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검사의 다리 셋을 구하다-2
부장검사의 다리 셋을 구하다-2
윤도의 선택은 회음혈이었다.
회음혈!
항문과 생식기 사이에 존재한다. 좌골신경통과는 별 상관이 없다. 장침을 뽑아든 윤도는 그 자리에 시침을 했다. 성기와 항문 사이의 회음혈은 고난도의 숙련을 요구한다. 이곳 혈자리라고 주먹만한 것도 아니었다. 자칫하다 직장을 찌르면 낭패였다.
고환이나 음경 부근을 찔러 피가 나면 환자가 죽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초대형 의료사고다. 환자가 검사이기에 대충 넘어갈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윤도의 시침은 주저가 없었다.
침을 넣고 끝을 좌우로 돌려 혈자리를 자극했다. 이 순간 윤도의 얼굴은 성자와 같았다. 불멸의 진지함이 거기 있었다. 그렇기에 용 검사도, 지켜보는 원장도 입을 벌리지 못했다. 주변 혈자리와의 조화를 맞춘 윤도는 30여 분 후에야 침을 뽑았다.
“오줌발이 찔끔거리고 요도에 불이 난 것 같을 때가 많으시죠?”
윤도가 물었다.
“그거 하고 좌골신경통이 무슨 상관이오?”
“전립선염이 좌골신경통을 유발한 건 아니지만 좌골신경통은 전립선염에 영향을 줄 수 있죠.”
“......”
용 검사가 반신반의하는 사이에 또 하나의 장침이 시침되었다. 이번에는 허벅지의 풍시혈이었다. 장침을 넣는 윤도는 여전히 숭고해 보였다.
[목불외시-침 놓을 때는 두리번거리지 말고]
[심불잡의-마음을 비워 잡념을 없애고]
[지신좌정-몸가짐을 바로하고]
[여대귀인-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수여악호-침은 호랑이를 움키듯 힘 있게 잡고...]
그 몰입의 자세로 침을 꽂은 것이다. 침은 깊이 들어갔다. 고질이 된 좌골신경통에는 깊이 넣어야 치료효과가 좋다. 침을 꽂은 채 윤도는 연관 혈자리들을 체크했다. 족삼리와 해계혈을 지나 좌골혈과 환도혈까지 다스리는 것. 말하자면 원격조정의 시도였다.
생각 같아서는 족삼리에서 해계까지 일침오혈을 넣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혈자리는 이미 황 원장이 찌른 부위였다. 그렇기에 풍시혈에서 주변의 혼란을 컨트롤하는 윤도였다.
우로 한 번.
좌로 두 번.
한 손으로 침봉을 잡고 다른 손으로 돌리고 감았다.
삐익!
삐익!
교통경찰의 교차로 정리처럼 혈자리들이 수습되기 시작했다. 그 상태에서 미세하게 침 끝을 들었다. 가까운 환도혈부터 사뿐히 조정이 되었다. 이번에는 좌골혈에 맞췄다. 그 다음에는 해계로 가고 마지막은 부어오른 족삼리를 달랬다.
거기서 황 원장의 과실을 알았다. 어떻게든 통증을 잡으려는 욕심에 관련 혈자리 전부를 건드려 반응이 과하게 일어난 것이다. 윤도는 이 경우에서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환도혈의 조화는 다음 혈자리에 영향을 미쳤다. 해계혈도 그렇고 좌골혈도 그랬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장침부분을 다 밀어넣었을 때,
딸깍!
조화의 퍼즐이 완성되며 용 검사의 몸에 평형이 찾아왔다.
“왼쪽 다리 움직여보세요.”
윤도의 신호를 받은 용 검사가 다리를 꼼지락거렸다. 겁이 나서 잘 들지 못하는 눈치였다. 환자의 심리가 엿보였다. 오랜 이상을 겪은 환자는 조심스럽기 마련이었다.
“괜찮으니까 움직이세요.”
“......?”
“조금 더요.”
“......?”
“어떻습니까?”
“이거...”
용 검사 얼굴이 확 펴졌다. 허리부터 쌔끈하게 땡기던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것이다.
“일어나서 걸어보세요.”
바지를 건네준 윤도가 용 검사를 부축했다. 용 검사는 슬리퍼를 신고 일어섰다. 몇 발을 걸었다. 그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윤도를 바라보았다.
“화장실 다녀오세요.”
어느새 상황을 주도하는 윤도였다. 용 검사는 찍소리 못하고 그 말에 따랐다.
“채 선생.”
용 검사가 멀어지자 숨을 죽이던 원장 입이 열렸다.
“죄송합니다. 감히 원장님 앞에서...”
“무슨 소리? 채 선생이 나를 또 한 번 살린 거야.”
황 원장이 윤도 손을 잡았다. 그로서는 또 한 번 지옥에서의 생환이었다.
