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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2/265)

화타는커녕 구사일생?-2

윤도 역시 돈에 눈 먼 한의원장이 의료보험 부정 청구를 부추기는 통에 혐오를 느껴 군대에 간 상황. 일단 군복무부터 마치고 미래를 생각하려던 선택이 스트레스 덩어리가 되고 만 셈이었다.

하긴 섬에서 한의사가, 그것도 임상 경험 몇 달 밖에 없는 신참 한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 위해 신청한 중국명의 순례였다. 국방부 허락도 어렵게 떨어졌다.

하지만 돌아가면 선임의 갈굼을 각오해야했다. 그가 권하는 연차휴가 사용요령을 개무시한 결정이기 때문이었다.

먼 옛날의 한의들 중에는 명의가 많았다. 한국만 해도 허준과 허임, 이제마와 백광현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꼽힌다. 땅 넓은 중국은 인물 숫자가 더 많다. 편작과 화타를 비롯해 장중경, 이동원, 황보밀, 장백조, 전을 등 두 손을 동원해도 모자랄 정도다.

윤도는 편작이나 화타보다 장상군, 양경 같은 한의를 더 존경했다. 장상군은 편작에게 묘약을 내려 신의로 만들었고 양경 또한 봉래산에서 상지수를 내려 순우의를 신의로 만든 사람이었다.

‘상지수...’

그걸 마시면 환자의 오장육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마법의 전시안. 그야말로 판타지다. 진맥 없이도 병을 볼 수 있다면, MRI나 CT, 조직검사 등이 없이도 병소(病巢)를 알 수 있다면 게임 끝이다. 명의(名醫) 위의 신의(神醫), 그 위의 천의(天醫)도 될 수 있는 길 아닌가?

윤도의 가방에도 중국 판타지가 있었다. 바로 산해경이다. 어쩌면 드래곤이나 오크, 트롤, 호빗 등의 서양 판타지 종족들도 산해경 앞에서는 깨갱 꼬리를 사리는 게 맞았다. 그 안에는 셀 수도 없는 신기한 종족과 생명체, 동식물 등이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한의학의 관점으로 보아도 신기한 약효를 가진 것들이 즐비하다.

▶언산이라는 풀은 독을 제거한다.

▶영초라는 풀을 먹으면 중풍이 사라진다.

▶요초를 몸에 지니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부우산의 문경이란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귀먹은 병을 고친다.

▶밤에만 날아다니는 문요어라는 물고기를 먹으면 미친병이 낫는다.

▶돼지 닮은 농지라는 짐승이 있는데 이걸 먹으면 눈이 어두워지지 않는다.

▶용후산에서 이어지는 황화에는 신비한 물고기가 사는데 먹으면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

▶난이라는 나무는 신들의 약으로 쓰인다.

▶웅황이라는 광물은 몸을 가볍게 해서 신선이 될 수 있다.

▶개명의 동쪽에 사는 신의(神醫)들은 불사약을 가지고 있다.

다 적을 수도 없이 많다. 하나 같이 영약이다. 불사약이라니? 신선이 되는 ‘응황’이라니. 한 번 보기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지수와 더불어 산해경의 신비한 약재들을 구할 수 있다면 편작이나 화타를 넘어서는 명의가 될 것이 분명했다.

편작 진월인.

그에 대한 설명은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전설적인 치료처방도 그랬다.

‘나도 편작 같은 한의가 될 수 있을까? 아니, 그의 발가락에라도 미칠 수 있을까?’

상상이 나른하지만 살포시 접었다. 옛날 명의 신화를 들으면 기연을 얻어 손 쉽게 명의 반열에 오른 것 같지만 사실은 달랐다.

그들은 각고의 노력 끝에 명의가 되고 신의가 되었다. 그런 사람들 정신을 기리자면서 날로 먹는 기연이나 생각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진월인의 묘지로 말씀드리자면...”

가이드의 중국어와 영어 설명을 들으며 묘 주변을 걸었다. 명의순례의 마지막 코스였다. 한국을 떠나니 마음은 가벼워졌지만 그렇다고 큰 변화는 없었다. 혹시나 기대하던 영감 같은 것도 와 닿지 않았다.

꽃을 사다 묘지석에 놓았다. 길 없는 길을 걸어간 옛날의 명의들에 대한 예우였다.

‘끊임없이 노력하라.’

‘서양의학과 달리 한의는 인체의 신비는 물론 음양의 원리까지 통달해야 한다.’

명의순례에서 얻은 건 이 진리 하나였다.

“자자, 버스가 곧 출발합니다. 다들 승차해 주세요.”

시간이 되자 가이드 목소리가 확성기를 울렸다. 편작 신화에 대해 율리안, 료마 등과 이야기를 나누던 윤도도 발길을 돌렸다.

‘결국 현실복귀...’

버스로 다가가자 웅성거리는 한의들이 보였다. 노인 때문이었다. 한 쪽 다리가 없는 추레한 노인 하나가 다섯 살 정도 된 남자아이를 업고 애원을 하고 있었다. 버스에 쓰인 젊은 중의中醫 명의순례라는 글자를 본 모양이었다.

“의원님들, 우리 아이 좀 봐주세요. 이 아이가 병이 있는데 양의들은 고치지를 못 합니다.”

