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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승리 전쟁 물음표
검은 어금니 위에서, 그랜트는 겨울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때, 자신이 통제하고 명령을 내리던 카멜롯 왕국의 군함들이 다가오고 있다. 그랜트는 그 위에서 휘날리고 있을 자신의 왕국 깃발을 상상하며 깊게 숨을 쉬었다. 차가운 김이 그랜트의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다가오고 있습니다. 보고 받은 숫자와 일치합니다."
바리스의 말에 그랜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겨울 바다지만, 그 수평선의 너머에서 녀석들은 다가오고 있다. 그랜트는, 자신의 손등에 살짝 떨어지는 작은 눈송이를 바라봤다. 차가운 겨울 바다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귀 닦고 잘들 들어라!"
검은 어금니에, 적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기가 걸리고. 그것을 확인한 로만이 자신의 손에 달린 갈고리를 한 번 슥 훑으면서 외쳤다.
"우리가 싸우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개다! 하나는 카멜롯 왕국 함대! 다른 하나는 게르하르크의 사략선!"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싸늘한 앤의 얼음을 갈고리로 쿡쿡 찍다가 외쳤다.
"카멜롯 왕국은 우리가 지겹도록 싸웠던 녀석들이다! 바다 위에서, 수십년이 넘도록 카멜롯의 군함들을 우리가 침몰시키고, 녀석들은 우리의 군함을 침몰시켰다, 맞나!"
그 말에 그렇습니다! 하는 외침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로만이 크게 쉼호흡을 하고 나서 외쳤다.
"그들은 우리의 선원을 죽이고 배를 침몰시킨다! 같은 것을 우리도 반복했지!"
로만의 얼굴이 그대로 굳고 그는 다시 외쳤다.
"하지만, 우리도 그 새끼들도 항구나 어촌은 왠만해서는 안 건드렸다! 설사 건드려도 거주민들을 싸그리 학살하지는 않았다!"
그거야, 만약에 항구를 손에 넣는데 성공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제 자신들의 소유가 되는 것이니까.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로만은 그 당연한 일을 가지고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공격당한 우리의 항구와 어촌들에, 자신들의 가족과 친구... 지인과 애인이 있는 자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 모든 학살 행위에는 한 명이 연루되어있다!"
사략 해적 게르하르크. 이미 로만 휘하에 있는 선장들과 선원들 사이에는 소문이 충분히 퍼져 있었다. 바람이 휘날리고, 흩날리는 눈발 가운데에서 로만이 외쳤다.
"그렇다면 제군들에게 묻는다! 저들 중에서, 현재의 주적은 누구인가!"
게르하르크입니다! 라는 외침이 울려퍼지고. 로만은 바다를 응시하면서 외쳤다.
"국가 간의 해전이 아니다, 제해권을 장악하기 위한 싸움도 아니다! 카멜롯 왕국의 제독 그랜트와 검은 어금니 선장 바리스가 우리와 함께 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그리고, 검은 어금니가 거대한 막대기를 쏘아올렸다. 그 뒤에는, 큰 상자 하나가 메달려 있었고. 날아가면서 그 궤도를 따라 사방으로 글자가 인쇄된 종이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저 상자는, 그대로 지금 다가오고 있는 카멜롯의 군함과 게르하르크의 사략선들을 향해서 날아갈 것이고. 거기에도 이 종이를 흩뿌릴 것이다. 내용은, 카멜롯의 국왕이 그랜트에게 보내주었던 혈서의 전문. 잠시 뒤에, 다시 검은 말뚝이 검은 어금니로 소환되고. 다시 상자가 메달린 채로 상대쪽을 향해서 발사된다.
"복수가 시작된다! 모두, 마음을 단단히 먹어라!"
다섯개 째의 상자가 발사 되었을 때. 저 멀리에서 몇 척의 배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검은 어금니는 계속해서 상자를 달고 있는 말뚝을 쏘아올리기 시작했고. 종이들은 계속해서 눈송이와 함께 상대의 진영에 흩뿌려진다.
"준비해라."
그리고, 그 장면을 보고 있던 그랜트가 조용히 말했고. 바리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선원에게 지시했다.
"금색기를 걸어라."
그 말에, 말뚝 위에는 회색의 깃발이 휘날리기 시작하고, 이내 다가오는 적군들 사이에 박혀들어간다. 카멜롯의 해군에서 후퇴의 신호로 사용되는 깃발이 정면의 적들 사이에서 휘날리기 시작했다. 그 깃발의 의미와, 그것이 검은 어금니에서 발사되었다는 것의 의미를 모르는 카멜롯의 군함은 한 척도 없으리라.
