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265)

갈매도의 권력자들-2

“오셨어요?”

세희가 나서 차명균을 맞았다.

“어머니 진료하시게요?”

눈치도 빠르다. 차명균은 매운 눈초리로 어머니를 내려놓았다. 윤도 진료책상 앞의 의자였다. 어깨는 그때보다도 자연스럽지 않았다.

“새벽에 대문 밖 화장실에 갔다가 앉도 서도 못하는 걸 업고 왔소. 배 들어오면 육지 병원에 나가볼 참인데 노인네가 이웃 할머니들 말 듣더니 부득...”

이 돌팔이 한의사를 고집하네?

차명균의 매운 눈이 뒷말을 암시했다.

세희가 다가와 혈압을 체크했다.

“정상이에요.”

그 말을 들으며 진맥을 했다. 발음은 제대로 나왔고 팔도 문제는 없었다. 할머니의 문제는 양다리와 허리였다. 통증이 심해 움직일 수 없다는 거였다.

‘찬죽혈 쪽...’

윤도는 맥으로 혈자리의 문제를 알았다. 연로한 노인. 새벽 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밖으로 나갔다. 살갗의 주름들이 제대로 닫히지 않은 채 한기를 맞았다. 그게 경근(經筋)에 통증으로 달라붙은 것이다.

“침대로 옮겨주시죠.”

윤도가 차명균에게 말했다.

“......!”

차명균은 우묵한 눈으로 윤도를 쏘아보았다.

자신 있어?

그렇게 묻는 것 같았다.

“옮겨주세요.”

강조하는 윤도의 목소리는 낮으면서도 차분했다. 차명균의 기세에 놀라 허둥거리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차명균은 날선 눈빛을 거두고는 환자를 침대로 옮겼다.

“침 주세요.”

혈자리를 잡은 윤도가 세희에게 말했다. 세희가 침을 건네주자 호침을 집었다. 찬죽혈에 이어 인접한 혈자리까지 두 개의 호침이 들어갔다. 침이 들어간 상태에서 미세조정을 했다. 나이 많은 환자다. 아주 세심한 조절이 필요했다. 환자가 꿈틀하는 게 보였다.

“다리 움직여 보세요.”

“못 움직여.”

할머니가 지레 대답했다.

“괜찮을 겁니다. 움직여보세요.”

“글쎄 안 된다니... 응? 되네?”

다리를 뻗치던 할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일어나서 걸어보세요.”

“이봐!”

윤도가 바닥을 가리키자 차명균이 견제를 날려 왔다.

“걸어보세요.”

윤도 목소리는 더 이상 초짜가 아니었다. 할머니는 온갖 인상을 쓰면서 겨우 몸을 세웠다.

“이봐.”

차명균이 재참견하자 윤도가 문을 가리켰다.

“조용히 하시든지 나가 계시든지 하세요.”

“......!”

이제 놀라는 건 차명균의 몫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눈빛에 깨갱거리며 오줌을 지리던 초땡이 한의사. 몇 달만에 무슨 똥배짱이라도 생겼는지 목에 힘을 주고 있었다.

‘오냐, 어디 잘못되기라도 하면 뼈를 추려주마.’

차명균은 잔뜩 벼르며 벽으로 물러났다.

윤도가 호침을 뽑았다. 그런 다음 다시 침을 꽂았다. 이후 처방은 아까와 같았다.

“걸어보세요.”

긴가민가하며 두어 발 내딛던 할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허리가 안 아파.”

“......!”

지켜보던 차명균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앉은 채 걷지도 일어서지도 못하던 어머니. 어제처럼 걷고 있지 않은가?

“아랫도리에 힘이 없고 등짝이 아프죠?”

윤도 문진이 이어졌다.

“아이고, 귀신이네?”

“다시 누우세요.”

이번에 뽑아든 건 장침이었다. 그걸 든 채 발뒤꿈치에서 혈자리를 잡았다. 장침을 발에 감추기라도 할 듯 죄다 밀어넣었다. 족삼리에서 해계혈까지 아우르는 무려 일침오혈 제압의 신기였다.

일침오혈.

그 신기에 차명균의 기세가 한 번 더 무너졌다.

<족삼리혈.>

이 혈은 하체 스위치로 불린다. 무릎아래 위치하면서 인체의 불 에너지를 하체로 끌어내리는 역할을 한다. 반면 상체의 스위치는 팔이 접히는 부분에 자리잡은 곡지혈이다. 이 혈은 물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작용을 한다. 두 혈을 대칭으로 놓고 보면 인체에서 물과 불이 돌고 도는 상황을 연출하는 형상이다.

