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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110화 (11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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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무중

에밀의 함대가 바다의 담요 인근의 해역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밤이 되어가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에서 휴식을 취하고 내일 해 올라올 때부터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 바다의 담요에 그날 오후에는 도착 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 에밀은 여기에서 하루 머문다, 라고 명령을 내리려다 입을 다물었다. 안개가 밀려오고 있었다.

빠르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저 멀리에서 뭉클거리며 쏟아져내리는 새하얀 안개의 쇄도는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입을 벌리게 만드는 장관이었다. 바람과 함께 흐물거리며 밀려오는 안개는 채 대응할 여유도 주지 않고 에밀의 함대를 집어삼켰다.

"... 시작되었군. 생각보다 훨씬 빠른데."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바다 위에서의 싸움이라는게 양 쪽이 언제 몇 시에 만나서 어디 가자고 정해놓고 즐기는 데이트 같은 것도 아니고. 싸우는 장소가 해적들의 근거지 일대라고 한다면, 근해에 입장한 이상에는 언제든지 싸움이 벌어져도 신기할 것이 없다.

"장소는 우리가 선택했지만, 시간은 저쪽이 선택한 모양이군."

밤이라고 하지만, 상황은 나쁘지 않다. 항해 와중에도 가능하면 선원들이 쉴 시간을 보장했기에, 당장 싸운다고 해도 피곤에 쩔어있는 선원들은 없다. 에밀은 주변을 슥 훑어보았다.

"그나저나, 정말 지독한데."

코 앞이 보이지 않는다. 조타륜이 위치한 곳에서 갑판에서 일하는 선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는 에밀의 호흡에 따라서 살짝 일렁거리고는 있지만.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고수하기 위해서 꾸역꾸역 다시 밀려든다.

이 정도였다고 한다면, 카멜롯 왕국과 아이리 공화국의 함대가 당했던 것이 이해가 간다.

그리고, 전방에서 펑, 하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퍼지고. 주변의 함대들이 땡땡땡 하는 비상종을 울리면서 전투 준비에 들어간다. 그걸 확인한 에밀이 곧바로 외쳤다.

"대응하지 마!"

에밀의 말에, 그의 기함에 있는 거대한 북이 빠른 속도로 두들겨지고. 이내 주변의 함선들이 그 박자에 맞춰서 북을 두들기기 시작하자, 배들은 모두 비상종 흔드는 행위를 멈추었다. 공격하면 안된다. 에밀이 서늘하게 웃었다. 들린 대포 소리는 고작 서너 번. 한 척의 배로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는 소음이고. 그 이후에 포성은 전혀 없다.

"애들 장난같은 수법을."

에밀이 그렇게 안개 속에서 크게 동요하고 있지 않을 때. 그 안개 지대 밖에서는 레이먼드가 실실 웃고 있었다.

"에이, 이 정도에 낚이지는 않는건가."

상관없겠지. 설마 저걸 가지고 포탄을 낭비할 거라고는 생각 안했지. 중요한건, 소리가 들릴 때 마다 계속해서 방향이 조금씩 바뀔 것이다.

안개의 미아가 만들어내는 안개는, 자성이 있어서 나침반을 병신으로 만든다. 전에 있었던 해전에서는 유용하게 써먹지를 못했지만.

"몇 번만 더 주변에서 포성 들려주고 거기에 맞춰서 조금씩 반응하다보면 지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헷갈리기 시작할 걸."

다만, 세상 만사가 그렇게 레이먼드한테 유리하게 돌아가지는 않는 법이다.

안개 안에 있던 에밀이 주변에서 가끔 울리는 포성에 귀를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좌로 한 작대기. 방향 틀어지고 있다."

이 안개에 둘러싸인 채로 원거리 항해를 한다고 하면 모를까. 이미 바다의 담요 근해에 들어선 이상 다른 항해 용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방향을 어느정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은 에밀에게도 있었다.

덕분에 레이먼드가 약간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에밀의 함대가 들어가 있는 안개 덩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 이건 조금 의외인데."

안 당하잖아. 일 참 성가시게 돌아가네.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의 쓸데없는 잔재주는 필요가 없겠어. 레이먼드가 옆에 서 있는 마리아를 보고 말했다.

"시작하시죠."

그러자. 라는 말과 함께 마리아가 바다의 날개 옆에서 둥실거리며 떠 있는 거대한 배의 덩어리를 보며 외쳤다.

"빨간 깃발 올리자, 도리안!"

잠시 뒤에, 안개의 미아 메인 마스트 꼭대기에 달려있는 졸리 로져 바로 아래에 붉은 기가 휘날리기 시작했다. 붉은 기가 의미하는 건 하나다. 그 깃발을 확인한 배들은 그대로 안개 속을 향해서 불꽃과 함께 함포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포성과 함께 쏟아지는 쇠구슬들이 안개 속으로 빨려들어가듯이 사라지고, 배가 부서지는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레이먼드가 그 안개를 바라보면서 피식 웃었다.

"팡야!"

수십, 수백발의 포성 속에서 에밀은 재빠르게 상황을 판단하고 얼굴을 구겼다. 포성이 들리는 곳이!

"... 뒤편인가!"

안개로 눈을 가리고, 앞에서 깔짝거리면서 신경쓰게 하고서는, 그 사이에 뒤편에 돌아가 있었던 모양이지. 아니, 간격을 생각해보면 이미 녀석들은 뒤편에 자리잡고 있었다.

