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화 (36/265)

눈속에 든 조종사의 꿈-1

녹내장.

믿기지 않는 일을 했다. 이게 일반적인 방법이었다면 이 치료법 하나만으로도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한의학 녹내장 정복하다.]

논문으로 증명만 된다면 세계의학계를 뒤흔들 대박 치료법. 그러나 아쉽게도 공인 받기는 어려웠다. 이것은 오직 윤도만이 할 수 있는 치료법이기 때문이었다.

윤도는 녹내장을 잡은 혈자리의 상태와 방법, 진단과정 등을 기록했다. 윤도만의 ‘청낭서’를 만드는 것이다. 언젠가 이 비법이 일반화된다면 의술 발전과 인간의 질병 퇴치에 큰 힘이 될 일이었다.

밤에는 산해경 속으로 약재 사냥을 나갔다. 대황서경의 영산이 목적지였다. 온갖 약재가 다 있다는 산이었다. 간신히 송라를 찾았다. 다행인 건 따는 수고는 크게 들지 않는다는 사실. 만약 높은 나무 위에 있다면 전문약초꾼들도 채집이 쉽지 않은 게 송라였다.

두 개의 송라를 비교했다.

[산해경의 송라-上中품]

[진경태의 송라-中上품]

진경태의 송라가 현실에서는 최상급이지만 산해경의 것과 비교하니 두 등급이 낮았다. 겨우살이의 일종인 송라는 보기 드문 약재다. 100g당 50만원 이상을 호가한다. 민간에서는 항암제로 알려졌지만 한방에서는 이뇨, 해열, 강심, 진해거담제로 주로 사용한다.

윤도는 일단 끓였다. 물이 끓으면 넣고 약하게 우려내는 방식이었다. 약효가 달랐다. 이번에는 산해경의 양보다 진경태의 것을 더 많이 넣었다. 가루를 내어서도 넣어보았다. 가루로 쓰면 맛이 진해지는 걸 응용한 실험이었다. 양쪽의 약성을 동일하게 만들어보려는 목적이었다.

실패였다. 남은 것을 다 넣어도 산해경의 농도에 달하지 못했다. 많은 양을 넣어서라도 산해경 영약의 성분과 같게 해보려는 시도는 호기심으로 끝났다. 그렇다고 보람까지 없던 건 아니었다. 송라 우린 물을 어르신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섬의 어르신들이 한 뼘 더 건강해졌다.

**

그 사이에도 갈매도 보건지소는 몸살을 앓았다. 외지에서 걸려온 전화와 방문객 때문이었다. 거동도 못하는 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워온 딸과 하반신이 마비된 어머니를 업고 온 아들도 있었다. 그들 외에도 고질병 환자들이 많았다.

세희는 분주했다. 군청과 보건소에 전화해 홈페이지에 안내배너를 띄웠다. 갈매도 진료규정에 대한 안내였다. 전화를 받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로 인해 진료를 돕는 것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재미난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규정충족을 위해 갈매도로 아예 주민등록을 옮긴 사례가 나온 것이다.

법의 악용.

하지만 비난하기 어려운 경우였다. 마흔 셋 어머니가 열여덟 아들의 장래를 위해 내린 고육지책이기 때문이었다.

그 아들은 공군사관학교 지망생이었다. 고2인 현재 전교 3등 안에 드는 재원. 그러나 안타깝게도 색맹이었다. 공군 사관학교는 색구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성동색표라는 시험에서 일정 수준 이상 읽지 못하면 불합격이었다.

조종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아이, 색맹이라는 장애물 앞에서 분루를 삼키게 되었다. 그러나 색맹은 첨단의학으로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어머니, 윤도의 소문을 듣고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진료 문의 과정부터 거절을 당했다.

“외지 사람은 진료 못 봅니다. 게다가 색맹이라뇨?”

세희가 잘라말했다.

그래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들을 위해 ‘조건’을 갖췄다. 그녀 자신의 주민등록을 갈매도로 옮기는 결사항전의 결단을 내린 것이다.

“제가 주민이니 우리 준기도 연고가 있는 거죠? 데려와 봐도 되겠죠?”

그녀가 세희에게 주민등록 초본을 내밀었다.

황당!

세희는 흔들리는 정신줄을 수습해야만 했다.

할머니들에 따르면 이장집 앞에서 나흘이나 노숙을 하며 허락을 얻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부유한 집안도 아니었다. 수도권의 작은 아파트에서 전세를 사는 소시민이었다.

산해경을 뒤졌다.

“......!”

영약들을 체크하던 윤도의 촉각이 바늘처럼 곤두섰다. 색맹에 쓸 수 있는 영약이 있었다. 그 이름은 요초. 태실산에 가면 구할 수 있었다.

“일단 데려와 보세요.”