옛날 선비들은 먼 시골에서 한양으로 갈 때 곡지혈에 침이나 뜸을 뜨고 출발했다. 그러면 한양까지의 천리길도 끄덕이 없었다.

“......!”

차명균과 세희의 입이 함께 벌어졌다. 풍한으로 인한 급성요배후통이다. 거기에 더불어 좌골신경통까지 아우르는 자침법. 주로 살갗이나 살짝 뜨는 천피침에 비하면 신기의 침술에 다름 아니었다.

“어때요?”

얼마 후에 침을 빼며 확인을 했다.

“아이고, 용하네. 다 나았어. 안 아파!”

할머니가 손뼉 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가셔서 안정하시고 새벽바람이 찰 때는 옷을 두툼하게 입고 나가세요. 아셨죠?”

“응, 고마워요.”

할머니는 주름살을 활짝 편 채 대답했다.

“모시고 나가세요.”

윤도가 할머니를 가리켰다. 하지만 차명균은 움직이지 못했다. 황당함이 가시지 않은 것이다.

“왜요?”

“그게...”

말까지 더듬는다.

“지난번에는 죄송했습니다. 제가 선장님 흉터에 놀라서 실수를... 하지만 방어는 잘 먹었습니다. 오늘 할머니 치료는 그때 방어값이라고 생각하세요.”

“방어는 얼마든 지 있소.”

차명균의 기세는 이제 들어올 때와 달랐다.

“무슨 말씀이신지?”

“방어는 필요 없으니 그때 못한 치료나 좀 해주시오. 장침 들어가는 거 보니 어깨에 그거 한 방 맞으면 시원할 거 같은데... 육지에 가서 침을 맞고 왔을 때는 조금 낫는 거 같더니... 그렇다고 매번 육지에 나갈 수도 없고...”

“또 사람 잡는다고 하시려고요?”

“그때 내가 오해였던 거 같소.”

“어깨 뿐 아니라 눈까지 맞으신다면 놓아드리죠.”

“눈?”

차명균이 대형거울을 돌아보았다. 그는 냉루(冷淚)가 있었다. 눈에서 늘 눈물이 흐르고 혹시라도 바람을 맞으면 더 심해지는 병이다. 첫 대면 때는 그리 심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거의 중증이었다.

“까짓 눈물 따위야... 하지만 어깨는 여러 가지로 고질이라서.”

바다 사나이 다운 대답이 나왔다.

“누우시죠.”

윤도가 침대를 가리켰다. 이제는 아들이 눕고 어머니가 지켜보는 형상이 되었다. 먼저 눈물부터 치료에 임했다. 맥은 정명혈의 이상을 알려주었다. 혈자리에 물이 넘치는 것이다.

눈초리의 바깥쪽 위로 움푹 꺼진 곳에서 혈자리를 잡았다. 정명혈은 눈 속으로 침이 들어가기에 가는 호침을 주로 쓴다. 그럼에도 윤도는 장침을 뽑아들었다. 이제 손가락의 선택은 웬만하면 장침이었다.

왼손으로 눈을 가볍게 눌러 고정한 후에 코의 비골을 따라 장침을 밀어넣었다. 서두르지 않았다. 혈자리의 기세를 느끼며 간격을 두었다가 다시 넣었다. 세 번째 시도 끝에야 혈자리가 안정되었다.

정명혈은 원래 사시나 근시, 난시, 백내장, 안면 신경마비 등에 효과를 보는 혈자리다, 각막염이나 결막염 에도 효과가 있다. 보통 여길 자극하면 눈이 맑아지고 눈의 피로가 풀린다. 지압만으로도 좋다. 양쪽 눈과 코 사이를 만질 때 작게 파인 곳이 있는데 그곳이 정명혈이다. 엄지와 검지를 좌우의 정명혈에 대고 압박하면서 문지르면 좋다. 조금 센 강도도 50회 정도하면 개운하다.

눈을 해결했으니 어깨로 내려갔다. 차명균의 어깨는 견우혈이 말썽이었다. 조구와 견봉도 정상은 아니었다. 먼저 두 손으로 눌러 혈자리를 안정 시켰다. 그런 다음 장침을 뽑아들었다. 흉터 부위였지만 문제는 없었다. 침은 귀신처럼 자리를 찾았다.

“......!”

막 시침을 시도한 순간, 별안간 윤도 등골에 서늘한 땀이 배어났다. 침이 살 속에서 버벅거렸다. 긴장한 탓일까? 아니면 골막을 건드린 것일까? 별 수 없이 침을 뽑았다. 이유가 나왔다. 바늘 끝이 무딘 침이었다. 침 놓는 재미에 빠져 있던 윤도. 깜빡 침 관리에 소홀한 게 문제였다.

