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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롤로지움 - 모먼트
셀키에게 가리비를 전달해 주고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의 배 위로 익숙한 모습의 매 한 마리가 날아들어왔다. 이건, 도리안의 매인데. 마리아는 그 매의 발목에 묶여있는 쪽지를 확인하고는 나를 바라봤다. 마리아의 표정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해전, 이겼다고 하는데."
...?
어떻게? 나는 약간 의문을 표시하면서 쪽지를 읽어내려갔고. 이마를 짚었다.
"뭐야 씨발."
이게 뭐야. 해전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는 쪽지 안에는 어디에도 레인이나 에밀 같은 녀석들에 관한 언급이 없었다. 즉, 이번 해전에는 녀석들이 전혀 참가하지 않았다는 건데. 단체로 흑사병 같은 거 걸려서 요양원 간 것도 아닐텐데. 그럼 이 해전이 일어나는 동안 그 새끼들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다는 거야.
아직, 바다의 담요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일주일 정도는 더 걸린다. 일단, 더 이상은 물방울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정도의 온도까지는 내려왔지만. 바다의 담요와 가르시아 해 사이의 거리는 그렇게 짧지가 않으니까. 결과적으로 우리가 돌아가는데 성공해야 더 쉽들을 가지고 셀키들이 뭔가를 할 텐데.
지금 엄청나게 찝찝하다. 승리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애초에 버티다가 후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던 전투에서 덜컥 이겨버리면.
둘 중 하나겠지. 이쪽에서 적의 전력을 너무 강하게 상정했던가. 녀석들이 자신들의 전력을 빼돌려서 뒷공작을 펼치고 있던가.
전자일 리는 없다. 내가 눈깔로 본게 있는데! 에밀, 레인, 그리고 남아있는 정체를 모르는 한 명. 도대체 이 세 명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 거냐.
"미나, 잠시 조타륜을..."
미나에게 배의 조타륜을 넘겨주고 나서 나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하, 시발 감도 안잡히네. 나는 멍해져서 한 동안 있었고. 그걸 바라보던 마리아가 나를 보며 말했다.
"일단 돌아가는게 우선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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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항해를 해서 돌아가고 있던 와중에, 다시금 바다의 날개 위로 매가 도착했다. 바다의 담요까지의 거리는 이틀 밖에 남지 않은 상황. 로제가 조심스럽게 그 매의 다리에서 쪽지를 꺼내 확인하고는 안색을 굳혔다.
"레이먼드, 선장님을 깨워야 할 것 같아요."
시퍼렇게 질린 로제의 얼굴.
"무슨 일이야."
나는 걱정되는 목소리로 로제에게 말을 걸었고. 그녀는 말 없이 나에게 쪽지를 건네주었다.
[바다의 담요, 함락. 생존자 없음. 이 쪽지가 바다의 날개가 담요에 도착하기 전에 닿기를 바람. 현 시간부로...]
나는 그 쪽지의 내용을 다시 천천히 읽어보았다. 바다의 담요가 함락되었다니. 갑자기 그게 무슨... 나는 그 쪽지의 뜻을 확인하자마자 미나를 향해서 외쳤다.
"오른쪽으로, 열두 작대기 반! 바다의 담요로는 가지 않는다!"
미나가 뭐라고? 하는 의문을 표시하면서 나를 바라봤다.
"자세한 설명은, 선장님이 깨고 난 다음에 하자!"
나는 그렇게 외친 다음에, 쪽지를 들고 그대로 선장실의 문을 열었다.
"으음, 뭐야...? 갑자기."
나는 별 말 없이 마리아에게 쪽지를 보여주었다. 눈을 비비면서 쪽지를 건네받은 마리아가 쪽지를 읽기 시작하고, 다 읽고 난 다음에는 다시 한 번 눈을 비비고 그 쪽지를 노려본다.
"이게 씨발, 무슨 좆같은 상황이야?!"
마리아는 그 말과 함께 황급하게 코트를 입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바다의 담요가..."
그녀의 표정은 구겨져 있었다.
"다른 배들은 괜찮은거야?!"
그건 알 수 있을리가 없다. 최소한, 이 매가 보내졌다는 건 도리안과 안개의 미아는 무사하다는 소리겠지. 일단 우리는 빠르게 방향을 바꾸어서 쪽지에 적혀져 있는 장소로 향하기 시작했고, 해가 저물고 다시 날이 밝을 때 즈음이 되자, 시퍼런 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게... 다..."
그리고, 그 거대한 푸른 반구형의 벽을 향해서 사정없이 내려박히고 있는, 거대한 물의 검 크기가 마음을 먹으면 섬 하나 정도는 일도 양단을 할 수 있는 크기다. 미터가 아니라 킬로미터 단위로 측정해야 할 정도의 크기. 물기둥이 한 번 벽에 때려박힐 때 마다 벽이 통째로 울부짖으면서 휘어지고 있었다. 그 거대한 검을 휘두르고 있는 자의 모습을 보고, 나는 얼굴을 굳혔다.
