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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싱!
다른 녀석들을 나중에 만나게 된다면 뭐라고 설명을 해야 좋을까. 우리는 머맨의 부탁을 들어주는 와중에 콧물 덩어리랑 싸웠다고 할 수는 없잖아. 뭐라고 해야하나, 간지가 나지를 않는단 거지. 하고 많은 것들 중에 왜 콧물이야. 하다 못해 거대하고 잔인한 유전자 변형 고래라던가, 상어 무리라던가... 그런 거랑 싸우면 안되냐.
그건 술집에서 자랑이라도 할 수 있지!
우리는 바다의 날개를 섬 근처에 정박시키고, 섬을 바라봤다. 오히려 섬 자체는 굉장히 평화로운데. 우리의 시선에 배 한 척이 들어온다.
"... 누가 여기 먼저 온 모양인데."
마리아가 선원들에게 눈짓을 보내고, 돛단배를 이용해서 우리는 섬에 상륙했다. 로제가 주변을 슥 훑어보고는 바닥에 찍혀있는 발자국을 가리키며 말했다.
"상대는 다섯 명이에요. 도착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요."
로제의 말에, 마리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뒤를 보며 말했다.
"레이먼드, 선원들과 함께 돌아가서 배를 지켜. 무슨 일 생겼을 때 배를 움직일 수 있는 건 너 뿐이잖아."
그 뒤로 더 할 말이 있기는 하겠지. 그래도 애써 저렇게 포장해주는 걸 보니 마리아도 시간이 지나면서 배려라는 감정이 생긴 모양이다.
"게다가, 너는 싸움에 솔직히 도움도 안 되는 편이고."
취소. 저렇게 태연하게 너는 칼싸움에서는 도움이 전혀 안되는 자식이다. 라고 단언해버리면 내가 상처받잖아. 물론 사실이기는 하지만!
"무슨 일 생기면 이쪽에서 신호를 보낼거야. 확인되면 바로 선원들과 함께 넘어올 수 있도록 해. 여기는..."
로제와 함께 서너 명의 사람을 더 뽑은 마리아는 이쪽을 보며 가볍게 손을 흔든 다음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아아... 하는 탄식을 한 번 한 뒤에 선원들을 바라봤다.
"돌아가자."
여기에 더 있어봐야 별로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돛단배를 타고 다시 바다의 날개로 돌아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도 태연하게 파이프에 담배나 눌러넣고, 연기나 피우면서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자 나는 얼굴을 약간 구겼다. 예전에 이곳에 구슬을 놓으러 왔을 때 시간이 얼마나 걸렸더라.
해가 중천에 걸렸을 때 출발했던 마리아는 해가 지고 달이 뜬 다음에도 한참이 지나도록 돌아오지는 않고 있었다.
다른 선원 놈들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 나는 럼주 한 병을 옆에 놓은 채로 다섯 번 째 채워넣은 파이프 담배에 연기를 피워올리며 섬을 바라보고 있었다. 섬 위로, 시뻘건 불꽃이 하나 올라오더니, 이내 펑 하고 터졌다.
따로 이야기는 없었지만, 저게 마리아가 보낸 신호인 것 같다.
"눈 떠라아아아!"
나는 곧바로 배에 있는 종을 흔들면서 선원들을 깨웠고, 잠에서 일어난 선원들이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연장 챙기고 돛단배 내려라, 섬으로 간다."
우리는 돛단배를 타고 섬에 상륙했고, 그 사이에 불을 피웠는지 섬의 머리 위쪽으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연기를 보면서 빠르게 이동한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우리는 마리아와 로제를 비롯한 배의 선원들이 서 있는 것을 확인했다.
"... 위험해 보이는 상황은 아닌데요."
나는 약간 멍해져서 눈 앞의 광경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모닥불 주변에 앉아서 하품을 하다가 왔어요! 라고 말하며 로제를 비롯한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마리아가 나의 감상평을 듣고는 말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을 하겠다고 했잖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엄지 손가락으로 뒤편을 가리켰고, 거기에는 스무 명 정도 되어보이는 사람들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녀석들은?"
나의 말에 마리아가 대답했다.
"먼저 와서 구슬을 손에 넣은 친구들. 팔아먹을 생각 만땅이던데."
나는 그 말에 잠깐 눈을 껌벅이다가 말했다.
"그럼 저 녀석들도 그 덩어리들이랑 싸운 녀석들입니까?"
