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내장을 향한 위대한 도전-2
이튿날 첫배는 만원이었다. 국회의원과 외교부 제2차관, 군수, 의회의장과 부군수, 보건국장, 보건소장 등의 고관대작들 행차 때문이었다. 후속 기사로 안 일이지만 심장마비 구조자 중에 외교부 제2차관의 딸이 있었다. 등짝의 심수혈까지 시도해야했던 여자가 바로 그녀였다. 제2차관은 그 인사차 행차에 끼었다.
기자들 행렬도 줄을 이었다. 방송국에서도 오고 신문 해외통신사, 잡지사에서도 몰려왔다.
그 꼬리를 문 건 환자들이었다. 쓸만한 침술가가 귀한 세상에서 윤도의 기사는 수요자들에게 기름을 부었다. 첫 배로 들어온 사람들만 무려 50여 명에 달했다.
재미난 건 배에 걸린 현수막이었다.
<(경) 갈매도 보건지소 격려 방문단 (축)>
초대형이었다. 고관대작들은 노란 어깨띠까지 둘렀다. 그들 하나하나는 쓰잘데기 없이 비장해 보였다.
윤도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에게 쌍화탕을 나눠주느라 바빠 그 난리법석 풍경을 모르고 있었다.
“유리잔과 종지의 것 중 어느 게 더 좋나요?”
윤도는 두 개 쌍화탕의 차이가 궁금했다. 물론 윤도가 먼저 확인을 마친 일이었다. 하지만 약효는 환자들이 받는 것. 그들의 의견 또한 체크해야 했다.
“종지 것이 백 배는 나아.”
어르신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윤도가 上품 약재를 골라 달인 쌍화탕이었다. 그때 세희가 뛰듯이 들어섰다.
“채 선생님.”
그녀의 숨은 목까지 올라와 있었다.
“왜요?”
“오셨어요...”
“누가요?”
“국회의원... 그리고 군수님... 거기에 더해 외교부 차관님과 보건소장님까지...”
크헐!
입이 쩌억 벌어졌다. 평소에는 군 과장급만 와도 난리가 가는 섬. 지난번에는 톱 스타들이 뜨더니 이번에는 고위관료들이 뜨는 것이다.
그리 반갑지는 않았다. 고위직들은 모르신다. 이런 행차는 누굴 돕고 격려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피로의 끝판왕으로 몰고 간다는 사실을...
“갈매도 보건지소장 이창승입니다!”
창승이 고관들 영접하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 갈아입었는지 가운도 새 것이었다. 당연했다. 그는 윤도와 달리 갈매도 보건 지소의 장(長) 신분이었다.
“채 선생, 귀한 손님들이 오셨어요.”
창승이 한방진료실 문을 열었다. 할머니 허리에 시침을 하던 윤도는 침을 든 채 손님들을 맞았다. 펑펑, 기자들 카메라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졌다.
“미안하지만 진료 중입니다. 밖에서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세희가 기자들을 막았다. 하지만 고관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세희도 공무원 신분인지라 더 다그치지 못했다. 결국 윤도가 시침을 멈추고 고관들을 응대할 수 밖에 없었다.
“딸을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바로 인사를 해야하는데 공무가 바쁜 바람에...”
제2차관이 먼저 감사를 전해왔다.
인사가 끝나자 군 공보실 직원들이 기자들을 밀어넣었다. 기자들은 멋대로 사진을 찍었다. 침통을 찍고 침대를 찍고, 심지어는 현장감 있는 사진 연출에 필요하다며 할머니들을 불러다 배경으로 세웠다.
어이상실!
기분이 상하는 윤도였다.
“우리 군의 영웅입니다.”
군수가 윤도와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카메라가 터지고 국회의원과 안행부 차관이 박수를 쳐주었다.
“그럼, 사람 목숨 아무나 구하나? 게다가 무려 일곱이라고. 이게 우리 지역 정기를 받았으니까 가능한 거예요.”
국회의원도 지역을 들먹이며 슬쩍 자신을 부각 시켰다.
“댓글 중에 그런 의견이 많던데 이번 공로로 소집해제가 가능합니까?”
기자 하나가 국회의원에게 질문을 날렸다.
“시켜야지. 이봐요, 군수. 한 번 검토해보세요.”
국회의원은 군수에게 공을 떠밀었다.
“그러죠. 김 실장, 인사과에 전달하세요.”군수는 그걸 아랫사람에게 넘겼다.