- 후우... 상쾌하구만.
공중에 뜬 채로, 목을 빙빙 돌려서 풀고 있는 그 익숙한 얼굴에 배 위에 서 있던 모두가 작게 중얼거렸다.
"... 에밀 메이너스."
마리아는 그걸 한 번 확인하고는 말했다.
"지금 저 좆같은 새끼랑은 싸울 수 없어... 백프로 죽는다."
그때, 우리의 코 앞에 거대한 구멍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내 쿠르르륵 하는 소리를 내면서 그 거대한 공동 안으로 물이 빨려들어가기 시작한다. 이건, 엘론델이 열어주었던 그 통로와 비슷하다.
- 오랜만이구만, 레이먼드! 잘 지냈나?
아임 파인 땡큐 이 씹새야. 에밀이 그 구멍이 만들어지는 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돌려서 나를 보며 재수없게 히죽 웃었고. 나는 별 말 없이 그를 보다가 미나를 향해 외쳤다.
"저 구멍이 완성되면 곧바로... 안으로 들어간다!"
그 말에 미나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대로, 에밀이 휘두른 검이 배의 허리를 슥 가르고 지나가 버렸다. 그대로, 슥 잘려진 배의 허리. 그 경로에 서 있던 선원 둘. 하나는 팔과 다리가 썰려버리고, 하나는 그대로 반으로 잘려나가버렸다.
"젠장! 저 개 좆같은 새끼가!"
어떻게 저렇게 멀쩡한거야! 반토막 나서 가라앉기 시작하던 배를, 눈 앞에 완성된 거대한 터널이 먹어치우듯이 빨아들이고. 이내 우리는 가라앉기 시작하는 배 위에서 푸른 장막 안쪽으로 넘어와 있었다.
- 잠시만요...!
엘론델의 목소리가 들리고, 가라앉기 시작하던 배 밑에서 부글거리는 거품들이 올라오더니 반토막난 배의 두 부분를 억지로 밀어서 그 근처의 모래톱으로 밀고 가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무언가에 물어뜯긴 것 처럼 배의 측면이 통째로 뜯겨져 나간 검은 어금니, 안개의 미아, 그리고 어째서인지 사방 팔방에 큼지막한 구멍 수십개가 뚫린 상태로 물 위로 끌어올려져 있는 방랑자가 널부러져 있었다. 유일하게 아직까지 멀쩡한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건 싸늘한 앤 뿐. 그 녀석만이 이 모래톱 인해에서 아직 떠 있었다.
"지금 이게 도대체 씨팔, 어떻게 된 상황이야!"
나는 그 한때 배였던 난파선들을 바라보면서 목대에 핏줄을 세웠다.
- 진정하세요. 당분간은, 안전해요.
엘론델이 그러게 말하고 나서 배 위에서 멍해져 있는 우리를 바라봤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주변을 덮고 있는 반구형의 푸른 벽은 에밀이 휘두르는 검에 계속해서 움푹 파였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느낌 상으로는, 에밀이 무슨 63빌딩 크기의 거대한 물기둥을 들고 휘두르는 것 같은 박력이다. 이미, 계속해서 두들겨지고 있는 푸른 벽에는 가느다란 실금 같은게 거미줄처럼 조금씩 번져가고 있었다.
그 당분간이, 얼마나 당분간인데? 마리아가 하늘 위에서 휘어지고 파여들어가는 푸른 벽을 보면서 중얼거렸고.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 앞으로 하루 정도. 그래도 너희까지 도착해서 다행이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우리를 봤고. 나는 허허허 웃었다.
다행이라니... 더 쉽 다섯 척은 모두 다 걸레짝이 되어있고, 우리는 이제 이 푸른 그릇 안에 가두어져서 부서지면 작살나게 생겼는데!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 저 계약자가... 네 명의 악마와, 계약자 세 명의 힘을 모두 먹어치웠어요. 구슬을 지키고 있던 악마들이 모두 없어져서 가까스로 그 힘을 활용할 수는 있었지만... 저기에 보이고 있는 저 인간은 사실 혼자서 악마 다섯 분의 힘을 가지고 있어요.
미쳐버리겠네. 애초에 내가 세웠던 계획은 각개격파였다. 녀석들이 다 따로 놀고 있을 때 다섯 척의 더 쉽들이 이전의 모습을 되찾고. 하나씩 공략하는 걸 상정했었는데.
다섯 마리가 한꺼번에 온 것도 아니고. 다섯 마리가 하나가 되었다고? 나는 기운이 빠진 상태로 멍하니 말했다.
"다른 선장들은... 저기에 있군."
나는 모래톱 위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녀석들을 한 번 슥 바라봤다. 그들 중에서 로만이 하늘에 그어져 있는 가느다란 실금들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다 같이 모여서 뭐, 죽기라도 기다리고 있는 기분인데."
아직 끝이 아니에요. 라고 엘론델이 말하면서 우리를 바라봤다. 바다의 날개였던 배의 파편이 그대로 모래톱에 정착한다.
