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에 도전하다-2
인중혈과 간사혈에 침을 넣었다. 일단 간을 보는 윤도였다.
“키에에!”
발악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잠이 든 건 아니었다. 아문혈을 두어 개 잡아 장침을 밀어 넣었다. 그 상태로 혈자리의 반응을 살폈다. 미세한 변화가 있지만 조화까지는 아니었다.
‘이 혈자리를 취하면 효과를 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혈자리의 반응으로 상황을 알았다. 침을 둔 채 다음 혈자리를 찾았다. 이번에는 십삼귀혈의 하나인 신문혈과, 풍부혈, 그리고 백회혈이었다. 풍부혈은 모든 전광병에 유효하다. 말은 침에서 확인이 되었다. 좁쌀 크기의 혈자리 중심에 침이 들어가자 환자의 요동이 멈춘 것이다.
“......!”
숨을 죽이던 사모님과 가정부의 눈빛이 변하는 게 보였다. 신경 끄고 신문혈에 시침을 했다. 백회혈에 침을 넣을 때는 손가락에서 뜨끈한 김이 올랐다. 뜸자리라고 판단한 건지 화침(火鍼)으로 대응하는 손가락이었다. 침을 매번 환자의 날숨이 나올 때 들어갔다.
환자가 다소 숨을 죽이므로 혈자리 조절에 들어갔다. 좌우로 돌리고 미세하게 뽑아 정신병을 주관하는 혈자리 주위를 달랬다. 멋대로 들쭉날쭉이던 혈자리들이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후유.’
겨우 숨을 돌리며 마무리에 돌입했다. 사모님과 가정부도 숨을 죽였다.
딸깍!
어느 순간이었다. 마치 소리가 나는 듯 혈자리가 맞았다. 들떳던 혈자리가 모두 제자리다. 길이 정리된 느낌이었다.
‘된 건가?’
가만히 시선을 돌리다 부용과 눈이 맞았다. 아차 싶었다. 병을 잡은 게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얌전하던 부용의 몸이 폭발하듯 뒤틀렸다.
“키에엣, 페에엣!”
“가슴을 눌러요.”
윤도가 소리쳤다. 다행히 가정부가 민첩하게 움직였다. 몇 번 더 들썩이던 부용이 힘에 눌리며 발악을 멈췄다. 마취침 부위를 살폈다. 발악 때문인지 침이 밀려나와 있었다. 그걸 제 자리에 넣었다.
‘후우.’
두 번째 혈자리도 실패였다. 잘 나가다가 어느 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마지막 하나가 남았다. 하지만 그건 여자에게 쓰기 난해한 혈자리였다. 더구나 사모님이 지켜보는 상황이 아닌가? 그렇다고 나가달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어차피 왕진을 온 셈인데 침 놓는 것 정도야 부모가 보는 게 뭐 어떻단 말인가?
‘별 수 없지.’
기왕에 시작한 시침이었다. 가능성까지 확인하고서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사모님.”
윤도가 사모님을 바라보았다.
“네.”
“생각보다 따님 정신질환의 뿌리가 깊습니다.”
“예...”
“다른 혈자리를 찾아야할 거 같아서요.”
“치료만 된다면 알아서 하세요.”
“그게... 그 혈자리가 좀 난해합니다. 그러니 어떤 혈자리를 잡더라도 놀라거나 방해하시면 안 됩니다.”
“알았어요.”
허락이 떨어지자 윤도는 일곱 개의 장침을 뽑아들었다.
‘정신병...’
부용의 머리를 쏘아보며 마음을 비우는 윤도. 시침은 무엇도 의식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었다. 윤도의 손가락이 신들린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걸 보던 사모님은 차마 눈을 감아버렸다.
여섯 장침은 일침이혈부터 일침사혈까지 다양하게 들어갔다. 정수리에서 귀 가까이 내려간 침은 무려 네 개의 혈자리를 다스리고 있었다.
부용은 아직 얌전했다. 하지만 끝이 올라간 눈썹과 눈동자의 광기는 아직 여전했다. 머리의 혈자리를 잡은 윤도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민망하게도 부용의 음부 쪽이었다.
“아주머니.”
윤도가 가정부를 불렀다.
“예?”
“하체를 벗겨주세요.”
“예?”
“바지를 벗겨달라고요.”
“바지를요?”
“속옷까지 전부요.”
“속옷까지요?”
“선생님?”
듣고 있던 사모님이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바지야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속옷까지 벗어야한다니?
***
“선생님, 무슨 말씀인지?”
사모님이 다시 물었다.
“장강혈 때문입니다.”
“장강혈이요?”
“정신질환에 쓰는 혈자리인데 항문 근처에 있습니다. 부득 침을 놓아야합니다.”
“하지만...”
“꼭 필요합니다.”
“그래도 그렇지...”
“한 번 믿어보십시오.”
윤도는 단호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가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침묵하던 사모님이 겨우 고개로 신호를 보냈다. 그제야 가정부가 다리의 결박을 풀고 부용의 하의를 벗겼다.