“채 선생 침술이 신의 경지라던데?”
국회의원의 거들먹 신공은 경지를 향해 달려갔다.
“맞습니다. 같이 일하는 지소장 목숨도 구했고 저 쪽 별장에서 요양하던 서울 재벌의 자제들도 구한 침술이지요. 게다가 어제는 무려 일곱 명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보건소장도 속 보이는 공치사에 합류했다. 공무원들의 말은 성찬은 KTX보다 빠르게 점입가경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나도 침 좀 맞을 수 없을까? 요즘 민의를 돌보느라 허리가 신통치 않아서 말이야...”
국회의원이 엄살을 떨었다. 지난번에는 보좌관 월급을 꿀꺽해서 이슈가 되셨던 분. 참 대단한 민의를 돌보는 모양이었다.
“아이고, 당연히 맞으셔야죠. 침대로 올라가시죠.”
군수와 보건소장의 손바닥에 불이 붙었다.
“뭐해요? 의원님께 침술 솜씨 좀 보이지 않고...”
보건소장이 윤도 등을 밀었다. 하지만 윤도는 침을 잡지 않았다.
“채 선생.”
창승까지 재촉하는 눈빛을 보내왔다. 윤도는 모르는 척 규정을 들이댔다.
“침을 놔드리고 싶은데 여기 지소 규정이 갈매도 사람이거나 연고자, 혹은 응급환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가 많아서...”
윤도가 할머니들을 가리켰다.
“......!”
국회의원과 보좌관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음 같아서야 권력으로 누르고 싶겠지만 기자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이미 갑질 리스트에 오른 몸이니 이제는 적폐라는 말을 들을까 싶어 침대에서 내려오고 말았다.
백미는 기념촬영이었다. 국회의원과 윤도가 인증샷을 찍고, 군수와 보건소장도 인증샷을 박았다. 그런 다음, 초대형 현수막을 배경으로 단체사진도 찍었다. 혹시 몰라 세 장을 거푸 박았다.
‘뭐 하자는 건지...’
그 말이 목울대를 넘어왔지만 다시 삼키는 윤도였다. 격려 방문이 아니라 자기들 홍보용 방문이었다.
고관들은 지소 격려 소임을 마치고 섬 시찰에 돌입했다. 첫 배가 나간 까닭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일반인들과의 입씨름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복 설명은 세희의 몫이었다.
[갈매도 보건 지소의 규정.]
그들은 하나도 공감하지 않았다. 일부 외지인들은 아예 대기실 의자에 드러누워 중환자 연기를 펼쳤다.
“나 알고 보면 중병환자라오. 그 규정대로 해도 침 놔줘야하는 거 아니오?”
별 수 없이 확인에 들어갔다. 윤도가 진맥으로 경중을 가려낸 것이다. 세 명에게 침술 기회를 주기로 하고 나머지는 돌려세웠다. 병을 잡아낸 진맥이 귀신 같았기에 항의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냥 돌아갈 사람들에게는 쌍화탕 대접을 했다. 먼 길 온 사람들에게 대한 대접이었다.
“이야, 이거 질이 다르네. 피로가 확 가셔.”
외지인들이 입을 모았다.
“좀 팔면 안 됩니까? 돈은 얼마든지 내리다.”
그들이 지갑을 꺼내들었지만 윤도가 손을 저었다.
“자자, 나중에 우리 채 선생님 공보의 끝나고 제대하시면 거기 가셔서 신청하세요.”
세희가 외지인들 등을 밀었다. 쌍화탕이 그들 입을 막았다.
그 와중에 해프닝까지 일어났다. 누군가 군수와 보건소장이 윤도를 보건본소로 데려가려한다고 한 말이 발단이었다. 할머니들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100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군수의 길을 막고 데모를 했다.
“채 선생을 데려가지 마라!”
“채 선생은 갈매도에서 제대 시켜라!”
군수가 각서까지 써주고서야 데모대가 해산되었다.
고관대작들이 오후 배에 오르고서야 섬이 조용해졌다. 하루가 어떻게 저물었는지 모른다. 완전 사람 진을 빼먹는 행차였다. 윤도는 녹초가 되어 가운을 벗었다.
“힘들죠?”
세희가 위로를 해왔다.
“버틸만 했습니다.”
“아까 속 시원했어요.”
“뭐가요?”
“국회의원 진료거부한 거요. 세상에 격려하러 왔다는 사람들이 그 틈에도 누리려고...”
