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265)

SSS급 닥터, 응급환자가 되다-1

“채 선생님, 왜 이렇게 일찍 나왔어요?”

출근 차 나온 세희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녀보다도 먼저 나온 윤도였다. 실은 도라지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 윤도는 도라지 선물을 받았다. 한 할머니가 텃밭에 심은 도라지라며 굉장히 잘 컷다고 한 봉지를 가져왔던 것. 보건지소는 한약 약탕 처방을 하지 않으니 그 도라지로 대조해볼 생각이었다.

“......!”

진료실에서 도라지를 꺼내든 윤도가 호흡을 멈췄다. 어제와 똑 같은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원산] 한국 재배

[약재수령] 3년

[약성함유등급] 下上품

[중금속함유] 무

[곰팡이독소] 무

[약재사용여부] 가능

[용량 용법] 기존용법 준수

[약효기대치] 下上품

원산지와 수령은 맞았다. 중금속과 곰팡이독소도 맞을 거 같았다. 문제는 약성함유량과 약효였다. 비록 밭에다 재배했다지만 청정 섬마을에서 나온 물건. 上품으로 생각했던 허를 찔렸다. 100을 최상으로 보면 30도 안 된다는 분석이었다.

‘야생이 아니라서 그런가?’

혼자 골똘할 때 세희가 들어왔다.

“선생님 진짜 괜찮아요?”

그녀가 걱정스레 물었다.

“뭐가요?”

“중국...”

세희가 말끝을 흐렸다. 짐작이 갔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걱정하는 것이다. 그녀의 눈에는 오늘 행동도 이상하게 보일 거 같았다. 이렇게 일찍 출근한 적이 없었던 윤도였다.

“저 진짜 괜찮아요. 원래 강철 마인드거든요.”

“보기보다는 그런 거 같지만...”

“시작하죠? 벌써 환자들이 오네요.”

윤도가 창밖의 노인들을 가리켰다. 벌써 삼삼오오 모여앉아 불러주기만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그러게요. 노인들은 잠도 없다니까요.”

세희가 한방진료실 문을 활짝 열었다.

“우아아앙!”

진료실에 아기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돌이 안 된 아기였다. 섬에서 나가 사는 부부가 부모에게 인사차 들어온 모양이었다. 원래도 돌연한 울음을 우는 아이였다. 그런데 배를 타고 온 까닭인지 거의 밤새 울었다고 한다. 그래서 섬 터줏대감 할머니를 앞세워 달려온 아이였다.

“선생님!”

세희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보내라는 뜻이었다. 원래 보건소는 큰 병을 다루지 않는다. 보건본소에서도 좀 큰 병이다 싶으면 큰 병원을 권한다. 그런데 섬 보건지소에서 자지러지는 아이에게 뭘 어쩔까?

원래대로라면 노련한 세희에게 어물쩡 떠넘기면 된다. 그럼 세희가 알아서 처리한다.

“이 정도면 소아과 가셔야 해요.”

“여기서는 해열제 정도 밖에 못 드려요.”

그런데 윤도의 손이 저절로 움직익 있었다. 그 손이 요골동맥의 관맥을 짚었다. 관맥은 요골동맥을 3등분했을 때 가운데 존재하는 맥이다. 윤도는 두 배로 긴장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어린 아기 진맥. 거기에 더해 진맥의 보는 기적이 사라지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

“......!”

맥을 짚기 무섭게 윤도가 맥을 놓아버렸다.

“선생님...”

세희는 보호자 몰래 또 고개를 저었다. 그냥 보내세요. 그 사인이었다.

‘후우!’

윤도가 겨우 숨을 돌렸다. 자신이 없어서 놀란 게 아니었다. 맥에서 아기의 질병을 느낀 까닭이었다.

“아기가 잘 놀라고 푸른 색 변도 보죠?”

할머니와 함께 온 엄마에게 물었다.

“네.”

“소아경기네요.”

“큰 병원에서 그런 말은 들었어요. 경기와 간기가 같이 있다고 좀 더 크면 괜찮아진다고...”

“맞습니다. 아무튼 일단 침을 한 대 놔줄게요.”

선생님!

보호자 뒤에서 세희가 소리없이 손을 저었다.

