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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131화 (13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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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 down

배는 메이너스 저택 근처에 정박을 했고, 우리는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서 모두 배에서 내렸다. 나 까지 내려버리면 바다의 날개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겠지만...

바다의 날개가 발각된다면 어차피 우리는 에밀의 저택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육지로 오른 우리는 각자 검과 피스톨 등을 챙겨서 미나의 인도 아래에 에밀의 저택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 저택으로 들어가는 정문 안에는, 그 흔한 경비병 하나가 보이지를 않았고 미나가 조용히 말했다.

"원래 다섯 명 이상이 지키는 걸로 알고 있는데."

없으면 좋은거지. 라고 마리아는 말하고 나서 그대로 달려들어 정문을 발로 후려깠다. 곧 으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정문을 고정하고 있던 경첩이 뜯어져나가면서 열렸고. 마리아는 뒤를 보면서 말했다.

"방해하는 새끼들 있으면 안부인사도 하지 말고 죽인다. 다섯 명 남아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새끼들은 다 죽여."

마리아는 말을 마치고 나서 앞장서서 저택의 정원을 가로지르기 시작했고. 정면에 보이는 거대한 건물에 도착할때 까지, 우리는 어떤 병사들과도 만나지 않았다.

"... 이거 진짜 엄청 수상한데."

라고 말하면서 마리아가 긴장한 표정으로 저택 쪽으로 다가갔다.

깡, 깡.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철버덕거리며 넘어지는 소리. 그리고 신음소리 같은 것들이 저택 안쪽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리아는 한 손에 피스톨을 든 채로 그 문을 열었다.

저택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자, 소름끼칠 정도로 짙은 피냄새가 우리쪽으로 밀려왔다. 피냄새에 익숙해진 우리조차도 안색이 약간 변할 정도로 짙은 혈향. 미나는 이 냄새를 맡고서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거대한 홀, 흔들리는 샹들리에, 아름다운 대리석 바닥에는 수많은 시체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팔이 잘린 시체, 머리에 구멍이 난 시체. 목이 그어진 시체....

흘러나온 피는 웅덩이가 아니라 마치 커다란 붉은 카페트처럼 거대한 홀 전체를 물들이고 있었고. 아직 살아있는 몇몇 사람들이 고통찬 신음소리를 흘리면서 울부짖고 있었다. 아무리 적어도 백명은 훌쩍 넘는 숫자의 시체와 중상자들이 홀에 서로 뒤얽혀 있었다.

그리고, 그 홀의 중앙에는 로제가 서 있었다.

왼쪽 팔은 탈구가 되었는지 덜렁거리고,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검은 찢어진 천 조각으로 꽁공 묶여져 있었다. 하얀 피부에는 자신의 피인지, 다른 사람들의 피인지 모를 것들이 잔뜩 엉겨붙어서 온통 검붉게 말라붙어있었고. 비단처럼 부드럽던 머리카락은 선지피와 엉켜서 덩어리져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피와 살점 조각 같은 것들이 잔뜩 엉켜있다.

"으아.. 아...흐으그윽...."

눈을 뜨고 있지만, 뭔가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게 분명하다. 눈을 풀려서 그 안으로 피가 흘러들어가는 데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고. 가만히 서서 비틀거리면서 몸을 흠칫, 흠칫 움찔거리면서 허공에 검을 마구잡이로 휘두르고 있었다. 휘두를 때 가끔 씩 보이는 몸에 박혀들어가 있는 주사기는 등에 하나, 장딴지에 하나. 팔뚝에 하나.

"시허... 오...마... 미아... 요..."

입은 끊임없이 뭔가를 말하고 있지만 말이 아니다. 제 정신이 아닌 상태. 눈물, 콧물, 침이 흘러내리면서 로제의 얼굴에 달라붙어있는 핏덩이들과 함께 주르르 바닥으로 흘러내린다. 마리아는 퍼뜩 그 광경을 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서 말했다.

"로제!?"

마리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혼자서 끈 떨어진 인형처럼 움찔거리고 있는 로제에게 다가갔고.

"아.... 아아아아악! 다가오지마아아아!"

자기 주변에서 뭔가 움직인다는 것을 느끼자마자 로제는 마리아를 향해서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정신을 놓은게 확실하다. 마리아는 황급하게 로제가 휘두른 검을 자신의 검으로 막아내었고, 그와 동시에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무슨... 힘이?! 정신 차려 로제! 사람 얼굴 정도는 알아..."

계속해서 짐승처럼 달려들면서 검을 휘두르는 로제에게 페이스가 말린 마리아가 계속해서 로제가 휘두르는 검을 막아낸다.

끄억, 끄아으억. 하는 소리가 로제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호흡이 턱 끝에 걸린게 아니라 이미 한계까지 숨이 차오른 상태에서도 로제는 검을 휘두르는 걸 멈추지 않고 있었다.

