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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99화 (99/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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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운티 크러쉬

바다의 날개가 좋은 점이 몇 가지가 있지만. 그것들 중에 최근에 찾아낸 게 하나 있다. 내가 타고 있는 바다의 날개는 지금, 내가 한 때 잠깐 들러보고 어마어마하게 소름이 끼쳤던 그 장소에 머무르고 있었다.

사해 무풍지대. 여기에 누가 들어올 수 있는데?! 방랑자야 바다 아래에서 돌아다니니까 바람 없어도 돌아다닐수 있다고는 해도. 여기는 무지무지하게 넓은 무풍지대다. 이 행성에서 아마 제일 클 걸? 진짜, 엄청나게 넓다고. 배 한척으로 여기를 다 뒤져서 우리가 타고 있는 이 배를 찾을 확률은 한 없이 영으로 수렴한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원할 때 밖으로 나가서. 목적지를 향해 달려 갈 수 있다.

이 거대한 죽음의 바다가 우리에게는 한 낱 개인 휴식실 같은 느낌이다. 여기에서 틈 보고 시간 괜찮으면 그대로 튀어 나가서 바다의 날개를 시속 40노트로 하루 종일 때려박으면 로른해 근처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우리가 이곳을 나가기 전까지 다른 범선 타고 있는 친구들이야 열심히 로른 해를 뒤지고 다니겠지.

그러는 동안에, 도리안을 비롯해서 바다의 담요와 새 면도날, 럼보틀 만에 있는 해적들은 우리가 미리 붙여놓은 명단을 보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정보 제공자와 현상금 사냥꾼들을 공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라고 거의 쉬지도 않고 여덟 명을 죽였던 거니까.

지금쯤 아이리 공화국의 해군 놈들도 정신이 없을 것이다. 로제가 명단을 훔치는 것과 관련이 지금의 사태에 관련이 있다는 것 정도는 진작에 눈치를 챘을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를 잡던지, 로제를 잡던지 해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지.

현재까지 로제가 확보한 명단은 두 개. 로제가 계속해서 보내주는 이름들은, 이제야 첫번째 명단을 끝낼랑 말랑 하고 있다고 그녀가 쪽지를 보냈다.

멍하니 있는데 저 멀리에서 빙빙 돌던 매 한 마리가 마리아의 어깨에 턱 하고 앉았다. 그 다리에 메어져 있는 쪽지.

[네르펜 항구는 건너뛸게요. 이번에 보낸 쪽지로 첫번째 명단은 끝났어요.]

그리고, 그 아래로 적혀져 있는 수많은 이름들. 마리아와 나는 명단을 체크해서 옮겨 적기 시작했다.

자 그럼... 다음 목표들도 정해졌고! 나는 머리를 몇 번 흔들고는 선원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준비해라. 바다의 담요로 돌아간다."

말을 마친 나는 그대로 러셀의 검을 잡고 돌려 속력을 높였고. 우리의 배는 빠른 속도로 무풍지대를 벗어나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와중에도 내 머리는 계속해서 굴러가고 있었다. 에밀이 그냥 어중떠중한 멍청이라면 상관없겠지만. 꽤나 머리가 돌아가는 친구라고 한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하려고 할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항해사실로 들어가서 깃펜으로 빠르게 쪽지에 글을 쓴 다음 매에게 달아서 날려보냈다. 내가 에밀의 위치에 있다고 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나는 고개를 돌려서 마리아를 바라봤다.

"녀석들이, 명단에다가 함정을 파놓을 가능성도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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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을 만들면 되겠군."

에밀은 혼자 입을 열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현재까지 도둑맞지 않은 명단을 소유하고 있는 수령소에 있는 명단에, 열 명 정도의 사람을 가짜로 적어놓는거지."

녀석들이 그 명단에 의존해서 정보제공자들과 해적 사냥꾼들을 제거하고 있다면 그 명단에 장난을 치는 방법이 상책이다. 그리고, 그 명단에 적혀 있는 가짜 위치에는 해적 몇 명 온다고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을 리 없을 정도의 병력을 배치해놓으면 된다.

녀석들은 양을 노리고 있는 늑대고. 에밀은 그 늑대에게서 양들을 지켜야 하는 양치기다. 양들이 풀을 뜯는 장소의 경계를 튼튼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예 늑대를 죽여버리는게 최고지. 당분간의 양들이 죽어나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진짜 양들 사이에 숨어있는 가짜를 물게 된다면.

그때가 그 잘나신 바다의 날개와 여해적의 끝이다.

에밀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독한 위스키를 한 잔 따라 마셨고, 눈 앞에서 알몸으로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고, 심한 상처에는 허연 뼈까지 드러나보이는 여자를 보며 웃었다. 짐승이 따로 없구만.

"한 잔 줄까?"

그리고 에밀은 여자의 흉터에 독한 술을 들이부었고, 상처를 헤집고 들어가는 독한 알콜이 주는 고통에 신음했다. 그걸 보면서 에밀은 무심하게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눈을 마주친 채로 말했다.

"내가 직접 상처를 소독해주는데, 뭐 할 말 없나?"

에밀이 말을 마치고 물건을 던지듯이 여자의 머리를 집어던지자, 여자의 머리가 벽에 한 번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부딪친다. 이마가 깨져서 피가 흘러내리는 여자는 고통에도 허겁지겁 에밀에게 기어가서 그의 구두코를 핥으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에밀은 자신의 구두코를 핥는 여자를 보면서 생각했다.

