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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을 털어라
바다의 담요 안에, 우리가 백상아리와 만났던 그 술집 안에는 이미 머맨이 자리잡고 앉아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토막으로 만들어낸 술잔을 보며 히죽히죽 웃고 있는 그 꼬라지가 심히 주정뱅이같다.
"늦었잖나."
주점의 주인이 우리에게 다가오고는, 일행이요? 라고 물어보았고. 마리아가 머리를 긁다가 대답했다.
"그렇다고 하면 그렇다고 할 수는 있겠는데."
마리아의 말 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주점 주인은 곧바로 마리아에게 영수증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가격을 보고 있는 마리아의 이마에 핏줄이 두어개 솟구쳤다.
"이 빌어쳐먹을 생선이! 무슨 술을 갤런 단위로 쳐먹냐!?"
엉? 하는 소리와 함께 백상아리 대갈통을 한 어인이 히죽히죽 웃으면서 엄지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같이 쓰고 있던 도리안을 가리킨다.
"별로 마시지도 않았다고. 게다가 두 명이 마셨으면 그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니냐?"
나는 영수증을 흘긋 보고는 입을 쩍 벌렸다. 12갤런? 대충 48리터잖아. 사람 한 명 무게의 술을 쳐먹고는 별로 안마셨다니. 그러고도 눈 멀쩡하게 뜨고 이제 막 술잔 걸치기 시작한 주당처럼 껄껄거리는 모습이 되게 때리고 싶다.
"도리안 당신은 말리지도 않았습니까?!"
나의 말에 같은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서 술잔을 홀짝이고 있던 도리안이 대답했다.
"내 지갑에서 나갈 돈도 아닌데."
와... 진짜 사악한 자식들. 백상아리가 끄윽, 하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도리안을 바라봤다.
"그럼, 약속한 일을 하러 가지. 배가 있는 곳은?"
그 말에 도리안이 말 없이 자신의 코트를 둘러 입고는 밖으로 걸어나갔고. 마리아가 굉장히 띠꺼운 표정을 지으면서 두 사람이 쳐먹은 술값을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다.
바닷가에 안개의 미아를 바라보던 머멘이 그대로 바닷 속으로 잠수했고, 잠깐 시간이 지나서 떠올랐다. 그리고, 거기에는 은발의 소녀가 한 명 물에 떠 있었다.
- 안녕하세요.
마리아가 셀키를 보고 웃었다.
"신수가 훤하잖아."
셀키가 그 말에 눈을 몇 번 깜박이다가 대답했다.
"신수요?"
아니야. 잊어. 라고 마리아는 말한 다음에 셀키를 바라봤다.
"머멘한테 이야기는 들었지?"
셀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러니까.... 안개의 미아를 수리해드리면 되는 거였죠. 바로 시작하면 되는 건가요? 머멘이 보호해준다고 해도... 밖으로 나오는게 영 편하지가 않아요.
밖으로 나와서 처음으로 전직한게 노예였으니. 유쾌한 기억이 있을리 없지. 도리안이 고개를 끄덕였고. 셀키는 잠시만요. 라고 말한 다음에 작은 모래시계를 하나 꺼냈다. 그렇게 화려하지 않은 모양의 모래시계. 유리와 나무로 만들어져 있는 어떻게 보면 투박해보이는 그 모래시계 안에는.
"모래가 없잖아."
나의 중얼거림에 셀키가 웃는다.
- 그냥 모래시계가 아니에요. 얼마나 돌려주기를 바라세요?
대답을 하면서 셀키는 모래시계의 아래쪽 유리를 손으로 살짝 잡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도리안이 입을 열었다.
"일주일."
알았어요. 그리고, 모래시계의 하단부에 피처럼 붉고 고운 결정들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붉고 고운 결정들이, 빛을 받으며 빛을 뿌리기 시작하고. 잠시 뒤에 셀키가 손을 떼었다.
- 7년. 확실하게 되돌려 질 거에요.
그리고, 셀키가 안개의 미아 위로 뛰어올라가 배를 한 번 쓰다듬었고. 따라왔던 선원들이 일제히 자신의 코를 잡았다.
"하여튼,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발기할 새끼들."