- 원래는... 이렇게 할 생각이 아니었지만.
엘론델은 그렇게 말하면서 우리를 바라봤다.
- 저희는 모두 각오가 끝났어요.
무슨 각오? 우리 모두는 엘론델을 가만히 바라봤다.
- ... 배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지금은 없어요. 우리가 부모님의 유물을 고치는 건 불가능해요.
저 말은, 나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배를 고칠 수는 없지만. 셸키에게 전달해 주었던 가리비. 그리고 머메이드와 머맨들이 셸키가 필요하다고 말했던 이유. 드디어 머메이드와 머맨들이 하고 있는 생각을 깨달았다.
"모먼트."
저들의 말로는 오롤로지움. 고칠 수는 없지만. 시간은 되감을 수 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엘론델을 바라봤다.
"7000년 전에 멸종한 나가의 유물을, 모먼트로 그 때의 모습으로 되돌리겠다고?"
네 척이다, 한 척도 아니고 네 척! 딱 아슬아슬하게 칠천년 씩을 되감는다고 해도. 이만팔천년이다. 생명체의 1년을 희생해서 하루의 시간을 되감을 수 있는 모먼트의 미친 연비로는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잖아.
대충 계산해도 총 수면이 천만년 정도 필요하다. 과장한게 아니라. 진짜 그 정도가 필요해.
- 지금, 이미 시작했다. 나를 제외한 머맨들은 모두 동의하고, 지금 오롤로지움에 수명을 때려박고 있다.
상어머리는 그렇게 말하고 우리를 바라봤고. 엘론델이 말을 이었다.
- 종족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한 명씩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자신의 생명을 바치고 있어요. 머맨과 머메이드 전원의 수명을 합치면... 그 시간을 마련할 수 있어요.
그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 한 명씩이라는게. 저 상어머리와 엘론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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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메이드 한 명과, 머맨 한 명이 물 위에서 올라왔다. 그리고, 자신들이 들고 있는 모래시계를, 조심스럽게 엘론델과 상어머리에게 보여주었다. 시뻘건 생명의 모래가 한가득 차 있는 오롤로지움. 저 안에, 엘론델과 상어 머리, 그리고 그걸 건네주는 두 명을 제외한 모든 머메이드와 머맨의 생명이 담겨있다. 두 종족의 모든 목숨이 이 안에 담겨있다. 그걸 받아든 엘론델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안에 들어있는 의미와 각오는 너무나도 무거운데, 정작 이 오롤로지움은 어찌 이리 가벼운 걸까. 엘론델은 그 모래시계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눈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머메이드를 바라봤다.
- 제가 대신 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 그러면 시간이 모자라요, 엘론델.
눈 앞에 있는 머메이드는 엘론델보다 훨씬 젊다. 꽃으로 치면, 이제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어린 소녀이다. 그렇기에, 오롤로지움 안에 넣을 수 있는 수명이 더 많고. 그것을 넣어야만... 우리는 눈 앞에 다가온 거대한 적과 맞설 힘을 가지게 된다.
- 미안해요.
그 말에, 머메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 저는 당신에게 미안해요, 엘론델. 아... 그 많은 무게와 짐이라니.
그리고, 가만히 오롤로지움을 바라보고 있던 머메이드가 천천히 그 손을 뻗었고. 엘론델은 떨리는 손으로 그걸 건네주었다. 머메이드는 잠깐 오롤로지움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가슴에 가져갔다. 그리고, 그녀의 전신이 흩어지듯이 빨간 모래알이 되어서. 다시 오롤로지움 안에 쌓이기 시작한다.
잡아주는 힘이 없어진 오롤로지움을, 다시 손에 잡은 엘론델은 그걸...
조용히 옆에 서 있는 상어머리에게 넘겨주었다.
그 또한 마찬가지로, 무거운 표정으로 그 모래시계를 바라봤다. 그의 머리속에서는 수많은 생각들이 회오리치고 있었다. 이 오롤로지움 안에 들어있는 수많은 생명들. 한 때,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등을 맞대고 서로를 보호하며 삼지창을 휘두르던 전우들의 목숨이 담겨있다. 그 짙은 붉은색의 모래를 응시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 물어보지는 않겠다. 한 번 한 말의 무게는 잘 알고 있을터.
그 말에, 앞에 서 있던 머맨이 고개를 단호하게 끄덕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상어머리는 입을 열었다.
- 그럼... 뭘 기다리고 있는거냐.
그렇게 말한 다음, 상어머리는 들고 있던 모래시계를 앞의 머멘에게 던져주었고. 잠깐 그 오롤로지움을 바라보고 있던 머멘은 자신의 가슴에 그것을 가져가는 것으로 생을 다하게 되었다.
- 울지 않나?
상어머리의 말에, 엘론델은 대답했다.
- 아직은요.
- 그렇군.
아직은 울 때가 아니다. 상어머리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모든 나가의 자식들의 생명이 담겨있는 모래시계를 바라보다가, 모래톱에서 둘을 바라보고 있는 선원들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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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