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타는커녕 구사일생?-3
퍼엉!
버스는 옆으로 추락했다. 그 과정에서 몇 명이 튀어나갔다. 겨우 몸을 세운 윤도는 안전벨트를 풀고 율리안을 흔들었다. 그 사이에 물은 버스 안으로 사납게 밀려들었다. 중국 한의 몇 명은 좌석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안전벨트를 한 채 절명한 모양이었다. 죽은 자와 산 자. 그 차이는 움직이는가 아닌가 뿐이었다.
팟!
버스에 남아있던 불이 꺼졌다.
헤이싼시호.
그 이름이 실감났다. 검은 물이 찬 버스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율리안의 안전벨트를 풀어 창밖으로 밀었다. 대학 동아리에서 수영을 배워둔 게 다행이었다.
눈이 적응되자 물속이 희미하게 보였다. 아비규환이다. 중국 한의들은 서로를 부여잡고 허우적거렸다. 서로 살려고 아등거리니 함께 가라앉는 사람도 많았다.
그때였다. 저만치 앞 쪽에 시원한 흰빛 덩어리가 보였다. 빛이 다가오자 윤도가 자지러졌다.
“......!”
꿈일까?
빛의 정체는 놀랍게도 노인 등에 업혔던 아이였다. 아까와 달리 아이의 몸은 흰빛으로 빛났다.
어떻게 된 걸까? 아이도 버스를 따라온 걸까? 노인이 버스 뒤에 매달렸다가 함께 헤이싼시호로 추락하기라도 한 걸까?
그런데 다른 게 또 있었다. 아이가 움직이고 있었다. 시린 두 눈빛은 여의주처럼 찬란했다.
빛을 본 중국 한의들이 아이에게 몰려들었다. 그들은 빛을 잡으려 했지만 닿지 않았다. 신기루처럼, 손샅의 물처럼 허무하게 빠져나가는 것이다. 닿은 것 같지만 그때마다 한 발씩 멀어지는 아이였다.
그 사이에 중국 한의들이 하나 둘 더 가라앉았다. 그리고... 아이도 결국 그들을 따라 가라앉기 시작했다.
늘어진 율리안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있던 윤도. 그를 수면으로 밀고 아래로 내려갔다. 아까는 구하지 못한 아이. 이번에도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더...’
사력을 다했다. 슬슬 숨이 막혀왔다. 손을 내밀어 간신히 아이 머리카락을 잡았다. 순간, 아이의 몸이 폭발이라도 하듯 섬광으로 터졌다.
‘우웃!’
빛에 물든 손끝 손마디들이 시렸다. 악취도 코를 쏘았다. 아이의 냄새와 호수의 냄새가 거의 같았다. 간신히 손을 바꾸어 잡았다. 냄새 때문이 아니라 손마디가 얼어버릴 것 같았다.
후웅!
한 번 더 소리없는 빛이 의식을 흔드는 순간, 윤도는 보았다. 윤도의 열 손가락 마디마디가 얼음조각으로 폭사하는 것을.
퍼벅!
퍼벅!
정제된 유리처럼 허공으로 퍼진 손가락의 파편은, 동심원 무늬로 맴을 돌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
그 오싹한 서늘함이 손가락 마디를 치고 올라 얼굴로 옮겨왔다. 양눈썹 사이의 인당혈과 코주변의 영향혈, 머리의 상성혈이 얼음장이 되나싶더니 눈과 코, 손마디의 역순으로 흰빛이 찬란하게 빠져나갔다.
‘우억!’
멈췄던 호흡이 터지자 윤도는 더 참지 못했다. 그래도 아이의 머리카락만은 쥐고 있었다.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된 한의사였던 적 없는 윤도. 섬에서도 그저 선임 내과의 지소장의 보조 역할 밖에 못했던 윤도. 이게 목숨의 마지막 날이라면 아이만이라도 살리고 싶었다.
‘이잇!’
사력을 다해 아이를 위로 밀었다. 가물거리는 의식이 구조대의 불빛을 감지한 것이다. 물 밖에서 들어온 불빛의 갈래가 많았다. 그렇다면 아이를 구할 수 있을 지도 몰랐다.
그런데...
위로 올라가던 흰빛이 겨우 머리 위에서 멈췄다.
‘미안해.’
윤도가 중얼거렸다. 힘이 빠진 까닭이었다.
‘미안...’
한 번 더 중얼거리며 가라앉을 때 아이의 흰빛에서 작은 거울을 흘러내렸다. 옛날 약재 저울의 받침 같은 작은 청동거울. 그 거울이 윤도에게로 다가왔다. 거울이 가방에 닿았다. 순간, 윤도의 몸은 파동을 맞은 듯 격하게 흔들렸다.
울컥!
굉장한 일렁임이지만 몸은 편안했다.
진짜...
한없이 편했다.
***
“......!”
윤도가 눈을 뜬 곳은 하북성 성도(城都)의 대형병원이었다.
“헤이, 채윤도!”
독일 한의 율리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형체가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닥터, 채윤도가 깨어났어요. 내 생명의 은인이 눈을 떴다고요.”
