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내장을 향한 위대한 도전-1
녹내장을 향한 위대한 도전.
“여객선 사고에서 혼자 심장마비 승객 여섯과 범인 목숨까지 구했다고 하던데요? 혹시 의사십니까?”
기자들의 질문이 척추 주변의 혈자리처럼 빼곡하게 날아들었다.
“한의사입니다.”
윤도가 또렷하게 답했다.
“침으로 심폐소생술을 했다던데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가능했지 않습니까?”
그 또한 당당했다.
“침술과 판단력이 놀랍군요. 한 명 한 명 심폐소생술을 했다면 일부는 죽었을 지도 모르는데 자신이 있었던 일입니까?”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한 명이라도 더 구하는 쪽으로 판단을 내린 것 뿐입니다.”
“한방병원에서 진료를 보십니까? 아니면 개인 한의원을 운영합니까?”
“갈매도 근무하는 공보의입니다.”
공보의.
그 한 마디에 기자들은 초토화가 되었다. 새파란 공보의가 무려 일곱 명을 심장마비사에서 구한 것이다. 기자들은 점점 더 몰려들었다. 이제는 높은 분들도 배를 타고 출동을 했다. 지역 국회의원이 오고 군수가 오고 보건소장이 달려왔다.
“이 사람이 바로 우리 군 공보의입니다.”
군수 목에 힘이 들어갔다. 어깨동무까지 하고 카메라 앞을 누볐다. 윤도는 사실, 숨 돌리느라 바빠 그가 군수인지도 잘 몰랐다.
[공보의 한의사 해상 명의 등극하다.]
[일침칠구(一鍼七求), 침 하나로 일곱 목숨을 살리다.]
[기적의 침술, 젊은 명의 채윤도.]
[화타의 재림인가? 편작의 강림인가? 한의학계 고무.]
기자들은 광기어린 제목을 전송해댔다.
“하이고, 인자 그만혀. 우리 채 선상님 피곤혀.”
“맞어, 우덜도 집에 가야지. 영감이 눈깔 사탕 기달려.”
높으신 분들과 기자들의 공세는 할머니 부대에게 막혔다. 평소처럼 배만 타면 맥을 못 추는 할머니들이 아니었다. 그녀들이 기자와 고관대작들을 강제하선 시켰다. 생색 한 번 내보려던 국회의원과 군수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할머니들의 기세등등 파워는 회목의 효과였다. 회목으로 에너지를 받은 할머니들, 그 활력을 윤도를 위해 바친 것이다.
용 검사도 경찰선으로 돌아갔다. 경찰선에 버티고 선 그는 윤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틀 사이에 두 번이나 큰 도움을 받은 용 부장검사. 뱃머리에서 오래도록 손을 멈추지 않았다.
“아까 채 선생이 준 게 머여? 기운이 펄펄 솟네?”
“그러게. 짐이 참말로 하나도 안 무거워.”
배에서 내린 할머니들은 이구동성으로 윤도 칭찬을 했다. 그녀들은 거의 윤도의 신도가 되어 있었다.
창승은 항구 끝의 갯바위에서 낚시 중이었다. 그는 여객선을 돌아보지 않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때, 창승은 윤도의 활약상을 알고 있었다. 좁은 지역의 군이었다. 군수와 보건소장까지 뜬 일이니 그 소문이 갈매도에 오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SSS도 HHHH 앞에서는 기가 죽나본데요?”
마중 나온 세희가 웃었다. 그녀도 이미 보건소 쪽에서 연락을 받은 모양이었다.
“이거 봤어요?”
세희가 내민 건 기사에 딸린 댓글들이었다.
-한의사가 침으로 심폐소생술? 조선시대 무적 어의의 재림인가?
-오 마이 인생 한의사!
-장침 하나로 일곱 명을 구하다니 화타와 편작도 울고 갔겠네.
-나 진심 그 한의사에게 침 맞고 싶다.
-올해 노벨의학상은 채윤도에게.
-ㅆㅂ 공보의면 병역의무자인데 국가유공했네. 훈장 줘서 제대 시켜라.
-진정한 하드 캐리. 해상구조대들 밥줄 끊기네.
-내 찌질한 인생에도 침 한 방 놔주세요.
-당신을 대통령 주치의로 임명합니다.
-이 뉴스 듣고 십년 변비 쾌변했다. 혹시 그 명의의 신통방통 원격진료?