마리아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자신의 코트를 벗어서 셀키에게 던져주었고. 잠깐 물음표를 띄우고 있던 셀키가 주변 상황을 확인하고 마리아를 바라봤다.
- 고마워요, 선장. 그럼 시작할게요.
그리고, 셀키는 그 붉은 모래가 담겨 있는 모래시계를 배 위에 올려놓고 그대로 뒤집었다. 아래에 쌓여있던 붉은 결정들이. 중력을 따라서 천천히 다시 아래로 향하기 시작하지만.
바닥에 모래가 다시 쌓아지는 않고 어디론가 흩어지듯이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배 주변에서 모래시계 안에 들어있는 것과 똑같아보이는 붉은 결정들이 생겨나 배에 달라붙기 시작한다. 그... 왜, 엄청 짠 소금물에다가 실 담구어놓고 기다리면 소금 결정 달라붙는 것 처럼. 이내, 배를 완전히 새빨갛게 덮어버린 붉은 결정들. 그 모습이 마치 엄청나게 거대하고 딱딱한 번데기 같다.
- 끝났어요.
그 말과 함께, 배를 감싸고 있던 배를 감싸고 있던 붉은 가루들이 부서지면서 바다로 떨어져나가고. 완전히 이전의 모습을 되찾은 안개의 미아가 바다 위에 떠 있었다.
잠깐 사이에 번쩍거리는 벼락처럼 스쳐지나간 일에 우리는 입을 떡 벌리고 그 멀쩡해보이는 배를 바라본다. 그리고, 도리안이 배 위로 올라가더니 작게 감탄을 한다.
"... 자국 하나까지 똑같군. 고맙다."
- 시간이 되감긴거니까요. 이제, 저는 다시 돌아갈게요.
셀키는 다시 걸치고 있던 코트를 벗어서 마리아에게 건네주고 바다로 들어갔다.
- 그럼, 나도 이만 가도록 할까.
백상아리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바다로 들어가더니 이내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두 존재갓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보고 있던 마리아가 조용히 한 마디 중얼거렸다.
"이런 씨팔... 술값!"
마리아가 얼굴을 확 구기고 성질을 부리기 시작했고. 도리안은 배를 확인하고 나서 우리를 보며 말했다.
"그럼, 이걸로 이번 일은 깔끔해졌군."
도리안은 자신의 선원들을 다시 모으기 위해서 바다의 담요 안쪽으로 떠나고. 마리아는 멍하니 바다를 보면서 말했다.
"나머지들은, 알아서 놀고 있어. 그리고 레이먼드는 잠깐 나 좀 보지."
그 말에, 선원들이 흩어져서 돌아가기 시작하고. 마리아는 해안가 근처의 바위에 걸터앉아서 저물어가는 석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살짝 불어오는 바람이 마리아의 금발을 쓰다듬고 지나간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마리아가 나를 보면서 슬픈 표정을 지었다. 왜, 무슨 일인데 갑자기 그런 표정을 지어?
"돈이 슬슬 딸린다."
바닷가에서, 분위기 잡고 그렇게 슬픈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하는 말이. 돈이 없다는 소리냐. 방금 전 분위기는 '사실 나 암이래' 라고 말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고!
... 돈이 딸린다고?!
"저희 진주 400개는 다 어디로 녹아내린겁니까?!"
나의 말에 마리아가 대답했다.
"그게 언제적 일이냐. 우리가 바다의 날개 처음 잡았을 때 머메이드한테 받은 거잖아. 그 이후로 이렇다 할 약탈 제대로 한 적 있어?"
그러고 보니 그렇다. 물론 약탈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우리가 마음 먹고 '돈을 뜯겠다!'라는 마음 가짐으로 배들을 뜯어먹은 적은 거의 없다. 챙기는 것도 가르시아 해에서는 주로 식량이었고. 내려와서는 현상금 사냥꾼들을 주로 털었고.
현상금 사냥꾼들이야. 우리를 잡으려고 바다를 돌아다니는 거니까. 별로 값나가는 물건들을 챙겨들고 다니지는 않았으니까.
"... 그래서 저희 얼마나 부족합니까?"
