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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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타는커녕 구사일생?-1

<神鍼御製 一鍼卽快>

[傳統醫學이 異乎現代醫學하야 治療法으로 不相流親할쎄

故로 患者가 傳統醫學好感하야도 而終右往左往ㅣ 多矣라.

予ㅣ 爲此憫然하야 新製一鍼卽快 神鍼하노니,

患者人人으로 利用하야 便於日完治이니라.]

전통의학이 서양의학과 달라 치료법으로 서로 친하지 아니할쎄

이런 까닭에 아픈 환자들이 전통의학 마음 있어도 우왕좌왕하는 이 하니라.

내 이를 위하야 어엿비 여겨 새로 일침즉쾌 신침을 시전하노니

환자마다 쉬이 여겨 이용하매 완치코져 할 따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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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 보이는 검은 빛 호수가 헤이싼시 호(黑三十湖)입니다.”

중국 명의순례 버스에서 가이드 방송이 나왔다. 명의순례는 중국중의과중심국에서 개최하는 국제적 연례행사다. 청년 한의사를 대상으로 중국 한의학의 대가들을 만나고 세기의 의술로 칭송받던 신의들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깨달음을 얻는 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올해 참가자는 5개국의 40여명이었다. 한국에서 온 신참 한의사 윤도도 그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흑삼십호라...’

하북성 내구현을 지척에 두고 윤도가 황제내경을 덮었다. 그 아래 있던 동의보감, 산해경 등도 함께 가방에 넣었다.

창밖 내리막으로 거대한 검은 색 물비늘이 꿈틀거렸다. 호수라지만 어쩌면 바다처럼도 보이는 곳. 대륙의 위엄은 호수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이, 다들 신묘한 기운이 땡기지 않아?”

지난밤 윤도와 혈자리 경연을 벌였던 베이징대 졸업생이 튀었다. 중국 청년 한의사들의 리더 같은 친구였다. 윤도는 그와 경혈자리 겨루기 결승에서 만났다. 처음에는 중국 교수들이 강의 중에 재미로 제의한 경연이었다. 한의에서는 일침(一針), 이구(二灸), 삼약(三藥)을 말한다. 침과 뜸 그리고 약물 순으로 치료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침 놓는 자리가 빠질 수 없었다.

침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기껏해야 삔 데나 치료하지 않냐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서양의학에 밀리면서 한의의 영역이 좁아진 탓이다. 하지만 시계를 돌려 100년 전 쯤으로 가보자. 고려와 조선의 대다수 병은 한의가 고쳤다. 침으로 중환자도 살리고 응급환자도 살렸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의 한 조각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건 가능하다. 다만 환자들의 선택이 서양의학으로 쏠린 것 뿐이다. 한의들의 생각은 그랬다. 닥치고 팩트라고 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 한 번 겨뤄볼까요?”

교수가 경혈 표본을 가리켰다. 유럽에서 온 두 친구를 제외하면 다들 공부 좀 했다고 할 수 있는 한중일의 젊은 한의사 40여 명. 특히 중국은 명의순례 개최국이기에 여러 명이 손을 들고 나왔다.

이 경연은 입으로 재잘거리는 앵무새를 보자는 게 아니었다. 교수가 화두를 던지면 인체 표본의 경혈을 짚어 시침 시범을 보여야 했다. 그래서 어려웠다. 엉뚱한 곳을 찌르거나 모르면 쪽팔림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감이 컸다.

“오수혈!”

윤도와 장씨 성을 가진 중국 한의가 맞선 첫 과제였다. 오수혈이라면 팔꿈치와 무릎 관절 아래에 자리한 다섯 혈자리를 말한다. 한의학에서는 정, 형, 수, 경, 합이라 부른다. 케케묵은 혈자리는 알아 뭣할까?

하지만 한의학에서는 형, 수, 경혈만 알아도 몸의 열을 치료하고 몸이 무겁거나 관절염, 천신과 기침을 잡을 수 있었다.

이들은 일상의 기본적인 질병이다. 특히 나이 먹어 열이 올랐다 내렸다 하는 증상까지도 오수혈 마스터라면 오케이였다. 윤도는 장씨 성보다 조금 늦게 마지막 혈자리에 호침을 찔렀다.

