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도에 뜬 톱스타들-2
“배멀미 한 사람?”
꽃을 받아든 부용이 그녀들에게 물었다. 사람은 저마다 제 자리가 있다. 부용의 자리가 딱 거기였다. 스타들 앞에 서자 제대로 무게가 잡히고 있었다.
“저요. 똥물까지 게웠어요.”
두 미녀가 손을 들었다.
“그런 체력으로 나랑 일하겠어? 나가는 배로 돌아갈래?”
“아, 아뇨.”
미녀들은 접힌 허리를 활짝 세웠다. 부용은 보기와 달리 카리스마도 겸비하고 있었다.
“그럼 일단 이 분에게 인사. 꼭지가 살며시 돌아가 안드로메다를 헤매던 나 이부용을 너희들 앞으로 원위치 시켜주신 대한민국 최고 명의셔.”
“안녕하세요?”
부용의 말이 떨어지자 미녀들이 윤도에게 인사합창을 해왔다. 게다가 한 명은, 쪼르르 달려와 윤도 볼에 뽀뽀까지 작렬시켰다. 그녀가 이가인이었다.
“아아, 오버금지. 여긴 조용한 섬 마을이니 튀는 행위는 절대금지야.”
부용이 미녀에게 주의를 주었다.
“네에!”
“인사 끝났으면 두 대에 나눠서 승차한다. 큐.”
사인이 떨어지자 미녀들이 뛰었다. 움직일 때마다 흰 허벅지가, 미니스커트와 얇은 원피스가 들썩이며 남자들의 시선에 뿅망치를 날려댔다.
뿅뿅뿅!
“우어어.”
남자들 입에서 신음이 나왔다.
뿅뿅!
“크허헐.”
섬 중의 섬, 젊은 여자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그냥 젊은 여자도 아닌, 화면에서나 보던 초특급 섹시 몸매들, 그 미녀들이 환상의 볼륨을 출렁이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가슴이 출렁.
엉덩이가 출렁.
천국처럼 시원하게 뻗은 각선미...
퍽!
결국 몇 몇이 코피를 쏟았다. 쓰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아가씨 자리가 없는 데요?”
미녀군단의 탑승이 끝나자 박 기사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앞 벤츠의 진웅도 같은 사인을 보냈다. 차량 두 대는 포화였다. 미녀들조차 포개 앉은 것이다.
“흠메, 나도 저기 포개지고 싶어.”
구경꾼 중의 누군가가 몸서리를 쳤다.
“저 오토바이 좀 태워주시면 안 돼요?”
부용이 윤도를 돌아보았다.
“오토바이요?”
“대신 물품 나르는 거 도와드릴 게요.”
부용은 어느새 약 박스를 집어 들었다. 세단과 차가 떠났다. 대답할 사이도 없이 그렇게 되어 버렸다. 짐도 간단하게 운반이 되었다. 배 편으로 들어온 냉난방기 때문이었다. 그걸 설치하러 온 육지 기사들이 둘. 그들이 지소 짐까지 함께 옮겨준 까닭이었다.
“선생님, 가 봐요.”
세희가 윤도 옆구리를 찔렀다. 빼도 박도 못하고 엮이고 마는 윤도였다.
부릉!
오토바이가 별장을 향해 속도를 올렸다.
“......!”
해변을 달리는 동안 윤도는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부용은 달랐다.
“와아, 와아!”
아이처럼 연실 감탄을 해댔다. 조금 기우뚱거려도, 해송이 멋져도, 들꽃이 소담해도 ‘와’가 절로 나왔다.
“그렇게 좋아요?”
윤도가 첫 질문을 던졌다.
“그럼요. 계속 유체이탈 상태로 안드로메다를 헤맸으면 이 아름다움을 만끽하지 못했을 거 아녀요.”
“......”
“저 환자일 때 모습을 동영상으로 봤어요. 간호사가 찍어둔 거라고 하더라고요.”
“어땠어요?”
“가관이었어요. 특히 엄마에게 날린 욕...”
부용이 얼굴을 붉혔다.
“......”
“선생님도 본 거 아니죠?”
“못 봤습니다.”
봤더라도 침묵해야죠. 환자의 프라이드를 지켜주는 것도 좋은 의사의 기본이거든요. 윤도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선생님.”
“예?”
“고마워요.”
“뭐가요?”
“제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요. 저, 못 다한 꿈 이루며 열심히 살 거예요. 선생님에게 보란 듯이요.”
