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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32/265)

부장검사의 다리 셋을 구하다-3

이제는 익숙해진 사용법으로 산해경을 더듬어 나갔다. 거울이 멈춘 곳은 대황남경의 무산이었다. 무심코 넘기다 봉황새의 일종인 황조를 발견했다. 황조는 눈이 멀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정작 윤도의 눈을 멀게 한 건 황조가 아니었다.

“......!”

약재를 본 윤도는 숨도 쉬지 못했다.

‘불사약...’

불사(不死)...

죽지 않는 약이다. 인간이 원하는 영생의 약이다. 설령 영생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호기심이 발동해 손을 밀어 넣었다. 만약 분석이 가능하다면, 그래서 같은 약을 만들 수만 있다면 노벨의학상은 물론 돈과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아니, 설령 분석이 안 된다고 해도 죽어가는 사람에게 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사건이 될 수 있었다.

“까아!”

황조가 미친 듯이 손을 쪼았다. 아팠다. 거울에 들어온 건 모두 여덟 개의 방. 어느 방을 기웃거리든 황조는 귀신처럼 알았다.

“까아아!”

한 번을 더 쪼이고는 손을 빼냈다. 손끝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빗나갔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손이 잘렸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침통에 딸린 소독솜으로 소독을 했다.

불사약...

불사약은 허용되지 않는 것일까? 다른 영약과는 달리 깔끔하게 실패한 윤도였다. 무리하지 않고 서산경으로 넘어갔다.

거기 중곡산에서 ‘회목’의 열매를 땄다. 이 붉은 열매는 힘을 세게 만든다. 허약체질이나 기력이 빠진 노인들에게 딱인 약재였다. 용법도 번거롭지 않았다. 과육을 10g-20g 정도 씹어 먹으면 된다고 나왔다.

<간편한 원기보충제.>

열매 하나로 여러 명이 효과를 볼 것 같았다.

‘이것만 해도 대박이지.’

불사약을 욕심내지 않았다. 당장 눈앞에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산해경이 어디로 갈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호기심을 갖는 건 약에 대한 욕심일 뿐이다. 같은 값이면 더 많은 사람을, 더 빠르고, 더 완벽하게 치료하고 싶은 한의사의 욕심... 그건 죄가 아니었다.

회목을 챙겨두고 침대에 누웠다. 그걸 먹고 가뜬해질 섬사람들을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윤도의 밤도 가뜬했다.

**

“볼 일 보러 나오셨어?”

다음 날 항구에서 바쁜 인사를 받았다. 육지에 나왔던 섬사람들이 윤도 주변에 몰려든 것이다. 바람은 제법 있었다. 덕분에 바닷물이 차갑게 느껴졌다. 할머니들은 육지에서 산 물건들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이거 먹어봐.”

“이거 아주 맛나.”

눈깔사탕도 나오고 약과에 캐러멜도 나왔다. 할머니들의 인심은 바다만큼 넓었다.

뿌우웅!

여객선이 출항을 했다. 승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갑판으로 나와 바다를 보았다. 배가 막 항구를 나왔을 때였다.

콰타타타!

먼 파도 위에서 엄청난 모터소리가 들려왔다. 소형 선박이었다. 배 한 대가 고속도로를 무한질주 하듯 속도를 내고 있었다.

“왜 저래?”

할머니들이 웅성거렸다. 그 뒤로 경찰선이 보였다. 범인을 추적하는 모양이었다. 달아나는 배는 여객선 앞을 아슬아슬하게 가로질렀다.

“아이고, 저 놈의 배가 미쳤나?”

“술 처먹고 배 모는 건가?”

할머니들이 소리쳤다. 달아나는 배는 어선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갔다. 그러다 결국 한 어선의 선미를 스쳤다. 속도감 때문에 작은 충격에도 반 바퀴가 돌았다. 그 사이에 경찰선이 따라붙었다.

배는 더 속도를 냈다. 무리해서 큰 어선을 돌아나간 배가 결국 대형사고를 내버렸다. 항구로 들어오는 중소형 여객선 선미를 직격해버린 것이다.

퍼엉!

엄청난 소리와 함께 배가 불길에 휩싸였다. 여객선에도 불길이 솟으며 급격한 요동이 일었다.

“으아악!”

“엄마야!”

여객선은 어 하는 사이에 뱃머리가 기울었다. 승객 100여 명이 미친 듯이 바다로 뛰어내렸다.