영약을 알았기에 수락을 했다. 게다가 규정상, 이제는 거부할 수도 없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그녀는 두 손을 모으며 울먹거렸다. 경우는 지나치지만 아들을 위한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부모는 아픈 자식을 위해 뭐든지 한다. 그게 섬으로 주민등록을 옮기는 일일지라도.

‘색맹...’

하루 종일 그 생각을 하고 살았다. 녹내장은 잡아보았다. 하지만 색맹은 또 다른 불치병이었다. 진경태의 치료과정을 복기했다.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들썩거렸다. 어쩌면 녹내장 치료의 연장선일 수도 있었다. 게다가 색맹치료에 성공한다면 눈병치료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도 가질 수 있는 일이었다.

퇴근 후, 식사도 미룬 채 산해경을 펼쳤다. 요초는 흰 꽃에 검은 열매가 달리는 약재였다. 찾기는 어려웠다. 몇 시간을 헤맨 끝에야 겨우 하나를 찾았다. 사방팔방에 딱 한 뿌리 뿐인 요초였다. 하긴 색맹을 달랠 수 있는 영약이었다. 산삼보다 귀하니 밭뙈기로 볼 수 있을 리 없었다. 어디로 날아갈까 서둘러 채집을 했다.

[원산] 산해경

[약재수령] 108년

[약성함유등급] 上上품

[중금속함유] 무

[곰팡이독소] 무

[독성] 미량.

[약재사용유무] 가능

[용법용량]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말려 몸에 지니면 눈이 나빠지지 않고 색맹을 이긴다. 꽃과 열매, 잎을 동량으로 물에 우려 눈에 발라도 효과를 볼 수 있다.

[약효기대치] 上中

약재분석이 나왔다.

‘오케이!’

윤도가 쾌재를 불렀다. 분명 쉽지는 않을 일. 그러나 영약을 확보했으니 도전해볼만 한 일이었다.

좋아.

색맹...

한 번 꿈 꿔보자.

누구도 못한 그 치료.

윤도는 영약을 손질하고 아침을 기다렸다.

다음 날 오후, 문제의 환자가 도착했다. 마지막 배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아이가 인사를 했다. 열여덟 살의 밝은 학생 김준기. 구김 없이 활동적인 모습이었다.

“오느라 고생했지?”

윤도가 환자를 맞았다.

“아뇨. 하나도 안 힘들었어요.”

얼굴은 웃지만 옷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났다. 멀미에 시달려 구토를 했다는 증거였다. 그럼에도 희망으로 뭉쳐진 준기의 표정은 윤도에게 애틋함을 안겨주었다.

환자는 환자.

기왕 정한 일이니 치료에 집중하기로 했다.

진료실에서 병원 기록을 보며 문진을 했다. 아이는 적록색맹이며 유전은 아니라고 했다.

모자는 그 원인을 중 1때의 교통사고로 추정했다. 그때까지는 색맹이 아니었기에 조종사를 꿈꿨다는 것이다.

“한 번 볼까?”

진료실에서 20분 정도 안정 시킨 후에 맥을 짚었다. 시신경 쪽 맥이 덩어리로 잡혔다.

‘덩어리?’

차분하게 다시 도전했다. 그래도 결과는 같았다. 진맥 위치를 옮겼다. 진맥은 보통 세 곳에서 확인한다. 가장 흔한 부위는 손목의 기구맥이었다. 다음으로 목의 인영맥이 있고 12경맥에서 뛰는 동맥도 진맥이 가능했다.

‘그랬군.’

인영맥에 12경맥의 정보를 합치니 사태 파악이 되었다. 덩어리는 꼬인 시신경이었다. 미세한 시신경들이 헝클어놓은 실타래처럼 엉기며 눌어붙어 있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시신경이 눌어붙으며 색감이 뒤섞인 것이다. 그래서 색맹이 된 것이다.

“선생님...”

진료를 돕던 세희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색맹이에요.

병명을 주지 시키는 것이다.

“어쩌겠어요? 어머니가 저렇게까지 지극정성인데 색맹이 낫지는 못하더라도 흉내는 내봐야죠. 그래야 속이 시원할 거 아니겠어요.”

윤도가 웃었다. 세희는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인터넷에서 다운 받은 COLOR VISION TEST 책자로 색맹 테스트를 해보았다. 색맹은 확실했다.

“어때요?”

준기 어머니가 물었다.

“한의학에 있는 비법 장침으로 시도는 해보겠습니다.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만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어렵다는 거 압니다. 그래도 잘 부탁드립니다.”

어머니는 신신당부를 하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윤도가 요초를 꺼내들었다. 도전의 시작이었다.

“눈약이 한 방울 씩 들어갈 때마다 눈을 부드럽게 감았다 뜨렴.”

톡톡!

