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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운티 크러쉬
내 입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나는 마리아를 보며 말했다.
"굉장한 실망을 주는데."
그 말에, 마리아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의 말에 마리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들어가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보지?"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 차가운 바닥에 앉아서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던 나는 마리아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머맨이랑 싸우고 나서는 잘도 선장모의 무게가 어쩌고, 몇십명의 목숨이 자기 손에 달린게 어쩌구 하다가. 이제 와서는 죽은 엄마 생각이 나서 못 죽이겠다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녀를 바라보면서 입에 파이프를 문 채로 차갑게 말했다.
"되게 가볍나본데, 그 선장모. 차라리 나한테 넘기지?"
그 말에 마리아의 굳었던 표정에 약간 금이 간다.
"아가리 조심해라."
댁이야 말로 입 조심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는 읊조리고 손을 뻗어서 마리아의 멱살을 잡았다.
"자기 선택으로 수십의 목숨이 오간다고? 다들 자신의 선택에 의존한다고?"
아예 그딴 말을 하지를 말던가. 그런 말을 한 여자가...! 나는 마리아를 멱살을 잡고 눈을 바라보면서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지금은 확신이 서지를 않네. 당신을 내 선장으로 계속 받들어야 하나."
내 눈 앞에서, 처음으로 마리아가 나보다 작아보이기 시작했고, 마리아가 처음으로 기세에서 나한테 밀리고 있었다. 나는 지금 그 정도로 기분이 더럽다. 그럼, 내가 죽였던 수많은 사람들은? 바다 아래로 쳐박은 새끼들은 다 뭐였는데. 그냥 그때마다 안 죽이고 불쌍하다, 봐주자 했으면 될 거 아니야!
"아, 그래. 저 의사 아가씨는 불쌍한 여자지. 누가 뭐래? 고민 하는 거야 사람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 사람 죽이는게 익숙해 질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근데, 당신이... 내가 타고 있는 배의 선장이라는 여자가! 하루 종일 고민해서 나온 생각이라는게... 엄마 생각나니까 죽이지 말자, 같은 애들 칭얼거리는 소리면 안되지. 마리아, 그 행동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 봤어?"
그녀의 멱살을 잡은채로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여기에 있는 녀석들이야 직접 저 카렌이라는 여자를 봤으니까 당신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다고 치자. 배로 돌아가서는 뭐라고 말할껀데? 너무 불쌍해서 살려줬다? 착해서 살려줬다? 아니면, 엄마 생각이 나서 살려줬다? 그딴 말이 통할 거라고 생각해? 선원들이 댁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 것 같은데 도대체."
말해봐 마리아. 네가 나보다 더 해적 생활을 오래했잖아. 불쌍해서 봐줬다는 웃기지도 않는 이유를 가져가서 배 위에서 핑계랍시고 흔들면. 선원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 것 같아?
씨팔, 그 동안 마리아가 가지고 있던 카리스마고 뭐고 다 사라지고. 불쌍하다는 이유로 모가지 따겠다던 상대를 용서해준 물러터진 계집애 하나가 해적선에 뚝 떨어지는거지. 카렌을 살려두는건 선한 선택이지.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사람 생각이라는게 순풍 단 범선이랑 똑같아서. 한 번 어떤 방향으로 생각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그쪽으로 떠밀려가는데. 한 번 마리아가 보기보다 무르네, 라는 인식이 배에 탄지 얼마 되지도 않은 녀석들 머리에 떠오르기 시작하면 통제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내가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멱살이 잡힌채로 마리아의 몸이 약간 뒤로 밀려난다. 나는 그녀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말했다.
"당신이 못 죽이겠으면, 내가 죽이겠어. 그리고, 나는 그 길로 이 당신의 배에서 떠날거야. 당신이 기분파인 거야 이해하고 넘어가지 못할 것도 아니지만. 자기 입 밖으로 내뱉었던 말들을 스스로 부정하는 이중적인 사람을 믿고 배를 탈 수야 없지. 카렌 시트러스의 죽음은 이별 선물이라고 생각해."
