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265)

신침(神鍼) 열손가락-2

정말 그랬다. 큰 돈 들여 다녀온 명의순례는 부작용 뿐이었다. 수십 명 죽은 충격도 그랬고 더러운 물에 빠진 후유증도 그랬다. 눈과 코가 안 좋았다. 손가락은 매번 시렸다. 차가운 걸 만지면 뜨거워지는 것 같고 뜨거운 걸 만지면 한기가 느껴지고...

근 한 달 동안 무거운 꿈에다, 섬 사람들 컴플레인만 달고 살았다. 때로는 혈자리를 헛짚어 생짜 피를 흘렸고 뜸도 엉뚱한 곳에 뜨곤 했다.

특히 꿈이 이상했다.

3일이 멀다하고 반복되는 꿈은 거의 같은 레파토리였다. 인간형상을 한 구름이 나타났다. 손 마디와 눈 코에서 시린 빛이 났다. 그것들이 다가와 윤도를 감쌌다. 차갑고 뜨거웠다. 그러다 깨어나면 땀이 흥건했다. 이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일까? 걱정이 깊어지면 신기하게도 며칠은 꿈을 꾸지 않았다.

“때 늦게 지소에 파리가 극성이네.”

창승의 냉소는 파랑주의보가 떨어진 바다처럼 노골적으로 변했다. 돌파리라는 비난이 아니면 무엇일까? 화가 났지만 대꾸하지 못했다. 팩트이기 때문이었다.

병원선이 들어오는 날 안과진료를 받았다. 안과나 치과 등은 병원선이 정기적으로 드나들며 환자들을 봐준다.

“큰 문제는 없는 거 같은데?”

안과의의 말은 별로 위로가 되지 않았다. 중국에서 초대형 사고가 난지 한 달이 되는 날, 윤도는 등대 앞 바위에서 낚시대를 담구고 있었다. 섬 공중보건의들의 유일한 낙이기도 한 낚시였다.

고기를 낚을 생각보다 무료함을 달래려 나온 윤도였다. 초보임을 아는지 고기는 낚이지 않았다. 섬 끝자락으로 노란 별장이 보였다. 서울 재벌이 지은 별장이다. 재벌의 딸이 요양 차 와있단다.

미녀는 말기암 환자라고 했다. 아니, 정신질환을 앓는다는 말도 있다. 물안개가 자욱한 새벽이면 흰 잠옷에 맨발로 해변을 걷는단다. 다 소문이다. 아무도 직접 본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소문의 한 자락에는 그녀가 20대이며 조각 같은 몸매의 미녀라는 꼬리가 붙어있었다. 물론 그 반대에는 얼굴이 얽어 차마 마주 볼 수도 없는 추녀라는 말도 있었다.

모처럼 고기가 입질을 했다. 낚시를 당겼지만 헛발이었다. 먹이만 따먹고 튄 것이다. 다시 낚시를 던져놓고 앉은 채로 졸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나워진 바람에 잠이 깼다.

‘파랑주의보가 떴나?’

파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섬으로 발령나면서 날씨까지 챙기게 된 윤도였다. 물론 발령지 추첨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오지 섬이었다.

윤도가 낚시를 거두었다.

우우우!

바람이 보름달을 가리며 통곡소리를 냈다. 어부 몇 명이 배를 살피러 나와 있다. 창승은 날씨에 아랑곳 없이 불금을 누리고 있다. 어촌계장, 이장과 함께 기관장에 유지대접을 받으며 술자리를 하는 것이다.

원래는 창승이 동석을 권한 자리였다. 윤도가 거절했다. 그 자리에 끼면 지소장 대접을 깍듯이 해야 한다. 창승의 성향이 그랬다. 윤도에게는 피곤한 술자리일 뿐이었다.

***

이 날의 꿈은 조금 달랐다. 구름형상의 인간들, 시리게 빛나던 손가락이 똑 부러져나가고 눈과 코도 떨어져 나갔다. 그것들은 수십 수백의 점이 되어 윤도의 몸에 박혔다. 하필이면 온몸의 경혈자리였다. 산 채로 마비가 된 윤도가 비명을 지르다 깨었다. 밖을 보니 바람의 각이 매서웠다. 어업이나 양식을 하는 섬 사람들에게는 쥐약인 날씨였다.