"..."
하지만, 그 어떤 배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그들은 계속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깃발을 바라보면서 게르하르크는 차게 웃었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이미 이 함대에서, 게르하르크와 함께 하는 모든 자들은 게르하르크의 손 안에 들어있다. 누구도 자신에게 적대하지는 않으리라.
그랜트는, 검은 어금니에서 그 모습을 보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바리스가 조타륜 옆에서 말했다.
"...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랜트는 잠깐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바리스가 대답했다.
"부담되신다면, 검은 어금니의 공격 명령은 제 독단으로 처리하겠습니다."
그 말에 그랜트가 고개를 들었다.
"아니, 그럴 수는 없다. 나로 인해서 일어난 비극이라면. 그 명령과 책임은 내가 져야겠지."
바리스는 그랜트의 굳은 눈을 바라봤고. 그랜트가 입을 열었다.
"검은 어금니는, 즉시 정면의 적들을 향해 공격을 시작하라!"
바리스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격을 시작했다. 한때, 보이지 않는 죽음이라고 불리던, 카멜롯 왕국의 수호선이 자기 국가의 함선을 침몰시키기 시작했다.
"모두가 적이니..."
검은 어금니 옆에 자리잡고 있던 싸늘한 앤에서 로만의 외침이 들려왔다.
"... 모두가 적인 것 같으니.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다!"
그 말에 그랜트와 바리스가 고개를 끄덕였고. 싸늘한 앤의 깃대에 붉은 점 두 개가 그려져 있는 백기가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뒤편에서 만들어진 안개가 천천히 밀려와서 녀석들을 덮기 시작했다.
"신호를 준비해라."
그랜트의 말에 북과 징을 들고 있는 병사들이 신호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바리스가 구슬에 손을 올린 채로 명령을 하기 시작했다.
북과 징이 울려퍼지면, 그 소리가 들리는 다른 배들이 다시 그 소리를 따라하기 시작한다. 빠르게 소리가 퍼지고. 그것을 알아들은 배들이 모두 선체를 돌려서 한 곳을 노리기 시작한다.
"발포해라!"
바리스의 외침에, 징과 북이 일정한 주기로 두들겨지기 시작하고. 소리가 들리는 군함들을 중심으로 모든 함선들이 한 지역을 향해서 대포를 발사한다. 그리고, 안개 너머에서 함포가 발사되는 소리와 함께, 배들이 그 포탄을 얻어맞고 부서지기 시작한다.
"... 이건 또 무슨."
바리스가 당황하고. 그랜트는 조용히 그 상황을 바라본다.
"당황하지 말아라. 원인이 문제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적이 쏘아내는 포탄들은 시야가 제한된 상황에서의 포격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다. 완전히 트인 시야에서의 포격보다는 정확도가 떨어지지만. 그랜트가 기대했던 것에 비해서는 훨씬 더 적은 아이리 공화국 측의 함선을 잘 맞추고 있었다.
"젠...장! 더럽게 뜨겁군!"
게르하르크는 자신의 몸에 달라붙어서 타오르기 시작하는 퍼런 불꽃들을 보면서 이를 갈았다. 배 자체를 구성하고 있는 싸늘한 앤의 얼음조각과는 다르게. 형태 자체를 무너뜨릴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히 이 안개는 계속해서 게르하르크의 능력 사용에 제한을 걸고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몸에 붙어있는 불꽃들을 무시하면서 정신을 집중했다.
"시야를 가린다고, 너희들의 감정들이 사라지지는 않는 법이지."
안개가 계속해서 걸리적거리는 바람에 정확한 위치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게르하르크는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서 어느 정도는 함선들이 어디에 있는지 추측할 수 있다.
게다가, 북이나 징 따위로 신호를 보내는 저 녀석들과는 다르게. 게르하르크가 생각을 하는 대로 모든 함선의 선원들은 움직인다. 깃발도 필요 없고, 신호도 필요없다.
그래도... 쯧, 하는 소리를 내고 나서 게르하르크는 머리를 슥 쓸어넘겼다.
"이 개고생을 하면서 시간을 벌어주고 있는데. 병신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상황은 애초부터 불리했고. 에밀의 제안이 아니었으면 지는게 뻔한 이 싸움을 벌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싸늘한 앤이 배를 얼리고, 바다 아래에서는 방랑자가 군함들을 물귀신으로 만들고, 검은 어금니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검은 막대기로 배들의 후장을 뚫어버리고 있었다.