"이런 씨팔...!"

마리아는 뒤로 물러나면서 재빠르게 검을 막아내고 로제가 다시 잠깐 흠칫거리는 동안 후우 하고 숨을 내쉰 다음에 자세를 바로잡았다. 다시 로제가 마리아에게 달려들고. 다시 자신의 페이스를 회복한 마리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로제야, 너는 제 정신이어도 나를 이길 수가 없었는데..."

지금 상태로는 비기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마리아는 빠르게 휘둘러지는 검을 막아내면서 로제 뒤로 돌아가서 로제가 검을 들고 있는 팔을 자신의 손으로 꽉 붙잡았다.

"아아.... 아아...! 도와줘요...! 선장님, 레이먼드?! 싫어, 싫어어어어!"

마리아가 안색을 바꾸고는 재빠르게 양 팔을 놓고 뒤로 빠지고, 그녀의 코 앞을 로제의 칼이 스치고 지나간다.

"젠장, 로제 팔이 부러질 뻔했어."

몸을 소중하게 하라고. 마리아는 다시 달려드는 로제의 등 뒤로 돌아가서 그녀의 목을 자신의 팔뚝으로 휘감고 누르기 시작했다.

로제의 몸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하고, 마리아는 로제의 몸 상태를 확인한 다음 한숨을 쉬고 우리를 보며 말했다.

"미나 웨스트우드와 다른 선원들은 이 저택을 최대한 빠르게 샅샅히 뒤져봐."

말을 하고 나서 그녀는 자신의 옷과 뺨에 엉겨붙은 핏자국을 비벼서 지워내고 로제를 바라봤다. 몸에 꽂혀있는 주사기. 나는 그걸 다 뽑아내고 나서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시체들 사이에서 안의 내용물이 남아있는 주사기를 발견했다.

조심스럽게 그 내용물의 냄새를 맡아본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정신병자 같은 개새끼들이. 그냥 마취제도 아니고, 사람을 잡으려고 유령눈물을 사용해?!"

나의 말을 듣고는 마리아가 입을 열었다.

"독약이야?"

나는 고개를 젓고 나서 어금니를 악물고 말했다.

"독약이 아니라, 마약입니다."

로른 해에서 대문국의 바다를 지나, 서쪽으로 가면 나오는 소르본 정글에서만 자생하는 꽃으로 만들어낸 마약이다. 탐험선을 타고 돌아다니면서, 이 약에 취한 녀석들을 몇 명 본 적이 있다.

"절대로, 혼자서는 못 끊습니다."

약이 돌지 않을 때에는 제정신이 아니고, 약이 돌고 있을 때에도 제정신이 아니게 만드는 약. 한 번 맞으면 어머니고 아버지고 몰라보고 약 하나에만 메달리게 만드는 약.

나의 말에 마리아가 자신의 입술을 꽉 깨물고는 말했다.

"방법이 없는거야?"

있지. 실제로 치료하는 광경을 보기도 했었으니까. 나는 주먹으로 바닥을 강하게 후려치고는 말했다.

"방법은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로제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괴로울 겁니다."

세상에, 한 번에 이 정도의 양을 주입시키다니. 로제가 지금까지 살아있는게 기적이다! 나는 로제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내 옷깃으로 닦아주고 나서 로제의 이마에 입술을 살짝 맞추었다.

"정말로... 미안하다."

내가 실수하지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나는 로제의 몸을 살펴보다가. 탈구된 왼팔을 꽉 붙잡고 다시 맞춰넣었다. 으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로제의 몸이 한 번 펄쩍 뛴다.

그리고, 저택 안에서 남자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번엔 또 뭐야!?"

마리아가 로제를 조심스럽게 공주님 안기로 안은 채로 나와 함께 비명이 들린 곳으로 달려갔다.

거기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문이 하나 열려 있었고, 그 안을 뒤져보던 선원은 바닥에다가 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마리아가 그 선원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남자는 몸을 한 번 부르르 떨고 나서 지하로 내려가는 문을 가르키고 말했다.

"저긴... 저긴 지옥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저런....!"

다른 사람들도 선원의 비명을 듣고 모두 모인 상태였고. 마리아는 로제를 돌보기 위해서 위에 남아있기로 하고 나는 미나를 포함한 다른 선원들과 함께 지하실을 내려갔다.

지하의 끝에는 문이 두 개 있었다. 그 중에 취미, 라고 써져있는 팻말이 붙은 문은 선원이 열어보았는지 망가진 채로 문이 열려있었다. 도대체 저 안에 뭐가 있는건데. 뭐가 있길래 홀 위에서 시체의 산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던 해적 선원이 크툴루 만난 유치원생처럼 맛이 간건데.

"..."