후우우우!

두툼한 구름 너머로 파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섬은 바다의 위엄 앞에서 숨을 죽였다. 얼마가 지났을까? 진료소 쪽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응급환자였다. 잠결의 은세희가 나와 있지만 분위기가 영 아니다. 창승이나 윤도의 능력으로 어쩔 수 있는 병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약은 좀 드릴 테니까 일단 드시고 주의보 끝나면 뭍으로 나가보세요.”

창승에게 달려갔던 세희가 임시방편을 내놓았다. 환자가 왔지만 나와 보지 않는 창승. 술에 떡이 된 모양이었다.

“주의보가 언제 끝날 줄 알고요? 이러다 우리 어머니 죽습니다.”

소리치는 사람은 어촌계장의 사촌이다. 소란을 들은 창승과 어촌계장이 진료소로 나왔다. 이장까지 합쳐 세 사람은 몸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지소장님, 어떻게 좀 해봐요.”

사촌이 창승을 붙잡고 흔들었다.

“으어버 으어리...”

늘어진 환자의 입에서 신음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비에 푹 젖은 진흙 같은 소리였다.

‘실어증...’

윤도 이마에 식은땀이 스쳐갔다. 섬에서는 어쩔 수 있는 병이 아니었다. 실어증을 유발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뇌혈관 쪽이거나 뇌졸중으로 인한 거라면 더욱 그랬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이래?”

어촌계장이 사촌에게 물었다.

“아침에 서울 있는 딸이 이혼했다는 전화를 받았어요. 그때 충격을 먹고 말을 안 하더니 저녁 때부터 얼굴도 굳는 것 같고...”

“아, 이 사람. 그럼 아까 낮에 뭍으로 나갔어야지.”

“누가 이렇게까지 될 줄 알았나요.”

어촌계장과 사촌이 각을 세워보지만 도움이 될 일은 아니었다.

“지소장니임.”

둘의 눈빛은 다시 창승에게 돌아갔다.

“안 됩니다. 이건 큰 병원 가셔야 해요.”

“이 비바람에 말인가?”

어촌계장이 바다를 가리켰다. 아까부터 빗방울도 가세하고 있었다.

“뭐라도 좀 해주세요.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좋은 병원에서 환자보다 왔다면서요?”

사촌이 애원하지만 창승은 의자에 늘어지며 중얼거렸다.

“급한 대로 한의에게 침이라도 좀 맞든가?”

이 순간에는 창승도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 과음환자에 지나지 않았다.

“채 선생...”

사촌의 시선이 윤도에게 건너왔다. 한의가 의사 축에 드냐고 어깨에 힘을 주던 창승. 덤터기를 씌우고는 사택을 향해 비틀비틀 걸었다.

“그래. 나 어릴 때 들었는데 실어증을 침으로 고쳤다는 말도 있더라고.”

어촌계장까지 합세해 윤도 등을 밀었다. 세희를 돌아보지만 그녀도 동조자 쪽이었다. 대충 침이나 한 방 놔줘서 보내라는 표정이었다.

폭풍우 몰아치는 밤의 실어증 응급환자. 자칫하면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쓰러질 지도 모르는 판에 초땡이 한의에게 맡겨진 것이다.

“채 선생, 좀 부탁합시다. 지소장은 인사불성이니 더 잡고 부탁하기고 그렇고...”

어촌계장이 다시 말했다. 섬에서는 이장, 선원대표 차명균과 더불어 3대 권력자 중의 한 사람인 어촌계장.

더구는 그는 군수와 동창생이라 말빨도 먹히는 편. 원래는 창승에게 붙어 개무시를 때리더니 오늘 밤은 달랐다. 세 사람에게 떠밀려 침을 잡았다. 그리고 별 수 없이 맥을 짚는 순간...

“......!”

