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로 온 두 거물-1
토요일 오전, 창승은 배 편으로 육지로 나갔다. 윤도는 지소에 있었다. 토요일은 지소 문을 닫는 날이다. 요일 개념이 없는 할머니 둘이 내소를 한 것이다.
한 할머니는 섬의 끝자락에 사는 분이었다. 소문을 듣고 새벽부터 걸어왔단다. 지팡이 짚은 할머니 걸음으로는 2시간 가령 걸렸을 일이었다. 별 수 없이 침을 꺼냈다.
첫 할머니는 고혈압이었다. 약을 먹는데도 어제, 오늘 뒷머리가 뻣뻣하다고 했다. 과연 경혈이 부풀어 보였다. 손으로 짚어보니 돌덩이처럼 단단하기까지 하다.
삼릉침을 넣었다. 그런 다음 소독솜을 대니 피가 쭉쭉 쏟아져 나왔다. 삼릉침은 아홉 가지 침의 하나다. 침날이 세모형태를 이룬다. 여러 가지 질환에서 피를 뽑을 때 사용한다.
“어휴, 시원해라.”
할머니는 신음은커녕 신바람을 냈다. 묵직하던 압이 내리자 기분이 시원해진 것이다. 백회혈과 중완혈에 장침을 넣어 고혈압까지 내려주었다. 할머니는 가뜬하게 돌아갔다. 두 번째 할머니의 병은 좀 달랐다.
“고기만 먹으면 체해.”
할머니가 울상을 지었다. 가지런히 눕힌 후에 중완혈을 잡았다. 신궐과 천추혈에도 침을 넣었다. 마지막은 무릎 부근의 음릉천이었다. 할머니가 끄윽 트림을 했다.
“고기만 먹으면 체한다고요?”
윤도가 물었다.
“응.”
“혹시 집 근처에 산사나무가 있나요?”
“산사? 있지.”
“그걸 끓여서 드세요. 몇 번 드시면 앞으로도 괜찮을 거예요.”
“내 병이 산사를 먹으면 낫는다고?”
“해보시고 안 되면 또 오세요.”
“그건 그렇고...”
할머니가 옷을 주섬이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왕진은 안 가나?”
“누가 아파요?”
“내 동상.”
“동생 분이 왜요?”
“맛이 갔어.”
“......!”
“한 바퀴 반이 돌았다니까. 아무래도 그 년이 노망이 난 거 같아.”
노망이라면 치매다.
“심해요?”
“얼마 됐어. 혼자 헛소리하다 제 정신으로 돌아오고... 영감이 죽으니 그 귀신이 붙은 거라며 병원은 안 가고 무당 불러 푸닥거리만 해.”
“할머니 집에 전화 있어요?”
“있지.”
“적어두고 가세요. 제가 한 번 다녀갈 게요.”
“알았어. 꼭 와야 해.”
할머니는 윤도의 손을 꼭 잡고서야 진료실을 나갔다. 하지만 멀리 가지 않았다.
“꼭 와야 해.”
이번에는 지소 앞에서, 그리고도 저만치 멀어지면서 한 번 더 강조하는 할머니였다.
꼭 와야 해.
할머니 당부가 메아리로 남았다.
오후 4시경.
적유탕이 완성되었다. 그걸 들고 별장으로 걸었다. 저녁 때가 되면 또 배편에 벤츠가 들어올지도 모를 일. 산책 삼아 가서 치료하고 올 생각이었다. 그때 바다에서 헬기 소리가 들려왔다.
투타타타다!
‘누가 또 사고가 났나?’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가끔은 해상 사고도 난다. 배끼리 충돌하거나 배에서 불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 다행히 바다는 고요했다. 지소에서 부른 것도 아니다.
헬기가 가까워졌다.
그제야 헬기의 정체를 알았다. 헬기에 쓰인 로고 TS 때문이었다. 태산전자의 전용헬기였다.