"...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까. 이제 퇴근해 보실까."
게르하르크는 상황에 승산이 거의 없고. 이 곳에 더 쉽들 중에 네 척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그대로 배에서 사라져버렸다. 동시에, 그가 사방을 향해서 뻗어놓고 있던 지배도 모두 거두어들였다. 아마, 갑자기 정신이 든 카멜롯의 선원들인 이유도 모른채 안개에 갇혀서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겠지.
그리고, 계속해서 공격을 하고 있던 그랜트의 표정이 밝지 않다. 바리스가 그것을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랜트는 대답했다.
"레이먼드라는 해적은 우리가 버티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 녀석은 쓸데없는 주문을 하는 인물이 아니지."
그렇다면, 그랜트에게 버텨달라는 이야기를 할 때에는 어떤 위험을 감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네 척의 더 쉽과 아이리 공화국의 군함들, 그리고 그랜트 제독의 능력까지 다 합쳐도 버티기 정도 밖게 될 수 없을 어떤 거대한 위험을. 하지만... 지금의 이 전황은.
"마치, 저들이 패배가 뻔한 전투를 어거지로 버티고 있는 형세로구나."
오히려, 저들이 시간을 벌고 있는 듯한 기세야. 그랜트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턱을 쓰다듬었다.
"이 전투는 승리지만. 아무래도 전쟁 자체에서는 우리가 손해를 본 것 같은 느낌이구나."
볼 것도 없다. 어느 순간부터 녀석들이 발사하는 대포는 이전과는 다르게 정확도가 확 떨어져 있었고. 이대로 한나절 정도의 싸움이 지속된다면 남아있는 배는 한 척도 없게 될 것이다.
"게다가."
그랜트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이 전투에서 아이리 공화국이 승리하는 것은 카멜롯 왕국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랜트는 바리스를 보고 말했다.
"남아있는 배가 얼마나 되느냐?"
그 말에 바리스가 구슬에 손을 올리고 잠시 기다린 다음에 말했다.
"40척 정도입니다."
... 그 정도라면. 그랜트는 고개를 끄덕이고 싸늘한 앤 쪽을 보며 말했다.
"잠시, 안개를 거두어 주게나!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설득해보겠네."
그 말에, 로만이 대답했다.
"승기를 잡았습니다! 굳이 멈춰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말에 그랜트가 주름진 손으로 난간을 내려치면서 말했다.
"그대에게 그대의 선원들과 배가 중요하듯이. 나 또한 마찬가지네!"
그 말에 로만이 잠깐 멈칫했다. 그랜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 부탁이네. 이번에도 저들이 물러서지 않으면. 더는 막지 않겠네."
로만이 그랜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 알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로만은 포격 중지의 신호를 보내면서 올려두고 있던 깃발을 내렸다. 그리고, 도리안의 안개의 미아가 만들어낸 하얀 장막이 천천히 거두어진다.
그랜트는 그것을 확인하면서 말했다.
"상자를 달아라."
다시 한 번, 상자가 검은 말뚝에 달리고. 그대로 종이를 뿌리면서 상대의 쪽으로 날아간다. 두어 번 더 날린 것으로, 더 이상 남아있는 종이들은 없었고. 그랜트는 자신의 손 끝을 물어 뜯고는 말했다.
"회색 깃발을 가져와라."
회색 깃발이 그랜트의 앞에 놓이고. 그 회색 기 위에 그랜트는 자신의 문양을 피로 그리기 시작했다.
"... 깃발을 걸어라. 부디, 이번에는 제발."
그랜트는 말을 마치고 나서 다시 회수된 말뚝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그랜트의 개인 문양이 선명하게 그려진 회색의 깃발이 달렸다. 발사 되지 않고 휘날리는 회색의 깃발. 하지만 망원경으로 충분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천천히 함선들의 돛대 위에 하얀 깃발들이 걸리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그랜트는 숨을 내쉬면서 난간에 기대었다.
"다행이구나... 정말로, 다행이야."
하지만, 아직 해야 하는 일이 남아있었다. 해상이 정리되는 것을 확인하고 그랜트는 곧바로 바리스를 보며 말했다.
"안개의 미아에게로."
도리안이 가지고 있는 매라면, 여기에서 일어난 소식들을 아직 돌아오지 않은 마리아 해적단에게 전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전개된 해전에 대해서 녀석들도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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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