“그러셔야죠.”
“계속 지켜봐주세요. 혹시라도 다시 아프면 또 고쳐주시고요.”
“네.”
부용이 윤도 등에 밀착되어 왔다. 등을 타고 온 볼륨감과 여자의 향이 윤도의 정신줄을 마구 흔들었다. 그걸 감추기 위해 속도를 더 올렸다.
바아앙!
그제야 별장이 가까웠다. 미녀군단은 죄다 입구에 나와 있었다. 윤도가 멈추자 장난기 섞인 아우성이 터졌다.
“두 사람 너무 잘 어울려요!”
“애인 같아요.”
“죽을래? 이 분은 하늘이 보내주신 한의사 선생님, 나는 선생님의 환자!”
부용이 괜한 목청을 높였다.
“네에, 알아 모시겠습니다.”
미녀들은 장난기 가득한 소리로 합창을 했다.
“저기...”
아들 진웅이 사모님과 함께 윤도 앞으로 다가왔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이거...”
사모님이 작은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손목시계라도 들었음직한 크기였다.
“채 선생님 마음은 잘 알지만 아버님 뜻입니다. 동시에 저희 가족 모두의 정성이기도 하고요.”
진웅이 분위기를 잡고 나왔다.
“선물 같은 건...”
감을 잡은 윤도가 난색을 표했다.
“받아주셔야합니다.”
“이러시지 않아도 됩니다.”
“공보의도 공직이죠? 요즘 김영란법이 어쩌고 하길래 뒤탈 없이 조치를 했습니다. 그러니 염려치 마시고...”
‘뒤탈 없이?’
윤도가 상자를 보았다. 선물 주는 사람은 TS전자 가문이다. 몇 만원짜리 넥타이 핀 같은 게 들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수백 수천만 원짜리 스위스 명품시계라도 되는 걸까? 그때 윤도 주머니의 핸드폰이 울렸다. 서울 사는 동생 윤철이였다.
“형!”
“웬일이냐? 형 바쁜데...”
“바빠도 받아야 돼.”
“왜?”
“차가 한 대 도착했는데 간지작살 럭셔리 만땅이야. 사진 쐈으니까 한 번 봐봐.”
‘차?’
윤도가 이미지를 열었다. 그리고는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맙소사!’
차였다. 그냥 차가 아니고 최고급 외제 스포츠카였다. 흰 빛의 포스와 곡선의 날렵함. 척 봐도 억은 넘을 것 같았다. 게다가 윤도가 꿈꾸던 스포츠카 모델의 하나. 그래서 사택 벽에도 사진을 걸어놓았다. 하지만 그건 그저, 하나의 로망일 뿐이었다. 오매불망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눈 호강을 위해 붙여둔 취미...
윤도가 천천히 상자를 열었다.
“......!”
그 안에 든 건 정말 스포츠카 키였다.
크헛!
눈알이 빠지려는 걸 간신히 막아놓았다.
스포츠카는 이진웅이 결정을 했다. 이 회장 말처럼 ‘가벼운’ 인사였다. 본 편은 부용이 맡기로 했기에 남자들의 로망인 스포츠카를 고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취향을 고려했다. 그 정도의 정보수집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모님.”
윤도가 사모님을 바라보았다.
“받아주셔야 해요. 저희도 성의 정도 표시할 기회는 줘야죠.”
“그렇다고 해도 이건 말도 안 됩니다.”
“그 걸로는 턱도 없어요. 우리 진웅이하고 우리 부용이, 스포츠카하고 비교할 목숨이 아닙니다. 일단 성의 표시로 알고 받아주세요.”
‘억대 스포츠카가 고작 성의표시?’
이제는 윤도의 정신이 안드로메다를 향해 광속으로 날아갔다.
“부탁합니다. 차 명의는 임시로 다른 사람 앞으로 해놓았으니 선생님께 해가 가지는 않을 겁니다.”
사모님이 두 손을 모았다. 거절하면 무릎이라도 꿇을 태세였다.
“아, 이러시면...”
“부탁합니다.”
이제는 진웅도 가세했다. 부용도 빠지지 않았다.
“......!”
진퇴양난.
윤도의 입장이었다. 돈 밝히는 의사라면 옳다쿠나 챙기면 될 일이었다. 일의 사안이 그랬다. 막 내리던 가문을 구한 게 아닌가? 하지만 윤도는 아직 돈 때가 묻지 않은 공보의. 하늘이 내린 의술을 돈으로 팔아도 되나 싶은 갈등이 들었다.
