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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137화 (137/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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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배를 돌릴 때 부터 짐작하고 있던 일이었다. 녀석들이 더 먼저 도착했을 수도 있고. 그렇게 된다면...

에밀은 어쩌면 이번 일로 자신이 끝날 수도 있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이 아니라 이번에 거의 확실하게 자신의 운이 다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에밀은 메이너스 항구로 돌아가면서 자신의 선실 안에서 미친듯이 웃었다.

이게 이렇게 재미있을까. 내가 파멸할 수도 있다! 모든 일들이 끝날 수도 있는 것이다!

너무나도 웃겨서 눈물이 나올 정도로 웃었다. 그래, 그 날이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너무나도 빨랐다. 에밀은 자기가 한 70살은 먹어야 들키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그는 혼자서 상상해보곤 했다. 자신이 하고 있던 그 모든 일들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면 과연 자신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두려움에 떨면서 걱정에 손톱을 물어뜯고 있을까? 자신을 이렇게 파멸의 구렁텅이로 굴려버린 자에게 분노할까? 아니면, 스스로에게 실망할까?

걱정이 전혀 되지 않았다. 분노도 일어나지 않았고,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두근거렸다. 너무나도 기대되어서 참을 수가 없다. 에밀은 큭큭거리면서 하얀 이빨을 드러내었다.

마치 농부가 일년동안 노력해서 만들어놓은 곡물들을 추수하는 기분이다.

자신이 인육을 먹였던 수많은 사람들은 과연 나를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 동안에 자신들이 초대받아서 먹은 음식이 사실은 사람고기였다는 것을 알면 토할까? 나에게 인간만도 못한 개새끼라고 쌍욕을 하며 머리에 돌을 던질까?

폐인이 되고,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불이 꺼지면 경기를 일으키며 비명을 지르는 새끼들을 돌려받은 그 가족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아, 마치 오랫동안 정성들여서 써놓은 글이 출판되는 기분이다.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떤 말들을 할까?

너무나도 기대되어서, 미칠 것 같다!

"아니지, 이미 미쳐있었으니... 조금 더 미칠 것 같은건가!"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진동을 한다. 방 안에 습기가 차오르고, 흔들리던 촛불의 색이 바뀌고. 썩는 듯한 비린내가 사방에서 다가와 방을 가득 채운다.

"아, 그래. 니들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딱 좋은 타이밍 같아 보이기는 하니까."

에밀은 히죽거리면서 눈 앞에 나타난 검은 형상을 바라봤다."

- 곤란한 상황 같은데.

그 말에 에밀이 키득거리면서 의자에 앉아 테이블에 양 다리를 올리고 말했다.

"어디가 곤란해 보이지? 내가 곤란해 보이나?"

- ...

아니, 나는 지금 너무나도 즐거워. 라고 말하면서 에밀은 테이블 위에 올린 다리를 내려놓았다.

"지금까지 했던 모든 것들은. 이 순간을 위한 과정이었어!"

피날레가 다가온다. 경멸하는 시선과 구역질을 하는 사람들. 나를 보며 욕하는 자들과 엄중한 천벌이라도 내리는 것 처럼 무겁게 망치를 두들길 판사들.

"공연이 시작되면, 끝도 있는 법!"

지금 와서는 알 수 있었다. 에밀은 아마, 자신의 나이가 육십이 넘어서도 자신의 행위들이 밝혀지지 않았으면. 자수를 했으리라.

그리고 그건 분명히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 것이다. 결국, 아무도 알아내지 못했다는 거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레이먼드에게 약간의 고마움까지 생기고 있다.

그가 아니었다면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을, 최고의 상태에서 즐기는게 아니라. 최악의 상태에서 즐겨야 했을테니.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내려버리는 막에는 어떤 흥겨움도 없는 법이다.

등골이 짜릿거릴 정도로 기대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 흥분과 쾌감이 부디 현실이 되기를. 정말로 그 마리아 해적단이 자신보다 먼저 도착했으면 좋겠다. 내 최후의 시발점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면.

그 방아쇠는 이런 식으로 당겨져야한다. 내가 인정했던 사람들에 의해서.

