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265)

한약재를 투시하는 눈-2

어디서 주워들은 말로 손님들을 후리고 있는 난전상. 뽕나무에 기생해서 자라는 겨우살이가 최상품인 것은 맞았다. 뽕나무 외에도 참죽나무와 동백나무에 기생하면 상기생으로 친다. 그러나 찾아보기 힘들다. 가장 흔한 건 곡기생으로 통칭되는 참나무, 느릅나무, 떡갈나무 등에 자생한다.

5일장에서 윤도 지갑의 선택은 천마였다. 그 분석은 우수하게 나왔다. 야생이었다. 그럼에도 약성은 中中을 찍었다. 살짝 의문스러운 부분이었다.

그 주인 역시 섬에서 캤다고 주장하는 상황. 섬이라면 약초들이 해풍을 맞아 생명력이 강하고 바다에서 날아온 미네랄과 무기질을 다량 향유해 약성이 좋은 게 일반적이니 찜찜할 수 밖에 없었다. 뭔가가 착오가 있는 것이다.

'없네?'

구석의 풍경이 허전했다. 협도의 사나이, 즉 약작두 쓰는. 아저씨가 보이지않는 것이다. 녹내장으로. 한 눈 시력이. 없지만 약작두 하나는 귀신처럼 다루는 아저씨였다.

철겅철겅.

그의 손이 지나면. 나무토막도. 약재처럼. 보였다.

장터 탐색을 마치고 향한 곳은 참숯 한의원이었다. 읍내에는 몇 개의 한의원이 있었다. 그중에서 참숯의 원장은 윤도와 안면이 있는 한의사였다. 그와의 인연도 이 5일장이었다. 약재 구경을 하다 만났다. 같은 한의사이기에 서로 통했다. 그래서 뭍으로 나오면 인사 정도는 나누는 사이였다.

“어, 안녕하세요?”

윤도가 한의원에 들어서자 약제사 김병길이 인사를 해왔다. 황 원장은 전통 한의원처럼 약제사를 두고 한약을 관리하고 있었다. 개업 초기 한약재에 문제가 생겨 의료사고까지 간 경험 때문이라고 했다.

“약재 들어오나 봐요?”

윤도가 물었다.

“예좋은 거 들어옵니다. 원장님은 안에 계시니 들어가 보세요.”

약제사가 안 쪽을 가리켰다. 황원장은 마침 침을 고르고 있었다. 윤도가 들어가 인사를 건넸다.

“어이쿠, 갈매도 신의 원장님.”

황 원장이 반색을 했다.

“신의요?”

윤도가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채 선생, 왜 이러시나? 나도 다 정보망이 있거든. 앉아요.”

황 원장이 일어나 자리를 권했다.

“정보망이라면?”

“요즘 갈매도에 편작에 화타를 더한 신의가 나타났다는 정보 말일세. 어제는 급성 맹장을 침으로 잡았다니?”

“아, 그거요...”

윤도가 얼굴을 붉혔다. 섬이 좌라락 딸린 작은 군. 지역 의료기관끼리 공조를 한다. 전에 여기서 일하던 간호조무사가 보건직 공채에 합격해 보건소로 갔고, 지역보건 업무로 보건소에 아는 사람이 많은 황 원장이었다. 그러니 누군가가 귀띔을 해주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중국 다녀왔다더니 거기서 배웠어?”

황 원장이 은밀하게 물었다.

“아,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혈자리를 제대로 찔러서...”

“운이라면 한두 명이어야지.”

“다른 일도 다 아세요?”

“어허, 우리 군 좁아요. 알려고 들면 채 선생이 속옷 몇 벌인 것까지 다 알 수 있다고.”

“다른 건 아니고 제 선임이 좀 까탈스럽거든요. 한의도 은근히 무시하고...”

“그래서?”

“기분 전환 겸 간 중국에서 자신감을 좀 얻었습니다.”

“그래? 난 또 화타나 편작, 아니면 순우의나 장중경 귀신이라도 만나 득침(得鍼)이라도 했나했지.”

“그런 게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건 뭔가?”

원장이 윤도 손에 들린 천마봉지를 바라보았다.

“오다가 5일장에 들렀는데 물건이 좋은 거 같아서 샀습니다. 한 번 봐주시겠습니까?”