뒤편에서 들려오는 구역질 소리들. 나는 그 안을 확인하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미나, 에밀 메이너스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그런 사람이 아닌 건 맞네. 아니, 그 새끼는 그냥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잘려나간 자신의 손바닥을 입에 문 채로 꿰메져 있는 사람. 눈이 파이고, 그 안에 보석이 박혀있는 사람. 혀가 낚시 바늘에 꿰인 채로 벽에 매달린 채로 버티면서 절규하는 사람....

젖가슴이 잘려나가고, 잘린 자리가 화상을 입은 채로 방치되어서 고름이 흘러내리는 여자와 온 몸에 수백개의 바늘이 빽빽하게 박힌 채로 신음하는 남자.

1층, 로제가 싸우고 있던 그 홀이 비참하고 잔인한 전쟁터였다면. 이곳은 광기가 지배하는 지옥이다. 미나의 안색은 순식간에 시퍼렇게 변했다.

"내... 내 동생이, 에밀 메이너스에게 가두어졌다고 한다면..."

나는 그 말에 대답해 줄 수 없었다. 이 거대한 지옥 너머에는 두 개의 문이 있었다. 하나는 재료실, 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었고, 하나는 심심풀이. 라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우리는 재료실의 문을 부수어서 열었고. 거기에는 어떤 소년 한 명이 사지가 묶인채로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데미안... 데미안 웨스트우드? 동생아?!"

미나는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앞에 자빠져 있는 소년의 이름을 불렀고. 그 목소리에 소년이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말을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미나는 그 전까지의 딱딱한 표정이 완전히 지워진 채로 조심스럽게 소년의 얼굴을 매만졌다. 소년은 지금 말을 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상황이다.

양 눈이 꿰메져 있고, 입도 꿰메져 있으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날카로운 단검을 미나에게 건네주었다.

"..."

미나는 멍한 표정으로 내가 내민 단검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단검을 받고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데미안, 얌전히. 움직이면 큰일나."

조심스럽게 미나는 데미암의 입을 꿰메고 있는 실을 단검으로 끊어내었고. 소년의 입에서 공포섞인 소리가 흘러나왔다.

"누나... 누나 도망쳐요! 에밀 이라는 남자는 미친 사람이야!"

쉬... 쉬... 라고 미나는 조용히 말하고는 데미안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잠깐만... 움직이지 마렴. 이제 눈을 묶은 걸 풀어줄게."

그리고, 미나가 들고 있는 날카로운 단검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남동생 눈을 봉합하고 있는 실들을 끊어내었다.

나는 그 아이를 확인하고는 한숨을 쉬었다.

"좋아..."

꼭 해야 할 일들은 이제 다 끝났다. 아직 에밀이 돌아오지는 않은 모양이다. 나는 재빨리 마음을 먹고 나서 말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다 끌어내서 저택 입구로 옮겨."

에밀 메이너스... 정신병자 같은 새끼. 나는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이래서 군인들이 자기 저택 주변을 돌아다니지 못하게 했군. 들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자신도 알고 있었던 거겠지.

그러면 들키게 해주는게 인지상정이겠지.

이 사람들이 모두 다 끌어올려지고, 다른 사람들이 이 사람들을 발견했을 때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할 지 궁금하구나.

나는 문을 나서서 취미, 라고 되어있는 방의 옆 문을 따고 들어갔고. 여기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더 얼굴을 구겼다.

커다란 도살자용 칼이 두어개 도마에 박혀있고, 그 주변으로 주르르 늘어서 있는 쇠창살들과. 그 안에 가두어져서 목줄을 차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 천장에 걸려있는 살점들을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돌리고 올라오는 구역질을 가까스로 참았다. 지가 무슨 한니발이야!?

이 미친 새끼는... 사람도 쳐먹는 새끼였냐.

다른 사람들도 이 안으로 들어와서 광경을 보고 다시 구역질을 하면서 밖으로 나갔고. 나는 나를 보면서 입에 호스가 물린 채로 발버둥을 치는 사람들을 보다가 말했다.

"다 풀어줘. 남김 없이."

이 사람들은 몸도 정신도 멀쩡한 상태니까. 밖으로 풀려나오면 에밀의 인생은 그대로 끝장날 것이다. 나는 러셀의 검을 뽑아들고 쇠창살들을 후려쳐서 잘라내고, 사람들을 끌어내었다.

지하실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다 끌어올려지고 나서. 나는 아직 남아있는 하나의 방을 떠올렸다.

이제, 마지막으로 단 하나의 방 만이 남아있었다.

심심풀이라. 도대체 저 안에는 무슨 미친 짓거리를 하고 있었는지 한 번 보자고 에밀 메이너스.

============================ 작품 후기 ============================

9시, 한편 더. 대학교 개강 특집 같은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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