바다의 날개고 지랄이고. 내가 뭣하러 그렇게 피똥을 싸면서 이 여자랑 돌아다닌거야. 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실실 나오는 웃음 속에서 마리아의 멱살을 탁 놓고 파이프를 빨기 시작했다. 슬슬 내가 걸어온 길에 자괴감까지 든다.
"로제한테 사람 보는 눈 없다고 할 수도 없겠네. 선장이랍시고 같이 다니던 사람이... 그럴거면 나한테는 왜 처음에 사람을 죽이게 한 거야? 그냥 살려달라고 애원하면 죽이지도 않고 풀어줄 거면서. 그딴 개병신같은 각오를 나한테는 왜 하게 했냐고."
설명해봐.
여태동안 우리가 죽인 모든 사람들이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 사람이고, 불쌍한 사람이었는데 그냥 살려서 보내주지 왜 죽였어? 그 사람들한테서는 엄마 생각이 나지를 않아서? 나는 땅을 신발코로 한 번 팍 차고 마리아를 바라봤다. 마리아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한 마디 했다.
"일단, 한 대 맞자."
마리아의 작은 중얼거림과 함께 내 눈 앞이 싯누렇게 번쩍이면서 복부에 무시무시한 고통이 달렸다. 입 밖으로 절로 타액과 함께 커허, 하는 숨소리가 힘겹게 흘러나오고. 나는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리아의 손이 뻗어져서 내 멱살을 잡아 올려 눈을 맞춘다.
"선장한테 반말을 해? 배짱도 좋아라. 내가 순간 어이가 없었다, 레이먼드."
복부에서 올라오는 둔중한 고통 속에서도 나는 마리아와 눈을 마주치고 있기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리아의 얼굴이 다가와서 내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한 번 맞추었다.
"반말은 반말이고... 네가 한 말이 틀린 것 같지는 않아."
마리아가 내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풀고, 나를 바라봤다.
"신선하네. 정신이 번쩍 든다. 가끔 심심하면 해보라고."
아주 뒤지기 직전까지 두둘겨 패버릴테니까. 마리아는 말을 마치고 하늘을 잠깐 바라봤다.
"사람이 말이야. 길을 한 번 걸어가기 시작하잖아? 몇 번은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는거야. 아, 이 길 말고 다른 길을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그래, 시발 카렌을 동정하고 과거 생각이 나고 그래서, 내가 잠깐 가고 있던 길을 헷갈렸나보다."
그것도... 이걸로 끝이야.
마리아는 말을 하면서 나를 바라봤다.
"카렌 시트러스는, 오늘 밤 내 손에 죽을거야."
그리고, 마리아는 가만히 생각하고 있다가 곧 조용히 말했다.
"어쩌면, 이게 진정한 의미의... 내 신고식이네. 내가 처음 사람 죽인 이야기 해줬었던가?"
마리아가 처음 사람을 죽인 것은, 가까스로 훔치는데 성공한 음식을 다른 누군가가 강탈하려들 때, 실수로 죽인 것이다. 그녀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 이후에는, 그래.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 한동안 죽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았으니까. 자연스럽게 무뎌졌지. 아니, 애초에 무뎌지고 자시고 할 이유도 없었어."
마리아는 카렌의 집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 거부감이 없었으니. 당연히 고민도 별로 없었고. 누군가를 죽이기 전에 꺼려지는 마음이 드는 건 분명히 이번이 처음이야."
나는 바라보고 있었다. 마리아의 손과 눈이 떨리고 있었다. 분명히, 그녀는 동요하고 있었다.
마리아와 함께 다시 카렌의 집 안으로 돌아왔다. 우리를 보면서 왜 이렇게 오래 밖에 계셨어요. 라고 말하는 카렌. 마리아의 입이 소리가 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꽉 다물렸다.
잠시, 마리아가 눈을 감고 숨을 고른 다음에 그녀를 향해 다가갔고, 그 분위기를 눈치챈 선원들의 얼굴이 마리아처럼 덩달아서 굳기 시작했다. 그들도 이제 일어나게 될 일을 짐작하는 모양이지. 나는 팔을 꼰 채로 그 광경을 똑똑히 바라보고 있었다. 한 순간도 놓치지 않는다.
마리아가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무겁기 짝이 없었다.