윤도가 천마를 꺼내놓았다.

“천마 아닌가? 자연산 上품 같은데?”

“그렇죠? 한 번 맛을 봐주시면...”

“맛이라면 우리 김 선생이 달인이지. 그렇잖아도 오늘 특별한 약재가 들어올 텐데 구경 좀 해보시려나?”

“특별한 약재요?”

“가보자고.”

김 선생은 약제사를 말한다. 황 원장이 천마를 들고 일어섰다.

“김 선생, 약재 왔나?”

약제실 문을 열며 황 원장이 말했다. 약제사가 일을 멈추고 원장을 맞았다.

“채 선생 알지? 갈매도 원장님.”

“예...”

“이것 좀 봐줘. 장에서 샀다는데 자연산인지 궁금하신가 봐.”

원장이 천마를 넘겼다.

“자연산 맞는 거 같습니다. 생김새를 보니 약성도 上품이겠네요.”

약제사가 윤도를 보며 웃었다.

“물건 좀 꺼내봐.”

그 사이에 원장이 약제사의 어깨를 건드렸다. 약제사는 나무 서랍을 열어 약제 두 덩어리를 꺼내놓았다.

“어떤가?”

황 원장이 보여준 건 우담남성이었다. 경련을 진정시키고 담을 삭이며 열을 내리거나 경련, 소아 경풍(驚風) 등에 쓰는 명약이다. 다만 법제(法製)가 까다롭다. 법제란 한약의 독성과 자극을 없애고 안전하게, 혹은 한약의 치료 효능을 높이고 약효를 변화시켜 치료를 합리적으로 하기 위한 과정이다. 우담남성의 법제는 보통 2년 이상이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약제사가 펼쳐놓은 우담남성은 꼭 구워놓은 고구마와 밤의 합성품처럼 보였다. 원래 이 약재는 남성과 소 쓸개로 만든다. 남성이라는 약재를 고운 가루로 만든 후, 음력 12월에 잡은 누렁 소의 쓸개를 준비한다. 쓸개즙을 받아낸 후에 가루로 만든 남성과 잘 버무린다. 그 뒤에 다시 쓸개 속에 넣고 입구를 동여맨다. 이것을 바람 잘 통하는 그늘에 걸어 서서히 말린다. 오래 말린 우담남성일수록 효과가 뛰어나다.

윤도의 손에는 우담남성 한 덩어리가 들려있다. 남성과 쓸개의 냄새가 짙어지나 싶더니 분석정보가 나왔다.

[원산] 국산

[약재수령] 9년

[약성함유등급] 中上품

[중금속함유] 유

[곰팡이독소] 유

[약재사용유무] 불가능

[용법 용량] 기존 용법 참조

[약효기대치] 유해

‘웃!’

분석표를 본 윤도가 움찔 흔들렸다. 수령 때문이었다. 보통 2-3년 말려 쓰는 우담남성. 그런데 이 약재는 무려 9년이었다. 우담남성 중에서 최상급으로 쳐준다는 9년...

“......!”

그 9년을 생각하니 경악의 후폭풍이 몰아쳤다. 이 정도라면 약성함유가 上上품으로 나와야했다. 실제로 9년 이상 가는 명품은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중금속에 곰팡이 독소 검출이라는 엇갈린 결과. 약효기대치조차 유해이므로 이 약재는 복용불가였다. 9년 법제라는 이상(理想)은 이루었지만 애당초 사용한 약재에 문제가 있었든지 아니면 법제 과정의 문제가 있다는 얘기였다. 물론, 윤도의 분석이 맞다는 걸 전제로...

“죽이지?”

황 원장이 대답을 재촉했다.

“예...”

“몇 년이나 법제한 건지 알겠나? 이게 무려...”

“9년 법제하셨네요.”

“응? 김 선생이 벌써 말해줬나?”

황 원장 시선이 약제사에게 돌아갔다.

“아닙니다. 아까 뵙기는 했어도 우담남성이란 단어도 안 꺼냈는데요?”

“그런데 어떻게?”

다시 윤도를 바라보는 황 원장의 시선...

“찍었는데 맞춘 모양이군요?”

“그래.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9년 법제품이라네. 돈 주고도 구하기 어렵지.”