무리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걸 무시하고 합곡혈을 찾았다. 호침을 꽂으니 전체 혈자리 반응이 감지되었다. 맥에서 진단된 이상과 일치했다. 수구혈 쪽이다. 수구혈에 몰린 기혈이 풀리지 못한 까닭에 병이 된 것이다.

“아앙아앙!”

울음소리를 따라 인중 위에서 내려온 지점의 수구혈 자리를 잡았다. 호침을 비스듬히 위쪽으로 찔러넣고 조금 강한 자극을 주었다. 좌로 두 번, 우로 한 번... 그 동작이 어찌나 유려한지 아이는 침이 들어온 것조차 몰랐다. 마침내 윤도 손이 멈췄을 때 자지러지던 아이의 몸짓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어머, 아이가 울음을 그쳤어요.”

엄마가 소리쳤다.

“어머!”

세희 입에서도 감탄사가 따라나왔다. 믿기지 않는지 벌린 입도 다물지 못했다. 윤도가 침을 뽑았다. 한 번에 뽑지 않고 두 번에 나누어 뽑았다. 세팅된 혈자리를 보존하기 위한 시침작용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노련한 침술 경험을 가진 한의사에게서나 가능한 일. 그런 고난도의 조절을 태연하게 해내는 윤도였다. 다행히 뚫린 기혈은 다시 뭉치지 않았다.

“세상에... 서울 의사들도 못 고친 병인데... 선생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기 엄마는 허리가 부러져라 인사를 하고 나갔다.

“선생님.”

세희가 윤도를 바라보았다.

“네?”

“내가 아는 채윤도 선생님 맞아요?”

“다음 분 모시세요.”

윤도는 웃음으로 그 말을 받았다.

이번에는 어부가 들어왔다. 나이가 무려 75세다. 이 정도면 섬에서는 왕성한 현역에 속한다. 이 노인도 부부가 함께 어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오 선장이 침 맞고 허리가 괜찮아졌다고 해서 말이야. 나도 허리가 부러질 듯 아프거든. 쿨럭.”

섬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처음과 반대였다. 그때는 천하무적 선무당급으로 알려졌었다. 노인들은 즉빵 효과를 원한다. 그런데 윤도의 침은 십중팔구 큰 효과가 없었다. 다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보니 침을 맞고 뜸을 떴던 것 뿐이었다. 어쩌면 그때의 환자들은 침대에 잠시 누워있다는 것이 위로였을 지도 몰랐다.

“쿨럭쿨럭!”

기침소리를 들으며 맥을 짚었다. 기침은 발작적이지만 맥은 그리 시들하지 않았다. 나이와 달리 잔병치레 외에 큰 병이 없는 것이다. 다만 해소가 깊었다. 맥은 몇 곳이 불규칙했는데 특히 전중혈과 어제혈이 그랬다.

전중혈은 가슴부위와 상복부 쪽의 질환을 치유해주는 자리다. 윤도의 손이 호침을 집었다. 구미혈 쪽으로 똑바로 침을 넣었다. 그런 다음 조금씩 자극을 주며 혈자리를 달랬다. 그렇게 침을 꽂고 장침을 잡았다.

“......”

세희는 또 얼음땡 돌입이다. 그녀의 긴장에 아랑곳 없이 어제혈에 장침이 시침되었다. 본래는 장침이 어울리지 않는 혈자리. 하지만 윤도의 본능이 택한 침이었다.

마지막 척택혈에는 호침을 넣었다. 척택혈은 물로 치면 흐름이 돌아들어오는 곳이다. 혈자리의 소통을 위해 자극을 나누어 주었다. 기혈이 조금씩 열리는 게 느껴졌다.

척택혈은 원래 깊이 찌르지 말라는 혈자리다. 윤도의 손가락은 그것조차 기억하는 듯 자른 자침에 비해 신중했다. 환자의 숨소리가 좋아졌다.

이번에도 일침즉쾌. 뜸 없이 침만으로 병을 잡은 윤도였다.

“허리 보는 김에 해소 기침까지 같이 침자리로 봐드렸습니다.”

윤도가 웃었다. 공치사는 아니었다. 의사는 설명할 의무가 있다. 환자도 어떤 치료로 자신의 병이 고쳐지는 지를 아는 게 좋았다.

“내 기침은 쿨...?”

짧은 기침을 섞어내던 노인이 소리를 멈췄다. 기침이 사라진 것이다.

“허리도 조금 편안해졌을 겁니다.”