놀란 윤도가 화들짝 흔들렸다.

“왜요?”

세희가 물었다.

“......!”

윤도는 대답하지 못했다. 목으로 마른 침이 넘어갔다.

손가락...

손가락 때문이었다. 얼음이라도 맺혀있는 듯 서늘하던 기운이 싹 빠진 것이다. 게다가 저절로 맥을 향한다. 윤도는 서두르는 손가락을 달래며 천천히... 천천히 맥을 잡았다.

“......!”

한 번 더 미친 듯 소스라치는 윤도. 때마침 벼락까지 떨어지며 주변 사람들까지 화들짝 놀라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소리와 함께 전기가 나간 것이다.

콰자작!

마른 벼락이 바다 위에서 거푸 춤을 추었다. 돌연한 상황에 어촌계장과 사촌, 세희까지 얼어붙었다. 하지만 윤도만은 아니었다. 번쩍이는 천둥벼락에 드러난 그의 몸은 마치 노련한 명의처럼 맥을 짚고 혈자리를 보고 있었다.

콰자작!

하늘에서 또 한 번 벼락이 찢어졌다. 그 벼락의 갈래처럼 환자의 경락이 선명하게 보였다. 세로로 가는 경맥과 거기서 갈라져 나온 그물 무리인 난맥... 그것들은 다시 12가닥으로, 12줄기를 보이더니 8가지와 15줄기, 12줄 등으로 펼쳐졌다. 입으로만 재잘거리던 12경맥, 12경별에 기경팔맥과 15낙맥, 12경근 등이었다.

‘이럴 수가.’

차마 믿기지 않는 현실. 그러나 이미 현실인 기적. 윤도는 떨리는 마음을 달래며 집중했다. 손가락이 느낀 혈자리를 인체모델에 대입했다.

‘맙소사.’

벼락에 놀라 헛것을 본 환상이 아니었다. 손가락 끝을 따라 선명한 그림이 오는 것이다. 놀라운 건 경락의 상태였다. 어디가 더하고 덜한지, 어디가 부실하고 과한지... 어느 혈자리에 기가 넘치고 어느 혈자리에 기가 바닥났는지...

손의 떨림이 심장으로 올라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혼자 입술도 깨물어보니 피가 흘러나왔다. 꿈도 아닌 것이다.

그리고...

머리 속에 이상한 울림도 들어왔다.

“옥룡 120혈, 보(補)와 사(瀉)를 명백히 하여 시술하면 금침 한 번으로도 나으리니 곱사등이가 곧게 펴고 앉은뱅이가 걸으리라. 중풍에 정문혈이오, 두풍과 안풍에 상성혈이라... 족삼리에 침을 놓으면 눈이 밝아지고 내정에 자침하면 인후통과 치통을 다스리리니 곡지로 가면 반신불수와 나병을 잡고 합곡에서 두통을 어루만지고 위중에서 요통을 잡는구나. 승산혈을 취하면 치질과 슬종을 제압하리니 열결에서 편두통과 마비를 꿇리리라.”

메아리는 옥룡가와 마단양천성십이혈치잡병가였다. 한의대에 다니며 노래로 흥얼거리며 외우던 먼 옛날의 혈자리 전승가. 그게 마치 녹음처럼 머리에서 울리고 있었다.

화악!

그 사이에 전기가 들어왔다. 가장 놀란 건 세희였다. 20여 년 짬밥의 오지 진료소장이었다. 대개 의대나 한의대 졸업하고 달랑 면허만 들고 오는 의사들. 임상경험이 없으니 실력이 있을 리 없었다. 척 봐도 서툴다. 그런 까닭에 때로는 세희가 더 나을 때도 있었다.

윤도 역시 그런 범주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윤도의 자세는 큰 대학병원의 권위 있는 교수. 한 분야에 일가를 이룬 교수처럼 안정되어 있지 않은가? 초짜 한의사가 아니라 명의가 버티고 있는 것 같은 무게감이었다.

‘귀신에 홀렸나?’