새 침을 꺼내 시침을 했다. 이번에는 시원하게 들어갔다. 이제는 침을 들어가는 느낌으로도 감을 잡는 윤도였다. 올바른 시침이라면 침이 혈자리로 빨려드는 느낌이 온다. 장침은 아주 깊이 들어갔다. 침은 병의 경중이나 환자의 기운, 날씨나 계절에 따라서도 깊이를 조절해야 하니 고질병이 된 어깨에는 깊이 넣는 게 옳았다.

“어흐, 시원하다.”

침을 돌려 혈자리를 잡아주자 차명균 입에서 괴이한 소리가 나왔다. 견우혈을 잡았으니 조구와 견봉까지 갈무리를 해주었다. 차명균의 어깨와 척추에 긴장이 풀리는 게 보였다.

“......!”

침을 뽑은 후에 어깨를 움직이게 했다. 몇 번 움찔거린 차명균의 시선이 윤도에게 올라왔다.

“선생님!”

느닷없이 존칭이었다. 대충 막말을 섞어대던 말투와 달랐다.

“움직일만 하시죠?”

“이야, 그거 참 신기하네. 중국 놈들 배 한 열 척은 때려부수겠는데?”

“중국 어선이 자주 출몰하나요?”

“그럼요. 그 놈들 말만 대국이지 양아치도 그런 양아치에 날강도들이 없습니다. 쓰레기 버려, 치어 잡아가. 그것도 모자라 우리가 친 그물까지 걷어가니... 이제 걸리기만 하면 아주...”

차명균이 치를 떨었다. 중국 어선의 해적질 같은 저렴한 행태. 그걸 응징하는 그야 말로 진짜 애국자의 하나였다.

“눈은요?”

“어? 그러고 보니 눈물도?”

“여기가 정명혈이라는 곳인데 자주 마사지해주세요. 그럼 괜찮을 겁니다.”

윤도가 차명균의 눈초리를 짚었다.

“어이쿠, 이거 이런 명의신 줄도 모르고 나이 어리다고 무례를 저질렀으니...”

차명균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덕분에 방어는 실컷 먹었지 않습니까?”

“그깐 방어, 말만 하세요. 날마다라도 낚아다 드릴 테니...”

“됐고요, 가셔서 일 보셔야죠? 내일 아침에 한 방 더 맞으면 좋은데...”

“내일은 출항해야 합니다. 모레 돌아오면 찾아오죠.”

“......”

“이야, 이게 웬일이래? 어머니 업고 왔다가 내 어깨에, 눈까지 싹 치료했으니...”

차명균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진료실을 나갔다.

갈매도의 권력자 또 한 사람의 마음을 사는 순간이었다.

한 번 믿어보세요.

한 번 믿어보세요.

침에 투자 좀 했다. 전에 어렵게 구한 마함철(馬㗸鐵) 특수침이었다. 원래 침은 말 재갈로 썼던 쇠로 만든 게 최고였다. 그러다 현대에 이르러 특수합금 스테인리스 침으로 바뀌었다. 이제 마함철은 구하기도 쉽지 않은 침이었다. 이 침은 관리도 쉽지 않다. 적어도 삼사일은 투자를 해야 한다. 쇠붙이의 독을 없애는 과정과 환자의 통증을 줄이는 과정 등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 침은 인체친화적이다. 단점이라면 자칫 부러질 수도 있다는 것 뿐이었다.

오늘 일을 상기하며 정진했다. 근무지가 섬으로 확정되었을 때 윤도는 생각했었다. 섬에서 썩는 동안 한의학 기초를 튼튼히 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그 각오로 구입했던 마함철 옛날 침. 조각자 달인 물에 씻는 과정까지 해둔 것이니 배추씨 기름을 정성껏 발랐다. 침 맞는 사람이 자신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오전 진료를 마치고 부두로 나갔다. 하루 두 번 들어오는 여객선 구경이었다. 창승은 첫 배에 오지 않았다. 대신 별장 차가 나왔다. 이번에는 까만 벤츠였다.

“육지에서 손님이 오는구만.”

선착장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윤도의 눈은 멀어지는 벤츠를 따라갔다. 별장의 아가씨가 또 한 번 궁금해졌다. 그녀는 대체 무슨 병일까? 그녀는 미녀일까 추녀일까?

딩바라랑.

그 순간 윤도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참숯 한의원 황녹수 원장이었다.