장강혈자리.
이는 십이경맥과 기경팔맥에 속한다. 하필이면 항문과 그 위에 쏙 들어간 미골단 사이에 존재한다. 여자 환자이기에 빼놓고 가면 좋으려만 손가락이 원하고 있었다.
더구나 장침이었다. 하의가 들어나자 윤도가 자세를 잡았다. 다리를 들고 엉덩이에 베개를 넣었다. 본래는 엎드린 자세로 침을 맞아야할 곳. 하지만 환자가 누운 채 묶여있다 보니 돌릴 수가 없었다.
부용의 하체...
그건 광기 넘치는 머리와 달랐다. 그저 여자였다. 허벅지 사이로 펼쳐진 음모의 숲은 보지 않았다. 윤도의 장침이 들어갔다. 다행히 요동은 없었다. 말단 혈자리에서 머리의 백회혈자리를 조절했다. 침이 꽂힌 채 반의 반의 반 바퀴가 돌았다. 순간, 부용의 몸이 꿀럭 강직을 했다.
놀란 사모님의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윤도는 놀라지 않았다. 몸은 강직하지만 눈동자의 광기가 풀린 것이다. 그 짐작은 맞았다. 근육마다 팽팽하게 맺혀있던 강직이 서서히 풀렸다.
“이제 된 거 같습니다.”
윤도가 비로소 숨을 돌렸다.
“......!”
사모님 표정도 밝아졌다. 부용의 눈을 본 것이다. 마주 보기도 무섭던 눈이었다. 지금은 달랐다. 그녀의 눈은 모성을 자극하는 가련함까지 엿보였다.
“부용아...”
사모님이 딸의 손을 잡았다. 가정부는 옆으로 돌아서 콧등을 쓸어내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윤도가 침을 뽑기 시작했다. 일곱 개의 장침이 남김없이 나왔다. 그 마지막 장침을 항문에서 뽑아내고 마취침도 거두었다. 침이 빠지자 부용이 스르륵 눈을 감았다.
“선생님.”
가정부가 윤도를 바라보았다.
“그냥 두세요. 아직 할 일이 있습니다.”
윤도가 꺼낸 건 적유탕이었다. 피부병도 혈자리가 있지만 침을 뽑지 않았다. 침으로 정신질환을 잠재웠으니 이제는 산해경의 약재를 믿을 차례였다.
신침을 놓는 손가락...
약재를 보는 눈...
책 속 약재를 꺼내게 하는 신비경...
모두가 윤도의 능력이라면 고루 사용하고 싶었다.
톡톡!
탕은 생명수처럼 부용의 입술을 적셨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두 먹였다. 사실, 약탕의 냄새는 그리 향기롭지 못했다. 하지만 약이었다. 향기로운 커피나 초콜릿 맛이 날리 없었다.
마지막 방울을 떨군 윤도 입에서 깊고 깊은 한숨이 나왔다. 안도의 숨이었다. 지친 윤도가 엘리베이터로 걸었다.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1층 거실로 내려온 윤도는 체면불구하고 소파에 무너졌다. 거실이 하얗게 보였다. 천정이 도는 것도 같았다.
“드세요.”
가정부가 따라와 생수를 건네주었다. 그걸 다 마시고도 모라자 두 컵을 더 마셨다. 그렇게 숨을 돌릴 때 2층에서 사모님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까악!”
“사모님 소리예요.”
가정부가 소스라쳤다. 윤도와 가정부가 엘리베이터로 뛰었다. 2층에 도착하자 사모님은 부들부들 떨고 있았다.
‘뭐가 잘못된 걸까?’
윤도 얼굴도 구겨졌다. 그동안 잘 나갔지만 이 환자는 사안이 중대했다. 서울의 내놓으라하는 대학병원도 포기한 환자였다. 게다가 산해경의 적유. 첫 사용이었으니 부작용도 걱정이었다. 그 또한 비명의 이유가 될 수 있었다.
“사모님.”
윤도가 사모님 곁으로 다가섰다. 사모님은 부들거리며 부용을 가리켰다. 윤도의 시선이 환자에게 향했다. 그 시선을 따라 사모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부용이가 말을 했어요.”
“......”
“엄마라고... 엄마라고...”
사모님은 목이 메어 뒷말을 잇지 못했다. 정신질환 탓에 엄마를 쌍년이라고 부르던 딸. 그 입에서 듣고 싶던 한 단어가 나온 것이다. 그리고... 질환을 잡아준 윤도에게 확인이라도 시키려는 듯, 부용의 입은 한 번 더 그 말을 반복했다.
“엄마...”
진달래꽃잎처럼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눈빛도 부드러웠다. 윤도가 다가가 맥을 잡았다. 마취침을 놓지 않아도 얌전했다.
맥은...
조금씩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아직은 다소 거칠지만 불협화음은 사라진 상황. 부용의 정신병을 잡은 것이다. 사모님을 돌아본 윤도가 끄덕 긍정의 신호를 보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사모님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