“다음은 12원혈로 갑니다.”

교수는 쉬지도 않고 폭주했다. 12 원혈은 오장육부의 질병에 반응하는 12 혈자리를 말한다. 윤도는 태연, 대릉, 태백, 태계, 태충, 구미, 발앙을 차례로 시침했다. 혈자리나 본초 등의 ‘이론’에는 그리 딸리지 않았던 윤도였다. 하지만 이런 자리에서 느닷없이 펼쳐진 겨루기이다 보니 진땀이 났다.

그래도 어찌어찌 결승까지 나갔다.

“박수 한 번 주세요.”

최종전에 남은 두 사람을 위해 교수가 격려를 유도했다. 주인공은 윤도와 베이징대를 졸업한 한의사 왕이었다.

가볍게 팔회혈로 시작했다.

‘부기가 모이는 혈은 태창... 장기가 모이는 건 계협, 근기는 양릉천, 수기는...’

침착하게 침을 넣다가 손이 멈췄다.

거기서 막힌 것이다.

다행히 젖가슴이 힌트가 되었다. 윤도는 남은 격수와 대저, 태연 등의 팔회혈을 모두 찾아냈다.

마지막 과제는 전통적으로 침을 금하는 혈자리 찾기였다. 그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렇다면 최대한 많이, 정확하게 짚어내는 게 관건이었다.

‘괜히 나왔나?’

대학 때 외우느라 똥줄이 탓던 혈자리. 자칫하면 생명을 앗을 수도 있기에 강조하고 또 강조하던 혈자리였다. 당연히 알고 있지만 이렇게 써먹으려니 실타래가 되어 개판 5분 전으로 엉겼다.

‘신정, 뇌호, 신회, 옥침...’

일단 시작부터 했다. 그 사이에 왕은 벌써 10여 개 이상을 짚어내고 있었다. 윤도는 신궐과 기충, 기문, 승근까지 짚으며 추격해갔다.

겨우겨우 유중과 연곡, 복토혈을 짚었을 때 왕은 이미 마무리를 끝내고 유유자작이었다. 그래도 최후의 승자는 윤도였다.

“왜 그렇습니까?”

왕이 교수에게 따지듯 물었을 때 교수가 혈자리 두 개를 짚었다. 그건 계맥과 백환수였다. 그제야 왕의 눈빛이 풀썩 주저앉았다. 침을 놓지 못하는 자리가 아니라 뜸을 뜨지 말라는 혈자리를 짚었던 것. 의기양양 앞서 가다가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짝짝짝!

윤도에게 박수가 쏟아졌다. 교수가 잠시 한국 한의학에 대해 소개할 기회를 주었다. 그 자리에서 허임의 침구경험방에 나오는 경외기혈을 소개했다. 경외기혈은 동의보감에도 나오지만 침구경험방이 조금 더 상세했다. 머리의 9혈과 어깨의 11혈, 흉복부의 8혈 등을 짚어가며 자부심을 폭발 시켰다.

이들 중 실제 치료에 사용한 경외기혈의 숫자만 해도 20여 혈이었다. 특히 독음혈이 치료에 애용되었다는 말로 소개를 끝냈다.

나름 통하는 중국어 수준, 게다가 방금 끝난 혈자리 찾기에서 1등을 한 몸이다 보니 호응이 좋았다. 아마 그냥 나가서 소개했다면 중국 한의들이 대충 흘려들었을 지도 몰랐다.

그게 두 번째 행운이었다.

첫 행운은 시작지점인 북경의 진황도였다. 신기하게도 천하제일문 현판에 비친 빛이 윤도 얼굴에만 반사되었다. 기분 상큼했다. 명의순례를 잘 마치고 천하제일의 명의가 되라는 서광으로 느껴졌었다.

빠앙!

버스가 경적을 울리며 급 커브를 돌았다.

“혹시 그 전설 압니까? 30년 주기 명의탄생설.”

손잡이를 잡고 선 왕이 중국 한의들에게 말했다.

“그거야 다 지어낸 말 아닙니까?”