“원장님!”

황 원장은 지척에 있었다. 배에서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윤도가 배에서 내리는 황 원장을 맞았다.

“웬일이세요?”

“웬일은? 채 선생 보러온 거라니까.”

“저를 왜?”

“잠깐보세. 미안하지만 저 배 타고 다시 나가야하거든.”

황 원장이 윤도를 끌었다. 갈매도는 여객선의 종착지. 다시 나갈 때까지 보통 20-30분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채 선생 덕에 살았네. 그래서 찾아왔어.”

“저 때문에 살다뇨?”

“우담남성 말일세. 생각 안 나나?”

“......”

그제야 귀한 약재가 스쳐갔다. 장날 한의원에서 보았던 9년 법제 우담남성...

“그때 솔직히 채 선생 말 안 믿었네. 우리 한약사 말도 기막힌 대물이라고 했었고...”

“그런 데요?”

“그런데 그게... 채 선생 말이 맞았어.”

“......?”

“거래처 약재상이 그걸 다섯 한의원에 넘겼다는데 먼저 약을 만든 세 군데서 모두 큰 탈이 나지 않았나? 단골 손님들이 그거 먹고 죄다 병원행이 되었다네.”

“......”

“경찰 수사결과를 보니 법제기간 동안 해직된 직원 하나가 앙심을 품고 쓸개즙 가루에 엉뚱한 걸 몰래 넣은 모양이야. 그게 상승작용을 일으켜서... 어휴, 채 선생 말 듣고 찜찜해서 한 이틀 넘겼길래 다행이지 바로 조제에 썼으면 나도 검찰 수갑 받을 뻔 했네. 그 약이 검찰청 부장검사가 중요 범인 쫓기 위해 몸보신으로 예약한 거거든.”

황 원장이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설명을 하면서도 식은땀 닦느라 바빴다.

“그래서 말인데...”

황 원장이 약 종이를 펼쳤다. 그 안에서 다른 우담남성이 나왔다.

“하도 놀라서 쳐다보고 싶지도 않네만 이미 예약을 받은 터라...”

“......”

“좀 부탁하네. 이쪽 한의원은 법제 약재에 밝은 사람이 드물어서...”

지난번에는 윤도 말을 믿지 않던 황 원장. 하지만 직접 경험을 하고 보니 신뢰가 가는 모양이었다. 우담남성을 받아든 윤도가 약재를 바라보았다.

[원산] 국산

[약재수령] 5년

[약성함유등급] 中中품

[중금속함유] 무

[곰팡이독소] 무

[약재사용유무] 가능

[용법용량] 기존용법 참조

[약효기대치] 中下

“어떤가? 7년 법제라고 해서 구입했네. 9년 만은 못하겠지만...”

“5년 법제 같습니다.”

“5년? 그럼 박 사장 그 인간이...”

“약재로 쓰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나쁘지 않네요.”

中中품으로 나온 약성. 현재의 기준이라면 5년 법제라도 上품에 속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의구심을 갖지 않았다. 윤도의 약재분석 기준은 산해경 속 약재 기준이라는 걸 아는 까닭이었다.

“문제가 없단 말이지?”

“그걸 물으시려고 여기까지?”

“그럼 어쩌겠나? 우리 한약사가 성실하기는 해도 채 선생처럼 약재 속을 꿰뚫어보는 투시력은 없는 것을.”

“별 말씀을...”

“내친 김에 이것도 좀 봐주시겠나?”

원장이 또 다른 약재를 펼쳐놓았다. 모두 귀한 약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중 두 가지는 하품이었다. 허우대만 멀쩡한 것들. 말하자면 식약청 기준인 GMP 인증에 맞추기에 급급한 대량생산품이었다. 그 둘의 대체를 권하고 천마를 건네주었다.

“천마?”

“제가 캤는데 약성이 기막힙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하셨으니 필요한데 쓰십시오.”

“허어, 귀물이군. 척 봐도 지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황 원장은 연실 고개를 끄덕였다.

“배 나갑니다.”

윤도가 배를 가리켰다.

“저기 이거...”

황 원장이 봉투 하나를 가운주머니에 쑤셔 넣어 주었다.

“이러시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내 성의일세. 채 선생 아니었으면 나 구속이라니까. 인터넷 뒤져보시게. 사람 잡는 가짜 명품 우담남성이라고 있을 거야. 내 솔직히 1억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네. 그럼 나는 배 때문에... 쉬는 날 뭍에 오시게. 내가 소주 한 잔 거하게 쏠 테니.”

“원장님!”