“대체 어떻게 한 건가? 설마 경맥에서 난맥으로 기세를 모아준 건 아니겠지?”
“한 번 시도해 보았는데 운이 좋았습니다. 아마 원장님이 미리 혈자리를 풀어준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윤도는 원장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회음혈은? 그것도 진맥으로 알았나?”
“예...”
“허어!”
원장이 넋을 놓고 있을 때 용 검사가 돌아왔다.
“이야, 당신 굉장하군. 오줌발이 소나기처럼 나왔어. 근 10여 년 만에 처음이야.”
용 검사의 표정은 180도로 변해 있었다.
“전립선도 많이 좋아질 겁니다. 저를 믿어주신데 대한 서비스입니다.”
“허어, 내가 진짜 명의를 만났군. 침 한 방으로 내 고민인 두 다리를 고쳐놓다니. 걷는 다리와 남자의 다리...”
“......”
“고맙소. 덕분에 내일 업무가 잘 될 것 같습니다.”
용 검사는 휘파람을 불며 한의원을 나갔다.
황 원장의 부탁으로 몇 환자에게 침을 더 놓았다. 한 환자에게는 일침삼혈을 선보였고, 또 다른 환자에게는 부득이 일침오혈을 놓았다.
“허어!”
황 원장은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오랜 경험의 그조차 주저하는 일침오혈 신공이었다
.
저녁은 황 원장이 푸짐하게 쏘았다. 무려 1++짜리 한우 등심을 쏜 것이다.
“채 선생은 천재네, 천재.”
밥 자리에서도 그의 칭찬은 멈추지 않았다.
“별 말씀을...”
“아니야. 내가 장담하건대 경륜만 갖추면 채 선생이 대한민국 제일이야. 그래.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
“계획이라면...”
계획!
그 말이 윤도 입 안에서 맴돌이를 했다. 입대할 때는 계획이 없었다. 강남의 한의원에서 부원장으로 시작한 한의사 생활. 그러나 원장의 의료보험부정수급 작태에 환멸을 느꼈다. 3일 내원한 환자는 7일 내원으로 둔갑했고 일주일 다닌 환자는 보름으로 바뀌어 청구가 들어갔다. 돈만 아는 한의사. 그러면서도 양심의 가책은 눈꼽 만큼도 없던 사람이었다.
“나만 그러는 줄 알아? 다 이렇게 해. 못 해먹는 게 병신이지.”
원장의 공언은 쓸쓸한 울림으로 남았다.
그게 싫어 지원한 공보의였다. 하지만 그 섬에서 운명이 변했다.
“채 선생 정도라면 큰 그림을 그려야지. 막말로 고질병 전문으로 떼돈을 벌든지 아니면 한의학의 중흥을 위하든지.”
“예...”
윤도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시골 구석에 묻혀 사는 한의사지만 황 원장의 인품은 좋았다. 하긴 최고급 약재를 선호하고 한약사를 따로 둔 것만 봐도 견적이 나오는 사람이었다.
<의사.>
이과에서 취업 보장되는 전-화-기를 뒤로 하고 택한 한의사의 길. 과학과는 또 다른 보람이 있을 것 같아 선택한 길이었다. 하지만 사회에서 의사와 ‘한’의사의 인식은 조금 달랐다. 그러나 사람을 살리고 질병을 고치는 의술을 펼치는 데는 한의사와 의사가 다를 게 없었다.
여기서 윤도의 생각이 조금씩 방향을 잡았다.
한국의 허준.
미국의 슈바이처.
중국의 화타와 편작.
시대와 장소는 달라도 의술로써 의성을 이룬 사람들.
그들처럼 찬란하면서도 아름다운 의술을 펼칠 수 있을까?
윤도는 세 가지 아이템을 떠올렸다.
[스페셜 1-신맥을 짚고 신침을 놓는 열 손가락.]
[스페셜 2-약재의 효능을 꿰뚫는 눈의 파워.]
[스페셜 3-산해경 속의 약재를 꺼내주는 신비경...]
세 가지 스페셜을 장착한 스페셜리스트. 자신의 가치를 곰곰 생각하니 심장이 뜨끈하게 반응을 했다.
‘심오한 의술을 향해 돌직구처럼 직진!’
이제 윤도의 꿈은 국내 최대규모 광희한방대학병원 한의사가 아니었다. 방송에 나오는 반 연예인 한의사도 아니었다. 그 어느 쪽이건 시계 안에 들어온 것이다.
‘큰 그림...’
윤도 안에 그 단어가 빛으로 스며들었다.
제대. 공보의들에게는 소집해제에 해당하는 단어...
남은 건 그 장벽 뿐이었다.
딸깍!
