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검사의 다리 셋을 구하다-1
시장통 약재상에게서 기성품 쌍화탕 재료를 사들었다. 그런 다음 시장 입구 난전에서 칼국수 한 그릇을 시켰다. 바지락에 호박이 올라간 칼국수는 시원했다.
‘후아!’
개운한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때 옆자리의 30대 임산부가 배를 잡고 움츠렸다.
“왜? 애기가 차?”
칼국수 할머니가 물었다.
“그게 아니고... 체했나? 갑자기 식은땀이 나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네요?”
“그러게 좀 천천히 먹지. 애 가지면 뭐든 조심해야 하는 거야.”
“아휴!”
몇 마디 말을 하던 임산부가 기우뚱 기울었다.
“왜 그래? 많이 아파?”
주인 할머니가 질겁을 하고 나왔다.
“제가 좀 봐도 될까요?”
윤도가 다가섰다.
“뭘 좀 아시우?”
할머니가 물었다.
“한의사입니다.”
“아휴, 잘 됐네. 여기 좀 봐줘요. 우리 음식은 이상할 리 없는데...”할머니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
맥을 잡았다. 급체였다. 임산부를 편하게 하고 손을 확보했다. 침을 꺼내 손 등의 합곡혈자리를 찔렀다.
“아휴!”
임산부가 막힌 숨 일부를 밀어냈다.
‘제대로 체했군.’
내관혈자리에도 장침 한 방을 넣었다. 거기서 위장을 조절했다. 제대로 막혔는지 혈자리 반응이 느렸다. 자극을 강하게 넣었다. 그제야 위의 상부에 적체해 있던 음식물이 내려갔다. 윤도가 침을 놓고 임산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끄으윽!
임산부의 입에서 거창한 트림이 나왔다. 급체가 달아나는 소리였다.
“......!”
자기 트림에 놀란 임산부가 입을 막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이내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괜찮아?”
할머니가 물었다.
“예. 시원해졌어요. 고맙습니다. 체하면 아가 때문에 약도 못 먹을 건데...”
임산부가 윤도에게 인사를 했다.
“아이구, 젊은 양반이 용하네. 한의사시라고?”
할머니가 윤도를 돌아보았다.
“예...”
“고마워요. 이거 자칫하면 오늘 장사 문 닫는 건데...”
할머니는 거듭 고마움을 표했다.
“아닙니다. 여기 칼국수 값요.”
“아이고, 내가 이걸 어떻게 받아. 돈을 줘도 내가 줄 판인데... 그냥 가요. 그냥 가.”
할머니가 등을 밀었다.
윤도는 빈 그릇 밑에 지폐를 찔러두고 돌아섰다. 체해서 속이 갑갑할 때는 손등의 합곡혈이 명혈이다. 손을 가지런히 폈을 때 엄지와 검지 사이에 볼록 튀어나오는 부분이 합곡이다. 꼭꼭 눌러주기만 해도 효과가 좋다.
손목 아래의 내관혈도 만만치 않다. 멀미 때도 좋지만 체했을 때도 요긴한 게 내관혈이었다. 어쩌면 혈자리의 감초랄까?
그러니 윤도, 그만한 일로 돈 받을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아기만 가져도 애국이 되는 세상이 아닌가?
가벼운 발길로 참숯 한의원을 찾았다. 좋은 쌍화탕 재료가 더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어, 채 선생님.”
한의원에 들어서자 한약사가 반색을 했다.
“잘 계셨나요?”
“예... 지난번 조언 고마웠습니다.”
“별 말씀을...”
“저도 좋은 경험했습니다. 믿는 거래처라고 해도 약재는 하나하나 확인을 해야 한다는 것.”
“생명을 다루는 일이니까요.”
“그러게요. 자칫했으면 저 안에 계신 용천규 부장검사님께 수갑 받을 뻔 했지 뭡니까?”
“검사가 와 있어요?”
“원장님 단골이시잖아요? 내일 중요한 범인검거가 있다고 몸 체크하러 오셨다네요. 좌골신경통이 고황에 들었거든요.”
고황.
한의학에서는 이 단어가 나오면 좋지 않았다. 여간해서는 낫지 않는 병이라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약재 구경 좀 하면서 원장님 기다려도 될까요?”
“그러세요. 마침 귀한 사향이 들어왔는데... 보실래요?”
한약사가 누런 종이를 열었다. 주머니 사향이었다.