아직 괜찮다. 약간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문제될 것은 없다. 우리도 녀석들을 볼 수 없지만, 녀석들도 안개 안에 들어있는 우리를 제대로 볼 수는 없다. 포격이라고 한다면 어차피 적중률은 둘 다 떨어져. 에밀은 보이지 않는 와중에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는 소리를 듣고 외쳤다.

"전열 뭉게지 말고, 그대로 대응사격 준비해라!"

미나 웨스트우드, 도대체 밑에서 뭐 하고 있는거냐, 지금 쯤이면 이 안개는 정리를 봤어야 하잖아. 에밀의 얼굴에 약간 짜증이 어리기 시작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미나 웨스트우드라고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이미, 미나는 아이리 공화국의 함대 뒤편에서 해적들이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해수면 아래에서 보이는 것은, 위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니까. 그리고, 어떤 배가 안개의 미아인지도 파악이 끝났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이게 도대체...?"

방랑자의 선체에서 쏘아져 나간 와이어들은 안개의 미아를 강하게 붙들었지만.

끌어내려지지가 않는다. 미나 쪽에서도 지금 기를 쓰고 안개의 미아를 당기고 있었지만 움직일 기세가 없다. 자신이 맡고 있는 역할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미나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노릇이었다. 긴장한 가운에데 미나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앞에서 일렁거리며 주변 상황을 보여주는 액체들을 응시하며 방랑자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네 개의 와이어가 안개의 미아 선체에서 떨어져 나와 방랑자의 선체로 회수된 다음, 바다의 아래쪽을 향해서 쏘아져나간다.

바다 밑바닥을 꽉 잡은 네 개의 와이어를 당기면서, 다시 안개의 미아와 연결된 채로 잠수하려고 하지만...

"뜯어져 나갔어?!"

이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와이어가 잡아 당기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안개의 미아 선체가 한 움큼 뜯어져 나간다. 해수면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는 미나는 계속해서 안개의 미아를 붙들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아마, 해수면 위에 하나의 거대한 배 처럼 개조되어있는 열 두 척의 배를 보았다면 미나는 차라리 안개의 미아를 포기하고 다른 배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으리라.

안개의 미아 위에서는, 도리안이 부르르 몸을 떨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방랑자가 안개의 미아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알고 있고, 배 아래쪽이 뜯어져 나간 것도 알고 있다. 그 긴 세월동안 자기와 함께 해온 안개의 미아가 치료될 거라고 해도 무력하게 당하는 모습을 도리안이 견디기는 쉽지 않았다.

안개 속으로 해적들이 불꽃과 함께 쏘아낸 포탄들이 날아들어가고, 그 포탄들을 다시 안개가 내뱉는 것 처럼 수십발의 포탄들이 다시 안개를 뛰쳐나와 해적들의 배를 향해 쏟아진다. 부서지는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소리, 솟구치는 연기가 안개 속과 바깥에서 동시에 펼쳐진다.

레이먼드는, 배의 속도를 늦추면서 말했다.

"그럼, 이 틈에."

조타륜을 휙 돌리고, 거기에 맞추어서 물대포가 한 쪽으로 쏠리는 바다의 날개 균형을 빠르게 잡아낸다. 정면에 보이는 안개의 미아를 포함한 거대한 배 덩어리에 레이먼드가 외쳤다.

"저희는 이제 뒤로 빠집니다!"

말을 마친다음, 바다의 날개는 빠르게 전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달리는 배 안에서 레이먼드는 턱을 쓰다듬었다.

"아무리 그래도 방랑자가 너무 안개의 미아만 물고 늘어지는데."

아직까지 다른 배들이 아래로 빨려들어가는 일이 없는 걸 봐서는 방랑자는 아직 뭔 일이 일어나는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인데? 바보가 아니라면 안개의 미아가 다른 배들과 묶여있는 상황을 보고 나면 포기하고 다른 배들을 잡아당기는게 정상이다. 근데도 아직도 저 거대한 뱃덩어리를 물고 들어진다는 건...

"설마, 해수면 위에서 뭔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르는 건가?"

그러면 확실히 안개의 미아만 물고 늘어지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얼마 더 시간이 지나면 방랑자도 안개의 미아를 포기하고 차라리 다른 배들을 사냥하려 들겠지.

레이먼드가 바깥에서 공격을 하는 동안 에밀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뭔 일이 일어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안개의 미아를 방랑자가 무력화하는데 실패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 안개는 없어지지 않는다고 봐야겠지.

어떤 수를 써서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에밀은 상황을 파악하고 나서 명령을 전달했다.

"포격을 중지하고, 이후로는 상대의 포격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 하는데 집중해라!"

배 위에서 북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북소리를 알아들은 다른 배들도 마찬가지의 북소리를 내면서 배 사이의 간격을 벌리기 시작한다.

어차피 명중률이 서로 떨어지는 포격이다. 녀석들이 쏟아붓는 이유는 전력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발악일 뿐이니. 거기에 맞춰서 춤을 출 필요는 없다. 결과적으로 녀석들은 보유하고 있는 포탄을 전부 안개 속으로 쏟아넣고 나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안개 속으로 직접 들어와서 백병전을 하겠지. 그 때 대포를 미리 장전해 놓고 있다가, 발사하면 될 일이다.

============================ 작품 후기 ============================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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