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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운티 크러쉬
선장실 안에서. 나와 마리아는 술병을 들고 있었다. 저녁에 잠깐 술을 마셨지만. 그 술은 다 깨버린 상태. 나와 마리아 앞에 널부러져 있는 1.5 리터 들이 럼주병이 다섯개다.
"... 마리아."
내 말에, 마리아가 한 손을 들었다.
"아니."
...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요.
"괜찮으십니까? 라고 물어보려고 했잖아. 하나도 안 괜찮아 씨발."
다시, 잔 위에 술이 차오른다. 그렇게 퍼마시고 있는데 마리아는 혀 한 번 꼬이는 일 없이 굳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술잔을 쭉 들이킨 마리아가 나를 본다.
"어떻게, 아무리 쳐 먹어도 취하지를 않냐. 진짜... 짜증나는 상황이네."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술이 목구녕을 넘어가는게 아니라 어디 다른 곳으로 가는 것 처럼. 마셔도 취하지를 않는다.
"그 레인이라는 맹인 아이. 어떻게 될까?"
마리아의 중얼거림에. 나는 대답했다. 장님 아이가, 어머니도 없이 혼자 남았다. 뻔한 끝이 기다리고 있겠지.
"굶어 죽겠지요."
마리아가 나의 대답에 고개를 들어 나를 노려보다가, 술병을 하나 손으로 잡고 그대로 쭉 들이켰다.
"카렌이 정보의 제공자가 아닐 수도 있지 않아?"
그 말에 나는 대답했다.
"저희는 보복을 위해서 카렌을 죽인게 아닙니다. 만약에, 카렌이 정보의 제공자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개새끼들에서 진짜 나쁜 개새끼들이 되는 거지요."
다만 그 뿐이다.
우리는 카렌을 본보기 위해서 죽인 것이다. 실제로 정보제공을 했든 하지 않았든 중요한 건, 로제가 보낸 정보를 제공한 사람들의 명단에 카렌의 이름이 있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이름이 적혀있으면 무조건 죽는다는 공포를 심어주기 위한 행동이었고. 로제가 확보한 명단에 그 이름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카렌을 죽여야만 했다. 앞으로도 변화는 없다. 설사 진짜로 정보를 제공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명단에 이름이 올라와 있다는 것 만으로도 죽는다는 메시지의 전달.
"... 마음의 위로가 되주지를 못하는 술상대구나."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존나게 나쁜 짓 하고서는, 무슨 마음의 위안입니까? 저랑 마리아 머리맡에는 죽은 카렌의 영혼이 지옥에 떨어질 때까지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을겁니다."
평생 달고 가겠지. 나는 아직도 내가 죽인 그 선장의 눈동자가 잊혀지지를 않는다고. 마리아가 다시 솔을 마시면서 말했다.
"다음은?"
다운호른 항구, 세레나 에버힐. 항구라는 이름이 붙었으니까. 치안도 좋을테고, 마리아의 얼굴이나 이름 정도는 꽤 알려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마리아는 조용히, 낮게 말했다.
"그 여자도 뭐 구호활동 하거나 그러지는 않겠지?"
... 글쎄다. 그건 가 봐야 알 일이겠지. 나는 술잔을 들어서 내용물을 비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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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자신의 집 안에 혼자 있었다. 가만히,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는 사람들과, 안타까움에 탄식하는 소리, 힘내라고 격려해주는 사람들. 몇몇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시각을 잃은 대신에 민감해진 아이의 귀에 들려온다.
"끔찍한 일이야. 시트러스 양이..."
차라리,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고 아무도 아이에게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으면. 아이는 자신의 앞에 떨어져 있는 잔혹한 현실을 조금이나마 뒤로 미루어 둘 수 있었을 텐데. 한때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이 방 안에는 온갖 사람들이 와서 온갖 소리와 온갖 냄새를 잔뜩 풍기며 자신들도 의미를 제대로 모르는 위로의 말 따위를 아이에게 해주거나, 자신들의 부모를 잃기라도 한 것 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사랑하는 나의 엄마는 왜 죽어야만 했나. 그 이유에 대해서 레인은 한참을 생각해보았지만. 여전히 레인은 이유를 몰랐다.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그저, 네 어머니는 좋은 곳에 가셨단다. 라고 말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게 전부였다. 너무나도 궁금한게 많았지만,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레인은, 지쳐서 사람들이 사라질 때 까지 가만히 있었고. 그런 레인의 마음을 이해도 못하는 사람들은 가끔씩 레인의 머리를 쓰다듬고, 간단한 음식거리들을 챙겨와 건네주고 갔다. 그래도, 자신의 슬픔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그 손길들은 나름대로의 온정을 품고 있었고, 가져다 준 음식들도 나름의 정성이 들어있었다.
