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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락
나는 눈 앞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잠깐 눈을 비볐다. 내가 지금 씨발 뭘 보고 있는거지.
- 야, 한 번 물러줘.
"불가."
아직 꿈을 꾸고 있는건가. 왠 상어대가리 하나가 지금 도리안이랑 체스를 두고 있는 것 같은데. 게다가 지고 있어. 완전 못해. 남은게 폰 두 개랑 왕 뿐이잖아. 손을 들어서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던 상어가 나를 보고는 반색을 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인간! 오랜만이군! 아, 실수했군. 미안하다.
내가 반가운게 아니라, 일어나면서 체스판을 엎고 싶었던 모양이다.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체스판의 불쌍한 말들과, 자신의 앞에 놓인 체스판을 보면서 입맛을 다시다가, 일어나서 위로 다시 올라가버리는 도리안. 삐졌나?
"놀러왔냐?"
나는 어이가 없어서 상어머리를 바라봤다. 못 본 사이에 상처가 더 늘어난 걸 보니 그렇게 멀쩡한 건 아닌 모양인데 잘도 여기까지 와서 체스를 두고 있구만.
- 유물은 다 모았냐?
상어머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랜트가 오는 걸로 완성이니까, 사실 상 다 모인거나 마찬가지지. 상어머리가 주먹을 쥐면서 좋아 라고 말한 다음에 나를 봤다. 물론, 나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배는 다 모았는데.
"그래서, 이제 부두술사 불러내서 닭 피라도 배에 쏟으면 되나?"
나의 말에 상어가 푸르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손을 앞으로 내밀고 휙휙 저으면서 말했다.
- 뭔 미역같은 소리야? 아침 식사로 복어알 먹었냐?
... 그거 먹음 뒤진다 이 새끼야. 복어알을 내가 왜먹어. 상어머리는 히죽거리면서 체스 말 하나를 집고 던지고 받으면서 말했다.
- 가르시아 해로 가줘야 한다.
와, 존나 기쁘네! 나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들은 것 처럼 그를 보면서 말했다.
"복어알 먹었냐?"
그 말에 상어머리가 킬킬거렸다. 나는 그를 바라봤다.
"지금은 겨울이다. 가르시아 해에 겨울에 바다의 날개 끌고 가라고?"
정신 나갔냐? 바다의 날개가 지금 가르시아 해에 지금 가면 그대로 얼어붙을 거다. 차라리 다리를 묶고 마라톤을 뛰라고 하지? 그건 최소한 움직일 수라도 있잖아!
머맨이 하품을 한 번 늘어지게 하고는 나를 바라봤다.
- 크리스탈룸의 겨울에 대해서는 우리도 잘 알고 있지.
그리고 그는 작은 병 하나를 던져줬다. 나는 그걸 가만히 살펴보았다. 뚜껑을 열자, 뚜껑과 연결되어있는 동그란 도넛 모양의 막대기. 살짝 불어보자, 보글거리면서 물방울이 생겨나고, 불 수록 점점 커진다. 이거 언제까지 커지는거야? 물방울은 원형의 막대기에서 떨어진 생각을 하지 않고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보던 상어가 다가가서 동그란 철을 꾹 누르자, 모양이 탄력적으로 변하면서 물방울이 그대로 떨어져나가 원형을 유지했다.
와, 저거 제법 탄탄한데. 바닥에 떨어져도 터지지 않네.
"..."
나는 가만히 그걸 바라보다가 옆을 돌아서 상어머리를 바라봣다.
- 이해했냐?
개뿔이나! 나는 입을 떡 벌리고 눈 앞에서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상어머리를 바라봤다. 상어가 어떤 표정으로 뽐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저런 표정으로 뽐내겠지.
내 반응을 보고 그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 저 방울 안에 가두어진 공기는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서 그 비눗방울 장난거리를 들고 히죽거리면서 그것 안에 손가락을 넣었다가 빼보고, 꽉 쥐기도 해보았다.
- 제한 시간이 다 되기 전에는 터지지도 않지.
그 말대로, 꽉 누른 비누방울을 머맨의 주먹 사이로 비집고 나와서 오히려 머맨의 주먹을 감쌌다.
"그래서, 이걸로 배를 감싸라고?"
바다의 날개 물대포를 버틸 수 있을까? 머맨은 장담했다.
- 그 물대포는 물방울 밖으로 뚫고 나가겠지만, 터지지는 않을거다. 참고로, 왠만하면 아껴서 쓰라고. 그거 이제 하나 남았으니까.
어떤 방식으로 작동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바다의 날개 주변을 따뜻하게 유지시킬 수 있다는거지. 그렇다면 찾아갈 수는 있겠지만 말이지.
"셸키에 관한 이야기는 오늘 처음 듣는데. 그 친구들이 꼭 필요한 건가?"
그 말에 머맨이 대답했다.
- 없으면, 복구할 수 없어.
나는 턱을 쓰다듬다가 말했다.
"또 필요한건?"
그 말에 머맨은 조용히 있다가 이내 웃으면서 대답했다.
- 그것 뿐이다. 셸키들이 우리와 합류하면 유물의 복구는 어렵지 않아.
보자. 나는 배를 다 모으고 나면 한 동안 머맨이나 머메이드들이 가져가서 뚱땅뚱땅거리면서 고치리라고 생각했는데. 단지 셸키들이 필요한 뿐이라니. 나는 그를 보면서 다시 말했다.