눈을 꿈벅여도 다르지 않았다. 그때 윤도 손이 세희에게 다가왔다. 마치 거역할 수 없는 명령처럼 보이는 손. 침을 달라는 것이다.

“침은 거기...”

세희가 진료대를 가리켰다. 평소 쓰던 원침(圓鍼)과 시침(鍉鍼)이었다. 이 침들은 근육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체표에서 접촉하거나 마찰을 주로 하는 침들이다. 침을 본 윤도가 고개를 저었다.

“채 선생님.”

“이거 말고...”

“......?”

“장침을 주세요.”

장침.

그 말이 세희를 경악으로 밀어넣었다.

장침이라면 자입(刺入), 즉 침을 근육 속으로 찔러넣겠다는 뜻이다. 대충 흉내나 내서 플라시보 효과라도 보면 될 일에 장침이라니?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장침을 내주는 세희였다. 졸지에 변모한 윤도의 카리스마에 눌린 것이다.

‘설마 장침을?’

세희 머리에 생각이 많았다. 장침 시침은 한 번도 본적이 없지만 의심이 들지 않았다. 그만큼 윤도의 진맥 자세가 무아지경이었다. 순간 윤도의 첫 침이 환자 혈자리를 대여섯 군데 고르나 싶더니 머리의 아문혈을 뚫고 들어갔다. 장침은 거의 끝 부위까지 들어가 버렸다. 그럼에도 환자는 느낌조차 없는 표정이었다.

‘세상에나!’

세희는 숨도 쉬지 못했다. 그 긴 침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삽입되는 것 아닌가?

세희보다 짜릿한 느낌은 윤도에게 있었다. 혈자리에 침이 들어가는 순간, 인체 모든 경락의 느낌이 전해져왔다. 다행히 뇌혈관이나 뇌졸중 등은 문제가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충격이 문제였다. 맥으로 확인하고 혈자리로 입증한 인체의 병소. 이건 차마 인간의 경지가 아니었다.

“......!”

덕분에 한 번 더 소스라치는 윤도. 하지만 손은 멈추지 않았다. 침이 혈자리를 어루기 시작했다. 세희는 보았다. 윤도의 손끝이 부드럽게 춤을 추는 걸. 윤도는 침으로 아문혈을 조절해 문제가 된 뇌 부위의 붓기를 통제하고 있었다.

좌로 조금 돌리고, 우로 조금...

마치 현미경의 미동나사를 조절하듯 섬세한 움직임. 그러나 너무나 안정되고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경혈은 오장육부와 연결되어 반응하는 피부상의 한 지점이다. 내부적으로 경혈과 경혈로 이어지는 기혈의 수로를 경락이라고 한다. 경혈에 침을 꽂아 경락으로 흐르는 기혈의 흐름, 즉 오장육부로 가는 물길의 균형을 이루는 게 자침의 목적. 경락이란 큰 물길과 같으니 위 아래로 고루 통해야 질병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넘쳐서도 안 되고 모자라서도 안 된다.

그러나 이 경락의 기 조절은 주로 호침을 사용한다. 하지만 윤도는 장침으로 그걸 하고 있었다. 경혈의 크기는 대략 좁쌀에서 쌀알 크기. 그걸 정확히 찌르는 것도 쉽지 않은데 보법과 사법을 자유롭게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아문혈 조절을 마친 윤도의 손이 턱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보여준 시침은 더욱 놀라웠다. 턱에서 입술 가장자리까지 이어지는 두 혈자리를 장침 하나로 잡은 것. 소위 일침이혈이었으니 세희는 구경도 하지 못한 침술이었다.

와자작!

한 번 더 벼락이 바다에 떨어졌다. 의식하지 못하던 세희는 심장이 발딱 뒤집힐 듯 경기를 했다. 눈앞의 윤도만 해도 믿기 어려운 판에 하늘과 바다마져 심장을 볶아대는 것이다.