모텔에 투숙한 윤도는 샤워를 마쳤다. 개운했다. 사람의 오장육부도 샤워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신선수로 내장을 세척하고 간과 심장을 빨아널고, 찌든 폐의 구석구석에 맑은 공기를 넣어 씻어낼 수 있다면...
그런데 그건 침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혈자리를 정화하면 된다. 지치고 병든 혈자리에 기운을 불어넣어 활기를 찾게 하면 그게 곧 오장육부 샤워가 아닐까?
“아아아!”
거울을 볼 때 옆 방에서 야릇한 교성이 들려왔다. 앞서 찻집에서 쌍화탕을 테이크 아웃해 들어간 40대 후반의 만취 남녀였다.
척 봐도 부부 그림은 아니었다. 등산복 차림인 걸 보니 산행을 빙자한 불륜인지도 모른다. 소리는 점점 절정을 향해 달렸다. 좋지 않았다. 40대 후반이면 폭주할 나이가 아니다. 자칫하면 여자 배 위에서 모터가 멎을 수도 있었다. 소위 복상사였다.
음주 후 쌍화탕은 해롭다. 성관계는 수명을 단축 시킨다. 그렇다고 노크하고 알려줄 수도 없으니 그냥 넘겼다.
욕망의 소리를 지우려고 리모콘을 눌렀다.
‘윽!’
윤도가 인상을 찡그렸다. 채널조차 짝퉁 야동이었다. 잠시 감상(?)하고 채널을 돌렸다. 뉴스가 나왔다.
앵커에 입에 오른 사람은 그랜드타운 성동복 회장이었다. 그는 2000억대의 비자금으로 정관계에 융단폭격식 로비를 퍼붓다 법망에 걸린 수배범이다. 천혜의 국립공원 부지에 상위 0.1%를 위한 호화 아파트 단지를 짓던 중에 성관계를 하던 열일곱 여고생의 투신으로 인생 조종(弔鐘)을 울렸다.
소아성애자 취향으로 미성년자들과 동침을 즐기던 중, 가학과 무리한 체위를 요구하다가 겁을 먹은 여고생이 호텔에서 뛰어내린 것. 성동복은 부하를 희생양 삼아 법망을 피했다. 하지만 핸드폰이 문제였다. 죽은 여고생의 핸드폰에서 성동복과 찍은 사진들이 나온 것. 사진들은 하나같이 국민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검찰은 사건전말을 캐다가 더 큰 개가를 올렸다. 부하직원들 입에서 비자금 건이 나온 것이다. 금융기관을 속여 대출을 받고 유령직원들을 내세워 임금을 챙기는 수법으로 천문학적 비자금을 조성했다.
그는 이 실탄으로 정계, 금융계, 관계 인물을 무차별 포섭해 꿈도 꾸지 못할 국립공원 부지를 사들여 타운 조성에 나섰다. 고위직만 80여 명이 관련된 최악의 비리였다. 그의 로비는 미성년 여학생 성매수에도 무차별이었다. 검찰수사에 따르면 여중생들과도 가학적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성동복은 보디가드이자 운전기사를 데리고 잠적했다. 밀항선을 타고 외국도주를 했을 거라는 멘트를 들으며 텔레비전을 껐다.
‘허얼.’
75세의 성동복. 웃기지도 않았다.
그는 서양 슈나미티즘(shunamitism)의 신봉자일까? 아니면 동양 소녀경의 소음동침(少陰同寢) 쪽일까? 한국의 고서에도 유사한 말이 전한다. 그 유래는 배꼽이었다. 한방으로 치면 신궐혈. 노약하고 기력이 없는 남자를 어린 소녀와 배꼽을 맞대고 묶어 동침을 시키면 정력(精力)을 되찾는다는 말이 그것이었다.
성동복도 회춘을 위해 그랬을까? 멍멍, 개소리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범죄일 뿐이다. 동시에 신장 자해였다. 70세 넘은 나이에 섹스에 탐닉한 자. 그 콩팥의 기운이 바닥일 것은 보지 않아도 뻔했다.
옆방이 잠잠해졌다. 신문을 펴고 쌍화탕 재료를 펼쳤다. 쌍화탕은 보통 7가지 정도의 약재로 만든다. 상황에 따라 한두 가지 더 들어가기도 한다. 윤도의 재료는 두 타입이었다. 가져다 끓이기만 하면 되는 세트와 나름 최상이라고 골라 모은 재료의 조합. 이 두 가지를 따로 끓여 차이를 볼 작정이었다.
그 후에 신비경을 잡았다. 지리산약초라는 책을 비쳤다. 보이는 건 그냥 책의 면이었다. 산해경으로 옮겼다. 이번에는 책속 기록이 생생한 실물로 비쳐졌다.
[신비경.]
산해경에만 통한다.
오직 약재만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하루 한 번, 그것도 소량만 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