"셸키들이 합류하고 나서, 더 쉽들이 이전의 모습을 찾는데는 얼마나 걸리지?"
머맨이 대답했다.
- 오래 걸리지 않아, 하루면 충분하다.
그러면...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의 날개를 제외한 방랑자, 싸늘한 앤, 검은 어금니, 안개의 미아는 가르시아 해로 가야 할 이유도 없고. 가면 오히려 방해만 된다. 어차피 바다의 날개 속도를 녀석들이 따라마실수 없으니까. 그것들도 같이 따라간다면 속도만 더 떨어지겠지.
그러니까, 바다의 날개를 제외한 다른 배들은 로만과 합류해서 해전을 준비하게 하자.
그 사이에 우리는 셸키들을 만나면 된다. 하루 정도 걸리는 일이라면... 해전이 끝나고 나서는 곧바로 악마들과 싸울 준비를 하면 되겠지.
"좋아, 그래서, 셸키를 만나서 뭐라고 꼬시면 좋을까."
녀석들에게 도움! 이라고 외치면 녀석들이 곧바로 이곳으로 향할 준비를 하지는 않을거 아니야. 나의 말을 듣고 상어머리가 아아, 하고 자기 머리를 쾅, 하고 치더니 나에게 손바닥만한 가리비 하나를 내밀었다.
- 이걸 전해주면 된다. 그걸로 충분해.
나는 그 말에 가만히 그 가리비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좋아, 그럼 그렇게 알고 있지."
나는 그 가리비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나서 그를 바라봤다. 녀석은 다시 돌아가려고 문을 나서고 있었고. 등 뒤로 새겨져 있는 거대한 흉터가 들어온다. 야, 저건 이전에 보지 못한 흉터인데.
"상어. 너 괜찮냐?"
저거 아직 피 나잖아 미친.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엉덩이까지 길게 새겨져 있는 자상과 함께 군데군데 나 있는 상처들. 음? 하는 소리와 함께 나를 본 상어가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 그냥 바닷물에 절이면 나을거다.
덧나는게 아니라? 나는 그를 바라봤고 쯧, 하고 혀를 한 번 차고는 고개만 돌려서 나를 한 번 바라봤다.
- 다치거나, 죽거나. 우리는 전쟁 중이고, 전쟁은 다친 놈이랑 죽은 놈들 밖에 남지 않는 법이지.
다시 히죽 웃고 고개를 돌린 그가 걸어가면서 말했다.
- 뭐, 죽으려면 아직 멀었다. 기껏해야 긁힌 정도니까.
녀석은 문을 나섰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서둘러야겠는데."
저 자식이 등짝에 피로 바디 페인팅을 할 정도면 악마들이 일을 굉장히 성실하게 하고 있는 모양인데. 우리도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 우리가 이룬 성과가 따라잡히겠어.
나는 다시 소파에 앉아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마음만 급해져봐야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은 일단 카멜롯에서 출발한 그랜트가 바다의 담요로 들어오는 것이 우선이고. 그건 내가 어떻게 속도를 조절할 수 없는 일이니까.
"표정 좀 풀지?"
내 소파 옆에 마리아가 주저앉으면서 내 이마에 딱밤을 한 번 먹였다.
"자다가 남자한테 강간당한 표정인데."
어머 고마워라. 그렇게 구체적으로 말해줄 필요는 없었을텐데. 여튼, 일단 우리의 선장님께서 오셨으니까. 나는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머맨들이 우리가 가르시아 해로 갔으면 하는 모양인데요."
그 말에 마리아가 얼굴을 구겼다.
"지금? 겨울인데? 거기 가면 불알이 땡땡하게 얼어붙을걸?"
사실이지만. 나는 마리아에게 머맨이 넘겨준 방울놀이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그걸 들은 마리아가 멍하니 대답했다.
"물방울이 얼어붙지 않을까?"
설마, 머맨들이 진짜 병신들도 아니고. 그런 물건을 우리한테 넘겨주었을라고. 되게 귀한 물건인 모양이던데. 마리아는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말했다.
"좋아, 그럼 그랜트가 오는 데로 서로 이야기를 나눈 다음에, 우리는 가르시아 해로 넘어가자고."
마리아는 말하고 나서 생각 난 듯이 나를 보고 말했다.
"카멜롯이 가지고 있는 함대를 싸그리 끌어모아서. 지금 출항 준비중이야."
... 로만이 기뻐하겠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리아를 봤다. 마리아가 픽 웃으면서 말했다.
"로만이 조급해진 모양이던데."
한 나라의 제독이니까. 지내 나라 때려부수려고 옆나라에서 쳐들어온다는데 해적 본진에서 노닥거리고 있을 마음의 여유가 없겠지.
"그랜트는 거의 다 왔어. 한 삼일 정도 뒤에는 도착할거야."
마리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리를 꼰 채로 발을 까닥거렸다. 그러다가 내 표정을 보고 쯔쯔쯔 하는 소리를 내고 말했다.
"아직도 표정이 영 꾸릿하네."
그냥, 조금 기분이 애매하네. 잘 풀리고 있는데 그래서 무서워. 원고 퇴고하는데 고칠 부분이 하나도 없는 작가, 프로그램을 돌려봤는데 어떤 버그도 발견되지 않는 프로그래머 같은 기분이야.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해요 ㅠㅜ
대학교가 저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분량이 적은 것은 그 때문입니다...
조별 발표 하나와 개인 발표 하나가 겹치면 이 꼴이 되는 거군요. 하. 하. 하.
이런 씨...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