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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을 털어라
... 나를 아는 사람? 잠깐 생각하던 나는 궁시렁거리면서 넘어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젠장, 밧줄 타기 어려운데."
내가 배를 건너가자. 마리아가 나를 인도해서 뇌물선의 갑판 아래로 데려갔고.
"허, 이건 또 무슨 참신한 상황이야?"
갑판 아래에는. 쇠창살 안에 가두어져서 이쪽을 보고 있는 미나가 있었다.
이전의 깔끔한 모습은 전혀 없고. 꾀죄죄한 몰골에 땟국물에 상당히 절어 있는 모습. 나는 그걸 보다가 머리를 긁다가 말했다.
"그러니까, 잘 지냈냐고 말할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미나 웨스트우드 양."
나의 말에 옆에 서 있던 마리아가 눈을 몇 번 깜박이고 나와 미나를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미나 웨스트우드? 그 싸늘한 앤의 항해사였다고 하는?"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미나가 잠긴 목소리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레이먼드 항해사, 오랜만이군."
거, 그 상황에서도 말투는 참 딱딱하기 그지 없군. 나는 그녀를 보면서 머리를 몇 번 긁다가 주변을 슥 둘러보며 말했다.
"어쩌다가 그런 꼴이 된거야? 항해사가 있기에는 영 변변치 않은 장소인데."
나의 말에 미나가 고개를 푹 숙인채로 한 마디를 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숙청당했다."
그리고 나서 미나의 설명이 이어졌고. 난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미나가 나를 보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 나는 억울해. 그건 너도 잘 알고 있겠지."
그거야 당연하지. 니가 우리랑 내통을 했으면 내가 그걸 모를리가 없잖아. 나는 치매가 걸린 것도 아니고, 마약중독자도 아닌데, 그런 은밀한 내통을 해놓고 나서 까먹을리가 없지.
나는 그녀를 빤히 보다가 말했다.
"그래서, 신세 한탄 하려고 나를 보자고 한 건 아닐테고."
미나가 고개를 여전히 숙인채로 한 마디를 했다.
"나를 받아줘."
나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가 마리아를 한 번 봤다.
"미안하지만, 그건 내 권한 밖의 문제다."
배에 누구를 태울 지는 선장이 결정하는 거니까. 미나가 그 말에 바로 대답했다.
"굶어 죽을 꼴이 되어서 방랑자를 가까스로 찾아내고... 바다의 담요를 찾아내기 위해서 쉼없이 돌아다니고. 너희들과의 싸움에서도 그 자식들과 함께 싸웠다. 그리고, 나에게 떨어진 상은 결국 이거야. 쇠사슬에 묶여서 감방에 넣어지고 수도로 목 메달러 가는 배편에 태우는 것."
그러면서 미나가 자신을 묶고 있는 쇠사슬을 살짝 흔들면서 말을 이어간다.
"그래, 이렇게 끝난다고 생각했다. 나는 에밀 제독의 새해 선물들과 함께 아이리 공화국으로 이송되어서. 거기에서 처형될 예정이었지."
하지만, 우연히 그대들을 만났다. 그리고 미나가 마리아를 바라봤다.
"부탁입니다. 바다의 날개의 선장."
마리아가 미나를 바라보면서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에 마리아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잠깐, 위에서 이야기를 나누지."
그러시죠. 나는 말을 마리아의 말에 따라서 갑판 위로 올라왔다.
"어떤 것 같아? 나는 별로 이상한 점은 못 찾겠는데. 동기도 확실하고."
마리아의 물음에 나는 피식 웃었다.
"미나 웨스트우드 양 말하는 겁니까?"
나는 입을 열었다. 겉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지. 에밀이 보내는 새해 선물 안에 포함되어 있는 미나 웨스트우드. 실려 있는 이유도 이해가 가고. 모든게 잘 맞아떨어지는데.
"결정적으로."
나는 갑판장을 보면서 말했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해적질도 훨씬 많이 한 남자니까. 그가 내 부름이 다가오고, 나는 그에게 한 가지를 물어보았다.
"원래 메이너스 항구에서, 이 정도로 가치 나가는 선물들을 수도로 올려보냈습니까?"
그 말에 갑판장이 고개를 저으며 나르고 있던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다이아와 사파이어로 장식된 백금 목걸이가 들어있었다.