요초 우린 물이 투하되기 시작했다. 한 방울 한 방울 정성껏 눈에 떨구었다. 준기는 윤도의 지시를 잘 따랐다. 요초는 흘러나오는 것 없이 안구 속으로 들어갔다.

맥을 다시 짚었다. 아직은 별 변화가 없었다.

톡톡!

남은 요초를 더 점적했다. 다시 맥을 짚었다. 반응이 오지 않았다.

톡!

장침에 쓸 양을 남기고 나머지를 다 넣었다. 잠시 숨을 돌리고 맥을 짚었다. 그제야 약간의 변화가 왔다. 안구 쪽 혈자리의 기혈 흐림이 나아진 것이다.

‘이제 시작인가?’

윤도가 장침을 뽑아들었다. 이번에는 창승도 지켜보고 있었다. 색맹환자를 본다니 결과가 궁금해진 모양이었다.

윤도의 첫 선택은 녹내장처럼 간의 혈자리였다. 시력은 간의 혈로부터 시작된다. 황제내경에도 눈으로 간의 직행 라인이 뚫려있다는 말이 나온다.

12경맥 중에 오직 간경만이 눈으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간의 힘으로 눈의 배터리를 채우고 시작하려는 계산이었다.

장침이 들어갔다. 간의 기세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환자는 팔팔한 시기의 고등학생. 오장육부는 튼튼했으니 치료에 도움이 될 일이었다.

두 번째 장침에는 요초의 액체를 묻혔다. 혈자리 직접 공략법이다. 혹시 모를 감염에 대해서도 깊은 주의를 기울인 윤도였다.

시침은 곡차혈에서 두임읍혈로 가는 투자침이었다. 한의학에서는 각종 눈 질환에 사용하는 침술이다. 승읍혈에서 정명혈로 바로 가는 방법도 고려했지만 그보다는 한 겹 더 돌기로 했다. 차근차근 본진을 공략하려는 것이다.

침을 살짝 돌리자 요초의 기운이 번져나갔다. 그 약성이 눌어붙은 시신경 라인에 도달할 때까지 자극을 계속했다. 약성이 번지는 반응이 너무 느렸다. 윤도가 침에서 손을 떼었다.

거기서 뽑아든 장침은 눈과 거리가 멀었다. 느닷없이 다리의 혈을 찾은 것이다. 발목 위의 현종혈이었다. 그 또한 시신경을 관장하는 혈자리였으니 가속도를 붙이려는 생각이었다. 요초는 넉넉하게 묻혔다. 그런 다음 센 자극으로 혈자리를 조절했다.

지원군이다.

가서 눌어붙은 시신경 선을 풀어주렴.

환자의 꿈이 열릴 수 있도록...

푸른 창공을 날 수 있도록.

혈자리를 조율하던 윤도의 손이 거기서 멈췄다.

“......!”

연관 혈자리의 동시 미동이 감지되었다. 장침이 꽂힌 혈자리들이 일치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간에서 시작된 반응이 마침내 눈에 닿은 것이다. 그러자 곡차혈과 두임읍혈의 활성도 힘을 받았다.

‘신호다.’

확신이 선 윤도가 장침 하나를 더 뽑아들었다. 바로 그 순간, 환자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선생님 눈이 너무 아파요!”

높은 외침과 함께 눈물보가 터졌다. 크게 아플 리 없는 혈자리들. 동시 작용이 일으킨 순간적인 부작용이었다. 엄마가 문을 밀고 들어섰다. 섬 마을 보건 지소다 보니 사랑방처럼 운영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들 눈에서 흐르는 눈물 홍수를 본 엄마의 간이 발딱 뒤집혔다.

“선생님!”

엄마가 외쳤지만 윤도는 개의치 않았다.

“선생님!”

엄마가 다가섰다. 세희가 엉거주춤 그녀를 막았다. 윤도는 장침을 든 채 상체를 틀었다.

“어머니.”

“우리 애 왜 이래요?”

“치료가 되는 과정이에요.”

“그런데 왜 애가 자지러지냐고요? 잘못되고 있는 거 아닌가요?”

“그새 잊었습니까?”

“뭘요?”

엄마가 아픈 소리로 대답했다.

“여기 왜 오셨습니까?”

“......?”

“아들 눈 살릴 길이 없나 해서 오셨죠? 그 길이 쉬울 걸로 생각했나요? 그저 침 한 방 놓으면 아드님 색맹이 씻겨갈 걸로 생각했냐고요?”

“......”

“만약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데려가십시오. 아드님은 별 문제 없습니다. 하지만 아드님에게 꿈을 안겨주고 싶다면 당장 나가십시오. 현대의학으로 치면 지금, 대수술을 하고 있는 겁니다. 아드님이 사고로 터진 머리를 수술할 때 그 수술실에 뛰어드셨습니까?”

“선생님...”

“나가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나갈까요?”

윤도의 목소리에는 각이 또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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