노인은 애걸이었다. 아이는 추했다. 손발이 구부러진 장애에 얼굴에는 융종까지 주렁거렸다. 군데군데 벗겨져 흘러내리는 진물을 더하니 몹쓸 전염병환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눈동자만은 맑았다.

마치 검정 속에 뜬 시린 달빛이랄까?

“이봐요. 이 정도 되는 아이면 큰 병원에 가봐야지 여기서 이러면 어쩝니까?”

중국 한의 대표 왕이 나서서 목소리를 높였다.

“큰 병원에 가봤는데 이유를 모른답니다. 그러니 여러 선생님들이 좀...”

“우리더러 길바닥에서 환자를 보란 말입니까? 큰 일 날 사람이네.”

“사람 살리는 일인데 길바닥이면 어떻고 흙바닥이면 어떻습니까? 의사가 이렇게 많으니 이 중에 우리 아이 병을 아는 의사도 있을 거 같아서요.”

“우리 출발해야 합니다. 냄새 나니까 다른 곳으로 가세요.”

왕이 잘라 말했다.

“선생님!”

노인은 주춤거리는 한의들을 차례로 잡고 사정했다.

“아, 진짜... 가이드, 가이드 뭐합니까?”

왕이 짜증을 내며 가이드를 불렀다.

“선생님!”

그 사이에 노인이 윤도 앞으로 다가왔다. 아이에게 나는 기묘한 악취가 뇌를 치고 들어왔다.

“좀 도와줍시다.”

율리안이 말했다.

“그럽시다. 조금 늦게 출발할 수도 있잖아요?”

윤도에 이어 맥과이어와 료마도 거들었다. 하지만 왕은 단호했다.

“이봐요. 지금 출발해도 호텔 특식 예약시간에 늦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길바닥에서 뭘 어쩌게요?”

“정 그러면 돈이라도 조금씩...”

윤도가 의견을 냈다.

“저 사람들 상습적인 사람들입니다. 일부러 아픈 아이 업고 다니며 지능적으로 구걸하는 거라고요. 그러니 괜한 돈 낭비 말고 얼른 타세요.”

“맞아요. 얼른 타세요.”

가이드까지 달려와 윤도를 당겼다.

“선생님들...”

노인은 뒤뚱거리며 버스로 다가섰다.

“출발하세요.”

가이드가 기사에게 말했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인은 하필 또 윤도의 창을 두드렸다.

노인 등에서 늘어진 아이. 생기가 거의 없다. 구걸하기 위한 쑈로 보이지는 않았다. 지갑에서 300위안을 꺼냈다.

환기를 위한 작은 창을 통해 노인에게 내밀었다. 노인은 받지 않았다. 윤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노인은 구걸이 아니라 아이의 진단을 원했던 것이다.

‘미안합니다.’

윤도가 중얼거렸다. 창 때문에 들리지 않겠지만 진심이었다. 명색이 의사라는 40여 명의 한의사들. 게다가 명의들의 정신을 배우겠다고 나선 명의순례였다. 그런 주제에 도움을 요청하는 환자를 외면하고 가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앞 자리 중국 한의 두 명도 두 손을 모아 미안함을 표했다. 그들도 윤도와 같은 마음으로 보였다.

‘미안해요.’

윤도가 버스 창문에 대고 중국어를 남겼다. 아이의 시린 시선이 손가락 움직임을 따라읽었다. 그 시선 뒤로 해가 보였다.

아이 민머리 위에 고이 떨어지는 후광이 윤도에게 반사되었다. 눈이 부셨다. 어쩌면 천하제일문의 현상과도 같은 반사. 하지만 이번에는 마음이 시큰 아렸다.

“오늘 상어지느러미와 제비집 수프가 나온다지?”

“술도 귀한 진품 마오타이로 준다던데?”

버스 안의 한의들은 저녁 특식에 대한 기대로 부풀었다. 오늘은 K-TV라도 가서 석별을 나누자는 말도 흘러나왔다.

‘K-TV...’

착잡하지만 탓할 수 없었다. 진짜 명의의 그릇이었다면 윤도라도 남아야했다. 저녁 특식 포기하고 내일 혼자 귀국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엉거주춤 버스에 올랐다. 그런 마당에 중국 한의들을 욕한다면 위선일 뿐이었다.

멀리 헤이싼시호가 보였다, 어쩐지 지금 이순간은 저 검은 호수보다 윤도 마음이 더 검고 더럽게 느껴졌다. 명의순례의 마지막치고는 무한 찜찜한 마무리였다.

한숨과 함께 눈을 감을 때 창밖이 확 밝아졌다.

‘뭐지?’

허공에 선연한 빛의 가닥이 윤도 눈에 보였다. 잠깐이지만 마치 인체의 전체 경혈이 펼쳐진 것처럼 보였다.

“봤어?”

옆자리 율리안에게 돌아보았다.

“뭘?”

중국의서 신수본초를 보던 율리안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순간 버스가 요동을 쳤다.

“뭐야?”

왕의 고함과 함께 윤도도 고개를 들었다. 하늘이었다. 하늘이 너무나 가까웠다. 놀랍게도 버스는 허공에 있었다.

계곡 높은 곳을 달리던 버스, 느닷없이 튀어나온 산짐승을 피하려다 가드레일을 들이박고 허공에 떠버린 것이다.

“으아악!”

비명이 터졌지만 소용없었다. 버스는 고작 몇 초만에 헤이싼시호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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