나의 말에 마리아가 머리를 긁었다.
"보자, 로른 해를 다닌다고 했을 때 한 번 정도 보급하면 알거지야."
이런 씨... 우리가 그냥 해적도 아니잖아. 로른 해에서 제일 잘나가는 해적이잖아! 다른 해적들도 우리 보면 우오오옹 바다의 날개 성님! 하면서 고개 숙이고 들어오는데. 그런 전설적인 해적단이 알거지라고?
보급 한 번 하고 나면 알거지라는 말은, 다음번에 배 띄워서 뭐 한 건 하지 않으면 끝장난다는 거다.
"생활은요."
그 말에 마리아가 다시 바위에 앉아서 턱을 괴고 있다가 말했다.
한, 1주일 정도? 라는 그녀의 말에 나는 어허허허 하고 웃었다.
그러니까, 1주일 안에 뭐 하나 털어먹지 않으면 우리 파산이라는거냐?
"우리 되게 유명한 해적단 맞습니까?"
그렇지. 라는 마리아의 대답.
"러셀은 돈 많았습니까?"
나의 물음에 마리아가 멍하니 대답했다.
"러셀? 인간이 멋대로 캐낸 탐욕을 사과한답시고 화산 안으로 금 3 톤을 들고 가서 다 던져버린 일화가 있던데."
그건 뭐하는 병신이야. 금을?!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그 화산 이름이 볼캐닉 골드인 이유가 그거 때문이라고 하던데."
다른 유명한 해적들의 일화를 나는 물어보기 시작했고. 거기에 대해서 마리아가 하나씩 대답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다.
"우리나, 그 이상 유명한 녀석들 중에서 1주일 안에 배를 띄우지 않으면 파산해버릴 정도로 가난한 해적은 없군요."
그런 셈이지. 멍하니 마리아가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를 바라보며 픽 웃었다.
"뭔가 간지나지 않아? 전설의 거지 해적단!"
미친 소리! 나는 히죽거리고 있는 마리아를 보면서 차마 뭐라고 말을 하지 못하며 입술만 달싹거렸다.
"표정 하고는. 걱정하지마, 생각이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마리아가 바람을 맞으면서 코트의 단추를 잠궜다.
"조만간 새해가 오지?"
그렇지. 그러고 보면 그럴 때가 되었구나. 이제 한 달 정도 남았으려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잇다가 마리아를 바라봤다.
"... 그걸 털려고 합니까?"
나의 말에 마리아가 히죽 웃었다.
"왜, 그거 싹 털어버리면 꽤나 돈이 될텐데."
새해에는 당연히 카멜롯과 아이리 공화국 모두 국내가 바빠진다. 이전 세상에서도 그렇고,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서도 그렇고 새해는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날이니까. 그리고, 그 때를 기회로 삼아서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작은 성의를 표현하기 위해서 엄청 비싼 선물들을 높으신 분들에게 뿌린다.
그리고, 그런 대부분의 작은 정성들은 실제로는 절대 적은 양이 아니기에. 운송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싼 바다를 통해서 운반된다.
새해에 딱 맞추어서 배가 목적지에 도달할 가능성은 적으니까, 한 달 정도 남아있는 지금 이미 선적을 시작하고 있을 거다.
"재미있겠네요."
그렇지? 라고 마리아는 말한 다음에 하품을 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그래, 괜찮은 녀석 있으면 바로 출발하자고. 마리아는 말을 마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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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조금 바빠서 말이지. 여러가지로 귀찮은 일들이 있었거든."
미나 웨스트우드에게 누명씌우기 같은거 말이지. 에밀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피스톨을 장전하기 시작했다.
피스톨의 장전을 마친 에밀은, 눈 앞에 족쇄를 차고 있는 남자를 보며 웃었다.
"..."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저물어가는 뜰 안에서 에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머리는 완전히 밀려서 두피가 드러나 있고, 드러난 두피에는 군데군데 고름과 피가 뒤섞여서 말라붙어있다. 에밀이 잠깐 대답을 기다리다가 하품을 한 번 하고 남자를 바라봤다.
"집을 비운 사이에 재미있는 물건을 선물 받아서 말이지."