봉투를 돌려주려고 손을 뻗었지만 원장은 저만치 멀어진 후였다.

뿌우우!

배가 고동을 울리며 멀어졌다. 원장은 갑판 쪽에서 오래오래 손을 흔들어주었다. 봉투 속에 든 돈은 100만원이었다.

***

오후 배 편에 창승이 들어왔다. 그는 뻘쭘한 얼굴로 지소 문을 열었다. 윤도가 고양이 등에서 장침을 뽑을 때였다. 등이 구부정 굽은 고양이였다. 침이 통하는 지 보려는 생각이었다. 고양이는 시원한 울음을 울며 멀어졌다. 고양이에게도 통하는 침술이었다.

“지소장님.”

세희가 창승을 보고 소리쳤다.

“미안. 오늘은 내 진료일인데 개고생하네?”

창승이 윤도를 향해 머쓱하게 웃었다.

“퇴원한 겁니까? 몸은요?”

“보다시피.”

창승이 배를 두드려보였다.

“다행이네요.”

“저녁에 시간 되지?”

“왜요?”

“뭐 그냥... 간단히 술이나 한 잔 하자고.”

“그러죠.”

대략 답하자 창승은 문을 닫고 나갔다.

퇴근 시간이 되자 창승이 다시 돌아왔다. 그는 뒤뜰에 주섬주섬 불판을 피웠다. 윤도를 부려먹던 전과는 조금 달랐다. 지소 문을 닫은 후에 정규 멤버들이 모였다. 윤도와 세희, 그리고 창승이었다.

치직!

불판에 한우 살치살이 올라갔다. 육지에서 사온 모양이었다.

뽕!

맑은 소리와 함께 양주도 한 병 깠다. 그 또한 육지에서 가져온 창승이었다.

“받아.”

창승이 윤도에게 양주를 권했다.

“마셔도 됩니까?”

“근무도 끝났는데 안 될 건 뭐야?”

“나 말고 지소장님요.”

“이깐 충수염에...”

호기를 부리다 말꼬리가 내려가는 창승. 앞에 앉은 두 사람 때문이었다. 죽겠다고 난리를 치던 그날 밤의 증인들이었다.

“아무튼 침술은 인정. 중국 명의순례에서 제대로 눈을 떴나봐?”

“아무래도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침술보다는 이론 쪽이라...”

“아무튼 고마워.”

“공보의로써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우리 소장님도 고생 많았죠?”

창승의 치사가 세희에게 건너갔다.

“아뇨. 요즘 지소 인기가 팍 올라가서 일할 맛이 난다니까요.”

“지소 인기요?”

“채 선생님 말이에요. 지소장님 입원한 동안에도 신침이 빛을 발했다니까요. 육지에서 원정진료까지 다녀갔어요.”

“......”

“아까는 그 무뚝뚝하다는 차명균 선장님의 카리스마도 깨갱... 아무튼 갈매도는 채 선생님이 싹 접수해버렸어요.”

“......”

양주 몇 잔에 기분이 헐렁해진 세희가 폭주를 했다. 윤도가 슬쩍 옆구리를 찔렀다. 그제야 오버를 자각한 세희가 급 수습에 나섰다.

“이게 다 지소장님 덕분이지 뭐예요.”

“큼큼, 내가요?”

창승이 뻘쭘하게 고개를 들었다.

“중국 명의순례 말이에요. 지소장님이 반대했으면 못 갔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 지소장님 덕이죠. 퇴원 기념으로 한 잔 하세요.”

세희가 양주병을 들었다. 창승은 받지 않았다.

“아직 무리하면 안 될 거 같아서요. 다음에 찐하게 마시죠.”

“저기... 지소장님.”

일어서는 창승을 윤도가 잡았다.

“왜?”

“이런 말씀드리기 좀 그렇지만...”

“뭐 내가 듣기 곤란한 말 있어?”

“꼭 그렇다기 보다...”

“나 밴댕이 아니야. 뭐든지 괜찮으니까 말해봐.”

“어머니 말입니다.”

“누구 어머니? 채 선생 어머니? 우리 어머니?”

“지소장님 어머니요.”

윤도가 또렷이 말했다.

“우리 어머니가 왜? 병원에서 채 선생에게 실수라도 했어?”

“그게 아니고... 진단 한 번 받아봤으면 해서 드리는 말입니다.”

“진단? 우리 어머니?”

“병원에서 손을 잡을 때 우연찮게 맥을 느꼈는데... 목에 병소가 있는 거 같았습니다. 그쪽 맥이 생기가 없었거든요.”

“채 선생!”

창승의 목소리에 서늘한 날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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