그게... 라면서 머리를 긁던 마리아가 대답했다.
"그걸 겪은건 우리 뿐인 모양이더라."
즉, 녀석들은 평화롭게 항해를 해서 이 섬에 도착했고, 도착한 김에 섬을 뒤지다가 구슬을 발견했다는 흔해빠진 이야기인 것이다. 누구는 태어나서 배 위에서 구토 한 번 해본적 없다가 이번에 처음 할 정도로 고생을 했는데.
"... 어쨋든, 여기에 도착해서 구슬을 손에 넣은 건 녀석들이 먼저거든. 그래서 약간의 협상 같은게 있었지."
나는 마리아를 바라봤다. 도대체 그 협상이라는 물건이 뭔데 이쪽으로 신호까지 보냈던 거야? 저쪽에 몰려 있던 사람들 중 하나가 앞으로 튀어나와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댁이 그 유명한 레이먼드군."
나는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서 그를 바라보았다. 새카만, 약간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청년이 이쪽을 보며 웃고 있었다.
"그래, 그 유명한 레이먼드 되신다. 그렇게 나를 아는 척 하는 댁은 누구지?"
내 말에 검은 곱슬 머리가 나를 보며 히죽 웃었다.
"마리첼로 파비앙이다. 혹시 들어봤나?"
나는 그 말에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사람 모르는데."
그 말에 파비앙이라고 자신을 밝힌 남자가 피식 웃었고, 마리아가 그를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면 너의 능력에 대해서 의심하고 있는 친구라고 해둘게."
그 말에 나는 마리아를 바라봤다.
"제가 무슨 능력이 있겠습니까. 선장님 말씀대로 칼싸움에서는 별로 도움도 안되는데."
꽁해있기는 이라면서 내 등을 손바닥을 한 번 쫙 후려친 마리아가 나를 보며 말했다.
"너를 운수가 대통해서 바다의 날개를 주운 다음에 잘나가고 있는 허당 항해사가 아닐까 생각하는 친구가 있다."
틱,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머릿 속에서 뭔가가 끊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뭐, 허당? 내가 바다에서 물질하면서 처음 들어보는 수식어인데. 나는 어이가 없어져서 입을 쩍 벌리고 있다가 다시 입을 다물고 그를 바라봤다.
"그 허당 항해사라는 말은, 저 검정 대가리 입에서 직접 나온 겁니까, 아니면 마리아가 정리하는 와중에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일부러 사용한 겁니까?"
그 말에 마리아 대신에 파비앙이 입을 열었다.
"직접 한 말인데."
이야, 이 새끼 봐라. 나는 어이가 없어져서 얼굴을 구기고는 입을 열었다.
"어디서 굴러 쳐먹다 들어온 꼬막인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살다보니 별 개똥같은 소리를 다 들어보겠네."
사람 별로 건드리면 안되는 부분이 있는 법이다. 멀쩡하게 생겼다고 생각하던 파비앙의 얼굴이 굉장히 밉살스럽게 보일 정도로 그의 그 발언 하나에 나는 그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서 마리아를 바라봤다.
"후우... 좋습니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도대체 그거랑 구슬이랑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 말에 마리아가 대답했다.
"녀석들이 구슬을 우리에게 주는 조건을 하나 걸었거든."
나는 그들의 숫자를 슬쩍 살펴보았다. 일반적으로 상륙 할 때에 배에 있는 전 인원이 내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배에 남는 인원이 더 많은 편이지. 그 말은, 저 녀석들이 타고 온 배에는 아직 저 숫자 이상의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냥 공격해서 다 죽이고 빼았는다는 선택지를 선택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 조건이 뭐죠."
나의 말에 마리아가 대답했다.
"경주하자는데."
무슨 경주, 난대없이 뭔 경주. 나는 마리아를 보면서 눈에 물음표를 띄웠고, 뒤편에서 그 재수털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배 경주다."
나는 가만히 있다가 한숨을 쉬고 그를 바라봤다.
"항해가 장난이냐?"
이 새끼 들어보니까 완전 이상한 놈이잖아. 나의 말에 파비앙이 대답했다.
"글쎄, 장난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재미있는 일이지. 뭐가 문제일까, 유명한 항해사 레이먼드?"
나는 하늘을 잠깐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내려 파비앙을 보면서 말했다. 대충 이해는 되었다.