사람이라는 건 신기하기도 하지. 자신도 역시 피와 살로 이루어져 있는 눈 앞에서 혹시 또 아픈 일이 생기지 않을까 부들부들 떠는 이 여자와 같은 종이지만. 사람이라는 것들은 어찌나 이렇게 연약할까. 어쩜 이렇게 쉽게 망가질까.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작은 개가 사람에 비해서 차라리 강단이 있고 튼튼했던 것 같다.

개들은 두꺼운 쇠몽둥이로 몇 시간을 두들겨 패도, 묶고 있던 끈을 풀어주면 도망가려고 절뚝거리고, 일주일을 넘게 때려서 끈을 풀어도 도망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는데도 싯누런 이를 드러내면서 으르렁 거렸는데 말이지. 도대체가 사람이라는 것들은 이틀 정도 주물러주면 그렇게 없으면 못 살 것 처럼 굴던 자존심이고 인격이고 다 버리게 된단 말이지. 눈 앞의 이 여자도 한 때는 오페라 공연에서 요정의 목소리를 가졌다고 평가받던 촉망받던 디바였지만. 이렇게 망가지는데 이틀도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재미있는 건지도 모른다. 여자라서 그런걸까, 라고 생각해서 남자를 가지고 논 적도 있었지만, 그들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처음에는 욕을 하고 저주를 하다가 점차 목소리에 힘이 빠지고 눈에 공포가 깃들다가. 한 때 사랑하던 자기 아내를 죽이라는 명령도 선선히 따르곤 했으니까.

에밀은 엎드려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여자를 보다가, 양 손으로 큼지막한 작두를 하나 가져왔다. 그 행동만으로 여자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 처럼 몸을 계속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간단한 게임 하나 해볼까. 네가 네 손으로 하나를 자르는데 성공하면... 풀어주지."

그리고, 에밀은 모래시계 하나를 가져와서 작두 옆에 엎어두었다. 그리고, 여자의 피와 오물이 엉겨있는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면서 섬뜩하게 웃었다. 어두운 지하실 안에, 번쩍이며 빛나는 에밀의 눈과 새하얗게 빛나는 이빨들이 드러난다.

"이 모래시계가 다 떨어질 때 까지 안 자르면. 내가 다 잘라버린다."

모래시계의 유리 바닥에 모래가 떨어지는 소리가 사르르르르 하고 들릴 정도로 지하실 안에는 적막이 찾아왔고. 여자가 부들부들 떨면서 그 작두에 자신의 왼손을 올려놓았다. 에밀의 눈에 빙글거리는 웃음이 담기고. 아이같은 장난끼가 번진다.

턱, 하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지는 여자의 비명소리. 에밀은 그 소리가 들리는 와중에도 모래시계를 쳐다보고 있었다.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지자 에밀은 피가 흘러내리는 여자의 손을 잡고 작두에 가죽끈으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제가! 제가 자르면 된다고 했잖아요! 저는 시키는 대로 했어요 주인님!"

그 말에 에밀이 무심하게 여자를 바라보면서 한 마디 했다.

"난 손가락 말한거였는데 말이지. 바보구만 그래."

다시, 지하실에 비명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에밀은 양동이에 받아져 있는 물로 손을 닦으면서 얼굴을 구겼다. 아, 이걸로는 부족하다. 어떤 일을 해도 만족스럽지가 않아. 방금 전 에밀의 눈은 앞에서 비명지르던 그 가축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자신의 앞에서 비명지르고 있는 그 여자의 모습에 계속해서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검은 머리카락이 피와 때에 절어서 고통스럽게 비명지르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자신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로제가 겹쳐보이고 있었다.

그래, 그 로제 발미온이 더 이상 귀족이 아니기에, 그가 원하는 것들을 모두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부터 쭉 이 상태였다. 계속해서 자신을 덮치는 허기도, 아무리 취미생활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이 구멍뚫린 것 같은 공허감. 매꿔도 매꿔도 계속해서 이게 아니라고 그에게 소리치는 마음은 계속해서 하나의 여자를 바라고 있었다.

로제 발미온. 에밀은 그 소녀가 고통스럽게 소리치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다. 며칠이나 걸릴까? 다 망가지고 나면 어떻게 될까? 망가지는 동안에 무슨 말을 할까? 어떤 비명을 지르고 어떻게 애원할까? 아픈걸 더 괴로워 할까, 더러운걸 더 괴로워 할까. 아니지, 한 때 귀족이었던 아가씨니 수치심에 약할까? 무슨 표정을 지을까?

어떨까? 어떨까? 에밀은 자신의 몸 안에서 끓어오르는 이 전율하는 광기 속에서 단단하게 피가 몰려 있는 자신의 남근을 바라봤다. 상상만으로도, 에밀의 심장이 쿵쿵 뛰면서 머리 속이 하얗게 변한다.

아, 이것도 집착이라고 한다면 집착이고... 이것도 사랑이라고 한다면 사랑이겠지. 에밀 메이너스는 로제 발미온에게 첫만남 부터 반해있었으니까. 에밀 메이너스라는 괴물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고 추잡하고 악마적으로 로제 발미온을 사랑해 마지않고 있다. 누구도 받아주지 않을, 악마들도 따라맞춰줄 수 없을 정도의 격하고 잔인한 짝사랑을.

============================ 작품 후기 ============================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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