이야기. 도리안이 전해준 방랑자가 주인을 찾았다는 이야기.

아이리 공화국의 깃발과 해적의 졸리 로저.

"이걸 아이리 공화국이!?"

그 새끼들 안 그래도 그 미친 얼음 배 가지고 있어서 함부로 깝치기도 곤란한데. 거기에 잠수함까지 가진거냐. 카멜롯은 이제 망했구만.

지금 내가 카멜롯 걱정을 한 건가?! 그거 할 때가 아니잖아. 그 개 사기 같은 배가 두 척이나 있으면 이런 하잘 것 없는 전함 따위 몇 대를 때려잡아도 소용이 없어. 게다가 그 배의 주인은 로만도 아니니까 아마 우리 제거하는데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용할 테고.

나는 이마를 짚고 한숨을 푹 쉬었다. 바야흐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구만. 이제 더 이상 해군을 공격해서 아이리 공화국의 해군을 우습게 보이게 만든다는 전략은 씨알도 안 먹힌다. 잔뜩 빡친 마누라한테 뽀뽀 하려고 하는 것 만큼이나 성공할 가능성이 낮아.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는데.

============================ 작품 후기 ============================

어뢰는 너무 흔하잖아요.

물귀신입니다(역시 흔하지만, 제 상상력은 여기서 끝납니다ㅠㅜ). 너도 심해로 오렴.

역시, 숨어있는 크툴루의 광신도 분들이 많았어! 해피 트리 프렌드의 러셀은 몰랐으면서!

하지만 그렇게 희망도 뭐도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하여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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