“하핫, 이러다 저 괘씸죄 걸리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그러지 못할 걸요? 아까 섬 사람들 데모하는 거 못 봤어요? 군수님이건 소장님이건, 선생님 못 건드려요.”
“......”
“어머, 갈매도에서만 썩는 게 선생님께는 좋은 일이 아닐 수도...”
“아닙니다. 슬슬 정도 드는 데요 뭐.”
“아니. 어쩌면 특별 제대하게 될 지도 모르죠. 아까 국회의원이 군수님께 검토해보라고 했으니...”
“그냥 한 말이지 그게 되겠어요? 군수님이 결정권자도 아니고...”
윤도는 가운을 걸어놓고 사택으로 향했다.
“......!”
막 문을 열려던 윤도가 담장 옆의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아저씨!”
기척의 주인공은 약작두의 달인 진경태였다.
“언제 오셨어요?”
“오기는 아침 배로 왔는데...”
“그럼 하루 종일 기다리신 거예요?”
“그게... 높은 사람도 많은 데다 여기 진료자격이 어쩌고 하는 소리를 들어서...”
진경태 표정이 쓸쓸해 보였다. 지소의 소동을 본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그냥 계시면 어떡해요? 막 배도 나갔고... 여기 민박은 그저 그래요.”
“그런 건 괜찮아요. 약초꾼이다 보니 밖에서 자는 일도 이골이 났거든요.”
“그럼 누추하지만 일단 들어오세요.”
윤도가 진경태를 맞았다.
“내 방에 비하면 호텔입니다.”
안으로 들어선 진경태가 웃었다.
“이게 호텔이라고요?”
“놀리자고 한 말 아니외다. 내가 산에서 주로 자다보니...”
“집이 산 속인가요?”
“예, 요즘 유행하는 자연인이랄까요? 집은 여벌이고 약초 캐러 창곡산 올라가면 비닐 치고 며칠, 산 중턱에 마련한 움막 약초 건조장에서 며칠...”
진경태가 조용히 웃었다. 농담이 아닌 것 같았다.
“가족이 없으세요?”
“산이 내 가족이죠. 약초도 그렇고...”
“이거 한 번 보시죠.”
화제를 돌려 ‘탁’을 내밀었다. 산해경의 열매였다.
“못 보던 건데요? 수입입니까?”
“어디에 쓰는 것 같습니까?”
“어디 보자, 큼큼...”
진경태가 관능검사에 들어갔다. 관능검사는 약재의 색이나 형태, 맛 등으로 약재를 구분하는 법이다. 약재 다루는 귀신이니 혹시 알까 싶어 건넨 윤도였다.
“이름은 모르지만 눈에 좋은 듯 싶습니다.”
“......!”
진경태의 한 마디에 윤도의 촉각이 곤두섰다. 과연 그는 허튼 사람이 아니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지요?”
“눈에 좋은 약재의 냄새가 납니다. 결명자의 깊은 냄새랄까 당근 속살의 냄새랄까? 틀렸습니까?”
“아니, 맞았습니다.”
“다행이군요. 틀리면 면허 있는 약초꾼 체면이 말이 아니니...”
“그걸로 아저씨 눈을 치료할 겁니다.”
“그래요?”
“제 침이 도울 거고요.”
윤도가 침통을 들어보였다.
“치료비는 얼마나 됩니까?”
“......”
또렷한 질문에 윤도의 말문이 막혔다.
치료비.
그의 약재 셈법을 아는 까닭이었다. 약재의 효능만큼만 값을 매기는 사람이었다. 깎으면 팔지 않는다. 즉 정당한 치료비를 부르지 않는다면 그의 성향상 그냥 돌아설 가능성이 높았다.
사실 보건 지소에서 정식 진료를 하면 거의 공짜다. 그러나 대한민국 어디에도 안과가 있는 보건소나 보건지소는 없었고, 의료보험으로 따지는 의미의 치료도 아니었다.
“눈은 몸과 마음의 보배라 하죠. 그렇다면 보석이라는 뜻이 되겠지요?”
생각을 마친 윤도가 물었다.
“그렇죠.”
“보석이라면 한두 푼으로 값을 정할 수 없겠죠?”
“눈이 보인다는 전제를 깐다면...”
“신장 암거래가가 보통 1억 정도 한다니... 이건 암거래는 아니지만,,, 한..."
진경태 눈을 겨눈 윤도 입에서 배팅액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