‘오!’
윤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향은 이제 보기 드믄 약재였다.
“괜찮은가 한 번 봐주세요.”
“제가 뭘 알아야 말이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윤도의 자동분석은 이미 가동되고 있었다. 이 사향은 난쟁이사향노루의 분비물이었다. 사향은 여러 경로로 얻는다. 난쟁이사향노루 외에 산사향노루, 사향노루에서도 사향이 나온다. 수컷의 분비물로 내용물을 꺼내 말리면 가루사향이 되고 주머니 모양을 그대로 잘라 말리면 지금처럼 주머니 사향이 된다. 이 사향은 퀼리티가 좋았다.
“좋은 데요?”
“정말입니까? 채 선생님이 그렇다니 안심이 되네요.”
한약사가 품질보증서를 보며 웃었다. 윤도도 슬쩍 넘겨보았다.
Muscone 1.7%
Normuscone...
Muscopyridine...
사향의 주요 성분들이다. 강남의 한의원에서 본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혹시 쌍화탕 재료 넉넉하면 좀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한약사가 약재를 보여주었다. 천궁과 대조, 황기가 특별히 좋았다.
“쌍화탕 약재를 구하는데 조금씩 얻을 수 있을까요? 돈은 따로 드리겠습니다.”
“아이고, 무슨 말씀이세요. 조금씩 가져가는 건 상관없으니 말씀만 하세요.”
한약사가 팔을 걷고 나섰다. 그는 약 포장지에 두어 주먹씩 듬뿍 약재를 담아주었다.
그때 침구실 쪽에서 성난 고함이 흘러나왔다.
“용 검사님 침 맞는 곳인데?”
한약사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가 한 번 가보죠.”
윤도가 약제실을 나왔다. 침구실 앞에 간호조무사 둘이 기웃거리고 있었다.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좋은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침 잘못 놓은 거 아닙니까?”
용 검사의 목소리가 조금 더 높아졌다.
“잘못된 건 아니고... 가끔 이럴 수가 있습니다.”
황녹수 원장 목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말도 안 됩니다. 요즘 주요 수배범이 많아 눈 코 뜰 새도 없는데다 내일 중요한 작전이 있다고 말했잖습니까? 그래서 다리 좀 편하게 해달라고 미리 부탁까지 했는데...”
“죄송합니다.”
“죄송으로 될 일이 아닙니다. 올 때보다 더 아프고 운신도 힘들게 되었으니... 막말로 내가 원장님 의료사고로 기소라도 할까요?”
“......”
“허어, 이건 아주 드러눕게 생겼네.”
“잠깐만 누워계십시오. 안정하시면 조금 나아질 겁니다.”
“잠깐만 잠깐만이 벌써 얼마입니까? 사람 미치겠네.”
용 검사의 불만을 뒤로 하고 황 원장이 나왔다. 식은땀으로 샤워를 한 모습이었다.
“채 선생. 언제 왔어?”
“무슨 일이죠?”
윤도가 소리낮춰 물었다.
“내 단골 부장검사님. 내일 중요한 일이 있어 미리 침 좀 맞으러 오셨는데 혈자리가 불뚝거리네. 피부 뚫는 속도가 좀 느린 거 말고는 별 거 없었는데...”
황 원장이 고개를 저었다. 침 맞을 때의 통증은 침이 피부에 들어가는 속도에 비례한다. 이 스킬이 무통자입(無痛刺入), 즉 통증 없는 침의 정답이었다. 혈자리가 불뚝거린다는 건 이상현상에 속했다. 침 역시 주사처럼 몇 가지 현상이 따르는 경우가 있었다.
가장 흔한 건 출혈이다. 침을 뽑으면 침구멍에서 피가 나올 수 있다. 큰 문제는 아니지만 환자들이 불안해 할 수 있다. 다음은 혈종이다. 침 뺀 자리가 콩알만하게 불거진다. 침 구멍으로 올라오던 피가 피하에 응집된 것으로 크게 우려할 일이 아니다. 손으로 지그시 눌러주면 사라진다.
문제가 되는 건 침이 들어간 상태에서 굽는 만침, 들어간 상태에서 돌지 않거나 뽑히지도 않는 체침, 침이 부러지는 절침 등이 꼽힌다. 하지만 노련한 한의사라면 침착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일에 속했다.
“좌골신경통이라고요?”