인터넷과 SNS의 위력이다. 댓글은 끝도 없었다. 매 기사마다 1만개가 넘는 댓글이 와글거렸다.
“그리고 아까 선생님 찾는 전화 왔었어요.”
“전화요?”
“장터에서 한약재 파는 사람이라고 하던데... 내일 선생님 진료 보시냐고...”
“이름이 진경태라고 하던가요?”
“맞아요. 진 뭐라고 하던데... 선생님이 한 번 오라 했다고 그래요.”
“아는 사람입니다.”
“하긴 이제 선생님 아는 사람이 한둘이겠어요? 우리 섬, 아니 우리 군 유명인사인데...”
“또 비행기 태우시네.”
“그나저나 할머니들은 어떻게 한 거예요? 아주 날아들 다니세요.”
세희의 시선은 펄펄 뛰는 할머니들을 따라다니느라 바빴다.
“보약재 하나씩 물려드렸어요. 배에서 응급 침 놓을 때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서...”
“하여간 선생님이 짱이에요.”
“지소장님은 낚시 삼매경이네요?”
윤도가 창승 쪽을 돌아보았다.
“낚시는 무슨... 내일이나 모레 나팔 불 예정이잖아요? 마음이 떠났으니 지소 일에 관심이나 있겠어요?”
나팔!
공무원 인사이동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군 인사이동 예정일이 머지않았다. 이번 이동 때 보건소 본소로 들어가기로 내정이 되었다는 창승. 자칫하면 곧 이별이다. 공무원도 그렇지만 공보의도 명령이 나면 짐을 싸는 게 현실이었다.
“좀 쉬어야겠어요.”
인사를 하고 사택으로 향했다. 할 일이 있었다.
보골보골!
쌍화탕이 끓기 시작했다. 두 개의 탕약기가 뽀얀 증기를 뿜어댔다. 당귀, 계피, 천궁, 백작약, 감초... 조화를 이룬 약재 냄새는 코를 즐겁게 했다.
빠라빠라방!
증기를 따라 전화기가 울었다. 가족들부터 동기들, 심지어는 대학 교수들까지 연락이 왔다. 같은 말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 전화를 끄려할 때였다. 또 전화가 들어왔다. 이번 전화의 주인공은 부용이었다.
“선생님, 인터넷 기사 봤어요. 혹시 슈퍼맨 아니세요?”
부용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아, 그거요. 별 거 아닌데...”
“뭐가 별 거 아니에요? 자그마치 일곱 명이나 구했다면서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말도 안 돼요. 그거 선생님 아니면 못 하는 일이에요. 대한민국 최고 명의가 있었더라도 그 정도는 못했을 거예요.”
“칭찬이죠? 고맙습니다.”
“선생님 같은 분을 알게 되어서 정말 뿌듯해요.”
“사업은 잘 돼요?”
“잘 되게 하려고요. 그냥 잘 되면 재미없잖아요?”
“......”
“실은 좀 바빠요. 그런데 이 정도 활약이면 대통령이 훈장 주고 제대 시켜야 되는 거 아닌가요? 인터넷에도 그런 말이 있던데...”
“하핫, 말이라도 고맙습니다.”
“안 되겠네? 내가 청와대 한 번 찾아가 담판을 짓든지...”
“쿨럭.”
“왜요? 제대하기 싫으세요? 듣기로는 군대에 말뚝 박는 사람도 있다던데...”“하핫, 저는 말뚝 스타일은 아닙니다.”
“어머, 손님이 왔어요. 저 다음에 또 연락드릴 게요.”
부용은 윤도의 혼을 빼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고마웠다. 서울까지 가서도 잊지 않고 챙기다니...
윤도는 다시 쌍화탕의 증기에 집중했다. 알큰한 향이 좋았다.
‘어떤 차이가 날까?’
윤도는 궁금했다. 약재 호기심도 한의사에게는 좋은 덕목에 속했다. 차이를 보고 창승에게 좋은 걸 나눠줄 생각이었다. 보건소로 옮겨가 가뜬하게 정착하라는 의미였다. 처음에는 얄미웠지만 이제 그런 생각은 머리에 없었다.
밤이 이슥해지자 문을 잠그고 의서를 펼쳤다. 오늘은 창공과 편작의 비방을 배웠다. 창공은 편작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그 또한 명의 중의 명의였다.