그러면서 에밀이 커다란 바구니를 툭툭 건드렸다. 그 행동만으로도, 바구니 안에 담겨있는 무언가가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바구니가 들썩거린다. 에밀은 주사기를 하나 꺼내서 바구니 안에 찔러넣었고. 잠시 뒤에 바구니가 잠잠해진다.
"퓨말렛 코브라라고 하던데. 공격적이고, 독이 강한데다가. 움직이는 속도도 빠르다고 하더군. 과연, 바구니 조금 건드렸다고 저 지랄을 하다니."
근데, 얼마나 빠른지 이야기로만 들어서는 내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말이지. 라고 말하면서 에밀은 피스톨로 자신의 머리를 가볍게 긁었다.
"내기를 하자고. 내가 이 바구니를 열면. 너는 모래를 뿌리고 도망치는거야."
에밀의 말에 남자의 표정이 퍼렇게 굳었다. 그걸 보고 있던 에밀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내기라고 했잖아. 살아남으면 너랑, 네 딸을 풀어주지. 물론, 이 안에서 있었던 일들은 절대로 말하지 않는 조건이지만."
마음에 드나? 라고 에밀이 남자를 바라봤고. 남자의 눈에는 잠깐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모래를 뿌리고 뛰는거야. 그냥 도망치면 네가 도망치는데 성공해도. 딸은..."
얼굴도 반반하던데. 라고 말하면서 에밀이 커다란 바구니를 다시 한 번 툭 치고는 남자를 바라봤다.
"하... 하겠습니다."
좋아. 라고 말한 다음에 에밀이 그 바구니 안에 손을 집어넣고 기절한 듯이 축 쳐져 있는 뱀을 꺼낸 다음 주사를 한 방 놓았다. 아까 전에 맞은 약을 해독하는 약이다 아마, 3분 안에 정신을 차리겠지. 에밀은 주사를 놓고 나서 멀지감치 떨어진 상태로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시작해봐."
에밀의 말에. 남자는 부들거리면서 땅에 흙은 한 줌 들고 그 뱀에게로 다가갔다.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을 보자마자 고개를 높이 쳐들고 쉬식 하는 소리를 내는 검붉은 머리의 뱀. 머리를 높게 세운 뱀은 또아리를 튼 채로도 어린아이 키만큼이나 머리를 일으켜 세울 정도로 거대했다. 에밀은 웃으면서 그 광경을 지켜본다.
남자가 모래를 뿌리고. 에밀은 턱을 괸 채로 의자에 앉아서 그 광경을 구경한다.
"아, 말을 안해줬네. 저 녀석은..."
도망치려고 하는 남자를 두고. 붉은 머리의 뱀이 자신의 몸을 스프링처럼 또아리 튼 상대로 가만히 있다가. 그대로 튕겨져서 공중을 날아 남자의 뒷목을 물어뜯었다. 도망치고 자시고 할 수가 없는. 압도적인 속도.
"스프링 처럼 통, 하고 튀어오른다던데."
물린 상처에서부터 살점이 검은색으로 괴사하고, 그 괴사한 자국을 따라서 보라색으로 변색된 핏줄들이 툭툭 불거져나온다. 에밀은 그걸 보다가. 피스톨을 들어서 독사의 대가리를 날려버리고 어깨를 으쓱하며 머리가 없이 꿈틀거리는 뱀의 몸을 발로 차서 날려보냈다.
"생각처럼 자극적이진 않은 장면이었어."
거기, 정신 아직 남아있습니까? 라고 에밀이 말하면서 남자를 툭툭 발로 차보고. 그르륵 하는 소리를 내는 남자를 보고 입을 열었다.
"결국 이렇게 될 것 같길래. 딸은 내가 원정 나가기도 전에 먼저 약에 절여서 사창가로 넘겨놨으니 걱정하지말라고. 아, 이 뛰어난 예측."