“......”

“마침 옆 도시 검찰청 부장검사와 팀원들이 한약을 원해서 말이야. 게다가 단골들 중에서도 이 약재 들어갈 분들이 있어서 좀 무리를 했지.”

“......”

“보기만 해도 눈과 코가 호강하는 것 같지 않나? 이 정도 약재 쓰면 제압 못할 질병이 없겠지않아?”

“부장검사라면...”

“그쪽에 개업한 선배 얘기 들으니 성질이 대쪽이라더군. 그래도 알아두면 나쁠 거 없잖아?”

“그러시면 이건 쓰지 않는 게...”

윤도의 눈이 우담남성을 겨누었다.

“무슨 소리야? 일부러 어렵게 구한 약재를 가지고...”

“귀한 약은 맞는데... 제가 보기엔 중금속이나 농약 같은 문제가...”

“뭐라고? 중금속?”

“예,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중금속이 많이 함유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자칫 약재를 복용했다가 탈이라도 나면...”

“이 사람 무슨 소리야? 초를 치는 것도 아니고...”

황 원장이 눈을 부라렸다.

“죄송하지만 확인해본 후에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이보시게, 채 선생. 침술은 조금 늘었다는 거 인정하겠네만 GMP 인증 전문가도 아니지 않나? 아주 믿을만 한 약재상을 통해 구한 거란 말일세.”

GMP 인증.

이는 식약청의 품질관리기준을 말한다. 한의원에서는 대체로 이 인증을 마친 약재만을 쓰게 되어있다. 하지만 그 시스템이라고 100% 완벽한 건 아니었다. 예를 들면 관목통 사건이 그랬다. 몇 해 전, 해당 부처 관리감독의 소홀로 관목통이 통초로 유통된 전력도 있었다.

“실은 제가 약재 보는 눈도 조금 떴습니다.”

“......”

“믿지 않으시는군요?”

“아, 아닐세. 그쯤 하세. 우담남성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원장이 헛웃음으로 윤도 등을 밀었다. 약제사도 시큰둥한 눈치였다. 이해는 되었다. 어렵게 구한 약재를 두고 초짜 한의사 주제에 중금속 운운했으니...

인사를 마치고 나온 윤도는 항구 쪽으로 걸었다. 걷는 걸음마다 우담남성이 밟혔다.

9년 동안 법제한 우담남성.

기막힌 명약이다.

그런데 왜 중금속이나 농약 느낌이 났을까? 윤도의 착각일까? 손에 든 천마를 깨물었다. 맛은 께루묵찝찝느끼였다. 푸허, 몸에 좋은 모든 것은 입에 쓰다.

‘어쨌든 알려는 주었으니...’

쓰고 말고는 황 원장이 결정할 일이었다. 윤도의 일은 섬으로 복귀하는 것. 그래서 창승이 없는 보건지소를 지켜야하는 것. 윤도는 뿌웅뿌웅 요란한 고동을 울리는 마지막 배에 올랐다.

***

응애응애!

뱃전에 아기 울음소리가 요란했다. 갑판의 난간에서 파도를 보던 윤도가 고개를 돌렸다. 젊은 엄마와 아기가 보였다.

누굴까?

섬의 주민이라야 400여 명 수준. 다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윤도였다. 보건지소에 오는 할머니들의 수다 덕분이었다. 뉘집 며느리가 둘째를 낳았다느니 뉘집 며느리는 이혼을 했다느니, 가만히 앉아있어도 정보가 솔솔 꽂히는 곳이 보건지소였다.

그런데 최근에 아기를 출산했다는 말은 없었다. 그렇다고 관광객도 아니었다. 이 먼 외딴 섬에 갓난 아기를 데리고 관광 올 부모가 어디 있을까?

‘응?’

아기를 보던 윤도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아기는 하나가 아니었다. 또 다른 젊은 엄마 둘이 아기를 데리고 등장한 것이다.

“아직도 안 그쳐요?”

다른 엄마가 물었다.

“네, 섬은 아직 멀었나 봐요?”

“아직 꽤 남았대요.”

“아휴, 애기 경기 고치려다가 애기 잡겠네.”

“힘내요. 그 섬 한의사가 그렇게 용하다잖아요.”