모두가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 아이는 우리가 책임지고 돌봐주자고.
레인은 생각했다. 엄마가 생각하고 있던 것이 맞았구나. 선의로 세상을 살아가면 그 빛은 언젠가 모여서, 선의로 다시 사람들을 비추어주는구나. 돌아가신 엄마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아프게 가슴에 박혀 쉴 틈 없이 레인의 가슴을 부수고 있었지만. 죽어서까지 사랑받고 있는 어머니에게 레인은 마음 한 구석에서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
나는 비록 눈도 보이지 않지만,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랬던 것 처럼. 나도 맹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로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살겠어.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사람들이 레인을 불쌍하게 여기고 엄마의 죽음에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 몇 년이라도 지난 것 처럼 뜸해졌다. 따뜻한 말 한 마디 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아무도 레인을 돌보지 않았다. 불과 한 달 만에, 레인은 방안에 혼자 남아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능한 어린애가 되었다.
문자 그대로, 레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들이 이 집 안으로 찾아오는 경우는 없었고. 아껴먹고 있던 음식은 날씨가 추워지는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못먹게 되어버렸다. 레인은 식사를 하지 못했다. 몸은 점점 야위어가고, 누구도 덥혀주지 않는 방은 항상 차가웠다. 추위를 견디지 못해서 불을 피워보려고 일어났던 레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꽃을 어떻게 피우고, 집 안에 장작이 어디에 있고...
레인이 눈 앞이 보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린 아이가 알 수 있다고는 생각하기 힘든 지식들을, 혼자 사는 아이에게 세상은 강요하고 있었고 당연히 레인은 따라갈 수 없었다. 레인은 굶주림으로 바짝 말라붙은 몸으로 이불을 뒤집어 썼다. 춥고, 배고프고, 아프고, 슬프다.
서러웠다. 너무나도 서러워서 눈물도 나지 않을 정도로. 서럽고 화가 났다. 한달이라고, 고작 한 달. 어머니가 그렇게 몇 년이고 배풀었던 그 선의와 호의는 한달이면 사라지는 하찮은 거였다고! 귀뚜라미가 울다가 멈추기를 30번 정도 하고나자, 누구도 레인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밤, 이제는 자신 뿐인 방 안에 있던 레인은 생각했다.
어째서, 어째서 죽은 거야. 착하게, 선하게 살고 있던 엄마다. 어린 레인이 느끼기에도 자신의 어머니는 한없이 선량했고, 모든 사람들이 좋아했었다. 그런데, 어째서 죽어야만 했던거야. 엄마는 말하곤 했잖아. 선의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도 너를 선의를 가지고 바라볼 거라고!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면, 그 선의는 반드시 모여서 돌아올 거라고!
그 선의가. 레인이 사랑하는 어머니가 이 마을 사람들에게 베풀었던 그 대가없던 끝없는 사랑과 호의와 선의는 한달만에 삐쩍 말라서 기침하며 죽어가는 레인으로 보답받고 있었다. 이게 나의 어머니가 돈도 받지 않으면서 찢어지게 가난해도 치료할 사람들을 치료할 약부터 먼저 구입한 대가란 말이야? 한달만에, 고작 한 달 만에 누구도 집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먹을 거 따위가 문제가 아니다. 방 안은 차갑고 레인 이외에는 누구도 카렌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코를 찌르는 생선 비린내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계절이 겨울로 접어들고 있을텐데. 민감한 레인의 몸에 엉겨붙는 축축한 습기. 물방울이 맺히고 떨어지는 소리. 레인은 보이지 않는 눈을 들어서 주변을 살피는 걸 그만두고 귀를 세우고 그 소리들을 듣고 있었다.
- 복수를 원하니. 불쌍한 아이.
그 목소리는, 축축하고 어둡고 불쾌했다. 온 몸에 축축한 해초가 엉겨붙는 것 같은 목소리. 등골에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끼면서 레인은 몸을 한 번 떨었다.
- 이게 결과란다. 남에게 베풀고, 아픈 사람을 치료하던 네 엄마의 최후. 이름도 모르고 어디에 사는지도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목을 베이고, 이마에 칼이 박혀 죽는 최후.