헬기는 별장의 착륙장에 내렸다. 낯익은 얼굴이 먼저 보였다. 사망소동을 벌였던 그 남자 이진웅이었다. 그 뒤로 중후한 장년 남자가 내렸다. 그가 바로 재계의 신화로 불리는 이태범 회장이었다.
“회장님!”
이태범을 맞이하던 기사가 윤도를 발견했다. 회장의 시선이 윤도에게 건너왔다.
“아빠!”
부용이 이 회장에게 달려들었다. 이 회장은 격정적으로 딸을 안았다.
“네가...”
이 회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뒷말을 이었다.
“돌아왔구나.”
“아빠...”
“고맙다. 다시 건강해져서.”
“그 말씀은 저 분에게 하셔야 해요.”
부용이 가까워진 윤도를 가리켰다. 윤도는 이 회장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이 회장이 다가왔다. 그런 다음 덥석 윤도 손을 잡았다.
“고맙소.”
이 회장이 말했다. 뜨거운 무엇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부용아!”
윤도와 이 회장의 뒤에서 이진웅이 동생을 불렀다.
“응?”
“너 나 한테도 한 번 안겨야 하는 거 아니냐? 내가 니 걱정 얼마나 했는데?”
“그러는 오빠는? 죽은 목숨을 채 선생님이 구해줬다며? 그럼 나한테 안겨야 하는 거 아니야? 최소한 나는 죽지는 않았었거든.”
“어디 좀 보자. 얼굴도 굉장히 좋아졌어.”
“어허, 어딜 숙녀 얼굴을...”
부용이 진웅의 손을 살짝 밀쳐냈다.
“아버지, 얘 진짜 살았네요. 말하는 것 좀 보세요.”
이진웅이 엄살을 떨었다. 그런 다음 그 역시 윤도를 향해 걸어왔다. 그는 허리를 딱 반으로 접어 윤도에게 정중한 인사를 바쳤다.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고개를 드는 이진웅의 얼굴에 병색은 거의 없었다.
“아, 채 선생이라고 하셨나?”
이 회장이 윤도를 향해 말했다.
“예...”
“혹시 이 분 아시나?”
이 회장이 옆에 선 사람을 바라보았다. 헬기에서 마지막으로 내린 사람이었다.
“장백교 선생님?”
윤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장백교.>
약탕 분야의 전설로 불리며 대한민국 한의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명의였다. 지금은 강의 같은 건 하지 않지만 윤도가 대학에 입학하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한의대에서 의술을 설파하곤 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의 저서를 읽었습니다.”
윤도가 인사를 했다.
“자네가 이 회장의 양 날개를 다 살렸다고?”
“......”
“대단하네. 게다가 내 후학인 한의사라니.”
“장 박사님도 우리 부용이 치료에 도움을 많이 주신 분이세요. 미국 치료 후에 엉망이 된 정신을 그나마 간병 가능한 수준까지...”
지켜보던 사모님이 끼어들었다.
“이 회장님 전화 받고 궁금해서 따라왔다네. 그런 신침을 놓는 한의사가 누군지 궁금해서 말이야. 그런데 이런 약관이라니... 맙소사, 문 닫혀가던 우리 한의학에 벼락 같은 축복이 내려온 게 아닌가?”
“과찬이십니다.”
“아무튼 들어가세. 정말 대단하이.”
장 박사가 윤도 등을 밀었다. 한의학의 거물인 장백교 박사. 그런 사람을 이런 데서 만나다니. 윤도는 설레는 맥박을 달래며 2층으로 올라갔다. 장 박사와 이 회장까지 따라 올라왔다.
“우리 의식하지 말고 치료하시게.”
장 박사가 말했다. 이부용은 벌써 침대에 누운 후였다.
바스락!
적유탕을 꺼내놓는 게 조심스러웠다. 지켜보는 사람은 탕약의 대가이자 현역 한의사 거두로 꼽히는 장백교. 그런데 지금 윤도가 꺼내놓은 건 한의학 족보에 없는 탕약...
그래도 쫄지 않았다. 지상의 모든 것은 약재가 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사람의 ‘쉬’와 ‘응아’, 머리카락과 손발톱도 약으로 쓸 수 있다. 게다가 약재는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었다.
