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20/265)

별장의 괴물-2

“따라오세요.”

사모님이 앞장을 섰다. 거실 끝으로 간 그녀가 벽 앞에 멈췄다. 2층으로 가는 계단이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별장에는 계단이 없었다. 2층으로 가는 수단은 엘리베이터였다.

“딸이 워낙 종잡을 수 없어서 계단을 없앴어요. 그런데도 가끔 저렇게 귀신처럼 간호사나 가정부를 따돌리고 내려올 때가 있어요.”

엘리베이터 앞에서 사모님이 비밀번호를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이해가 갔다.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정신질환자. 제대로 보호하려면 이 방법이 효과적이었다.

땡!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

윤도가 걸음을 멈췄다. 2층은 전체가 병동이었다. 시설도 좋았다. 종합병원의 특실을 카피해온 것 같았다. 환자 방 옆에는 간호사 방이 나란히 붙었다. 24시간 간호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치익!

멸균 커튼도 있었다. 피부 전염에 대한 방비책으로 보였다.

“피부염 전염은 주로 진물에 의한다고 해요. 참고하시고요 소독제와 수술장갑은 싱크대 쪽에 넉넉히 준비되어 있어요.”

안으로 들어서자 사모님이 주의를 주었다.

진물로 인한 전염.

그렇다면 비말감염보다 백 배는 땡큐였다. 손에 상처가 없으니 소독만 잘 하면 큰 문제가 없을 수 있었다. 그래도 조심은 필수. 이미 접촉을 했으니 손 소독부터 하고 다가섰다. 수술장갑은 끼지 않았다. 옛날 명의들은 실을 묶고도 맥을 짚었다지만 윤도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창의 유리는 특수방탄이었다. 주변은 말끔했다. 혹시라도 자해의 도구가 될만한 건 보이지 않았다.

환자는 잠이 들었다. 가정부가 간호사 역할을 한 모양이었다. 가까이 다가섰다. 그러고 보니 진맥 옆자리도 피부병이 흉하게 번져있다. 사모님이 고개를 저었지만 윤도는 주저하지 않았다.

맥은 아까와 달랐다. 약이 들어간 까닭이었다. 진맥은 놔두고 얼굴을 보았다. 가까이 보니 더 흉측해 보였다. 그러다 침대 뒤에 붙은 사진에 시선이 닿았다. 윤도의 시선이 멈췄다.

그녀...

라인은 굉장히 미인형이었다. 늘씬한 몸매에 갸름한 얼굴형. 병만 낫는다면 굉장한 반전이 있을 것 같았다. 새 폴리글러브에 피부병 병소 두어 조각을 샘플로 넣었다. 그런 다음 차분하게 손 소독을 했다. 정식 진맥의 마무리였다.

“내일 저녁에 뵙겠습니다.”

1층으로 내려온 윤도가 말했다.

“우리 차를 타고 가세요.”

사모님이 차를 가리켰다. 박 기사가 벌써 시동을 걸어두고 있었다.

**

‘적유...’

사택에 돌아온 윤도는 냉장실에서 적유를 꺼냈다. 약탕기에 넣기 전에 한 번 더 확인을 했다. 산해경에 적힌 약효와 분석기 가동...

<피부병 특효>

확인이 끝나고서야 적유를 약탕기에 넣었다. 33시간을 맞추려면 서둘러야했다. 약탕기가 보글거리자 불을 조절했다. 샘플은 작은 플라스크에 넣고 밀봉을 했다.

지소로 갔다. 오늘은 창승이 내과진료를 보는 날. 하지만 윤도를 기다리는 할머니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죄송해요. 선생님은 내일 진료보는 날이라고 말씀드려도...”

접수대의 세희가 울상을 지었다.

“아닙니다. 몇 분 안 되니까 봐드릴 게요.”

“그럼 버릇 될 텐데...”

“진료일 정한 건 우리잖아요? 원래는 날마다 진료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건 맞지만...”

세희가 창승의 진료실 쪽을 바라보았다. 갈매도 보건지소의 지소장은 엄연히 이창승. 요일별 진료도 그가 정한 규칙이었다. 그러니 세희가 원한다고 마음대로 뒤집을 수 없었다.

그 사이에 할머니들이 논쟁을 벌였다.

“한의사가 최고여.”

“뭔 쉰소리? 한의사는 쭉정이여. 그깐 침으로 체한 거나 내리지 암을 고쳐 가심병을 고쳐? 큰 병은 손도 못대지.”

“이 할망구가 뭘 모르네? 한의사가 왜 못 고쳐? 우리 친정 오빠 간암도 고치고 폐병도 고쳤는데?”

“모르긴 누가 몰라? 이 할망구야, 서울에 가봐. 으리번쩍한 게 다 병원이야. 거그서는 로보또가 수술을 하고 사진 한 장 박고 피 한 방울 뽑으면 몸땡이 어디에 병이 있는지 다 나와. 한의사가 뭔 수로 그걸 해?”