“사람 살려!”

“살려줘요.”

100여 명이 뛰어내린 바다는 물 반 사람 반이었다. 구명조끼 없는 사람이 더 많았다. 윤도가 뛰어들어 한 명을 구했다. 그 사이에 코앞에서 어린이 하나가 가라앉았다. 구조된 사람에게 구명용 튜브를 씌워주고 잠수를 했다. 아이는 멀지 않았다. 뒤에서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수면 위로 올라왔다.

경찰선도 구조에 동참했다. 그 사이에 다른 경찰선이 도착하고 주변 어선들도 합류했다. 차가운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 일부는 벌써 물을 먹고 허옇게 떠오르고 있었다.

“구조된 사람은 큰 배로 올려요!”

경찰선에서 누군가 상황을 지휘했다. 용천규 검사였다. 사고를 낸 배는 그가 추격했던 모양이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건 윤도였다. 차가운 바다에서 창졸간에 일어난 사고라 심장마비자가 많았다. 윤도가 구한 소년도 그랬다.

“지소 선생님!”

윤도를 아는 선장이 제세동기를 가져왔다. 하지만 심장마비자가 줄을 선 상황. 별 수 없이 침통을 꺼냈다. 심폐소생술에 매달렸다가는 죽어나가는 사람이 태반일 것 같았다.

“어르신들 좀 도와주세요.”

윤도가 할머니들을 불러 모았다. 하지만 그녀들은 기력이 약했다. 급한 대로 산해경에서 꺼낸 열매를 나누어먹였다. 그녀들은 선원과 함께 성심껏 윤도의 지시를 따랐다. 의식을 잃은 사람들 상의를 벗겨 침 놓을 시간을 단축 시켜준 것이다.

혈자리는 곡지혈이었다. 이 혈은 심장마비에도 좋다. 심수혈도 좋지만 등 쪽이라 자세 확보가 어려웠다. 원래는 발목의 충양혈도 체크해야했다. 이 맥은 심장이 멎은 후에도 한동안 감지된다. 이 맥이 잡히면 심폐소생을 포기하지 말아야한다.

윤도가 소년의 곡지혈에 첫 장침을 밀어넣었다. 의식회복을 확인할 시간도 없이 다음 사람에게 자침을 했다. 세 명을 자침하자 환자의 체온이 식기 시작했다.

“담요 같은 걸 가져다 덮어주세요.”

윤도가 소리쳤다. 선원이 선실에서 담요를 가져다 사람들을 덮었다. 윤도의 손가락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맨 먼저 장침을 맞은 소년이 꿀럭 물을 토해냈다. 그걸 신호로 줄줄이 의식이 돌아왔다. 하지만 다섯 번째 여자는 반응이 없었다. 충양혈을 짚었다. 희미했다.

“환자를 엎어주세요!”

다른 침을 뽑으며 외쳤다. 엎은 자세라 해도 기도는 확보해야 했다. 의식이 없는 여자이기에 그 또한 쉽지 않았다. 윤도의 장침, 우여곡절 끝에 등짝의 심수혈로 들어갔다. 좌우의 두 개였다.

‘제발...’

왼편 장침의 자극을 조절하며 침을 돌렸다.

‘제발...’

왼편으로 한 번 더 침을 감았을 때, 여자의 상체가 울컥 흔들렸다. 물을 토한 것이다. 장침이 통한 것이다. 서둘러 여자를 바로 눕혔다.

“억, 어걱!”

여자는 태초의 똥물까지 다 게워 올렸다.

“아이고, 우리 채 선생이 전부 살렸어, 전부 다 살렸다고!”

“화이고, 참말로 용하네!”

할머니들이 소리치자 구조 중인 어선의 어부들이 환호를 했다. 소형 여객선의 사태도 수습에 접어들었다. 소방선이 달려와 불길 진압에 나섰다. 배는 다행히 가라앉지 않았다.

“선생님!”

얼마 후에 용 검사가 여객선으로 올라왔다.

“용 검사님...”

“세상에, 이 배에 선생님이 타고 있었군요?”

“예, 섬으로 들어가는 길에...”“천운이군요. 선생님 아니었으면 인명피해가 불가피했을 거 같은데...”

용 검사의 시선이 갑판으로 향했다. 비상 출동한 해상 119 구조대가 심장마비에서 깨어난 사람들을 이송하고 있었다.