“......!”

나중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윤도가 고개를 들었다.

그 섬 한의사?

‘그럼 나?’

윤도가 엄마들에게 다가갔다.

“갈매도에 가세요?”

“네!”

“말씀 듣자니 한의사 만나러 가신다고요?”

“네, 혹시 아세요?”

“한의사를 왜?”

“저희가 영맘 카페 회원들이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에 우리 회원 하나가 이 섬에 보건소에서 아기 경기를 침으로 고쳤다고 해서요.”

“......”

윤도 머리에 불이 들어왔다. 그때 할머니가 데려왔던 젊은 여자. 그 여자가 안고 있던 아기...

엄마부대의 섬 원정진료!

엄마부대의 섬 원정진료.

“그럼 세 분이 갈매도 보건지소에 가시느라고요?”

“우리 말고도 또 있어요.”

한 엄마가 배 안을 가리켰다. 안에도 아기를 안은 엄마들이 셋이나 있었다. 아기 병을 고치기 위한 원정 진료. 서울도 아니고 오지의 섬으로 오는 원정이라니...

“아휴, 배는 왜 이렇게 느리게 간다죠?”

우는 아기의 엄마가 조바심을 냈다. 배를 탄다는 건 어린 아기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조바심이 끝날 때 쯤 갈매도가 눈에 들어왔다.

“채 선생님!”

세희가 선착장에 나와 있었다. 이장과 어촌계장 등도 나와 있었다.

“괜찮으세요?”

뭍을 밟기 무섭게 세희가 물었다.

“안 괜찮은데요.”

“네?”

“보건소에는 왜 알리셨어요? 소장님 이하 쫙 출동하셔서 무안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쳇, 그게 뭐요? 사람 살리는 게 보통 일인가요?”

“우리 지소장님이잖아요? 같은 직원끼리 도운 게 대수도 아니고...”

“문제는 그게 아니거든요.”

“예?”

“채 선생님 이제 곧 본소로 옮겨갈지 몰라요.”

“내가 왜요?”

“왜라뇨? 명의 침술이라고 소문 쫙 돌았는데 군수님이나 소장님이 그냥 둘지 아세요. 지역 주민의 건강향상과 질병관리를 위해, 라고 공문 한 장 날리면 오고 가는 게 공무원이라고요.”

“설마?”

“설마가 아니에요. 분위기가 그렇더라고요.”

“너무 오버마시고 저분들이나 지소로 모셔가세요.”

윤도가 아기 엄마부대를 가리켰다.

“누군데요?”

“애기들 보면 몰라요? 경기 고치러 오셨다네요.”

“그럼 선생님 보려고?”

“저번에 애기 경기 고치고 간 어머니가 엄마들 카페 회원이시랍니다. 그 분이 아마 추천기를 올리셨나 봐요.”

“하지만 지소는 섬 주민이나 연고가 아니면...”

세희가 팩트를 내세웠다. 섬 지소의 진료는 섬주민이거나 연고자에 한했다.

“여기까지 저 애기들 안고 왔는데 돌려보내자고요?”

“규정이...”

“규정보다 사람. 일단 모셔가세요. 침 놔주고 업무일지 작성 안 하면 되잖아요. 문제되면 제가 책임질 게요.”

윤도가 세희 등을 밀었다.

“채 선새앵, 애썼어!”

이장과 어촌계장도 푸근하게 다가왔다. 두 사람은 원래 창승을 칭송하는 편이었다. 말로만 듣던 S대 출신인 것이다. 그래서 윤도에게 그리 살가운 편은 아니었다.

“아닙니다. 두 분이 힘 써주신 덕분에 헬기가 온 게 행운이었습니다.”

“하긴 우리가 힘 좀 쓰긴 했지?”

이장이 어촌계장을 돌아보았다.

“당연하지. 제 놈들이 우리 갈매도 무시할 수 있어?”

어촌계장 목에 힘이 들어갔다. 이장과 어촌계장은 목에 힘 주는 재미로 산다. 그래봤자 반쪽이다. 갈매도의 진짜 호랑이는 차명균이라는 선장이었다. 그는 말보다 눈빛으로 사람을 제압한다.

“그럼 저는 진료 때문에...”