“아이고, 그깐 병원이 뭔 대수? 우리 사촌 오빠는 허리가 아팠는데 디스큰지 뭔지를 수술로 싹뚝 잘라서 아예 빙신을 만들었구만. 갸덜이 하는 게 어디 좀 아프면 짤라내고 떼어내는 게 일 아닌감?”

“그러는 한의사들은 뭘 하는데? 우리 친정 동상은 대침을 일 년 열두 달 달고 살아도 허리병 하나 못 고치두만.”

“여그 젊은 선상을 달라. 침 솜씨가 허임이 울고 갈 침귀신이거든.”

“하이고, 그깐 침이 진통제만 할까?”

할머니들의 언쟁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르신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보다 못한 세희가 중재에 나섰다. 할머니들은 패를 갈라 따로따로 자리에 앉았다.

“은 선생님.”

안에 있던 창승이 세희를 불렀다.

“네.”

“채 선생이 원하면 환자 받으세요.”

창승의 허락이 떨어졌다.

“네에!”

세희가 꾀꼬리 소리로 대답했다. 오늘 와라, 내일 와라. 할머니들을 상대로 요일별 진료를 설명하는 것도 그녀에게는 귀찮은 일이었다.

“채 선생. 나 잠깐만.”

창승이 윤도를 불렀다.

“죄송합니다.”

내과 진료실에 들어선 윤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뭐가?”

“아까 별장에서...”

“실은 그것 때문에 불렀어.”

“......”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볼 때는 분명 호흡이 멈췄었는데?”

“......”

“그렇잖아도 굉장한 집이라기에 두 번 세 번 확인했었거든?”

“제가 진맥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장난해? 채 선생은 죽지 않았다고 했잖아?”

“제가 제 정신이 아니었었죠. 만약 제 정신이었다면 저도 지소장님하고 똑 같이 진단했을 겁니다.”

“난해하군.”

“지소장님 덕분입니다.”

“채 선생.”

“만약 저 혼자 갔으면 놀라고 당황해서 사망진단을 내렸을 겁니다. 그래도 두 분이 뒤에 버티고 계시니 그 빽을 믿고...”

“눈물나네.”

“어쨌든 사람을 살렸잖습니까?”

“비밀 있지?”

“네?”

“중국 말이야. 채 선생은 중국 가기 전과 갔다 온 후가 180도 달라.”

“아시다시피 죽을 고비를 넘겼지 않습니까? 제 한 몸 거기서 죽었다 생각하고 하루하루 삶을 소중하게 누리고 있을 뿐입니다. 일종의 임사체험 각성이랄까요?”

“우리 어머니 병원에 보냈어.”

“예?”

“솔직히 자존심 상했지만 그동안 채 선생의 신들린 치료를 생각하니 혹시나 해서... 조금 전에 연락이 왔는데 후두암 초기시라네. 일찍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

“솔직히 어이가 없어. 진맥만으로 암 진단이라니?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이야?”

“암 진단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다만 이상이 있을 거라고...”

“고마워. 그 말 밖에는 할 말이 없군.”

“......”

“별장 사모님, 뭐래?”

“거기서 따님을 봤습니다.”

“딸?”

창승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소문이 다 맞더군요. 정신병도 있고 악성 피부염 때문에 얼굴도 엉망이고...”

“미녀가 아니고?”

“지금 현재는요.”

“그래서?”

“제가 잠깐 도와보기로 했습니다.”

“정신병과 악성 피부염을?”

“하는 데까지...”

“......”

“......”

“알았어. 가봐.”

창승이 복도를 가리켰다. 그의 눈빛은 SSS급이라고 자처하던 그때의 그것이 아니었다. 한 풀로도 모자라 두 풀 쯤 꺾여버린 것이다. 조금 남은 프라이드도 이날 마저 꺾여버렸다. 할머니들 극성 때문이었다. 언쟁이 붙은 할머니들이 내기를 한 것이다.

무릎이 아픈 두 할머니, 한의사가 잘 하냐 의사가 잘 하냐를 실험했다. 결과는 윤도의 승이었다. 침을 못 믿어 창승에게만 치료 받던 할머니. 내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윤도에게 침을 맞았지만...

그 결과는 대박 만족이었다. 시큰거리던 무릎과 침침하던 눈이 일침즉쾌의 효과를 본 것이다. 창승이 서너 달이나 치료했지만 그때마다 진통이나 달래주던 병이었다.

“다르긴 다르네.”

할머니는 삶은 시금치처럼 늘어져 돌아갔고 윤도의 가치는 그만큼 더 높아졌다.

“인자 알았냐? 이 쭈구렁탱이 할망구야!”

한의사 예찬자였던 할머니는, 비실비실 돌아가는 상대방 할머니 등에 대고 틀니가 빠져라 큰 소리로 외쳤다.

“한의가 최고여.”

“장침이 최고여.”

“채 선상이 최고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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