윤도는 부용의 입으로 적유탕을 점적 시켰다. 오직 한 방울씩 떨어뜨렸다. 그 모습은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짐이 없었다.
“탕재인가?”
점적이 끝나자 장 박사가 물었다.
“예.”
“미안하지만 이름을 물어도 되겠나? 나도 공부로 삼으려고 그런다네.”
“이건...”
잠시 주저했지만 부끄러울 것도 없는 일. 윤도가 남은 말을 이어놓았다.
“적유탕입니다.”
“적유탕? 못 듣던 처방인데?”
“제가 따로 고안한 처방입니다.”
“비방(秘方)이로군?”
“예.”
비방!
한 한의사만의 특허 같은 처방이다. 그 뜻을 아는 장백교이기에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잘 만든 비방 하나면 돈과 명예를 거머쥘 수도 있었다. 과거 ‘사물탕’으로 이름을 날린 김사물이 그렇고 보중익기탕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김보익이 그랬다.
“침술도 좀 볼 수 있을까? 치료 이틀 차라면 아직 치료 중 아니신가?”
“박사님이 원하시면 한 번 더 놓아도 될 것 같습니다. 다만...”
곤란한 혈자리를 기억하는 윤도가 말꼬리를 흐렸다.
“걱정말고 진행하시게. 난해한 혈자리에 침이 놓을라치면 알아서 피해줄 테니.”
“예.”
윤도가 침통을 꺼냈다. 맥을 다시 잡았다. 좋았다. 어제보다 펄떡거리는 힘이 좋았다. 혈자리의 흐름도 안정적이다. 이제 부용은 정상의 85% 쯤에 도달한 것 같았다.
일곱 장침을 꺼내놓고 여섯 개를 머리 주위에 밀어넣었다. 이번에도 일침이혈은 물론이오 일침사혈까지 시행했다. 다만 침 자체는 어제보다 조금 낮게 넣었다.
“꿀꺽!”
장 박사의 목으로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능란한 일침사혈에 놀란 눈치였다. 장침은 아무나 시침하기 힘들다. 혹 시침을 한다고 해도 특정 부위에 한한다. 그런데 윤도의 장침은 거리낌이 없었다. 게다가 속도도 놀라웠다. 환자의 통증을 줄이기 위해서는 스피드가 관건이었다. 하지만 그 스피드의 완급을 조절하면서도 환자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는 아쉬운 게 있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지켜보던 장 박사가 조심스럽게 뒷말을 이었다.
“침술이 물결처럼 자연스럽군. 그런데 침 끝에 약을 묻혀 혈자리를 다스리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네만.”
“......!”
한 마디에 윤도 의식이 벌떡 깨었다. 한의학 강의 때 들었던 말이다. 하지만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 기억을 장 박사가 불러다 준 것이다. 역시 관록은 무서웠다.
마지막 장침 하나.
그걸 든 채 가만히 시선을 돌렸다. 이 회장은 넋은 놓은 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장 박사는 윤도의 의도를 알았다. 그는 큼큼 기침을 하더니 이 회장 옆구리를 찔렀다.
“우린 그만 내려가시지요. 화룡점정이 남았는데 여럿이 보면 침빨이 받지 않는 혈자리입니다.”
“그래요?”
이 회장은 두 말없이 장 박사의 말에 따랐다. 장침의 끝이 항문 쪽으로 향했다. 혈자리를 잡은 윤도가 겨우 숨을 골랐다.
땡!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이 회장과 장 박사, 이진웅이 그 앞에 서있었다. 1층으로 내려온 그들은 편히 앉을 생각도 없이 윤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채 선생, 굉장했네.”
장 박사가 주먹을 쥐어보였다. 이 회장은 말없이 윤도의 양 팔뚝을 거머쥐었다. 묵직한 시선에서 아버지로서의 고마움이 뜨겁게 전해왔다.
고맙소.
고맙소.
진솔한 메아리가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