율리안이 소리쳤다.
닥터들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헤이싼시호에서 가까운 성도였다. 희생자는 무려 34명이었다.
중국인 한의 둘과 외국인 한의 네 명만 살아남은 것이다. 유일하게 생존한 중국 한의들은 윤도 앞 자리의 한의였다. 버스에서 노인에게 미안함을 표시하던...
펑펑!
기자들의 카메라가 쉴 새 없이 터졌다.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었다. 중국 정부 당국의 통제로 취재는 간단하게 끝났다. 윤도에게는 잘 된 일이었다.
병원은 아수라장이었다. 사망자들 때문이었다. 사망자 명단은 중국의 족자처럼 길었다. 그래도 사망자 중에 아이는 없었다.
헤이싼시호 속에서 만났던 아이와 빛. 그건 환시였던 모양이었다. 현장에서 온 경찰에게 확인해도 대답은 같았다.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 외에 다른 사람은 없다는 답변이었다.
하루를 쉬고 퇴원을 했다. 물속에서 시린 빛을 머금은 열 손가락과 눈, 코를 정밀검사했지만 이상은 없었다. 폐도 큰 문제가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병원을 나올 때 소지품을 받아들었다. 윤도의 가방과 핸드폰이었다. 가방 안에는 네 권의 책과 여권 등이 있었다. 여권은 대략 봐줄만했다. 하지만 다른 소지품들은 죄다 젖어버렸다.
황제내경, 동의보감, 산해경, 침구집성방.
네 권의 책도 꼴이 말이 아닐 것... 으로 생각했지만 괜찮았다. 맨 위에 있던 산해경만 유독 그랬다. 다른 세 권은 젖어 뒤틀리고 늘어지는 통에 버려야했지만 산해경만은 세탁이라도 한 듯 새 책 같은 느낌이었다.
‘희한하네.’
맨 위에서 물을 맞았으니 다른 책보다 더 젖었어야 할 책이 방금 제본을 마친 것처럼 산뜻하다니...
“......!”
무심결에 책을 넘기던 윤도 시선이 굳어버렸다. 책 가운데 거울 하나가 갈피처럼 꽂혀 있었다.
아주 얇은 거울은 낯이 익었다. 하지만 윤도가 사거나 한 기억은 없었다. 어디서 봤을까? 중국의 약재시장이었다. 그곳에서 처음 보았다. 하지만 그때는 구경만 했었다.
그 후로는...
기억을 따라가던 윤도가 한 번 더 소스라쳤다.
‘맙소사!’
사지가 떨렸다. 물속의 그 거울이었다. 마지막에 아이가 떨어뜨린 거울. 윤도의 몸을 울컥 빨아들인 듯 한 그 거울이 두 번째였다. 그렇다면 물속의 일이 착각이 아니라는 얘기인가?
“이건 약재저울 받침 아닙니까?”
윤도 말을 들은 구조경찰이 웃었다. 그러고 보니 구리로 만든 약재저울 받침처럼 생겼다. 오래 된 저울받침에 광을 내서 만든 거울이었다.
더 고집하다가는 정신 이상으로 귀국길이 연장될까봐 그만 두었다. 생존한 다섯 명도 흰빛은 보지 못했다는 증언이 나온 마당이었다.
비극을 뒤로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가만히 명의순례 과정을 짚었다.
상해 중의약대학에서 만난 당대 최고의 침의 왕챠오원 박사. 그때 참관한 그의 장침 마취시침과 실습. 베이징 중의약대학의 침술대가 장지에용 박사... 화타와 편작, 장중경과 순의의 등의 명의 발자취 순례...
그리고, 애당초의 기대와 달리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새겨진 헤이싼시호의 사고와 아이, 빛...
아이는 정말 환상이었을까? 하긴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죽음직전이었으니 환상도 보일만했다.
‘후우!’
상지수로 생각을 돌렸다. 사망한 중국 한의들도 그 전설을 알고 있었다. 상지수는 중국 명의들에게 내렸던 축복의 하나.
참가자 모두는 선수(仙水) 기연을 만나 인체를 투시하는 능력을 얻거나 대오각성하는 명의를 꿈꿨다.
양심이 찔렸다.
많이 찔렸다.
노력은 않고 기연이나 바랬으니 상지수는커녕 헤이싼시호의 참극을 만난 게 아닐까 싶었다.
쿨럭!
기침을 따라 열 손가락 끝 마디들이 알뜰하게 시렸다. 명의순례길의 마지막에 생긴 일대 반전. 충격이 크지만 깨달은 것도 많았다.
그때, 그 가련한 아이를 합심해 돌봤더라면. 그래서 조금 늦게 출발했더라면... 이런 비극은 없지 않았을까?
지난 뒤의 생각은 언제나 부질없다.
콰아아!
무거운 상념을 뒤로 하고 비행기는 한국을 향해 이륙했다.
공항에서 마중 나온 부모님과 남동생 채윤철을 만났다. 뉴스만큼 큰 사고는 아니었다고 둘러대고 안심 시켰다. 근무지인 낙도의 갈매도까지 갈 길은 여전히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