“검사님은요?”

“나는 어제 맞은 침 덕분에 쌩쌩한데... 도주하던 범인을 아직 못 찾았습니다.”

“예...”

그때 용 검사의 무전기가 울렸다.

“아, 지금 막 건졌다는군요.”

용 검사가 바다를 바라보았다. 수면 위에서 검찰 수사관들이 손짓을 했다. 범인은 여객선 위로 올려졌다. 그 또한 심장마비였다.

“부탁합니다. 이 인간이 주가조작으로 소액주주들에게 700억대 피해를 입힌 놈입니다. 일본으로 밀항한다는 첩보를 잡고 추격 중이었는데...”

“......!”

범인을 바라보던 윤도의 미간이 구겨졌다. 옷 때문이었다. 배가 여객선을 직격하면서 화상을 입은 범인이었다. 가슴팍은 물론이고 팔뚝까지 옷이 눌어붙은 것이다. 그나마 운이 좋아 목 위는 멀쩡했다. 위경의 충양혈을 짚었다. 맥은 거의 소멸 직전이었다.

‘젠장!’

낭패였다. 눌어붙은 옷을 잡아뗄 수도 없는 판이었다.

“저기요, 선실에 혹시 구급상자 있나요?”

선원을 향해 외쳤다. 선원이 달려가 구급상자를 가져왔다. 그 안에 있던 알코올을 곡지혈 부위의 팔뚝에 부었다. 옷 위에서 침을 놓을 작정이었다.

조금 멀쩡한 반대 팔에서 맥을 짚었다. 곡지혈자리를 찾는 중이다. 혈자리라는 게 맨살에서 찾아도 쉽지 않을 일. 하지만 눌어붙은 옷을 탓하며 포기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부디...’

혈자리를 가늠한 윤도가 눌어붙은 옷 위에 장침을 겨누었다.

오리무중.

안개 속의 혈자리를 찾는 일과도 같은 시침이었다. 윤도의 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바늘 끝에 모여 있었다. 범인의 심장은 이미 요단강에 한 발 들어간 상태. 어쩌면 단 한 번의 기회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탈진 직전의 몸...

‘채윤도...’

윤도가 스스로에게 마법을 걸었다.

너는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고.

중얼거림이 윤도의 심장을 데웠다. 뜨거운 간절함이 어깨를 타고 손가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 기세가 침 끝에 도달했을 때, 무념무상의 침이 옷을 뚫었다. 피부를 뚫었다. 그리고... 남은 침끝을 다 집어넣자 윤도 손가락에 생명의 촉감이 올라왔다.

‘걸렸다.’

그 느낌은 한 마디로 전율이었다. 신들린 윤도의 감각이 혈자리를 찾은 것이다.

“우억!”

침 끝을 좌우로 자극하자 범인은 물을 토하며 맥을 되찾았다. 반대로 윤도는 그 자리에서 맥을 놓았다. 일곱 응급환자를 살린 윤도였다. 완전한 탈진이자 방진이었다.

“채 선생님.”

용 검사가 윤도를 부축했다.

“제 주머니에...”

윤도가 생각한 건 산해경의 열매였다. 남은 한 쪽을 입에 무니 조금 살 것 같았다.

“병원 데려가서 응급치료 받게 하고 안정되면 연락해.”

그제야 용 검사가 수사관들에게 범인 수습을 명했다.

“이거 뭐라고 감사를 전해야할지 모르겠군요.”

용 검사가 손을 내밀었다.

“아닙니다. 저는 제 할 일을...”

“이제 보니 채 선생님하고 나하고 보통 인연이 아닌가 봅니다.”

“별 말씀을...”

“아닙니다. 범인체포도 선생님이 좌골신경통을 잡아주지 않았으면 꿈도 못 꿨을 일이고 돌발사고인 여객선 인명피해도 막았으니 문책은 피할 수 있을 거 같군요. 아무리 중대범인 추적 중이었다지만 인명피해가 나면 언론의 책임제기가 따르니까요. 그러니 걷는 다리와 남자의 다리, 출세 다리까지 합쳐 세 다리를 신세진 셈입니다.”

세 다리...

재치 있는 조어법에 윤도의 고단함이 씻겨나갔다. 그와 동시에 등 뒤가 소란스러워졌다.

펑펑펑!

요란한 카메라소리, 기자들의 폭풍 출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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