“어차피 찻값도 완불된 상태입니다. 그러니 아무 소리 마시고...”
세 사람의 눈빛은 한결 같이 진솔했다. 입장이 난처해 어쩔 줄 모를 때 정원 쪽에서 여자 비명이 울렸다.
“까아악!”
“무슨 일이지?”
진웅이 부용을 바라보았다. 담장 끝에서 수행 매니저가 쏜살처럼 튀어나왔다.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장현서가 쓰러졌어요.”
“......!”
그 한 마디가 별장의 평화를 흔들었다.
“선생님!”
현서를 본 부용이 윤도를 바라보았다. 윤도가 뛰었다. 정원 잔디 위에 꽃 한 송이가 배를 움켜잡고 쓰러져 있었다. 미녀스타 장현서였다. 최근 끝난 드라마에서 여주인공 역을 맡아 최고의 호평을 받은 연예인. 그녀는 떠오르는 스타의 선두주자였다.
“어떻게 된 거죠?”
윤도가 팔을 걷고 나섰다.
“요리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토하더니 배를 잡고 뒹굴었어요.”
그녀 옆의 이가인이 소리쳤다. 윤도가 서둘러 맥을 짚었다.
“......!”
빠른 맥박, 즉 빈맥이 나왔다. 다시 진맥에 집중해 병소를 추적했다. 미녀들의 눈동자는 윤도에게 집중되었다.
‘급성장경색?’
맥을 따라 헝클어진 혈자리가 감지되었다. 엉망이다. 장을 보니 볼륨감도 커졌다. 장과 위가 통하지 않고 닫힌 상태였다. 급성장경색은 외과에서 종종 보이는 질환이다. 갑작스러운 복통과 대량의 구토를 동반할 수 있다. 맥박도 빨라지고 손발이 싸늘해진다.
원인은 무엇일까? 그걸 알아야했다. 음식물 덩어리일 수도 있고 결석이나 장중첩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
원인을 찾아가던 윤도가 손길을 멈췄다.
‘설마?’
다시 한 번 차분하게 확인에 돌입했다. 환부 쪽 움직임이 느껴졌다.
"혹시 가끔 설사하지 않나요?"
"네, 최근 들어 가끔 해요."
환자가 겨우 대답했다.
윤도는 그 정체를 알 것 같았다. 미녀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원인이었다.
“안으로 옮겨야겠어요. 누가 도와주실래요?”
윤도가 청하자 두 매니저가 팔을 걷고 나섰다.
“헐렁한 옷으로 갈아입혀주세요.”
안으로 들어온 윤도가 말했다. 부용이 나서 옷을 갈아입혔다. 첫 장침은 내관으로 들어갔다. 단숨이었다. 거기서 일단 뒤틀린 혈자리를 잡았다.
침끝을 왼쪽으로 미세하게 감자 환자의 인상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날숨을 따라 남은 침 끝을 밀어넣었다. 한숨을 돌린 윤도의 손이 다리의 족삼리와 상거허로 옮겨갔다. 이간혈에도 한 방을 꽂았다. 환자의 복부에서 긴장이 풀리는 게 보였다.
“괜찮아?”
미녀들이 환자에게 물었다.
“살 것 같아.”
환자의 목소리에 생기가 묻어나왔다.
“우와, 대박!”
일침즉쾌. 미녀들 사이에서 감탄이 새어나왔다. 부용의 시선은 윤도의 시침 모습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신뢰가 탱탱한 눈빛이었다.
“휴우!”
마침내 환자가 정신을 차렸다. 얼굴도 차츰 생기가 돌았다. 윤도는 머리 속에 계산한 시간을 확인한 후에 천천히 침을 뽑았다. 35분이었다. 장침의 기가 온몸을 한 바퀴 도는 시간. 통증 때문인지 보통 사람에 비해서는 몇 분 느린 편이었다.
“선생님...”
환자가 입을 열었다.
“장 경련과 경색이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조금 안정하면 괜찮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아직 다 끝난 건 아닙니다.”
“네?”
“내일 아침에 보건 지소에 좀 오세요. 약을 드리겠습니다.”
“무슨 약이죠?”
“그게...”
윤도가 환자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예?”
환자가 화들짝 놀라 자기 입을 막았다. 그녀로서도 차마 상상 너머의 통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