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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을 털어라
괜찮은 걸까. 미나는 풀려난 상태에서 레이먼드의 부축을 받으면서 생각에 빠져들었다. 결국은, 해군에서 해적으로 변했다. 겉모습 뿐이라고는 하지만. 나를 이들에게 넘기기 위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했다. 몸을 무거운 족쇄가 짓누르는 기분이다. 밖에 보이는 풍경은, 넘실거리는 바다 위를 너저분하게 떠다니는 수많은 나무조각들과, 그 위로 부유하는 시체들. 매캐한 화약냄새.
"어이, 괜찮냐."
미나를 부축하고 있던 레이먼드의 말에 미나는 대답했다.
"... 괜찮다."
신경꺼라. 라고 말하려고 고개를 들고 레이먼드를 본 미나는 입을 다물었다. 걱정된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레이먼드. 미나는 묵묵히 몸을 부축받으면서 배로 건너갔고. 레이먼드는 그대로 미나를 항해사실 안으로 데려가 침대에 눕혔다.
"조금 기운을 차리면, 씻고 옷을 갈아입어라."
.. 항해사실이라면. 여기는 레이먼드의 방일텐데.
"너는 어디에 있으려고."
미나의 말에 레이먼드가 대답했다.
"갑판 아래에서 자려고 한다."
선원들 자는 곳에서? 미나가 그 말에 대답한다.
"몸이 나아지면, 내가 갑판 아래를 쓰겠어."
레이먼드가 그 말에 혀를 찬다.
"사지 멀쩡하고 아름다운 여자가 갑판 아래에서 남자들이랑 함께 자면 굉장한 꼴을 당할텐데?"
미나가 그 말에 침묵한다. 그리고 레이먼드가 피식 웃으면서 말을 잇는다.
"그냥 여기 써. 어차피 선원들이랑 같이 자는 건 나름대로 적응이 되었으니 신경끄고."
레이먼드는 말을 마치고 문을 열고 나가면서, 미나를 보고 웃었다.
"야, 이유야 어찌 되었던 함께 하게 되어서 정말 반갑다, 미나. 함께 잘 해보자고."
그 신뢰에 가득한 목소리가 미나의 가슴 팍으로 날아와 그대로 박혀들어간다. 그녀는 여기에 간첩으로 온 것이지만. 레이먼드는 그녀를 의심하지 전혀 의심하지 않는 모양이다. 이게 좋아해야 하는 일인가.
... 작게 그래. 라고 대답한 다음 미나는 레이먼드가 문을 닫고 나가자 문을 잠그고 몸을 닦아내었다. 쇠사슬 자국이 온 몸에 가득하다. 물에서 김이 오르는 것을 보고 미나는 감탄사를 내뱉은 다음에 몸을 욕조 안에 담그기 시작했다.
그 동안, 밖으로 나온 레이먼드는 항해사실 문에 기댄 채로 담배 연기를 피워올렸다. 미나가 실제로 간첩인지 아닌지도 확실한게 아닌데다가. 설사 간첩이라고 해도 그녀를 완전히 이쪽 사람으로 바꾸려면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다.
미나가 이 배의 사람들에게 정을 붙이면 된다. 무슨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함께 살갑게 지낸다면 미나는 분명히 죄책감을 느끼게 될 거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 티를 내시면 안됩니다."
마리아는 레이먼드의 말에,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니가 생각한 그건 나도 생각하고 있었어. 사람이 정 붙이는데 가장 좋은게 뭔지 알아?"
그러면서 마리아가 레이먼드를 바라봤고. 레이먼드가 침묵한다.
"통칭 떡정. 강간이 아닌 한에야. 여자도 남자도 몸 섞은 사람한테는 저절로 정이 붙더란 말이지. 로제 때에도 이야기 했지만, 역시 기회가 있으면 홀라당 먹어버려."
보세요 선장님. 사람을 무슨 요리처럼 말하지 마세요. 게다가 미나랑 나는 그런 상태가 아니랍니다. 잘 봐주면 도제 관계고. 나쁘면 이전에 자신을 배신한 적이 있는 나쁜 새끼란 말이지요.
레이먼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갑판을 신발코로 한 번 차고 나서 담배 연기를 다시 피워올렸다.
무슨 카사노바도 아니고 주머니에서 땅콩 꺼내서 먹듯이 슥슥 해서 끝낼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마리아가 레이먼드의 대답을 듣고 있다가 주변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야, 일단 전에 무슨 일을 했던지간에 내가 동료로 받은 이상에는 같은 배를 탄 동지다."