남자의 손이 확 뻗어져서 에밀의 발은 잡고. 에밀은 그걸 굳이 저항하지 않고 지켜본다. 괴사하던 살들이 녹아내리고 뒷목에서 시작된 피가 몸을 타고 돌며 남자의 장기를 부순다. 에밀은 그걸 가만히 보다가, 자신의 팔을 잡고 있던, 녹아내리기 시작한 팔을 툭 하고 밀어내고 휘파람을 불면서 다시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 속에는 이미 아까 죽은 남자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저택 테이블에 앉아서 가만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의 앞에는 수많은 서류들이 놓여있었고. 대부분이 마리아 해적단의 행보에 관한 내용이었다. 에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의 관자놀이를 검지로 툭툭 치기 시작한다.
"과연, 계절이 한 번 바뀔 동안에 이렇다할 약탈 행위가 없었어. 그럼 지금 즈음은 돈이 딸릴텐데. 아니, 그 동안에 버틴게 기적이겠군."
에밀은 그렇게 말하면서 잠깐 생각하다가 웃었다. 어차피 새해가 다가오고 있었고. 그 때에는 온갖 지역의 사람들이 서로에게 새해 인사를 한다고 진귀한 물품들을 운송하는 중이겠지.
"어차피 나도 보내야 하는 선물들이 꽤 있으니까."
보내는 선물들과 함께, 미나 웨스트우드를 넣어서 같이 수도로 보내버리면 될 것이다. 이런 큰 사태의 죄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당연히 수도에서 재판을 받게 되니까. 거기에 필요한 서류를 꾸미는 건 하루도 걸리지 않고.
그리고, 몇 가지의 양념을 더 쳐서 마리아 해적단이 에밀이 수도로 보내는 함대를 건드리면. 따단, 거기에 미나 웨스트우드가 있는 거지. 죄수 신분으로.
미나 웨스트우드는 레이먼드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기 시작할 거고. 굉장히 높은 확률로 마리아 해적단은 미나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에밀은 빠른 속도로 서류들을 훑어보면서 웃었다.
"세상에 가족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는 법이고. 가족 버리고 혼자 튀는 사람은 드문 법이지."
미나 웨스트우드는 해군이고. 해군의 신상명세와 가족 관계를 에밀이 손에 넣는 건 방금 전 그 코브라가 사람 죽이는 것 보다는 몇 배는 쉬운 일이다. 기왕에 마리아 해적단에 독을 주입하기로 했으면 확실한게 좋겠지. 그리고 나서 에밀은 쯧, 하고 혀를 찬 다음에 지하실로 내려가. 문 하나를 열었다.
거기에는, 동심원을 그리면서 흐르고 있는 물과... 그 가운데에 서 있는 레인이 보였다.
"거, 질기네."
에밀은 그렇게 말하면서 사지가 사슬로 묶여있는 레인을 보며 한숨을 쉬고 주사기를 꺼내서 바늘의 끝을 톡톡 치기 시작했다.
"이거 엄청 독한 녀석으로 알고 있는데. 역시 악마랑 계약을 해서 통하지 않나?"
에밀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주사기를 흔들었고. 사지가 쇠사슬에 묶여있는 어린 아이는 그 주사바늘의 끝을 따라서 초점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에밀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딱히 그런건 아니고. 그냥 의지가 생각보다 강한건가."
그렇게 말하고 에밀은 주사기 서너개를 더 꺼내서 안에 마약을 채워넣고 흐르는 물 너머로 주사기들을 던져넣고 사슬들을 모두 풀었다.
"참을 수 있으면 참아보라고."
에밀은 말을 마치고 나서 레인을 흥미로운 눈으로 관찰했다. 레인의 눈이 멍해지고. 천천히 주사기로 접근하다가. 이내 자신의 팔을 이빨로 물어뜯고 스스로의 목덜미를 긁으면서 절규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요즘 애들답지 않게 아주 심지가 곧아. 큰 인물이 될 수도 있었겠군."
턱을 감싼 채로 고개를 몇 번 끄덕인 에밀은 레인을 보며 씨익 웃고는 말했다.
"그럼, 내일 또 보자. 그 주사기가 텅 비어있기를 기대할테니."
============================ 작품 후기 ============================
좋은 하루 되세요.
앞으로는 연재 시간을 바꾸려고요. 자정은 역시 몸이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가능하면 오후 6~7시 사이에 올리겠습니다.
3만을 3으로 바꾸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