홍콩에서 참가한 한의가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다들 그렇게 말하지만 아주 안 믿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지난 30년 전에 항주의 참가자가 실제 득의(得醫)를 했다고 하고...”

“그건 나도 들었습니다. 우리 학교 선배님이시거든요.”

마침 항주대학 출신의 한의가 맞장구를 쳤다.

“그게 실화입니까?”

다른 한의들이 관심을 보였다.

“원로 교수님들이 하는 말인데... 졸업 당시 그 선배께서는 평범한 한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명의순례를 다녀온 후에 한의학에 눈을 떠 화타가 되고 편작이 되어 불치병들을 고쳐댔다고 하더군요. 침 하나로 공산당 서기의 말기 암까지도 싹 고쳤답니다.”

“에이... 설마...”

“사실 나도 안 믿겨서 당시 진료기록을 보았는데 3년 동안 난치병 환자만 88명을 고쳤더군요. 그중 일부는 베이징대학병원에서 손을 놓은 사람이고 또 몇은 미국의 메이요병원과 미해군병원에서 포기한 환자였습니다.”

“정말입니까?”

“문제는 그 분이 젊은 나이에 빛을 발하고 요절을 했다는 거죠. 딱 3년 간 화타와 편작처럼 타올랐는데 그게 무리였는지 그 다음 해에 심장질환으로...”

“으아, 그럼 30년 주기 명의선택설의 기연이 와도 좋은 게 아니군요. 자칫하면 3년 밖에 못 산다는 거 아닙니까?”

“3년이면 어떻습니까? 굵고 짧게 살다가는 거지.”

“에이, 그게 다 소문을 가지고...”

한의들이 웅성거리는 사이에 버스가 목적지에 닿았다.

“명의순례의 마지막 코스 진월인 선생의 묘입니다. 두 시간 드릴 테니 좋은 정기 많이 받으시고 돌아오세요. 오늘 저녁은 중국 최고의 요리사 두 분을 초대해 최고급 코스 요리로 대미를 장식할 예정이란 거 아시죠? 기대 많이 하시고요.”

가이드 방송이 나왔다.

마침내 중국 전설적인 명의 순례의 마지막 코스인 하북성 내구현에 도착한 것이다. 진월인은 편작의 다른 이름이었다. 원래 편작과 화타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유명한 한의에게 붙여지던 별칭이었다. 그게 굳어지면서 편작으로 더 유명한 진월인이었다.

“내릴까요?”

옆에 앉은 독일인 한의 율리안이 말했다. 그의 나이는 27세. 미국 한의 맥과이어와 일본 한의 료마를 더해 딱 네 명 뿐인 외국인 한의사였다.

’마지막...‘

그 말이 윤도 머리에 여운을 남겼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늘, 묘한 여운을 주는 까닭이었다.

경상도의 한 섬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 중인 채윤도. 서울 강북의 한의원에서 부원장으로 5개월 정도 일하다 군대에 갔다.

“공중보건의가 군대냐? 개꿀 빨러 가는 거지.”

병으로 제대한 고교친구들이 냉소를 뿜었지만 부담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일반병처럼 선임의 갈굼도 만만치 않았다. 윤도의 선임 공중보건의는 의사였다. S대를 나오고 S대 병원에서 내과 인턴을 마쳤다.

원래는 전문의까지 끝내고 중위로 올 계획이었지만 엿 같은 3년차 레지던트와 대판 붙고 핏대가 올라 군에 왔다고 했다. 대한민국에서 한 수 접어주는 그 S대. 그렇기에 섬마을에서 그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고, 그곳에서는 그가 화타, 편작과 동급이었다.

“솔직히 의대 가려다 성적 안 되니까 한의대 간 거잖아?”

“솔직히 한의사가 의사냐?”

선임에 지소장의 직함까지 쓴 그는 윤도를 공공연히 깔보았다. 고양된 자부심은 폭발직전에 달했다.

의사는 지소장이 될 수 있다. 한의사와 치과의사는 될 수 없다.

툭하면 그 규정을 입에 달고 달았다.

젠장!

법은 위대했다.

그 멀고 먼 남해고도 섬마을에서도.

<<이 작품은 작가의 창작입니다. 실제 한의술과 다를 수 있습니다. 소설로만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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