30여 분 후에 윤도가 침을 뽑았다. 역시 단숨에 뽑지 않고 혈자리를 보존하며 뽑았다.

“그렇네?”

노인의 주름살이 확 펴지는 게 보였다. 고질처럼 달고 살았던 요통. 실로 오랜만에 허리를 쫙 펴보는 노인이었다.

“어이쿠, 채 선생 실력 많이 늘었구만. 육지 황녹수 한의원 침술 저리가라네.”

노인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진료실을 나갔다. 얼이 빠진 건 세희 뿐이다. 버벅대장에서 침술의 대가처럼 돌변한 윤도. 그녀의 상식으로 이해될 일이 아니었다.

톡톡.

오후가 되면서 다시 빗방울이 떨어졌다. 밤에는 풍랑주의보까지 떨어졌다. 그나마 오후에 들어오는 배 편까지는 운항이 된다고 한다. 뭍에 나갔던 사람들 발이 묶이지는 않는 것이다. 두 명의 진료를 더 보고 항구로 걸었다. 풍랑이 온다고 하면 섬이 바빠진다. 게다가 한낮에는 다들 생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꼬부랑 노인들 외에는 진료를 보러 오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부두에 창승이 있었다. 육지에 나간 이장에게 뭔가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뿌우웅!

고동과 함께 여객선이 가물거렸다. 파도가 조금씩 높아지는 바다. 섬과 육지를 잇는 발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배는 섬 사람 10여 명과 함께 낚시꾼 몇 명을 내려놓았다. 승객들 중에는 별장에 오는 사람도 있었다. 노란 벤츠가 갑판에서 나오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갈매도에 하나 뿐인 별장에 손님이 왔다는 뜻이었다.

부릉!

노란 벤츠가 윤도 곁을 지나갔다. 멀리 빨강 등대와 잘 어울리는 원색이었다.

“채 선생님.”

인파를 뚫고 나온 오 선장 아내가 윤도에게 달려왔다.

“선장님은요? 병원은 들러보셨죠?”

“그럼요. 아이고,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장의 아내가 돌연 큰 절을 해왔다.

“왜 이러세요?”

윤도가 말리자 창승이 돌아보았다. 이장에게 물건을 넘겨받은 그는 저것들이 또 왜 저러나 하는 눈빛이었다.

“선생님 말대로 큰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는데 글쎄 췌장암인 거 같다지 뭐예요.”

“......!”

“아직 검사가 다 끝난 건 아니지만 사진하고 무슨 암 검사에서 반응이 나왔다네요. 다행히 덩어리가 작고 한 쪽 끝에 있어 일찍 발견하길 천만 다행이라지 뭐예요.”

“오 선장님이 췌장암이라는 겁니까?”

창승이 끼어들었다.

“그런 거 같다네요. 병원에서 온 김에 수술까지 다 끝내고 가라고 해서 짐 좀 가지러 왔어요. 채 선생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 했어요.”

“허어, 젊은 사람이 용하네.”

가족을 맞으러 나온 섬주민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의 표정만은 달랐다. 창승은 과숙성된 홍어 살점이라도 씹은 듯 찌푸린 표정이었다. 그는 콧바람을 뿜더니 사택을 향해 걸었다.

오 선장 아내는 이웃이 가져온 짐을 받아들고 온 배로 나갔다. 배가 멀어지자 바람이 조금씩 거세지기 시작했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항구 뒤로 노란 별장이 보였다. 새벽 안개가 짙으면 잠옷 바람으로 나와 해변을 걷는다는 재벌의 딸. 아니, 사실은 식물인간으로 누워있어 똥오줌도 받아낸다던가? 이 사람에게는 미녀였다가 저 사람에게는 추녀가 되는 사람...

날마다 전설이 되어가는 그녀를 생각하며 발길을 돌렸다.

섬의 하루는 이렇게 저물었다. 거세지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저녁 밥을 먹었다. 처음에는 창승과 함께 먹었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 먹는 게 편했다. 그와 같이 먹으면 체할 가능성이 높았다. 고참질에 지소장질, 나아가 S대 출신의 인턴 무용담은 허준이나 중국의 장중경, 순우의 같은 명의보다도 몇 배씩이나 앞서 갔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아이돌 가수 유라이였다. 그녀에게 갑상선암이 있는데 그걸 자신이 발견했다는 것. 그 덕분에 그녀의 소속사 인기 걸그룹 두 팀이 건강검진을 와서 미녀들 몸은 원없이 보았다는 듯 것. 실제로 그는 인증샷을 가지고 있었고 가는 곳마다 사진보여주기에 바빴다.