"미친 새끼. 지 공명심에 눈이 팔려서 수십이 넘는 사람들이 타고 있는 배를 가지고 경주를 하자고 해?"
그러니까, 최근 들어서 내가 좀 잘 나가는 항해사가 되었고 소문이 꽤나 퍼지고 있는 중이니까. 나를 이겨먹어서 자기 주가를 좀 올려보고 싶은 모양이군. 나는 눈을 감고 있다가 말했다.
"너 같은 정신나간 새끼들이 배를 움직이니까 세상에 난파선이나 표류선이 생기는거다."
배 움직이는게 무슨 바구니 달린 자전거 타고 동네 마실나가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를 보다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리고 마리아가 나를 보며 속삭였다.
"싸우지 않고 구슬을 따내려면 이 방법 밖에 없다."
...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려서 그 파비앙이라는 남자를 보고 말했다.
"놀아주마, 이 대나무 젓가락같은 새끼야. 자세한 걸 말해봐."
내 말에 파비앙이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타고 있는 그 바다의 날개로는 승부가 되지 않겠지. 마침 우리는 배가 두 척이니까 하나 빌려주지."
그건 니 좆대로 하시고. 나는 그를 묵묵히 바라봤다. 그가 가볍게 잔기침을 하고는 모래판 위에 해도를 펼쳤다.
"배들은 여기에서 출발할 거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지도를 바라봤다. 한 3일 정도 걸릴 거리군.
"바다의 날개는 여기에 두고, 우리의 배 두 척을 이용해서 우리는 그 섬에 도착한다. 구슬은 이 섬의 중앙에 여전히 둔다."
꼴에 치밀하기는 하구만.
"그리고, 거기에서 출발해서 여기에 먼저 도착하는 쪽이 다시 구슬을 가져가는 거냐."
그런 셈이지. 파비앙의 말에 나는 턱을 한 번 쓰다듬고는 말했다.
"이해는 했다."
아, 하지만 말이지. 라고 파비앙이 말하면서 나를 바라봤다.
"우리는 그 비싸보이는 구슬을 손에 넣은 건 먼저잖아? 어떻게 보면 우리가 양보를 했다는 거지. 그래서, 우리가 이긴다면 한 가지를 더 가져가야겠어."
나는 마리아를 바라봤다.
"이것까지 이야기가 된 겁니까?"
나의 물음에 마리아가 말했다.
"그래."
나는 팔을 꼰 채로 파비앙을 바라봤다. 그래, 한 번 씨부려봐라.
"러셀의 검을 내놔."
나는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다가 마리아를 바라봤다.
"선장님, 무슨 생각으로...!"
바다의 날개는 어차피 러셀의 검이 있어도 내가 아니면 움직일 수가 없다. 하지만, 나도 러셀의 검이 없으면 바다의 날개를 움직일 수가 없다. 다른 말로는, 이 싸움에서 진다면 더 이상 우리는 바다의 날개를 탈 수가 없다는 거다!
마리아가 나를 보면서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로 속삭였다.
"구슬을 처리하는데 실패하면, 머맨들이 우리를 죽일거야. 저 구슬을 손에 넣지 못하면 어차피 바다의 날개는 필요가 없어져. 그렇다고 우리가 저 녀석들에게서 힘으로 빼앗는 것도 무리야. 게르하르크 때와는 틀려. 녀석들이 피스톨 들고 갈기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대로 다 죽을거다."
즉,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니, 바다의 날개를 거는 건 문제가 아니라는 건가.
틀린 말은 아니지. 그래도 이 여자야...! 내가 뭐라고 말하려고 할 때 마리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너를 믿는다."
나는 가만히 서서 깊게 숨을 내쉬고 뒤의 우리 선원들을 바라봤다.
"여기서, 범선 한 번도 안 몰아본 녀석들 있냐."
손을 드는 사람들은 없었다. 다들 원래는 범선을 타던 녀석들이니까. 바다의 날개에 와서 한 동안 물대포를 쏘았다고 해도, 몇 년이 넘게 범선을 타고 다니던 그 감각을 완전히 잊지는 않았겠지. 물론 처음에는 약간 허둥거리겠지만.
"뭐, 그 정도는 작은 패널티 정도로 생각해주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그를 보며 말했다.
"선장님이 걸겠다고 했으면, 그렇게 하지."
그럼, 시작하자고. 파비앙은 그렇게 말한 다음에 구슬을 다시 올려져 있던 제단 위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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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