"올려 보내기는 했지만 말이지. 이 정도로 귀해보이는 것들을 올려보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수다. 이전에는... 그러니까, 예의 차리기 수준이었지."
그래, 처음에 나는 에밀이 뇌물을 먹여서 수도에서 궁시렁거리는 걸 막으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근데, 미나를 희생양으로 삼기로 했으면 굳이 이런 귀중한 물건들을 수도로 올려보낼 이유가 없잖아. 갑자기 에밀이 유령 만난 스크루지가 되어서. 자신의 재산을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려고 마음 먹은 것도 아니고.
애초에, 우리가 에밀의 뇌물선을 털기로 마음 먹은 이유도 배가 한 척 뿐이어서였지.
그렇게 민첩하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전황에서 발을 뺄 정도로 머리가 굴러가는 녀석이. 과연, 이걸 예상하지 못했을까?
만약에 우리가 이 배를 약탈하려 들 것을 에밀이 예상한 거라면. 미나 웨스트우드는...
마리아가 한 동안 얌전히 서서 갑판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노려보는 나를 건드렸다.
"뭐해, 자냐?"
잠시만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가만히 길을 노려봤다. 머리가 핑핑소리를 내면서 굴러가기 시작한다.
...
...
...!
나는 어이가 없어서 한 숨을 쉬었다. 그러면 말이 되지. 나 같아도 그걸 한 번 정도는 생각해보겠다. 실천으로 옮기는 건 별개의 문제지만.
"확실하지는 않지만, 선장님. 잘 들어주세요."
배의 장물들은 이미 한참 전에 다 옮겨졌고. 이 배 위에는 나와 마리아만이 남아있었다. 나는 마리아를 보며 말했다.
"일단, 미나 웨스트우드 양은 간첩으로 보내진 것 같습니다."
나의 말에 마리아가 대답했다.
"그럼 어려울 것 없지. 머리에 피스톨 한 방 박아주면 다시는 간첩질은 못할텐데."
뭐야, 설명도 안 들어보는거야? 나는 피스톨에 쇠구슬을 굴려넣는 마리아를 제지했다. 머리에 쇠구슬 박아넣으면 간첩질만 못하는게 아니잖아.
"아직 확실한게 아닙니다."
확실한게 아니라면, 나는 내가 가르치던 항해사를 잘못된 판단으로 죽여버린게 된다. 확실하지 않은데 나름 도제인 여자를 그렇게 보낼 수야 없지. 나와 미나는 일단 그런 관계니까. 마리아에게 나는 항해사들끼리의 관계에 대해서 짤막하게 설명을 하고 양해를 구했다. 사실, 확인하는 방법도 어려운게 아니고.
"말해봐, 그 확인 방법이라는 걸."
나는 가만히 통로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메이너스 항구와, 그 일대의 소문을 확인해보면 됩니다. 진짜로 미나가 억울하게 숙청된 거라면, 그녀가 격렬하게 저항했다는 식의 소문도 있겠지요."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병사들이 술을 마시면서도 안주거리 삼기 딱 좋다. 소문이 안 흘러다닐 리가 없지.
"그녀가 순순히 인정했다는 식이라면... 미나 웨스트우드가 간첩으로 들어온 건 거의 확실합니다."
그 말에 마리아가 대답했다.
"그럼, 그걸 확인해보고 처리하자는 거지?"
아직, 그 정도에서 끝났으면 이렇게 오래 머리를 굴리지도 않았을거다. 그러면, 다음 이야기도 들어주세요. 라고 말한 다음에 나는 마리아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웨스트우드 양은 자기가 간첩인줄 알고 여기로 왔지만. 진짜로는 숙청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죽이는 건, 확실해지고 나서가 좋겠지. 나의 말에 마리아가 나를 바라봤다. 저번 해전에서 배신했다는 누명을 씌웠다. 그걸 통해서 에밀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거다.
근데, 어찌 되었던 간에 간첩으로 보내진 거라면 미나는 결국 다시 아이리 공화국으로 돌아가게된다.
그러면? 처음에야 이야 역시 우리제독, 동경하게 되! 제독님 축지법 쓰신다! 라면서 추켜세울 수도 있겠지. 근데 거기에 있는 녀석들이 무게중심 맞추려고 머리를 달고 다니는게 아니라면 한 번 정도는 그런 생각을 할 거 아니야.