다만 섬 사람들의 반응은 그의 기대와는 달랐다.

“이 처자들이 누구여?”

섬의 노인들에게 있어 걸그룹은 그물에 딸려오는 잔챙이 고기만큼의 관심도 없는 단어들이었다.

창승은 오늘도 이장댁에서 대접을 받을 것이다. 나름 지역 유지가 되어버린 그는 밖에서 얻어먹는 날이 더 많았다.

밥을 먹으며 오 선장을 생각했다.

‘췌장의 적취...’

기분이 좋았다. 진료가 맞아떨어다는 것, 의사의 보람을 느끼는 윤도였다.

덜컹덜컹!

바람이 세지면서 여기저기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빗방울까지 거세니 불안함이 커졌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진맥을 공부했다. 한의에서 진맥이라면 중국의 왕숙화를 빼놓을 수 없다. 아랍의 명의 아비센나도 대가에 속한다. 한국으로 좁히면 허준이 있다.

손가락을 보았다. 오늘도 이 손으로 맥을 제대로 잡았다. 마치 인체의 맥 전체와 센서로 연결된 듯한 감응이었다. 뼈를 깎는 수련 후에야 얻을 수 있는 진맥의 도. 그 도가 손가락에 들어온 것이다.

‘한의는 일침(一鍼)이오, 이구(二灸)에 삼약(三藥)이라...’

먼 옛날 명의들의 말이다. 침뜸을 놓고 약을 써야한다. 약만 쓰고 침을 쓰지 않으면 좋은 의사라 말하기 어렵다. 침을 놓고 약을 알아야 좋은 의사다. 물론 현대 한의사의 상황은 많이 변했다. 하지만 그 원칙만은 명심하고 싶은 윤도였다.

혈자리를 보며 침을 금하는 자리를 상기했다. 특별한 주의를 요하는 혈자리도 한둘이 아니었다. 척택혈에는 침을 깊이 놓지 않는다. 임산부의 합곡은 금침이다. 견정혈 역시처럼 깊이 찌르는 것은 금물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예외가 있다. 그렇기에 금침의 혈자리에도 침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었다.

윤도는 시간가는 줄 몰랐다. 재미가 있었다. 한 번 보고 느낀 맥과 혈자리 감지는 윤도의 실력이 되어가고 있었다. 장님의 눈이 뜨인 것과 같은 이치였다.

“침술에 빠지면 다른 치료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강의 중에 나온 백 교수의 말에 감을 잡는 윤도였다. 그러는 사이에 11시가 가까웠다. 내일은 또 어떤 환자가 올까?

가뜬히 잠을 청할 때 문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덜컹덜컹!

‘바람이 점점 세지나?’

무시하고 자려는데 문소리가 커졌다. 그러고 보니 사람 목소리도 끼어있는 거 같았다.

“누구세요?”

윤도가 문을 열었다.

휘이잉!

거세 바람이 먼저 윤도를 흔들었다.

“채 선생님!”

문 앞에 선 사람은 세희였다. 옷차림을 보니 응급환자가 발생한 모양이었다.

“지소장님은요?”

윤도가 물었다. 내과를 맡는 창승을 제끼고 윤도 문을 두드렸다면 코가 삐뚜러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게...”

“천천히 말씀하세요. 지소장님 또 맛이 갔어요?”

“그건 아니고요. 아무래도 맹장염 같은데...”

“맹장염요?”

“예.”

“그럼 지소장님 불러야죠. 아까 보니까 이장님 댁 앞에서 한 잔 걸치는 거 같던데...”

윤도가 옷을 걸치며 말했다. 하지만 윤도의 동작은 거기서 멈췄다. 세희의 다음 말 때문이었다.

“그게... 지소장님이 쓰러졌어요. 아무래도 급성 맹장염 같아요.”

맹장은 정확히 말해서 충수염. 하지만 보통 맹장으로 많이 부른다.

“지소장님이요?”

윤도가 발딱 고개를 들었다.

“네.”

“......!”

갈매도의 SSS급 의사 지소장.

그가 급성 맹장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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