누구도 레인에게 말해주지 않았던 사실을 지금 저 축축한 목소리가 말해주고 있었다. 보이지 않던 레인의 눈에 욱신거리는 고통이 달리고, 천천히 어두운 방 안이 보이기 시작했다. 레인이 처음으로 보는 세상.
아이의 눈에 들어온 세상은, 축축하게 물기가 잔뜩 엉겨붙어있는 벽과 시체 썩는 냄새같이 진한 비린내. 그리고 일렁거리는 그림자였다.
그림자는 손을 뻗어서 레인의 손을 잡았다.
- 이게, 너의 어머니에게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풍경이 바뀐다. 거기에는 레인이 누워서 자고 있고. 자신의 어머니가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미소짓고 있었다. 처음으로 보는 어머니의 얼굴. 그 밤색의 머리카락과 반짝거리면서 선의로 빛나는 눈동자. 처음으로 바라보는 어머니는 눈부시게 아름답구나. 레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금발의 여자가 들어온다.
어머니의 목을, 반짝이는 빛이 스치고 지나가고, 아직 영문을 모르고 목덜미에서 피를 흘리는 어머니. 이마에 박혀들어가는 단검.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엄마, 옆에 놓인 쪽지. 레인은 그 쪽지를 읽기 시작했다. 레인은 글자를 몰랐다. 하지만, 글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 글은,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 처럼 선명하게 레인의 귓 속으로 의미를 속삭였다.
[마리아 해적단이, 해적들의 정보를 아이리 공화국에 제공한 카렌 시트러스에게 죽음을.]
그 단어를 이해하고 레인의 눈에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그게, 그게...
나의 사랑해 마지않는 엄마가 죽어야만 하는 이유였어. 그 동안 살려낸 사람이 몇 명이고, 다친 사람을 몇 명이고 치료하던 어머니가 죽어야 하는 이유는 반란도 살인도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축축하고 어두운 방 안으로 레인은 다시 돌아왔다.
- 힘이 필요하니, 복수를 위한 힘. 죽음은 슬프지만. 너의 어머니는 틀렸어. 선량한 행동은 쌓이지 않는단다.
목소리, 축축한 습기, 비린내.... 그림자는 레인을 향해서 손을 내밀고 있었다.
레인은, 손을 뻗어서 그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저 깊은 바다 지독하게 차가운 심해 속에서 악마들의 몸을 꿰뚫은 채로 그들을 묶고 있던 사슬들 중 하나가 박살나 떨어져나갔다.
남아있는 사슬은 두 개. 사슬들에 꿰뚫려 있던 사람 형상을 하고 있는 녹조류의 덩어리가 꿈틀거렸다.
- 아아, 저 정도면 왕관을 올려주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 말에 다시 목소리가 들린다.
- 동의하지만, 아직 두 개의 사슬이 더 남았다.
마저 보고 판단하도록 하지. 더 깊은 광기, 더 깊은 분노, 더 깊은 절망을 찾아보자고.
- 인간의 감정에는 바닥이 없는 법이니까 말이지. 그나저나, 간만에 농사 한 번 제대로 지었군!
그 말에 쇠사슬에 묶여 있던 악마들이 모두 킬킬거리면서 웃었다. 그 게렛 어촌의 사람들은 당연히 카렌을 까먹었다. 그렇게 되기로 정해져 있던 일이다. 지금은 아마, 그런 여자가 존재했다는 사실도 잊혀졌겠지. 바다에 묶여있는 악마들은, 카렌 시트러스가 죽을 때 레인의 몸 안에서 찬란하게 피어날 악의의 씨앗을 보았다. 그냥 버려두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그 가능성과 미래가 충분한 씨앗.
그것을 살려내기 위해서 지난 한 달 동안, 구속된 상태에서 제한된 힘과 능력을 활용해서 끊임없이 사람들의 머릿 속에서 카렌 시트러스에 대한 기억을 흐리게 만들었다.
- 우리는 예정된 결말을 앞당겼을 뿐.
그 꽃은 피어나고야 말았으리라. 그들이 한 것은, 이미 일어나기로 되어있는 일들을 앞당겼을 뿐이다. 언젠가 사람들은 레인에게 보여주던 선의의 관심을 거둘 것이다. 그것이 반년 뒤이든, 1년 뒤이든. 한 달 뒤이던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바다의 악마들은 다만, 더 빨리 열매를 맛보고 싶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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