그럼 처음부터 바다의 담요 근해에서 일어났던 해전은 에밀이 잘못해서 씹창난게 아닌가? 하고.
하나더, 이 배를 호위하기 위해서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다 죽었잖아. 나중에 미나가 돌아오고 나면 그 비판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간단하게 말해서 에밀은 우리가 이 배를 공격할 줄 알고도 호위함을 붙인건데. 바다의 날개랑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저 녀석들이 알고 배에 올랐을리는 없다.
분명히 잠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비판의 목소리가 울려퍼지겠지. 그러면 어찌 되었던 에밀이 지금의 자리를 유지하는 데에는 수많은 애로사항들이 활짝 피어나게 된다.
결론은 둘 중에 하나다.
에밀이 엄청난 정의감을 가지고 있는 남자라서, 우리를 토벌하기 위해서 자신의 직위를 초개같이 던질 수 있는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던가.
아니면 초 사악한 데다가 검은 장막 뒤에 숨어있는, 사악하게 웃으며 계획대로. 를 외치는 누구랑 비슷한... 다른 사람들 다 얼굴 까놓고 무도회에 왔는데 혼자 가면 무도회 열고 있는 새끼던가.
근데, 나는 여태동안 살아오면서 자기 목숨을 정의를 위해 바치는 녀석은 만나 본 적이 없다는 말이지.
카렌 시트러스 같은 경우에는 눈부실 정도로 정의로운 사람이었지만, 정의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건 아니니까. 그냥 우리가 죽였을 뿐이지.
"간첩이던 숙청이던, 무슨 차이가 있는건데."
마리아는 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숙청일 경우에는, 잘 구슬려서 우리 배에서 일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초짜지만 항해사잖아. 그렇게 흔한 인재도 아니고,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써, 아래에 항해사 하나가 들어오게 된다면.
"일단 제가 좀 편해집니다."
고작 그 이유야? 라고 마리아가 나를 멍하니 바라봤고. 나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고작이 아닙니다!"
복지 환경이 너무 좋지 않아. 이 배가 무슨 동네 근해에서 고기 잡는 통통배도 아니고 여기저기 다니는 곳이 많은 배다.
"항해사 한 명 정도는 더 두는게 좋을 겁니다.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이번에 돌아가면 선원들을 조금 보충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딱 아슬아슬하게 바다의 날개를 유지하는 정도의 인원이 고작이다. 많은 대체인원이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대여섯 정도는 더 배에 채워놓는 편이 좋을거다. 마리아는 내 말을 듣고 있다가 한 숨을 내쉬었다.
"간첩일 수도 있는 여자를 배 위에 태우는 리스크 치고는, 항해사 한 명이 추가되면서 얻는 이득이 너무 적은데."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 마리아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다. 그 말에 나는 한 가지를 더 덧붙였다.
"웨스트우드 항해사가 간첩으로 왔다면, 이유는 하나입니다."
에밀 메이너스라고 하는 아이리 공화국의 제독은 아직 해적 소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언제고, 기회가 되고 여건이 된다면 해적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달려들겠지.
"미나 웨스트우드를 죽이면 일단 당장은 문제가 없습니다만. 에밀 메이너스가 나중에 다시 해적들을 공격할 때. 웨스트우드 항해사를 우리 편으로 완전히 끌어들인 상황이라면. 우리가 역으로 에밀에게 장난을 쳐놓을 수 있습니다. 싸우기 전에 점수를 따고 들어가는거지요."
설득해서 우리 편으로 꼬드긴 다음에 이중간첩을 시키는 거지. 나의 말에 마리아가 조금 더 고민하기 시작했다.
간첩이 아니라면? 그 때는 쓸만한 초짜 항해사 하나 공짜로 얻는거고. 다른 판타지 소설의 마법사 급의 희귀도를 가지고 있는 항해사 하나가 공짜로 굴러들어오는데 뭐가 문제야.
"... 하여튼, 말 하나는 청산유수라니까."
마리아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나를 보며 말했다.
"그래, 니 맘대로 한 번 굴려봐라."
감사합니다.
============================ 작품 후기 ============================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