윤도가 병명을 물었다.
“좀 심해.”
“외람되지만 제가 한 번 봐도 될까요?”
“채 선생이?”
“예...”
“하지만 내가 이미 좌골신경통 혈자리를 다 써놔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가능하겠어?”
“아마...”
“그럼 내가 한 번 말씀을 드려보지.”
“......!”
황 원장 말을 전해들은 용 부장검사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러니까 내 다리를 저 새파란 한의사에게 맡겨보자고요?”
목소리에도 두릅이나 엄나무처럼 가시가 잔뜩 돋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침술은 저보다 낫습니다. 갈매도 소문 들으셨지요?”
“갈매도고 뭐고 그만 두세요. 지금 일어서지도 못할 판인데 아예 입원 시킬 일 있습니까?”
“채윤도입니다. 진맥만 한 번 해드리면 안 될까요?”
황 원장 옆에 있던 윤도가 나섰다.
“당신들, 지금 나를 실험대상으로 삼는 거요 뭐요?”
“그건 아닙니다만.”
“아니면? 베테랑 황 원장도 이 모양인데 새파란 당신이 뭘 하겠다고?”
“죄송하지만 옛날 중국 명의 ‘곽옥’의 일화를 아십니까?”
“그게 지금 이 상황하고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곽옥은 명의지만 지체 높은 관리나 큰 부자의 병은 잘 고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 비하면 대조적이었죠. 이는 고관대작들에게 마음의 부담을 느낀 까닭입니다. 어쩌면 원장님도 그럴 수 있습니다. 내일 검사님께 중대한 일이 있다니 잘 해보려고 긴장한 까닭에...”
“그럼 당신은?”
“저야 검사님과 별 이해관계가 없으니 긴장할 일도 없지요.”
“뭐요?”
“침술은 그처럼 섬세함을 요구하는 의술입니다.”
“......”
“진맥만 한 번 보고 자신 없으면 그냥 나가겠습니다.”
“미치겠군. 보시오.”
용 검사가 팔을 내밀었다. 맥을 잡은 윤도가 기의 흐름에 집중했다.
‘좌골신경통...’
황 원장의 말은 맞았다. 하지만 골이 깊었다. 좌골신경을 다스리는 족삼리혈부터 해계까지 죄다 엉망이었다. 그러나 이미 황 원장이 침을 놓은 자리...
조금 더 맥에 집중했다. 목의 인영맥과 12경맹의 동맥도 체크했다. 기왕 시작한 것이니 침 놓을 명분을 찾을 생각이었다. 다행히 대안이 있었다. 미소를 숨긴 윤도가 입을 열었다.
“침 두 방만 쓰게 해주시면 두 가지 고민을 풀어드리겠습니다.”
윤도의 배팅이 나왔다.
“두 가지 고민이라니?”
“하나는 좌골신경통... 또 하나는 남자의 고민...”
“......?”
윤도 손이 용 검사의 사타구니를 가리켰다. 용 검사가 움찔 몸을 사렸다.
“맡겨보시겠습니까?”
“......”
“이대로라면 검사님은 내일까지 거동이 불편하실 겁니다. 내일은 중요한 일이 있다면서요?”
윤도가 침통을 꺼내보였다.
“젊은 친구가 무모하군. 만약 잘못되면 어쩔 건가? 난 당신을 허위과장진료로 구속할 수도 있어.”
‘구속?’
윤도의 머리카락이 쭈뼛 올라갔다. 상대는 지방검찰청 부장검사.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하겠나?”
검사 눈에 힘이 들어갔다.
“의사는 환자를 앞에 두고 거래를 하지 않습니다. 오직 치료를 할 뿐.”
“자신 있다?”
“검사님이 저를 믿어주시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에이, 기왕에 버린 몸, 갈 데까지 가봅시다. 어차피 이 몸으로는 작전에 나가지 못할 판이니.”
용 검사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의 말처럼 이판사판의 결정이었다.
“채 선생...”
이야기가 묘하게 돌아가자 황 원장은 안절부절이었다. 이미 독기가 오른 용 검사였다. 잘못하면 윤도가 다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윤도의 손은 벌써 용 검사의 바지를 벗기고 있었다.
“......!”
용 검사가 움찔했지만 윤도는 거침이 없었다. 어느새 용 검사의 두 손을 모아 가슴 위치에 올려놓고 무릎을 굽히는 윤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