"의사 아가씨.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반짝, 하는 빛이 잠깐 허공에서 일렁거리고, 마리아의 손이 카렌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카렌의 눈에 알 수 없다는 물음표가 생겼다가. 그대로 빠른 속도로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목을 핥고 지나간 단검으로 생겨난 깊은 상처가 벌렁거리면서 피를 쏟아내고. 마리아의 단검이 다시 한 번 빠르게 움직이며, 빡... 하는 소리와 함께 카렌의 이마를 뚫고 박혀들어갔다.
"최대한, 빨리 보내주는 것 뿐인 것 같아."
순식간이었고, 단검을 카렌의 이마에 박아넣은 손에서 힘을 풀고, 마리아는 카렌을 천천히 눕히고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한동안 카렌을 가만히 지켜보던 마리아의 입이 열렸다.
"Alles hat einmal ein ende.(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마리아는 영문을 모르고 죽은채로 아직 눈을 뜨고 있는 카렌의 눈을 조심스럽게 감겼다. 그리고 마리아 자신도, 눈을 감을 채로 약간 호흡을 진정시키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천천히 레인이 자고 있는 침대로 향했다.
나는 마리아에게 다가가서 아직 피가 엉겨붙어있는 단검을 들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고 눈을 마주쳤다. 마리아가 걸음을 멈추었다.
"정보를 넘겨준 한 명만 죽입니다. 그러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저 아이는 대상이 아니다.
"... 그래."
마리아는 단검을 바라보다가. 챙겨왔던 종이를 꺼내서 글을 써내려가고. 죽은 카렌의 시신의 가슴팍에 그 종이를 올려놓았다.
"로제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사람을 처음 죽일 때에 뭔 말을 중얼거리길래 참 감수성도 풍부하지. 하면서 비웃었는데 말이야."
마리아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카렌의 시신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나도 다를 건 없었나."
일을 마치고, 카렌의 집을 나선 우리들의 뒤편에서 이거놔!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말에, 뒤를 돌아보자. 거기에는 발목에 붕대를 감고 있는 선원이 우리를 바라보면서 소리치고 있었다.
"죽여야 할 필요는 없지 않았습니까! 다른 방법이 분명히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선원의 말에 마리아가 그를 보면서 말했다.
"지랄을 하고 있네. 해적 새끼가. 애초에 우리가 여기에서 왜 내렸었는데."
마리아의 말에, 잠깐 주변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마리아는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쓸어넘기며 그를 바라봤다.
"저는, 배에서 내리겠습니다. 선장같이 몸에 차가운 피가 흐르는 사람과는 함께 배 못 타겠습니다."
남자의 말에, 마리아가 그를 바라봤다.
"나는 분명히 말했어. 배에서 내릴 때 부터. 우리는 카렌 시트러스라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여기에 온 거라고."
그리고, 니가 배에 타기 전에 경고도 분명히 했었지. 마리아는 그를 바라보면서 한 마디를 더 했다.
"내 배는, 길거리에서 돈 주고 맘대로 올라탔다가 내릴 수 있는 창녀가 아니다. 내리고 싶으면, 죽어서 내려."
그 말에, 선원이 침묵했다.
"지금 단검으로 스스로의 목을 그어. 죽은 사람은 내 배에 필요 없으니 배에서 내려도 괜찮아."
마리아는 말을 마치고 나서 계속 걸어가기 시작했다. 침체된 분위기. 마리아가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씨팔. 배에 가서, 뒤지기 직전까지 취하고 싶네."
어, 나도 그랬었고 로제도 그랬었지. 나는 입을 열었다.
"술 상대는 해드릴 수 있습니다만."
그래주겠어? 라고 마리아는 말한 다음 바위를 타고 내려가서 조각배에 올라탔다.
해적 선원 하나는 우리에게 다른 방법이 있었을 거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랬을지도 모르지. 흔들거리는 바다, 하늘을 더럽게 맑고 바람은 오늘 밤 따라 더럽게 차갑고.
우리는 오늘 공짜로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맹인 아들이 있는 마음씨 고운 갈색머리 미망인을 죽였고.
술 한 번 더럽게 잘 들어가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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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많았지만...
생각했던 데로 올리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