하녀 따위가 호기심을 못 이겨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발견되는 거지같은 엔딩 따위는 내가 거절하지.

"그러니 내 눈 앞에서 사라져라. 좋은 기분 망치지 말고."

- 다시 한 번 기회를 줄 수 있다.

그 말에 에밀은 얼굴을 구기면서 소리쳤다.

"백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고 해도 지금처럼 즐겁지 못할 거다!"

검은 그림자가 일렁거린다.

- 이해 할 수 없군. 아쉽지 않나?

그 말에 에밀은 정신나간 사람처럼 흐흐흐흐 하고 웃기 시작했다.

"치졸한 패배자 새끼들이나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를 바꿔보려고 발악하는 법이다. 성공의 달콤한 열매가 내 것이라면, 실패의 쓴 독도 내 것인 법이지."

피하려고 찌질거리는 행위는 내가 거절한다. 에밀은 말을 마치고 나서 다시 그 그림자를 보면서 말했다.

"꺼져라, 아니면 아직 이게 조금 남아있는데. 나눠줄까? 한 잔 하고 가겠나?"

에밀은 말을 하면서 소매 안에서 액체를 꺼냇다. 싸늘한 앤을 녹인 물. 그것을 확인하자 그림자의 모습이 눈에 띄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내 그림자는 사라지고. 에밀은 키들거리면서 위스키를 잔에 따라서 들이켰다.

"나라면..."

지하에 있는 그 가축들과 장난감들을 모두 밖으로 끌어내 놓고 도망칠거다. 그 뒤에는 알아서 해결될 테니.

그리고 나는 재판을 받으러 수도로 향하겠지. 배를 타고.

마리아 해적단은 그 배를 노릴 것이다. 그리고 나를 만날 것이다

"로제는 아마 함정에 걸렸을테고. 과연 어떤 꼴을 하고 있을지 기대되는군."

그 약이 그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니까 말이지.

에밀이 타고 있는 배는 메이너스 항구에 정박했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병사들은 에밀을 체포하려 들었다. 에밀은 자신에게 밧줄을 들고 다가오는 병사들을 보면서 웃었다.

결국 성공했군. 내 끝이 코 앞으로 다가오고 있군. 병사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에서 에밀은 쾌감을 느꼈다. 그래... 너희들이 따르고 있던, 만날 때 마다 존경한다고, 닮고 싶다고 하던 분은 사실 이런 사람이란다.

코 앞에 세상에서 제일 잔인한 악마새끼를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있던 병신들. 경멸과 분노와 역겨움을 담고 있는 그 눈동자가 너무나도 웃겼다.

잠시 뒤에, 그는 감옥 안으로 던져져서 판결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팔을 묶고 있는 사슬을 보면서 히죽 웃었다. 이런 감촉이었나? 별거 없구만.

메이너스 군항에 있는 재판소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서 다루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전무후무한 사건이었고, 도대체 어떤 죄를 에밀에게 적용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토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재판정에서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이 사건은 여기에서 끝낼 것이 아니라, 수도에 있는 대법정에서 결론을 봐야 할 일이다.

그래, 이거다.

에밀은 그 내용을 듣자마자 숨이 넘어갈 정도로 크게 웃어젖혔다. 씻지 못해서 더러워진 몸과, 몸을 묶은 사슬이 쓸리는 감촉과. 떡진 머리. 그가 배로 이동하는 동안에 메이너스 군항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욕을 하면서 돌을 던졌다.

병사들은 굳이 막지 않았고. 에밀도 그걸 맞는데에 주저함이 없었다. 자신의 몸을 후려치고 지나가는 돌조각들이 너무나도 상쾌하다.

이제 다 되어간다. 최종악장이 다가온다. 그를 태운 이 배가 출발하고 나면...

글쎄, 철창살 안에 갇혀서 좀 졸고 있다보면 그들이 내 눈 앞으로 다가오겠지. 그들이 어떤 말을 할 지가 너무 궁금한데.

부디 서두르라고. 오래 기다리고 싶지는 않아. 에밀은 싯누렇게 변한 이를 드러내면서 어두운 창살 너머에서 웃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분량이... 짜다....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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