특히 그의 진맥은 신에 버금갈 정도였다.
중국 제 나라 때였다. 한 번은 저창(疽瘡) 환자의 맥을 짚고 불치의 병이라 8일 후에 죽을 것을 예고했다. 환자는 정확히 8일 후에 죽었다. 그는 또한 대소변을 못 보는 환자를 탕제 세 번 먹이는 것으로 고쳤다. 탕제의 이름은 화제탕, 처방이 전하지 않으나 만약 전한다면, 최고의 변비약이 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 창공(倉公)은 고칠 수 없는 경우를 삼불치(三不治)로 들었다.
[일불치(一不治)-병은 있으나 약을 먹기 싫어하는 경우.]
[이불치(二不治)-다른 사람 말을 빌어 의사를 믿지 않는 경우.]
[삼불치(三不治)-목숨을 중히 여기지 않고 몸을 함부로 하는 경우.]
이는 편작의 육불치와도 맥락이 통했다.
일불치-환자가 교만하여 병의 이치를 생각지 않는 경우.
이불치-몸의 병보다 치료비를 먼저 생각하는 경우.
삼불치-생활과 섭생이 몸에 맞지 않는 경우.
사불치-음양의 이치 무시, 즉 몸 관리를 하지 않는 경우.
오불치-몸이 너무 쇠약하거나 오장에 손상을 입은 경우.
육불치-의사의 말을 듣지 않는 경우.
그 의미를 곱씹으며 산해경을 펼쳤다. 오늘은 중산경 쪽이었다. 감조산에 거울을 대고 나무를 뒤졌다. 책에 적힌 약재찾기. 여전히 그리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요령이 조금 생겼다. 무작위로 산을 뒤지는 게 아니라 책의 서술내용을 따라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오늘 찾는 약재가 ‘탁’이라면,
중산경-박산-감조산-산 위의 감탕나무-산기슭의 탁 하는 식으로 차례를 지켰다. 기슭을 따라 거울을 움직이니 마침내 탁이 보였다.
노란 꽃에 꼬투리 모양의 열매였다. 이 열매를 찾는 이유는 약작두의 달인 때문이었다. 녹내장의 진행으로 한 쪽 눈 시력이 거의 사라진 진경태. 그의 시력회복을 도와줄 약을 구하는 중이었다.
침과 영약.
하나만으로도 해볼만 하지만 두 가지가 있다면 성공확률과 치료시간을 당겨줄 일이었다.
하지만 상대 질병은 녹내장.
무려 녹내장이다.
녹내장(綠內障-Glaucoma).
녹내장은 시력상실을 가져오는 대표적인 안과질환이다. 소리 없는 시력 도둑으로도 불린다. 원인은 안압의 상승이다. 안압은 보통 10-21mmHg를 정상으로 보고 30mmHg 이상이면 병적인 상태로 리딩한다.
녹내장은 초기에 자각증세가 거의 없다. 그러다 악화되면 시야가 좁게 느껴진다. 눈 주위의 통증, 구토, 두통 등이 수반되는 경우도 있다.
녹내장이 무서운 건 안압이 정상인데도 발병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녹내장 환자의 70%정도가 이런 경우에 속한다.
색다른 병인도 있다. 바로 턱관절과 경추의 불균형 등도 녹내장을 유발한다는 점. 턱관절에는 무려 9개의 뇌신경이 지나기 때문이다. 진경태의 진맥에서도 이런 낌새가 있었다.
녹내장이 진행되면 당연히 치료를 받아야한다. 하지만 녹내장에 있어 시신경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렇기에 치료보다 관리로 이해하는 게 빨랐다.
산해경 속의 열매는 작았다. 손으로 잡으니 가만히 딸려나왔다. 약재분석으로 효능을 알았다. 어두운 눈을 고치는데 탁월한 약성을 지니 약재였다. 다만 질경이를 뿌리 채 태워 동량으로 환을 만들어 입 안에서 저절로 녹이며 먹으라는 단서가 붙었다.
질경이는 눈에 좋은 풀이다.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일단 안도의 숨을 쉬는 윤도였다. 첨가약재가 심해상어의 '생 간' 같은 게 아니라 다행이었다.
‘탁...’
손에 들린 영약을 바라보았다. 내일이 기대되었다. 과연 녹내장으로 간판을 내린 시력을 회복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 윤도는 몹시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