윤도가 돌아섰다.

“움메, 우리 원장님 오셨네.”

지소에 도착하자 의자에 옹기종기 앉아있던 할머니들이 반색을 했다. 보나마나 아침부터 출동한 게 분명했다. 할머니들은 이상하게도 시샘이 많다. 어떤 때는 아침 7시부터 와서 줄을 서기도 한다.

“내가 1등이야.”

때로는 그게 훈장이자 자랑이었다.

“응애응애!”

안으로 들어서자 아기 울음소리가 진동을 했다. 여섯 명의 아기가 동시에 우는 것이다. 누가 울면 따라우는 것. 아기들의 특징이기도 했다.

“어머, 아까 배에서 본 분?”

엄마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 분이 우리 한의원장님이신 채 선생님이세요.”

세희가 말했다.

“어머어머, 우린 그런 줄도 모르고...”

“너무 젊고 멋지시다!”

젊은 엄마들은 아기 못지않게 경기를 했다.

“설명은 제가 드렸죠? 원래 여러분은 섬 주민도 아니고 연고도 없기 때문에 진료를 받으실 수 없어요. 하지만 원장님이 특별히 봐드리는 거니까 차후에 소문내서 다른 회원들 오시게 하면 안 됩니다. 우리 원장님 징계 먹어요.”

세희가 못을 박았다.

“알겠습니다.”

엄마들이 입을 모아 합창을 했다.

“그럼 나가셔서 번호대로 기다리세요. 저기 있는 분들은 아침부터 기다리셨거든요.”

세희가 할머니부대를 가리켰다.

“아녀, 아녀. 다 늙은 것들은 쪼매 참으면 되니까 애기들부터 보드라고. 게다가 우리 섬에 온 손님들인데 대접을 해야지.”

할머니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엄마부대는 또 한 번 입을 모았다.

첫 아기가 들어왔다. 아기 울음소리는 스쿠류 엉긴 뱃고동처럼 몸서리를 동반했다. 먼저 맥을 짚었다. 첫 아기는 소아경기가 맞았다. 수구혈에서 불규칙한 기혈이 감지되었다. 호침을 꽂아 혈자리를 달랬다. 비슥하게 들어간 호침에 살짝살짝 자극을 더하고 빼는 윤도. 갓난아기라 그런지 윤도의 손길은 새털처럼 보였다.

손을 타고 온 혈자리의 반응이 윤도에게 집중되었다. 바라보는 세희는 이제 떨지 않았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윤도에 대한 신뢰가 쌓인 것이다.

윤도의 손가락은 미세하게 혈자리를 조절했다. 천분의 일, 혹은 만분의 일... 때로는 강한 자극, 또 때로는 부드러운 자극... 마치 먼 행성의 일을 지구에서 조절하듯 신중했다. 좌로 우로 움직이는 손가락은 마치 피아니스트의 연주처럼도 보였다.

원래는 긴 시간 동안 침을 꽂아야하는 상황. 하지만 윤도의 손은 마지막 조율까지 단숨에 끝내려는 듯 쉬임 없이 움직였다. 그러다 윤도 손이 멈췄을 때, 신기하게 아기 울음과 몸서리도 뚝 그쳤다.

“까악!”

대신 엄마의 비명이 지소를 흔들었다.

“왜요?”

다른 엄마 둘이 문틈으로 고개를 디밀었다.

“그 엄마 말이 맞아요. 우리 아기 울음이 그쳤어요. 진짜 명의세요!”

엄마는 두 발을 구르며 아기를 고이 품에 안았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제는 아기 대신 울음을 터트리는 엄마였다.

두 번째와 세 번 째 아기도 소아경기였다. 다만 시침 혈자리는 서로 달랐다. 두 번째 아기는 머리의 백회혈에 호침을 넣었다.

침을 본 엄마가 놀라 입을 벌렸지만 그 사이에 침은 이미 백회혈에 자리를 잡았다. 침은 낮은 각도로 피부를 뚫고 들어갔다. 머리는 침 각도가 크면 골막을 건드려 굉장히 아플 수 있다. 혈관을 건드려 피가 우려도 많았다. 그럼에도 윤도는 능숙하게 호침을 죄다 밀어넣었다.