그 사이에 윤도의 손은 내관 공손혈로 내려갔다. 거기에도 장침을 꽂고 귀의 신문혈에 이침을 했다. 그 시침 역시 아문혈과 같았다. 침을 미세하게 돌려 혈의 자극을 최적으로 맞추는 것이다. 막힌 수로가 열리고, 지나치게 팽창하던 수로는 좁혔다. 막힌 통신이 뚫리듯 혈자리는 시원하게 소통해 나갔다.

마지막은 노궁혈이었다. 이 혈자리는 사람의 기분을 풀어준다. 비보를 접하고 충격을 받은 몸이니 조화를 찾아주면 도움이 될 것으로 믿었다.

콰자작 와작!

쌍둥이 벼락이 바다 위에 이글거릴 때 윤도는 꽂았던 침을 뽑았다. 그 또한 시침의 반대방향으로 잘 뽑았다. 환자의 통증소리는 잠든 지 오래였다.

“고마드니아 서새이이.”

환자가 웅얼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까보다는 훨씬 나아진 표정이었다.

“모시고 가서 쉬세요. 날 좋아지면 얼른 육지병원으로 가시고.”

세희가 마무리에 나섰다.

“아뇨. 육지에 안 가도 됩니다. 큰 문제 없을 거예요.”

윤도는 그 말을 끝으로 일어섰다. 하지만 두 다리가 후들거려 벽을 짚고 말았다.

“채 선생님.”

세희가 윤도를 불렀다. 윤도가 돌아보았다.

“괜찮아요?”

끄덕!

고개만 숙이고 돌아보지도 않고 걸었다. 관사에 도착한 윤도는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온몸에 맥이 하나도 없었다.

‘하아하아.’

숨을 몰아쉬며 천정을 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시침을 했지만 윤도의 손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렇게 적나라하고 정밀하게 인체의 맥과 혈을 느낀 적이 없었다.

게다가 그 혈자리의 문제를 침으로 조절까지 했지 않은가?

보법(補法)과 사법(瀉法)을 자유로이 드나들며 최적의 자극으로 혈자리를 정리하는 건 신의나 명의 수준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보법이란 막힌 기의 흐름을 원활히 하면서 밖으로 새지 못하게 하는 것. 사법은 침으로써 몸에 있는 나쁜 기를 밖으로 배출하는 방법을 뜻한다. 말은 쉽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침술이 아니었다.

게다가 일부 혈자리는 뜸을 떠야 효과가 상승되는 일. 그런데 뜸을 생략하고도 일침즉쾌의 효과를 얻은 것이다.

일심즉쾌의 명의.

화타라면.

번아라면.

허임이라면.

사암이라면.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는 일. 그러나 갓 한의대를 졸업한 채윤도는 꿈도 꿀 수 없는 일. 그런데 일을 해치운 것이다.

‘꿈인가?’

무아지경에서 장침을 시침했다. 침은 구부러지지도 않았고 손의 기운도 적당했다. 골막을 건드리지도 않았다. 각도도 정확하게 나왔다. 장침의 침 놓는 각도는 주로 세 가지. 15-20도의 횡자, 30-60도로 찌르는 사자, 90도를 유지하는 직자를 고루 사용한 것. 시침은 오롯이 무아지경이었다.

침을 놓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혈자리를 안다고 잘 놓는 것도 아니었다. 인체의 모든 것을 이해해야한다.

거기에 아래의 수련이 더해진다.

▶압수연습으로 수박 등을 물에 띄워 찌르는 연습인 부물자침(浮物刺鍼)

▶딱딱한 판자나 나무 등을 찌르는 견물자침(堅物刺鍼)

▶짐승이 아파서 도망가지 않게 찌르는 연습인 생물자침(生物刺鍼)

이 세 가지를 마치고서도 아래의 마음가짐까지 요구되는 게 침 놓는 일이었다.

-침을 놓을 때 한 눈 팔지 말라.

-마음 속 잡념을 없애라.

-몸가짐을 바로 하라.

-귀한 손님 맞이 하듯 하라.

그런데...

그걸 해낸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윤도의 실력이 아니었다. 윤도는 어쩐지 뜨끈한 느낌이 드는 열 손가락을 바라보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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