마리아의 말에 선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지만 영 떨떠름한 모양이다. 그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로 죽이지 못해서 으르렁거리던 해군과 해적의 관계니까. 마리아는 그 수동적인 태도가 약간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얼굴을 약간 찌푸렸다가 말했다.
"이번에는 수입도 제법 괜찮았고. 새로 항해사도 받았으니. 환영식을 겸해서 간단하게 술이나 한 잔씩 하자고들."
마리아의 말에 선원들이 알겠습니다. 라고 말했지만 역시 내키지는 않는 모양이다. 자식들이, 라고 중얼거리면서 마리아가 한숨을 쉬었고. 레이먼드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저 반응이 당연한 겁니다. 당분간은 미나에게 힘을 실어줘야겠네요."
그 말에 마리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뭐, 당연한 일이고. 이걸 처리하는 것도 선장의 일이지."
마리아와 레이먼드가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 선원들을 먹을거리들과 술을 갑판 위에 내놓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몸을 닦아낸 미나가 문을 열고 나왔다. 우리는 이미 갑판에 앉아서 이것 저것 늘어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요, 신입 항해사!"
마리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미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미나가 약간 당황하면서 마리아 쪽으로 향했다.
"선장님... 이게 다 뭐지요?"
미나의 말에 레이먼드가 미나의 손에 술잔을 쥐여주면서 말했다.
"선상에서 하는 환영식 같은 거지. 한 잔 받으라고."
레이먼드의 말에 미나가 한 숨을 쉬고 대답했다.
"여기서 말인가?"
미나는 일단 술잔에 따라진 술을 바라보다가 갑판에 주저앉아있는 다른 사람들을 보고 자기도 주저앉았다. 그리고 마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미나를 한 번 보고 주변 선원들을 향해 말했다.
"주목해라."
모두의 시선이 마리아에게로 향하고. 그녀는 미나를 한 번 보고 나서 말했다.
"배에 새 항해사가 들어왔다. 나와 로제를 보면 알겠지만. 대대로 우리 배는 여자들 실력이 더 좋았지."
그 말에 선원들이 우우우우 하는 소리를 내고. 마리아가 히죽거리면서 그들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올렸다.
"가랑이에 달고 있는 장난감 구실도 못하는 새끼들이 우우우우 좋아하시네."
미나 웨스트우드 항해사! 라고 마리아가 말하면서 일어나라는 제스쳐를 취하자, 미나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마리아가 팔을 휙 미나 어깨로 두르고 나서 말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여자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항해사 레이먼드가 뛰어난 인재라고 말했다! 그래서 난 이 전 해군 선장의 실력을 믿어."
그러면서 마리아가 어깨에 두른 손을 탁탁 치고는 미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레이먼드를 믿으니까. 녀석이 괜찮다고 하는 녀석은 당연히 괜찮은 녀석이겠지. 안 그래?"
모두가 그 말에는 수긍한다. 레이먼드라고 하는 남자는 이 배 위에서 결코 귀염둥이의 위치가 아니니까. 죽을 뻔한 것을 살려내고, 해군을 두 번이나 박살낸 항해사다. 만약 마리아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죽는다면 다음 선장은 사실 상 레이먼드라고 모두가 생각할 정도니.
"그가 동료로 받자고 한 인재다. 우리가 레이먼드를 신뢰하는 만큼, 레이먼드가 추천한 이 신입 항해사 아가씨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말에 일단 모두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한 마디 해보라고. 미나 웨스트우드."
그 말에 미나가 잠깐 당황하다고, 마리아가 웃으면서 괜찮아. 라고 말한다. 그리고 미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입을 열었다.
"미나 웨스트우드입니다. 전에 해군에서 선장으로 있었고. 저번 해전에서 패전의 책임을 물어서 사형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잠깐 침묵하고 있던 미나는 다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말했다.
"제가 이 배에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당연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나자. 마리아가 큭큭거리면서 잔을 들어올렸다.
"신입 항해사를 위하여."
위하여, 하는 소리가 배 위에 퍼지고. 모두의 술잔이 빈다.
다시 자리에 앉은 다음에 마리아는 히죽거리면서 미나를 보고 말을 걸었다.
"레이먼드랑은 어떻게 된 거야? 자세히 말해봐."
그 말에 미나가 잠깐 당황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어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하고. 미나의 말에 모든 선원들이 귀가 집중된다.
"..."
이야기를 다 듣고 나자 마리아가 되게 애매한 표정이 되어서 레이먼드를 바라봤다. 레이먼드는 그런 마리아의 시선을 마주하고는 뭐, 왜. 하는 표정으로 술을 홀짝인다.
마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레이먼드에게 다가가서 조용히 말했다.