아이대신 엄마가 자지러졌다. 엄마는 자기가 침을 맞는 듯 부들거렸다. 주먹까지 꽉 그러쥐고 있다.

이 부위 또한 긴 시간 동안 침을 넣고 있어야하는 상황. 하지만 윤도의 손은 침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손가락의 조율은 아까와 같았다. 문제가 생긴 혈자리를 침으로 움직여 주변 조화를 재촉하는 것이다. 아기는 눈물도 없이 떨었지만 그 경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하느님, 부처님, 고맙습니다.”

안정된 아이를 본 엄마 역시 감격의 포로가 되었다.

“30분 후에 침을 빼주세요.”

세희에게 부탁하고 다음 아기를 맞았다. 세 번째 아기 역시 소아경기가 맞았다. 하지만 혈자리는 후계혈과 노궁혈이 문제였다. 아기 손을 바라본 윤도의 선택은 장침이었다.

“어억!”

큰 침을 본 엄마가 소스라쳤다.

“괜찮습니다.”

세희가 엄마를 진정시켰다. 윤도의 장침은 일침이혈로 들어갔다. 침 하나로 두 혈자리를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나 후계혈에서 나란히 이어지는 혈자리는 무려 네 곳.

일직선으로 후계-소부-노궁-합곡을 이루니 중간에 있는 소부혈 등을 건드리지 않아야했다. 윤도는 왼손으로 주변을 살짝 눌러 통로를 확보하고 일침이혈을 성공시켰다. 전 같으면 꿈도 못 꿀 시침이지만 윤도의 손은 알아서 반응하고 있었다. 낮은 파도가 남실거리듯 너무나 자연스러운 시침이었다.

“다음 아기.”

윤도가 땀을 훔치며 세희를 돌아보았다.

“선생님, 좀 쉬고...”

“아기가 울잖아요.”

윤도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마지막 아기의 맥을 잡던 윤도 미간이 살포시 구겨졌다. 이 아기는 소아경기가 아니었다.

‘심장 쪽?’

맥으로 감을 잡은 윤도가 다시 장침을 뽑았다. 이미 다섯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입술을 꼭 깨물고 잘 되기만을 기도했다.

장침은 중완혈로 들어갔다. 중완혈은 위, 즉 밥통의 한 가운데 자리한다. 경혈 중에서 첫째 간다는 말을 듣는 혈자리였다. 그 곳에서 주변 혈자리의 기세를 읽으려는 윤도였다.

‘폐... 간...’

차분하게 혈자리 반응을 체크하다 병소를 알아냈다. 심장부정맥의 이상이었다.

“이 아기는 소아경기가 아니네요.”

윤도가 아기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럼 다른 병이에요?”

엄마가 걱정스레 물었다.

“아무래도 심장부정맥 같습니다.”

“심장부정맥이라고요?”

“네.”

“우는 건 물론이고 우유나 젖을 시원하게 먹지 못하고 호흡도 좀 힘들게 쉴 때가 있죠?”

“네, 저는 하도 울어서 그런 걸로만...”

“침으로 다스릴 수는 있지만 시간이 걸립니다. 이 섬에 오래 머무실 수 없을 테니 제가 임시처방으로 심부정맥을 다스려놓겠습니다. 집 근처의 큰 병원에 가보시는 게 좋을 듯 싶네요.”

“어머어머, 어쩌면 좋아.”

엄마의 애탐을 뒤로 하고 윤도의 손은 빠르게 움직였다. 중완에 이어 단전에도 침을 꽂고 간유와 신유혈에도 침을 넣었다. 네 곳의 침을 조금씩 조절하자 아기 표정이 조금 편안해졌다.

“선생님, 우리 아기... 제가 준비를 해가지고 다시 오면 안 될까요? 선생님이 좀 치료해주세요.”

아기 상태가 호전되자 엄마가 간청을 했다.

“아닙니다. 소아부정맥은 병원에서도 치료가 얼마든지 가능하니 굳이... 게다가 이곳 주민이 아니라 장기 치료는 곤란하고요.”

“어휴, 무슨 놈의 법이 그래요? 비싼 의료보험료 내는데 원하는 데서 치료도 못 받고.”

엄마의 짜증은 세희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세희로서도 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예예, 미안하다고 숙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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