"씨팔, 내가 불안하다 했어. 내가 로제 말고 다른 여자는 안된다고 하지 않았냐?"
뭔 소리야. 레이먼드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리아를 바라봤다.
마리아의 촉은 이미 강하게 울리고 있었다. 쌍욕 하고 나서 따스한 조언이라. 이 자식이 그런 고전적인 수법으로 사람을 홀리다니.
"나의 풍부한 경험과 뛰어난 감각으로 생각해 봤을 때. 미나 웨스트우드 항해사는 말이지. 고기로 치면 거의 다 익은 고기야. 이제 소금 치고 그냥 냉큼 먹어버리면 된다고."
아까부터 자꾸 사람을 음식에 비교하지 마시지요. 라는 레이먼드의 말에 마리아가 허, 하고 헛웃음을 치고 나서 머리를 저었다.
"넌 이제 배에서 내리면 무조건 나나 로제랑 함께 다닌다. 어디 가서 또 눈 먼 여자 하나 익혀놓을지 모르니까."
간첩 좋아하시네. 마리아는 작게 레이먼드를 보며 말을 하면서 슬쩍 미나를 본다. 사람한테 살갑게 구는데에는 도가 튼 로제가 미나를 붙들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미나도 로제와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는 눈치다. 그 사이에 마리아가 레이먼드에게 말했다.
"그냥 꼬셔. 간첩이고 지랄이고 소설에도 나오지 않냐. 간첩이 사랑에 빠져서 임무를 포기하는 전개."
레이먼드가 그 말에 코웃음을 치고. 마리아가 그 코웃음에 얼굴을 구기고는 레이먼드의 관자놀이를 주먹으로 꽉꽉 누른다.
"이 새끼가... 건방지게 누구 앞에서 코웃음을 치는 거야? 조금 있으면 선장 잡아 먹겠다!? 응? 잡아 먹겠어!"
레이먼드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서 경련하기 시작한다.
"으아아아! 으아아아아아! 잘못했습니다아아아아! 저 진짜 죽습니다! 선장님!? 저 죽어요!"
레이먼드와 마리아가 그러고 있는 동안에, 로제는 웃으면서 미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항해사님... 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비실비실 웃으면서 술잔에 술을 채워주는 로제를 보면서 미나가 약간 웃었다. 그리고 로제가 한숨을 쉬었다.
"배 안에는 여자가 별로 없어요. 그야,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지만요. 선장님은..."
이라면서 로제가 시선을 레이먼드의 관자놀이를 내리누르고 있는 마리아에게 향했고. 미나의 시선도 그 쪽으로 향해졌다.
"보시다시피, 그... 쉽게 말을 걸 만한 분이 아니기도 하고 해서요."
로제는 약간 붉어진 얼굴로 웃으면서 미나를 보며 눈을 빛냈다.
"저기, 제가 혹시 언니라고 부르면 엄청 기분이 나쁘실까요?"
그 말에 미나가 잠깐 당황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로제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럼, 이제 그냥 미나 언니라고 부를게요!"
히힛 거리면서 육포를 씹으며 로제는 미나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언니는, 항해를 얼마나 배웠어요?"
미나는 방실거리면서 이야기를 걸어오는 로제를 부담스러워하면서 질문에 계속 대답해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레이먼드가 마리아를 바라봤다.
"저 항해사 실에 있을 때 로제한테 이야기 했습니까?"
그 말에 마리아가 대답했다.
"응."
너만 머리가 굴러가는게 아니라고. 마리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욱신거리는 레이먼드의 관자놀이를 검지로 쿡 눌렀다.
"상대가 간첩이라면, 이쪽에 아예 정을 붙이게 하는것도 하나의 방법이잖아."
안 그래? 라고 말하면서 마리아가 웃었다.
"배 안에 몸 섞은 남자랑 살갑게 언니, 언니 하는 귀여운 여자애에다가, 신뢰해주는 선장까지 있으면 글쎄... 간첩질도 양심 찔려서 못하지 않겠어?"
그 몸 섞는 남자라는 전제는 빼주시는게 어떨까요. 레이먼드의 말에 마리아가 픽 웃으면서 이마에 핏줄을 세웠다.
"닥쳐, 지금 안그래도 그 생각 하면 뒤지게 빡치니까. 불알에 피스톨 갈긴다? 하여튼 발정난 개새끼도 아니고 밖에 나갔다 하면 여자 하나 집어서 오는거냐. 나는 너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건만."
... 죄송합니다. 라고 레이먼드는 말하고 나서 침묵했다. 아니 그러니까 미나가 나를 그런 대상으로 볼 가능성은 없다니까. 레이먼드는 속으로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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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